落花吟(낙화음)
김삿갓
曉起飜驚滿山紅(효기번경만산홍)
開落都歸細雨中(개락도귀세우중)
無端作意移粘石(무단작의이점석)
不忍辭枝倒上風(불인사지도상풍)
鵑月靑山啼忽罷(견월청산제홀파)
燕泥香逕蹴全空(연니향경축전공)
繁華一度春如夢(번화일도춘여몽)
坐嘆城南頭白翁(좌탄성남두백옹)
낙화
새벽에 깨어 온 산이 붉어진 것을 보고 깜짝 놀랐네
가랑비 속에 꽃은 피고 지는구나
까닭 없이 바위에도 옮겨 붙고
차마 못 떠나 바람 타고 오르기도 하네
두견새는 청산에서 울다 그치고
비는 진흙에 붙은 꽃잎을 공중으로 차 올리는구나
이렇듯 영화는 한때의 꿈같은 봄이요.
성남의 머리 흰 늙은이가 앉아서 탄식하네.
<감상>
덧없이 지나가는 짧은 봄을 인생에 비유하요 읊은 시이다.
<작가소개>
김병연[金炳淵]
출생-사망 : 1807 ~ 1863
본관 : 안동
호 : 난고
본명 : 병연
속칭 : 김삿갓, 자 : 성심
활동분야 : 문학
출생지 : 경기 양주
주요저서 : 《김립시집》
조선 후기 시인으로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성심(性深), 호 난고(蘭皐)이다. 속칭 김삿갓 혹은 김립(金笠)이라고도 부른다. 아버지는 김안근(金安根)이며 경기도 양주에서 출생하였다.
1811년(순조 11) 홍경래의 난 때 선천부사(宣川府使)로 있던 조부 김익순(金益淳)이 홍경래에게 항복하였기 때문에 연좌제의 의해 집안이 망하였다. 당시 6세였던 그는 하인 김성수(金聖洙)의 구원을 받아 형 병하(炳河)와 함께 황해도 곡산(谷山)으로 피신하여 숨어 지냈다. 후에 사면을 받고 과거에 응시하여 김익순의 행위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답을 적어 급제하였다.
그러나 김익순이 자신의 조부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벼슬을 버리고 20세 무렵부터 방랑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스스로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 생각하고 항상 큰 삿갓을 쓰고 다녀 김삿갓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전국을 방랑하면서 각지에 즉흥시를 남겼는데 그 시 중에는 권력자와 부자를 풍자하고 조롱한 것이 많아 민중시인으로도 불린다.
아들 익균(翼均)이 여러 차례 귀가를 권유했으나 계속 방랑하다가 전라도 동복(同福:전남 화순)에서 객사하였다. 유해는 영월군 태백산 기슭에 있으며, 1978년 그의 후손들이 광주 무등산에 시비를 세우고, 1987년에는 영월에 시비가 세워졌다. 작품으로 《김립시집(金笠詩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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