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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롭다 인정받은 자의 특권
로마서 5장1-6절 / 권오진 목사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도다. 2. 또 우리가 그분을 통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은혜 안에 믿음으로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의 소망을 기뻐하느니라. 3. 그리할 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도 기뻐하나니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체험을, 체험은 소망을 이루는 줄 우리가 아노라.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님]에 의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넓게 부어졌기 때문이니 6. 우리가 아직 힘이 없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때가 되어 경건치 아니한 자들을 위해 죽으셨느니라.”(롬 5:1-6 KJV)
로마서 1-4장까지는 <이신칭의>에 대해 말씀합니다.
1장에서는 인사말과 로마 방문계획을 말한 이후 18절부터 이방인의 죄를 언급합니다.
2장에서는 유대인의 죄를 언급했습니다.
3장에서는 이방인, 유대인 모두 다 죄 아래 있다고 했습니다.
4장에서는 이신칭의의 모델로 아브라함을 소개했고, 마지막에 <우리도 하나님과 십자가와 부활 사역을 완성하신 예수님을 믿으면> 의롭게 된다고 마무리했습니다.
오늘은 5장으로 넘어왔습니다. 성경본문 1-2절은 마치 달걀노른자 부분처럼 로마서와, 성경 전체에서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중요한 말씀이니 함께 읽어보시겠습니다.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도다. 2. 또 우리가 그분을 통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은혜 안에 믿음으로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의 소망을 기뻐하느니라.”(1-2절 KJV)
이 말씀을 새 번역 성경으로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금 서 있는 이 은혜의 자리에〔믿음으로〕나아오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될 소망을 품고 자랑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1절 a) <이신칭의>를 얻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보내주신 성부 하나님을 믿었고, 성육신하셔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우리 대신 돌아가시고, 우리를 살리려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서, 하나님께 <하나님의 자녀로, 의롭다고 인정받았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믿음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보세요. 그가 하나님을 믿은 것은 그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섭리에 근거합니다. 하나님이 믿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그럴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지만, 구원의 근거, 구원의 방법은 모두가 예수님이 준비하셨습니다. 그저 우리는 '아멘' 하며 주님의 손을 잡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구원받은 백성이 된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이신칭의의 복을 누리는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신칭의가 <믿음 생활>의 끝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고 칭함 받으므로 그때부터 믿음 생활을 출발하는 것입니다.
학생이 대학교 합격통지서를 받았으면, 그때부터 대학 생활이 시작되듯이, <이신칭의>를 얻는 순간부터 믿음 생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1절 a)라는 말은 과거형으로 기록되었고, 이제부터 <믿음 생활을 시작할 자격증을 얻었다는 말씀과 같습니다.>.
그럼 <이신칭의>를 얻은 자는 무엇을 향해 나가야 하겠습니까? 교리상으로 말하면 <성화>의 단계로 나아갑니다. 성화로 나아가는 삶도 내 힘 가지고 되지 않습니다. 성령님께서 도와주셔야 합니다. 그 성화의 삶에 대해 바울은 <로마서 5장, 6장, 7장, 8장>에서 말씀합니다.
1-4장은 – 이신칭의
5-8장은 – 성화에 대해서 말씀한다는 것을 알면 말씀을 이해하기 쉽겠지요.
자, 다시 본문 말씀을 생각해 봅시다. 1절 앞부분에서 바울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있는 로마 교인들에게> <이신칭의를 선언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로마서 5장을 <이신칭의 선언장>이라고도 합니다. 이신칭의를 선언한 바울은 이어서 <칭의(의롭다고 인정을 받음)받은 자의 특권 3가지> 말씀합니다. 여러분들도 귀를 쫑긋 세우시고, 여러분도 이런 특권을 누리고 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째, 하나님과 화평을 누린다.
1절 중반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도다.”라고 했습니다. 이신칭의를 얻은 자가 누리는 첫 번째 복이 <화평, 평화>라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은 평화를 소유하려고 몸부림칩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이렇게 하니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고 말합니다.
•데리고 수성 못을 산책했더니 평화가 찾아왔다. 사진작가가 명소에서 원하는 작품을 촬영했을 때 평화가 찾아왔다. 가족과 멀리 떨어져 조용한 곳에 혼자 있었더니 평화가 찾아왔다. 바다에 가서 낚시를 하니 평화가 찾아왔다.
