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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글 ㅡ김규봉님글
다리 밑(교하)ㅡ상편
어린 시절 어른들이 아이를 놀리려고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다.
여기 진짜 다리 밑에서 주워 온 아이의 가슴 아픈 사연이 있어 소개하려고 한다.
국력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던 1970년대 매축지마을로 불리는 부산 동구의 한 지역에서 미혼모의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는 이름도 갖기 전에 태어나자마자 야음을 틈타 어린 미혼모에 의해 매축지 굴다리 아래 버려졌다.
다행히 그 아이는 주변을 지나다 울음소리를 듣고 달려온 부부에게 발견돼 목숨을 건졌을 뿐만 아니라 자식이 없는 부부는 하늘이 보내준 선물이라며 사랑과 정성을 다해 아이를 길렀다.
또한, 양부모는 그 아이를 입양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낳은 아이로 여겨 교하란 이름으로 출생신고까지 마쳤다.
참고로 교하는 다리밑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한편 아이를 버린 미혼모는 그 아이를 부부가 데려가는 것을 확인하고 남자에게 버림받고 자식까지 팽개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달리는 자동차에 뛰어들며 자살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녀를 일찍 발견해 급정거를 한 운전자 덕분에 그녀의 지살시도는 수포로 돌아갔다.
그 뒤 빼어난 미모를 가진 그녀에게 마음을 뺏긴 차주의 끈질긴 구애로 둘은 인연을 맺고 같이 살게 되었다.
차주는 재력이 있는 홀아비로 아내가 일찍 죽어 슬하에 자식은 없었다.
그녀는 남편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며 상처받은 마음을 회복해 갔지만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자식을 버린 죄책감만은 지울 수가 없었다.
오랜 세월 망설여왔던 그녀는 마침내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고 남편에게 용서를 구한 뒤 다리 밑에 버린 자식을 찾고 싶다며 애원했다.
남편은 그런 그녀가 너무 안쓰러워 흔쾌히 그 애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부부는 사람을 시켜 매축지에 있는 굴다리부근을 수소문해 혹시 어릴 때 굴다리아래 버려진 아이를 데려간 집이 있는지 오랜 추적 끝에 어떤 집에 그곳에서 주워온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아이는 어릴 때부터 천재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영특해 양부모의 극진한 사랑을 받고 자랐으며 주변의 칭송이 자자할 정도로 효심 또한 깊었다고 한다.
친모는 그런 아이의 모습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며 언젠가 아이 앞에 나타나 용서를 빌 날만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교하는 어느새 영재들만 다니는 특목고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의학을 전공해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의사가 되어 귀국했다.
그는 줄기세포연구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일인자로 미국의 비밀기관인 국가인재관리센터의 특별관리대상으로 지정돼 은밀히 경호를 받고 있었다.
이는 극비프로젝트인 줄기세포분화연구의 리더였기 때문이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줄기세포를 이용해 훼손된 연수조직을 원상태로 되돌리는 메커니즘을 규명한 것이다.
현재 미국의 모처에서 임상시험에 자원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이식시험이 거의 완료단계에 있다고 한다.
한편 자신의 목숨보다 더 귀한 아들의 귀국소식에 아침부터 설레며 준비하던 양부모는 외출준비를 마친 후 승용차를 몰고 집을 나서고 있었다.
아! 호사다마라 했던가.
어찌 이런 일이.
양부모가 탄 승용차가 무단횡단하던 남자를 피하려고 핸들을 꺾다 마주 오던 차와 정면충돌했던 것이다.
이 사고로 양쪽 승용차의 조수석에 타고 있던 두 여인이 크게 다쳐 응급실로 급히 이송되었고 무단횡단하던 남자 역시 다른 차에 치여 같은 병원으로 옮겨졌다.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맞은편 승용차에 타고 있던 여인은 바로 교하의 친모였고 무단횡단 도중 사고를 당한 남자는 교하와 친모를 버린 비정한 친부였던 것이다.
