삼월 첫날
새벽녘까지 봄을 재촉하는 비가 촉촉이 내렸다. 겨울 가뭄이 한동안 지속되어 대지가 몹시 메말랐는데 흡족하지는 않아도 다소나마 해갈 되었다. 근래 산에 드니 등산로에 먼지가 푸석푸석 일어 산행에 불편을 겪을 정도였다. 겨울을 난 마늘과 양파들도 수분 부족으로 누렇게 말라갔는데 생기를 되찾을 듯했다. 도심에서도 떠도는 먼지를 재워주어 대기가 한층 더 깨끗해졌지 싶다.
신학기를 앞둔 삼일절 아침이었다. 어디 멀리 산행을 떠나지 않고 가까운 곳으로 산책을 나섰다. 집에서 걸어 용지호숫가를 한 바퀴 걸었다. 호수 수면에는 깃이 새카만 쇠물닭이 연신 자맥질을 쳐댔다. 사나흘 전 호숫가를 지나다가 봐 둔 수양버들은 그새 물기가 더 올라 파릇해지고 포물선을 그렸다. 산책로에는 간밤 강풍에 떨어진 삭은 나뭇가지와 몰려온 낙엽들이 어지러웠다.
용지호수에서 동편 언덕을 올라 용지공원으로 건너가 보았다. 너른 잔디밭은 간밤 내린 비로 물이 흘러간 자국들이 천연 무늬를 수놓았다. 시든 잔디였지만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파릇한 새싹이 번져갈 것이다. 공원 조경수인 목련나무에서는 겨울을 건너온 꽃눈이 조금씩 부풀어가고 있었다. 성산아트홀과 인접한 용지공원에서 KBS방송국 곁의 문화공원으로 갔다.
문화공원 산책로에는 산책을 나선 사람이 간간이 보였다. 경남신문 사옥을 지나 도청 방향으로 걸었다. 새벽까지 먹구름이 낀 하늘이 점자 개었다. 비가 내린 직후여서 대기는 한층 맑고 깨끗해 보였다. 삼일절 공휴일을 맞아 관공서 거리는 차량이 텅 비고 인적도 끊겼다. 도심 거리를 산책하기에 알맞았다. 공휴일이라 차량 통행이 적으니 소음이나 매연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었다.
창이대로 횡단보도에서 도청 정문으로 들어섰다. 도청 역시 공휴일이라 인적이 뜸했다. 동편 연못으로 가 보았다. 수양버들은 용지호숫가처럼 물이 오르면서 연녹색을 띄면서 휘어졌다. 몇 그루 매실나무에서도 꽃망울이 도톰해져갔다. 예년보다 개화가 늦음을 알 수 있었다. 호숫가 자연석 틈에 유일하게 한 그루 심겨진 능수매화는 개화가 더 늦어 아직 꽃눈조차 부풀지 않고 있었다.
생태 보도교에서 연못 속을 내려다보니 커다란 잉어가 유유히 헤엄쳐 다녔다. 그곳 연못도 지난겨울엔 꽁꽁 얼어 두꺼운 빙판을 이룬 적도 있었을 것이다. 어느새 그 빙판도 다 녹아 맑은 물로 채워져 있었다. 연못가 개나리는 아직 꽃망울이 부푸는 기색이 없었다. 개나리는 꽃눈이 부풀며 피는 꽃이 아니었다. 점차 날씨가 따뜻해지면 어느 순간 한꺼번에 화사하게 피는 개나리꽃이었다.
도청 동편 뜰에서 서편 뜰로 건너갔다. 아주 너른 잔디 광장이 펼쳐졌다. 그 가장자리에 심겨진 산수유나무를 살펴봤다. 꽃눈이 부풀면서 노란 꽃잎을 펼치려는 즈음이었다.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아 꽃망울을 터뜨릴 기색이었다. 어디서나 봄이 오는 길목이면 매화와 산수유꽃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꽃을 피운다. 매실나무도 있었으나 가까이 가 보질 않아도 꽃눈 상황이 짐작이 되었다.
도립미술관 앞뜰에서 도청 신관 쪽으로 갔다. 오래 전부터 잘 가꾼 반송이 숲을 이룬 뒤뜰이었다. 경남도내 각 읍면 명패가 새겨진 반송 그루들이었다. 수형이 아름다운 여러 그루 반송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었다. 경찰청 청사를 지나 창원대학 동문으로 들어섰다. 공휴일이라 캠퍼스는 한산했다. 공대 연구동을 지날 때 지상 주차장엔 교수인지 대학원생인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창원중앙역으로 오르는 계단 입구까지 가서 산학협동연구관을 지나쳤다. 인조잔디가 깔린 운동장 바깥 트랙을 따라 한 바퀴 걷고는 정문을 빠져나왔다. 이른 아침엔 낮은 구름이 드리웠었는데 시간이 점차 지나자 파란 하늘이 드러났다. 휴일이라 조용했지만 당장 내일 이후 대학가 삼월은 신입생 새내기들을 맞아 활기가 넘쳐날 것이다. 창원천변을 따라 내가 사는 아파트까지 걸었다. 18.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