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도 바쁜 날들이었지만, 특히 금요일은 오전부터 여러 일들이 많았었다. 강남에서 미팅 하나 하고 오후에는 성남 미팅 그리고 저녁즈음에는 관세문제 조언을 얻고자 마포 대포님 사무실에서 면담까지, 그리고 다시 강남으로 돌아가니 시간은 어느덧 저녁 8시 가 훌쩍 넘는다. 미국 본사 보고자료 보내고 나니, 밤 10시에 이른다. 더운 날씨에 등산준비 하다 너무 더워 샤워하는데, 문득 오늘 무박가기가 망설여 진다. 설악산이고, 덥고, 코스도 길고, 몇 주에 걸쳐 벌레물린 곳들이 염증으로 다 부워 올랐고. 설악은 언제나 아름답고 또 가고 싶은 곳이다. 하지만 항상 조심해야 하는 곳이라.
샤워 후에 냉커피 마시고 나니, 정신이든다. 해외출장 빼고는 항상 가는 오지산행인데 그냥 숨쉬듯 챙겨서 집을 나온다. 강변도착하니, 많은 팀원들이 자리잡고 있다. 백두산 다녀오신 영희언니, 모닥불님 그리고 향월초님, 우공님 등등....
오지버스는 설악 진전사에 도착한다. 시간은 오전 3시 가 넘었다. 꼼짝않고 누워있다. 움직이면 바로 산행시작해야 할 수도 있으니, 최대한 숨죽이고 움직이지 않고 눈감는다. 4시 산행시작을 위해서인지, 아니면, 빨리 산행을 하고 싶은 조바심이 있는지, 3시 40분 즈음 기상신호인 오지버스 불이 켜진다.
여름산행이다. 비도 오지 않는다. 채비할것 없다. 그냥 버스 내린다. 렌턴키고 오늘 산행가이드인 하늘재님 따라 계곡으로 흘러든다.
무더운 날씨에 산행시작 30분도 안되어 위 아래가 모두 젖는다. 그래도 약하지만 바람이 불어주어 그나마 열기를 줄여준다.
계곡산행은 길을 개척하기가 힘들다. 왼쪽으로 가다, 오른쪽으로 물 건너고, 얼마가지 않아 다시 왼쪽으로, 계곡 옆 사면으로 다시 계곡으로.
이 부근에서 무불은 오른쪽으로 혼자 오르다 미끄러 앞으로 넘어지며, 이마를 바위에 찧었다. 별이 번쩍하며 무거운 통증이 잠시 스친다. 꽤 충격이 있어, 혹시 피가 흐르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잠시, 피가 뿜어져 나온다. 손으로 이마를 눌러 지혈하려 했으나, 울컥 울컥 솟아나는 피는 고글 안 밖으로 폭포처럼 흘러 내려, 시야를 가린다. 이런게 많은 피를 본 나는 처음이라 당황한다. 주위 사람들 찾는다. 아마 위 사진은 피흘리며 도움을 청하는 무불을 보는 팀원들의 표정이라. 해피님이 무릎베게로 나를 눕히고, 현직 수간호 사인 하늘비님이 침착하게 지시한다. 일단 지혈을 해야해서 이것 저것 가능한 모든 의약품 동원하여 지혈한다. 난 누워서 회사일에 지장이 있을까 먼저 걱정하고, 응급헬기를 타야하는 시나리오도 상상해 보고, 나로 인해 오늘 산행을 망칠까 팀원들에게 미안하고, 또 얼굴에 얼마나 큰 흉터가 질까도 걱정하고. 피의 양으로 보아서는 최소한 20 바늘 이상을 꿰매야 할 것 같았다.
피가 너무 나니 어느 정도를 다쳤는지 다들 가늠이 안되는 듯 하다, 이마는 찢어졌다고 확신하고, 또 눈섭쪽에도 찢어졌다고 하고, 여기 저기서 안타까운 탄성이 들린다. 피를 많이 본 경험이 있는 수간호사님인 하늘비님은 침착히 이야기 해 주신다. 눈썹은 찢어진게 아니고, 피가 응고되어 눌러 붙은 것이고, 이마 상처는 크지 않은데, 혈관이 터진것 같다고 한다. 더불어 해피님도 피가 어느정도 멈추니, 찌어진 부위는 손톱정도라고 한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지혈하고, 습윤벤드 붙이고, 해피님과 영희언니가 준 수건으로 압박한다. 피는 옆으로 조금 흐르지만, 닦으니 이내 없어진다. 찬물에 여기 저기 튀어있는 피자국 닦아낸다. 고글 씻고, 모자 씨고, 장갑 씻으니 언제그랬냐는 듯 다시 평온해진다. 잠시 고민한다. 올라온 계곡으로 내려가 대중교통 타고 응급실을 갈지 (양양에 처가가 있다), 아니면 산행을 계속할지. 큰 상처 아니라는 하늘비님 믿고 산행을 결정한다. 간단하다.