사고소식은 한국에 일찍 도착해 교하의 양부모를 은밀히 뒤따르던 미국의 기관소속 요원들이 교하를 경호하던 요원들에게 신속하게 전달해 교하도 알게 됐다.
입국장에서 사고소식을 전해 들은 교하는 슬픔을 억누르지 못 한 채 요원들의 안내를 받아 곧바로 부모님이 누워계신 응급실로 달려갔다.
응급실엔 사고를 당한 다섯 명 중 양부모님 두 분과 의붓아버지인 맞은편 차량의 운전자 이렇게 세 명만 누워있었고 의붓아버지가 운전하던 차에 동승했던 자신의 친모와 무단횡단을 하다 사고를 당한 친부 두 사람은 중상을 입고 중환자실로 급히 옮겨진 상태였다.
아직 의식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 한 양부모님을 바라보면서 망연자실해 슬픔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는 교하를 요원중 최고 선임인 마이클이 조용히 불러 자신의 출생비밀과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두 사람과 얽힌 기막힌 사연에 대해 말해주었다.
요원들은 이미 본국 기관의 요청으로 교하에 대한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얘기를 들은 교하는 자신의 운명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강하게 부인하다 끝내 소리 내어 오열하기 시작했다.
한참이 지난 후 마음을 다잡은 교하는 갑자기 미친 듯이 중환자실로 달리기 시작했다.
다리 밑(교하)ㅡ중편
이윽고 중환자실에 도착한 교하는 의식을 잃고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나란히 누워있는 친부와 친모를 번갈아 보며 말할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이 교차하고 있었다.
잠시 후 담당의사를 통해 두 사람의 상태를 확인한 교하는 뜻밖의 얘기를 듣고 깊은 고민에 잠겼다.
두 사람은 생명유지활동의 핵심인 뇌의 연수부분이 훼손돼 6시간을 버티기 힘들다는 의사의 말에 자신이 진행하는 연수재생프로젝트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것은 줄기세포를 이용해 분화시킨 새로운 연수조직을 이식하는 것으로 전 세계에서 오직 자신만 할 수 있는 일이라서 의료계의 누구도 그 실체를 모르고 있었다.
문제는 수술로 두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시간인 골든타임을 넘기지 않고 미국에서 한국으로 연수를 운반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엄청나게 빠른 운송수단이 필요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교하는 자신을 버린 두 사람이 너무나 미웠지만 우선 목숨부터 살린 후 그 이유를 듣기로 결심하고 요원중 선임인 마이클을 불러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얘기를 들은 마이클은 즉각 본국에 이를 알렸고 미국정부는 교하를 위해 이식거부반응이 없도록 특수배양한 두 개의 연수를 탑재해 한국으로 보내줬다.
골든타임을 넘기지 않고 보낼 수 있었던 건 드론-X란 운송수단 덕분이었다.
그것은 존재조차 비밀에 부치며 최첨단무기를 개발한다고 알려진 네바다주의 51 구역이란 군사시설에서 극비에 시험비행 중이던 물체로 마하 20의 극초음속으로 날아갈 수 있다고 알려진 비행체였다.
한편, 교하는 자신의 신분을 병원에 밝히고 미국정부의 신원보증을 거쳐 자신이 직접 친부와 친모 두 분의 수술을 집도할 수 있도록 한국정부의 승인까지 받은 후 드론이 도착하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마침내 30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드론은 한국의 영공 위로 모습을 드러냈고 미리 연락을 받은 공군은 드론을 무사통과시켜 주었다.
잠시 후 입력한 좌표인 병원에 도착한 드론은 신호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병원 옥상에 안전하게 착륙했다.
이후 교하가 주도한 수술은 순조롭게 진행돼 새로 이식된 연수가 제기능을 발휘하자 둘은 서서히 의식을 회복했다.
두 사람은 곧바로 회복실로 옮겨져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완전히 의식을 되찾았고 그동안 있었던 일을 담당간호사로부터 전해 들은 뒤 알 수 없는 뜨거운 눈물만 연신 흘리기 시작했다.