중세 시대 신앙인 가운데는 평화를 얻기 위해서 - 피정(일정 기간 조용히 자신을 살피며 수련하는 것)을 통해서 얻으려고 노력한 분도 있습니다. 성경공부를 통해서 수도원을 방문하면서 평화를 누리려는 분도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해도 평화를 조금 느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는 평화는 그런 평화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평화는 본문에서 말씀하듯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화평”입니다. 성경의 인물 가운데 ‘평화’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솔로몬>입니다.
다윗이 밧세바에게서 얻은 아들입니다. 죽은 아들을 포함하면 밧세바에게서 5번째로 태어난 아들아 솔로몬입니다. 다윗이 아들을 낳고 이름을 솔로몬, “샬롬”(평화)라고 지었습니다. 그런데 이름이 평화라고 지었다 해서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님은 진정한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나단 선지자를 보내서 솔로몬에게 이름 하나를 더 지어주었습니다.
그 이름이 ‘여디디야’입니다. “여호와께 사랑을 입음”(삼하 12:25)이란 뜻입니다.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사랑을 덧입지 않으면 절대 평화란 없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요한복음 14장27절에 평화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7.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남기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세상이 주는 것과 달리 내가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세상이 추구하는 평화가 <외적인 평화>라면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는 <내적인 평화>이고, 세상의 평화가 <일시적인 평화>라면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는 <영원한 평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나 / 이웃과 나 / 나와 나> 사이에 관계가 회복되어 평화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예수님을 믿으면 마음이 평안해져!>라는 말을 하는 데 바로 그 뜻입니다. 이신칭의의 결과로 우리는 평화를 얻고 누리게 된 것입니다. 이 평안의 복을 누리면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은헤의 보좌로 나아간다.
➤2절a “또 우리가 그분을 통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은혜 안에 믿음으로 들어감을 얻었으며” 이신칭의 얻은 후 풍성한 은혜의 세계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예수님 당시 헤롯 성전의 평면도>를 보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성전에 가도 다 하나님을 제대로 만날 수 없었습니다. 이방인들은 성전에 간다고 해도 <이방인의 뜰>까지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방인의 뜰도 성전에 해당합니다.
만약 이방인이 이방인의 뜰을 벗어나서 유대인의 뜰에 가면 그 사람은 사형에 처했습니다.<이 뜰을 넘는 자에게 사형을 처한다>는 표시판을 벽에다 붙여 놓았습니다. 그럼 유대인들은 마음껏 성전을 드나들 수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유대인이라 할지라도, 유대인 여자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여인의 뜰>로 한정했습니다. 유대인 남자도 <유대인의 뜰(이스라엘의 뜰>까지밖에 못 갔습니다. 만약 더 넘어가면 사형에 처했습니다.
제사장도 지성소에 다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일반 제사장은 성소까지 들어갈 수 있었고, 지성소는 대제사장만이 1년 1차 유대력 7월 10일 대속죄일에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일반 백성이 직접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불가능했고, 상상 초자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힘든 일을 예수님이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다 이루었다”(요 19:30) 말씀하시는 순간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눅 23:46) 했습니다. 1년에 한 번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때만 열 수 있었던 휘장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한가운데가 찢어진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의 돌아가심과 부활하심을 믿는 자, <이신칭의>를 얻은 자는 이방인, 유대인 가릴 것이 없이 하나님 보좌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열어놓으신 그 문을 통해 누구든 <풍성한 은혜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은혜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① 말씀의 풍성한 세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신칭의를 얻으면,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성경이 한 절 한 절 보입니다. 그러면 성경을 통해서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② 기도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그동안 기도는 힘없고 무능한 사람들만 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이신칭의를 얻고 보니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기도를 통해 주시는 줄 알게 되고, 기도로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캐서린 마샬이라는 유명한 기도의 영웅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기도 학교에 입학하려면 질문 두 가지에 답을 쓰기만 하면 된다.
