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앙-” 강렬하지만 짧게 끊어져 버린 잔인한 한발의 총성과 함께 옆으로
힘없이 쓰러져 내리는 사람의 인영과 그의 옆으로 유유히 걸어 나오는 한남
자가 익숙한 표정, 익숙한 걸음으로 시체 곁을 떠나려고 했다. 그의 발걸음
이 한순간에 뚜욱 멈춰져 버렸다. 눈 밑으로 보이는 피묻은 하얀 캔버스화.
어두운 골목이였지만 나를 본게 분명하다. 이곳에서 내 살인 장면을 들켜
버렸다면 필요없는 희생은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죽여 없애야 마땅하다.
권총을 재 장전하고 캔버스화 위로 오늘 재수가 더럽게 없는 사람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그냥 엄청 더러운 똥 밟았다고 생각하세요, 죄송합니다.
“..죽이지 말아주세요”
울먹이지도 않고 덜덜 떨지도 않는 목소리로 나를 향해 내던졌다. 죽이지 말
아주세요 라고. 의외의 모습에 잠시 총을 거둔 사이 내 눈앞으로 하얀 캔버스
화가 잠시 왔다 갔다 했다.
“깼어요?”
내 머리위에 차가운 무언가가 얹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미지근해지는 느낌이
싫진 않았지만 낯선곳에 누워있다는 것과 낯선 목소리에 몸을 벌떡 일으켰다.
머리가 잠시 지끈거려 머리를 부여잡고 다시 침대로 쓰러지자 내 옆에서 수발
을 들던 여자아이가 내 목 아래까지 두툼한 이불을 끌어다 준다.
“아직 일어나지 마세요 아플거에요..”
눈을 이리저리 굴려 집안 상태를 확인하다가 신발장에 고이 벗겨져 있는 피묻
은 캔버스화를 발견했다. 이아이였어, 저 가벼운 신발로 나를 기절시킨 대단한
아이. 바지 뒷춤에서 총을 뒤적거리는데 만져지는건 내 맨살 뿐이다. 어디갔지
“총이라면 치워뒀어요”
“.....”
“더 쉬다가 가세요, 저는 학교 가야되요. 열쇠는 우편함속에 넣어놓으면 되요”
물어보고 싶다. 그때 나를 봤었나요, 그때 내가 사람을 죽이는걸 당신은 봤나
요. 왜 신고 하지 않았죠... 수많은 말들이 목구멍에서 맴돌았지만 내뱉을 순
없었다. 난 말 못하는 병신이니까. 수화는 배우지 않았고 노력해 보지도 않았다.
어쩌면 시도도 안해보는 이유가 목소리를 내려고 할때마다 목이 심하게 아파왔
어서, 피를 쥐어짜는 느낌이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제 보니 여자아이는 교복차림이였다. 머리도 꽤나 길었고 피부도 굉장히 좋아
보였다. 마른 몸과는 반대로 표정없는 얼굴과 알게 모르게 분출되고 있는 당당함
까지. 가방을 메고 돌아서서 가려다가 한숨을 포옥 내쉬며 내쪽으로 다시 온다.
“너무 피곤해 보여서 쓰러트렸어요. 신고하지 않아요, 무서워 마세요”
침대 맡 서랍속에서 총을 꺼내며 침대에 걸터 앉아있는 내 손에 쥐어준다.
“혹시 모르니까 들고 계세요. 전 성유진이에요 들어보셨겠죠..”
성유진. 계속 머릿속에서 생각할 필요 없이 생각이 났다. 굉장히 실력자인 킬러
인데 이렇게 어린 아이 일줄은 몰랐다. 그래서 나를 그렇게 쉽게 보내버렸구나
“저는 당신이 말 못 하시는 것도 알고 킬러인것도 알아요”
‘그날 왜 그자리에 있었던 거야’
내가 할 수있는 최대한의 입모양으로 유진에게 보여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활짝
웃으며 돌아선다. “당신을 죽여야 되는 의뢰를 받았거든요..”
너는 나의 살인장면을 목격했고, 또한 너는 나를 죽여야 한다. 그렇다면 내가 먼저
너를 죽이게되면 나는 살고 너는 죽게 되겠지. 이유없는 희생을 싫어하지만 내가
살기 위해선 어쩔수 없는걸 같은 킬러인 너도 이해할 거라 생각한다. 내 손 옆에 자
리 하던 총을 손에 쥐고 돌아서 있는 그녀에게 두번째로 총을 겨누었다. 방아쇠를
당기는 내 손이 조심스럽게 떨려왔다. 힘이 풀리며 총을 침대 아래로 떨어트렸다.
다시 돌아선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울었다.
학교로 향한 유진이 수업시간 내내 칠판 한곳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스타킹
안쪽에 있는 권총이 거슬리지도 않는지 계속 자리에 앉아있던 유진이 교실 옆으로
지나가는 검은 물체에 몸을 박차고 일어나 그 뒤를 쫒았다.
“학교에는 나타나지 말라고 분명 얘기 했어요”
“보스가 시키셔서 어쩔 수 없었다. 일은 잘 진행되고 있는지 알아오라고 하셨어”
“잘 진행되고 있으니 신경 꺼요, 그 영감은 참을성이 없어”
“말하는 꼬라지 하고는, 몸조심해라. 그쪽에서도 너를 겨눌 수 있어”
학교를 마치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춘추복을 입는 따뜻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집으
로 온 유진은 그냥 열려버리는 문에 함박웃음을 지었다가 웃는 자신을 생각하고는
이내 웃음을 거둬버린다. 가방을 식탁위에 올려놓으니 싱크대 쪽에 하얀 물체가 둥
둥 떠다닌다. 그릇들인가, 하고 가까이 다가서서 보니 자신의 하얀 캔버스 화였다.
핏물은 빠져 주황색으로 얼룩져있었다. 그냥 물에만 담궈놓은거잖아. 바보같으니..
그가 있을줄 알고 들어온 침실에는 아무곳에도 그는 없었다. 그의 흔적조차 없었다.
그저 물에 푹 젖은 캔버스화 만이 나와 함께 울어 줄 뿐이였다.
그의 프로필을 다시 꺼내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내 눈 앞에서 없어지면, 죽음뿐이야.
“..천주하”
그의 은신처를 찾아내 근처 커피숍에서 잠복을 하고 있었다. 해가 저물고 커피숍 폐
장시간이 다가와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자리를 쉽게 뜰 수 없었다. 의뢰를 빌미
로 당신을 다시 볼 수 있을것만 같아서.
그다. 여느때와 같이 어두운 표정으로 커피숍앞을 지나쳤다. 발소리를 줄이며 그의
뒤를 밟았다. 그의 구석진 은신처는 허름해도 너무 허름했다. 대문은 어디갔는지 없
었고 그저 바다 바로 옆에 하루 몇천원하는 숙박집의 방을 떼온듯 했다. 그가 방문
앞에 가만히 서있다가 뒤로 돈다. 멍하게 집을 바라보던 나는 미처 몸을 숨기지 못하
고 그와 정면으로 마주치게 됬다. 그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
그는 나의 아직 젖어있는 하얀 캔버스화에 입을 맞췄다. 그러고는 나를 올려다 보며 인
상을 찌푸리며 목을 움켜쥔다. 잠시 그의 입에서 쇳소리가 나는듯 하더니 웅얼웅얼하는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이지..마..아..주.....세..오..”
무릎꿇은 그의 검은 머리칼에 내 눈물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