특히 친부는 교하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던 자신을 더할 수 없이 자책하며 회한의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는 한 때 자신의 연인이었지만 지금은 생사를 같이 넘긴 곁의 여인을 바라보며 헤어질 때 아이를 가진 사실을 왜 자신에게 숨겼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녀를 살리기 위해 그녀를 떠났던 자신의 잘못된 결정을 참회하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오랜 침묵에 잠겼던 둘은 잊고 있던 교하를 떠올리며 거의 동시에 간호사를 향해 교하를 불러달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잠시 후 교하가 들어오고 셋은 무거운 마음으로 시간을 정지시키며 서로를 외면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어색한 침묵을 깨고 시간을 다시 돌린 건 교하였다.
다리 밑(교하)ㅡ하편
교하의 일성은 친부나 친모를 향한 것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받아들이자."는 독백이었다.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친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교하를 향해 말문을 열었다
"교하야!
난 아버지란 말을 들을 자격도 없는 사람이다.
어쩌면 네 존재를 알았다 해도 너를 지켜주지 못했을 테니.
지금 와서 어떤 변명도 해명도 하고 싶지 않지만 나를 살린 네 뜻에 따라 그 당시 일어났던 일에 대해 모두 얘기해 주마.
당시 난 중견기업가의 딸인 본처와 정략결혼한 유부남으로 장인의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네 엄마는 비서실에 근무하던 내 비서였지.
그러던 중 가식 없이 진심으로 날 위해주는 네 엄마와 사랑에 빠져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고 말았단다.
하지만 우리 관계는 오래지 않아 경영을 맡겼지만 나를 감시하려고 비서실에 심어둔 직원에 의해 장인에게 탄로 나 더 이상 지속할 수 없었지.
그 후 네 엄마는 해고되고 난 일거수일투족을 더욱 감시당하며 살았기 때문에 더 이상 네 엄마소식을 들을 수 없었어.
또한, 장인의 강요로 만약 내가 또다시 네 엄마를 만나면 나와 네 엄마 둘 다 죽여도 좋다는 각서까지 쓴 상태라 너무 무서웠던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몇 년 전 우연히 나와 네 엄마 사이를 알고 있던 네 엄마 친구로부터 네 엄마가 자살하려 한 얘기를 전해 듣고 장인을 용서할 수 없었다.
결국 장인에게 복수하려고 그의 약점인 분식회계자료를 복사해 검찰로 가던 중 그가 보낸 킬러의 추격을 받았다.
추격전 끝에 등뒤까지 추격한 킬러를 피하려 대로를 가로지르다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내가 너희 모자를 버린 천벌을 받은 것 같다.
교하야!
용기가 없어 일찍 너와 엄마를 찾지 못 한 나를 결코 용서하지 말거라."
그동안 아무에게도 하지 못 한 자신의 이야기를 두 사람에게 모두 털어놓은 친부는 끝내 서러움에 북받쳐 소리 없이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친모 역시 친부의 사연을 지금 처음 듣는 듯 몹시 놀라는 표정이었다.
친부의 얘기를 다 들은 친모는 하루아침에 연락이 끊긴 친부에 대한 오해가 풀린 듯 친부를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진작에 말해줬더라면 당신을 그렇게까진 미워하지 않았을 텐데...
이제 다 지나간 일 누구 탓을 하겠어요.
지금은 다 잊었으니 자책은 그만하세요.
교하에게 잘못한 게 있다면 당신보다 제가 더 클 테니까요.
교하야!
너무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구나.
죄 많은 사람 뭐 하러 살렸니.
그냥 죽게 내버려 두지.
남자에게 버림받았다고 자식을 버린 내가 무슨 어미자격이 있다고 흑흑~"
그녀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얼굴을 감싸며 소리 내어 울었다.
한편 응급실에서 깨어난 세 사람은 교하의 친부모에 대한 사연을 모두 듣고 그들이 있는 회복실로 들어오려다 열린 문틈으로 안에서 하는 대화를 우연히 엿듣게 되었다.