첫째는 ‘네가 꼭 필요한 것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예, 있습니다.’라고 답을 쓴다. 둘째는 ‘필요한 것을 네 힘으로 도무지 얻을 수가 없느냐? 네가 그렇게 무력하다고 느끼느냐?’ 하는 질문이다. 여기에 대해 ‘예, 그렇게 느낍니다.’라고 쓰면 된다. 그다음에는 그 답안지를 들고 당당하게 예수 이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가라.”
옳은 말입니다. 이신칭의를 얻은 자는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마다. 내 힘으로 도무지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당당하게 하나님께 약속한 축복을 달라고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약속한 대로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③ 풍성한 성령의 세계, 하나님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복을 저와 여러분이 이미 받고 누리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한다.
2절 하반절에 “[하나님]의 영광의 소망을 기뻐하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목요일에 대제사장의 기도를 드렸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압니다. 요한복음 17장에 나오는 내용이지요. 그 기도 중에 교회를 위해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24. [아버지]여, 원하건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도 내가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게 하사 아버지께서 세상의 창건 이전에 나를 사랑하셨으므로 친히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이 보게 하옵소서.”(요 17:24)
성경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한 사람들이 누가 있습니까? 구약에는 모세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40일 동안 시내산 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고 산 아래로 내려오자 백성들이 모세의 얼굴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의 얼굴에 하나님에게 있었던 영광의 광채가 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건을 얼굴에 쓰고 영광을 가리었습니다.
신약에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영광을 경험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변화산은 <다볼산>으로 봅니다. 평소에 초라한 모습으로 다니시던 예수님이 다볼산에 하나님의 모습을 변형되셨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이 해같이 빛났고, 초라한 옷은 빛과 같이 희어졌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로 더불어 주님의 돌아가심에 대해서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이 영광의 장면을 세 제자가 보았습니다. 베드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초막 셋을 짓겠습니다.”(마 17:4)라고 말합니다.
또 한 사람 더 들면 <로마서의 기록자 바울을 들 수 있습니다.>
다마스커스 길에서 정오, 태양보다 더 빛난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을 체험하고 그 자리에서 거꾸러집니다. 지금 바울은 이신칭의를 얻은 자가 <이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그 영광의 자리에 들어갈 것을 상상하며 이 땅에서 즐거워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아직 우리의 몸이 세상에 있기에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신칭의를 얻는 자는 그 최종 결과를 알기에 그 어려움 속에서도 즐거워하며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말씀을 이어서 합니다.
➤3-5절 같이 읽어볼까요?
“3. 그리할 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도 기뻐하나니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체험을, 체험은 소망을 이루는 줄 우리가 아노라.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님]에 의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넓게 부어졌기 때문이니 6. 우리가 아직 힘이 없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때가 되어 경건치 아니한 자들을 위해 죽으셨느니라.”
이 말씀에서 중요한 말씀은 4절 하반절에 “우리가 아노라”라는 말씀입니다. 이신칭의를 얻는 자는 신앙의 과정을 알기에 <성령의 힘으로, 하나님의 사랑의 힘으로? 그 모든 것을 극복해 낸다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보면 성도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지만, 환난이 <인내를 만들어 내고> 인내가 <연단(단련된 인격)>을 낳고, 연단(단련된 인격)은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가려는 소망을 낳는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때 로마에 있는 교인들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 때문에 콜로세움에서 사자의 밥이 되었을 때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어려움 속에서 소망을 가졌습니다. 이 과정의 끝이 결국 주님의 영광에 들어갈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훌륭한 인물일수록 많은 고생을 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멋진 분재 나무일수록 가지가 잘리고 묶이는 고난을 겪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신칭의의 복을 누리는 성도도 어려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려움을 참을 수 있습니다.
믿음의 선배들이 그런 삶을 다 살았고, 그 고난의 마지막이 <하나님의 영광이요, 하나님 안에서 즐거움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 영광의 즐거움 때문에라도, 현재 여러분이 당하고 있는 어려움을 믿음으로 이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바울은 이신칭의를 받은 자에게 3가지 특권이 주어졌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현재 그 특권을 누리고 있는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① 나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있는가? ② 나는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고 있는가? ③ 나는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가? 이 질문에 <아멘>으로 답하시고, 이 특권을 누리고 오늘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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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