계곡 끝 지점에서 화재봉을 오르는 구간은, 급한 오르막 구간이다. 땀을 너무 흘려서인지, 다들 힘들어 한다. 조금씩 천천히 오르고 올라 드디어 주 능선에 올라선다.
줄 그은데로 하산하기는 불가능할 것 같아. 올해 겨울 내렸던 설악동 C 지구로 하산결정한다. 거친 내설악을 지친 몸으로 내려오는 것도 만만치 않다. 힘 빠진 무불은 몇번을 넘어지고 구르고 하며 하산한다. 이마는 찢어졌을지는 모르지만, 또 지친 힘듦의 연속인 산행이지만, 그래도 좋은 걸 어떻하지? 중국 거래처에 있는 여동생같은 임원이 나에게 오빠는 오래 살꺼라고 이야기를 했다. 당시 난 역시 오래 살거 같다고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죽을때 병원에서 죽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하늘에서 죽거나, 도로에서 죽거나, 제일 행복한 것은 산에서 죽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었다. 두 아들들에게 장난 반 진담반으로 내가 죽으면 화장해서 반은 신선봉에 뿌려 달라고 했었다. 애들 더 크면 화암에서 신성봉 오르는 길을 가르쳐야겠다.
마지막 하산 후 목욕하고, 설악항 백운호로 회 먹으러 간다. 다들 수분이 부족한지, 더덕주 보다 사이다를 더 마신다.
첫댓글 그만하길 다행입니다. 혹시 모르니 오늘 꼭 병원에 가보세요. 계곡에 물이 많았으면 매봉골의 폭포도 제법 괜찮았을텐데 아쉽네요.
뇌 검사. 이상 무. 피부만 잘 아물면 될 것 같습니다. 본의 아니게 여러사람 걱정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염천인데 계곡만 하시지...빠른 쾌유바랍니다. 서락바우는 박으면 아픕니다. 저두 서락에서 뒤통수 부딪혀 쌍코피 터진적 있슴다
네 앞으로 더욱 조심하겠습니다.
크게다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상처투혼으로 완주산행
고생하셨어요.
설악산은 언제봐도 최고입니다.
감칠맛나는 산행기 재미있게 잘읽었습니다 .^^.
ㅎㅎ. 당분간 일 안하겠습니다. 닐리리. 더덕은 누가 빻노?
그만하기 천만 다행입니다.
끝까지 같이 산행한 건 그동안 갈고 닦은 내공이 어마무시 하다는 거네요^^
바위지대 다닐땐 늘 초심으로 조심 하세요
네 다음 부터는 더욱 조심하고 제 능력이 부족하니 헬멧쓰고 더욱 안전 산행하겠습니다.
더운 날씨에 고생 하셨습니다~
서락의 속살 잘보고 갑니다.
오랜만이시군요.
그만하기 다행이십니다.
산우들이 있어서 의지가 되었네요.
둔전골에서 화채봉 오르기가 힘들지요.
정말 다행입니다. 감사드립니다.
워낙 더운 날이라 축축 늘어지는군요.
그렇게 다치시고도 계속 산행하시다니 감투정신이 대단합니다.
아무쪼록 아무 후유증 없기를 바랍니다.
흉터가 많이 안지게 관리해 보겠습니다. 후유증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큰 부상이 아니라 다행이네요... 나도 예전에 넘어져 얼굴에 큰 상처가 날 뻔했는데, 그때도 하늘비님 덕분에 잘 지나갔습니다^^
천만 다행입니다. 앞으로 계곡 산행에는 헬맷챙겨가려 합닞ㄱㆍ.
무불님 조속한 쾌유를 빕니다
궤적을보니 아홉살골을 밀고 가신것 같은데 막산도 저런 막산이 없네요
감사합니다. 많이 좋아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