친모의 얘기까지 마저 들은 양부모는 교하의 아픈 마음을 달래주려 회복실문을 열고 들어와 교하를 힘껏 껴안으며 함께 울어주었다.
한참이 지나 교하와 친부모 세 사람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양부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그 순간 나머지 다섯 사람은 양부를 쳐다보며 숨을 죽였다.
"교하야!
그동안 너를 속여 미안하구나.
언젠가 오늘 같은 날이 올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갑자기 찾아올 줄은 미처 생각을 못 했다.
우리 부부의 욕심 때문에 네가 친부모의 존재를 모른 채 살아야 했던 지난 세월에 대해 네게 용서를 구한다.
그리고 교하의 친부와 친모이신 두 분께도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교하에게 진실을 말했다면 좀 더 일찍 만날 수도 있었을 텐데...
이제 친부모님들께 우리 교하를 돌려드리겠습니다.
교하야!
너를 처음 본 순간 어릴 때 사고로 잃어버린 자식이 환생해 우리 앞에 나타난 것 같아 너무나 기뻤단다.
넌 우리 부부에겐 삶의 이유였고 자랑이었다.
너와 함께 했던 지난 세월의 단 한순간도 행복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더 이상 욕심을 부려선 안 되겠지.
이제부턴 늦게 만난 친부모님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거라."'
양부는 교하의 친부모를 운명적으로 만난 건 그를 놓아주라는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이기로 이미 결심했던 것이다.
하지만 양모는 자신과 아무런 상의도 없이 갑자기 결정한 양부의 뜻을 받아들일 수 없어 그럴 수 없다며 울부짖다 쓰러져 실신하고 말았다.
모든 얘기를 말없이 듣고 있던 교하는 자신의 운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하고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꿈속에 가끔씩 나타난 굴다리와 자라면서 내내 궁금했던 제 이름에 대한 의문이 이젠 모두 풀렸군요.
이 시간 이후로 저에겐 더 이상 친부모와 양부모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남들은 갖지 못 한 다섯 분의 부모님만 존재할 뿐입니다.
의붓아버지 역시 하늘이 보내주신 또 한 분의 아버님이시니까요.
그것이 제 운명이라면 피하지 않고 차라리 받아들일 테니 앞으로 이별이란 말은 절대 하지 말아 주세요.
저와 헤어져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제 부모가 아닐 테니까요. "
교하는 이미 친부와 친모를 용서했으며 양부와 양모에 대한 마음 역시 전과 달라진 게 없음을 강조하며 그분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그런 교하를 담담히 지켜보던 의붓아버지가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했다.
"교하군!
내가 제일 사랑하는 내 아내를 살려줘서 고맙네.
그리고 별다른 인연도 없는 나 같은 사람을 아버지로 불러주니 너무 감사하네.
자네 같은 거인을 내 아들로 두게 되어 너무나 자랑스럽다네.
오래전부터 자네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자네 같은 아들이 하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속으로 생각하다 꿈같은 일이라 쓴웃음만 짓곤 했지.
오늘 그 꿈이 현실이 되었으니 너무나 행복하다네.
내 아내가 그토록 만나고 싶어 한 사람이 자네였다는 게 말할 수 없이 기쁘네.
이 행복이 깨지지 않도록 아내를 용서해 준 자네의 뜻을 가슴 깊이 새기며 살아가겠네."
그렇게 회복실의 대화는 일단락되고 이후 모두 퇴원해 지금은 의붓아버지 소유의 대저택에 모여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한편, 친부의 장인은 이중장부가 발각돼 검찰의 소환을 통보받자 그 충격으로 쓰러져 투병 중 사망하고 장인회사는 의붓아버지가 인수해 친부를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친부의 본처는 장인과 달리 온화한 성품으로 지금도 친부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었으므로 지나간 서로의 허물을 덮고 진심으로 함께 할 것을 서약한 후 교하의 또 다른 어머니가 되어 지금은 모두 일곱 식구가 한 지붕 밑에서 웃음꽃을 피우며 행복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