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상어의 본향
강 문 석
반세기 가까이 바다를 낀 항구도시에 살면서도 고래상어를 직접 만날 수는 없었다. 고래상어는 주로 열대와 온대바다에서만 서식하는데다 우리나라에선 제주도 인근 해역에서만 드물게 관찰되기 때문에 그러했을 것이다. 멸종위기에 처해 희귀종이 된 고래상어를 만나러 사람들은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필리핀 멕시코까지 찾아가는 세상이 되었다. 인터넷을 열면 바다 속 고래상어와 함께 인증샷을 찍으며 여행을 즐기는 한국의 젊은이들까지 등장한다. 사흘간의 짧은 오키나와 여행에서 마음속의 고래상어를 만났다. 여행일정표에 츄라우미美ら海수족관이 들어있었지만 여행지마다 자주 접하는 수족관인지라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랬다가 수족관에서 고래상어를 만났으니 놀라움은 컸다. 본향인 바다를 떠나 수조에 갇힌 녀석들의 반응을 살피기 시작했다. 거대한 몸집을 쉴 새 없이 움직이며 궤적을 그리는 세 마리의 고래상어들. ‘쿠로시오黒潮の 바다海’로 명명한 수조가 바다의 한 부분을 통째로 들어다 놓은 것처럼 큰 것과는 달리 고래상어들은 독 안에 든 쥐처럼 보였다. 도심에서 떨어진 해안에 위치한 수족관인지라 탐방객은 대부분 관광객일 수밖에 없었다. 지구촌 곳곳에서 모인 사람들이 모두 숨을 죽인 것은 위험한 바다동물로 강력한 포식자인 상어가 저러다가 본성을 드러내지 않을까하는 긴장감 때문이지 싶었다.
하지만 고래상어들이 수조 안의 다른 물고기를 해친다거나 자신들의 갑갑증을 이기지 못해 성질을 부리면서 크게 요동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아리따운 소녀가 마이크를 잡고 이곳 수족관이 세계제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는 자랑을 곁들여 동화구연처럼 수족관 안 물고기들을 소개하자 긴장감은 다소 누그러졌다. 오키나와 고래상어는 아직 덜 자란 탓에 성어 몸길이인 12미터에는 미치지 못했다. 최대론 18미터까지 자라면서 개체 몸무게도 15톤에서 20톤에 이른단다. 녀석들이 마음만 먹으면 이 정도 수조를 무너뜨리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울 터였다.
4백여 종 상어 중에서도 몸집이 가장 큰데다 현존하는 어류 중에서도 크기로선 단연 으뜸인 고래상어. 어류인데도 포유류인 고래만큼 크면서 먹이 사냥방식 또한 수염고래를 닮았기 때문에 고래란 이름이 붙었다고 했다. 거대한 몸집과는 달리 성질이 아주 온순하여 바다에서 사람과 나란히 수영도 곧잘 한다는 고래상어다. 어느 일본 개그맨은 식인상어 이야기는 들어보지도 못했는지 고래상어가 실수로 사람을 삼켰다가도 바로 내뱉는다는 코미디로 구설수에 올랐다. 안전을 우선시하는 나라에서 이러한 망발은 따끔하게 경고했어야 하는데 아쉬웠다. 수족관 통로엔 상어가 얼마나 큰가를 보여주는 실물이 하나 전시되어 있다.
관객들이 상어 입 안에 들어서서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만든 박제였고 순서를 기다려야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고래상어 양 턱에는 3백 개나 되는 이빨들이 촘촘하게 나있다. 이빨은 상어라는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작기 때문에 먹이사냥도 수염고래처럼 물을 쭉 들이켤 때 함께 휩쓸려 들어오는 새우나 플랑크톤을 스펀지처럼 생긴 막으로 걸러서 먹는 게 고작이란다. 오키나와처럼 수족관이 아닌 직접 바다에 서식하는 고래상어 명소도 있다. 바로 필리핀 세부 섬 동남쪽에 있는 작은 마을 오슬롭이다. 마을 앞바다를 찾아온 고래상어에게 어부들이 먹이를 주자 녀석들이 아예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것이다.
오슬롭엔 하루에만 수백 명씩이나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단다. 주민들은 6년 전 크리스마스께 나타난 고래상어들을 산타클로스가 보내준 성탄선물로 생각하고 있다니 그들의 심성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고래상어에게 먹이를 주어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에 환경단체 그린 핀스Green fins는 야생의 대형 어류들을 먹이로 길들인다는 것은 고래상어를 위하는 행위가 아니라며 중단할 것을 경고하고 나섰다. 하지만 주민들은 고래상어를 잡은 것도 아니고 먹이를 주는 게 무슨 죄가 되느냐며 맞섰고 필리핀 정부는 해양생물 전문가까지 초빙하여 고래상어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까지 주민들을 지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의 조지아와 대만에서도 고래상어를 사육 중인데 우리나라는 제주에서 두 마리를 사육하다가 실패하고 말았다. 새끼 때부터 키우더라도 수조 안에서 야성을 길들이기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리라. 츄라우미 수족관은 드넓은 해양공원에 자리 잡았고 수족관에 붙은 기념품매장에도 사람들은 넘쳐났다. 공원엔 잘 가꾼 열대식물들이 남국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바다거북만 따로 보여주는 전시관을 지나면 바로 돌고래 쇼 극장이 나온다. 돌고래 쇼야 별다를 것이 없지만 조련사들 어깨 너머로 조망되는 에메랄드빛 남국의 바다가 더없는 압권이다.
쪽빛 풀장까지 갖추고 외벽을 고급스럽게 치장한 리조트의 레스토랑에서도 맛깔난 식단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섬나라를 광고하듯 뷔페식 메뉴엔 싱싱한 해산물이 많았다. 그런데도 난 해양공원을 탐방하는 동안 고래상어 생각이 줄곧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약삭빠른 사람들인지라 명칭만 '쿠로시오 바다'로 해놓으면 고래상어들이 수조를 바다로 느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일까. 하지만 인간들의 향수병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동물들의 생존욕구는 강하다. 제주에서 사육에 실패하여 결국 바다로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던 두 마리의 고래상어가 이를 잘 말해준다.
오키나와 고래상어들도 결국 바다에 대한 향수를 이기지 못하고 어느 날 '내 고향으로 날 보내달라'면서 집단으로 반기를 들고 일어나지 말란 보장은 없다. 환경단체들이 이러한 동물학대를 해결하는 일에 나서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지금까지 해온 걸로 봐서 그들에게 성과를 기대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단 하나, 고래상어를 전시하는 그 어느 수족관도 지구촌 사람들이 찾아 나서지 말아야 한다는 것. 멋모르고 엉겁결에 찾게 된 수족관인지라 고래상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 대한민국이 일제의 압제에서 광복을 맞았듯 수족관 고래상어들도 해방을 맞이하길 비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