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
국회의원과 보좌진... 동지냐 저승사자냐
고모 보좌관은 국회의원 1명을 초선 때부터 5선 의원이 될 때까지 모셨다. 의원이 국회의장이 되자 차관보급 의장 정무수석에 올랐고, 공무원 연금 수급권도 얻었다. 정책 전문가 김모 보좌관은 1989년부터 30년간 모신 의원만 7명이다. 김씨처럼 국회에 경제·안보·교육·복지·환경 등 전문 분야를 갖고 있는 보좌관이 100여 명쯤 된다고 한다. 이들이 국정감사 때 신문 1면을 장식할 이슈를 발굴해낸다. 의원들이 서로 모셔가려 한다.
▶보좌관은 파리 목숨이기도 하다. 의원 갑질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집안 행사 등 사적인 일에 보좌진을 동원하는 경우는 흔하다. 보좌관 면접을 보러 갔더니 의원 부인이 채용 여부를 결정했다는 경우도 있다. 보좌진 월급에서 일정액을 떼가는 의원도 있다. 지난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전직 의원 보좌관은 기자에게 “의원이 내 월급에서 매달 100만원씩 가져간다”고 하소연했다. 보좌관으로부터 정치 후원금으로 500만원씩 받는 의원도 봤다. 이런 의원실은 ‘보좌진의 무덤’이라고 불린다.
▶의원과 보좌진 관계는 ‘원수’로 돌변하기도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996년 국회의원을 물러난 것도 승진이 안 된 데 앙심을 품은 보좌관의 선거 비용 폭로 때문이었다. 민주당 3선 의원도 수석 보좌관이 불법 후원금 수수를 폭로해 2년 넘게 감옥살이를 했다. 운전기사가 비리를 폭로해 유죄 판결을 받은 국민의힘 의원도 있다. 보좌진이 내연녀 의혹을 제기해 도지사 도전을 포기한 의원도 있었다. 2016년 의원 보좌진 24명이 갑자기 국회를 떠났다. 민주당 의원이 동생과 딸을 보좌진으로 채용한 사실이 드러나자 다른 의원들도 친인척 보좌진을 일제히 정리했다. 당시 의원들은 “보좌진이 언제 배신할지 몰라 친인척을 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의원과 보좌관 관계가 아름답게 끝나는 경우도 있다. 민주당 조정식 사무총장과 백원우·이화영 전 의원 등이 보좌관을 하다 그 지역구를 물려받았다. 물려주기로 약속해놓고 지키지 않은 경우도 있다. 모 보좌관은 의원으로부터 한 번만 더 하고 물려주겠다는 각서까지 받았지만 의원이 오리발을 내밀었다. 각서를 내밀었더니 의원이 눈앞에서 찢어버렸다고 한다.
▶국민의힘 태영호 최고위원이 보좌진에게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공천 문제를 거론하며 한일 관계에 대해 지지 발언을 요청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보좌진이 녹음해서 방송사에 제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태 최고위원은 “과장을 섞어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의원에게 보좌관은 동지일 수도, 저승사자일 수도 있다.
국방홍보원장 공모 논란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인 프로크루스테스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강도였던 그는 여인숙을 차려 놓고 손님이 오면 집안에 있는 쇠침대에 눕혔다. 키가 침대보다 작으면 팔다리를 늘려 죽이고, 크면 다리를 잘라 죽이는 악행을 일삼았다. 흔히 일방적인 잣대나 억지 기준을 강요하는 것을 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비유한다. 독재 정권하에서 만연했지만 요즘도 정권 입맛에 맞는 인사 전횡이나 줄 세우기에 심심찮게 사용된다.
윤석열 정권이 등장한 지 1년째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하마평(下馬評)이 무성했다. 대통령이라고 추천 인사들 비위나 전력을 무시하고 함부로 임명할 수는 없다. 국회와 여론을 의식해서다. 그런데도 같은 편 줄 세우기에 탕평과 협치는 물 건너갔다. 하물며 정부의 개방형 직위야 오죽하겠나. 효율적 정책 수립과 전문성이 요구되는 직위에 공직 내·외부 공개 모집을 통해 인재 발굴에 나선다고 표방했지만 대선 캠프와 줄을 대지 않고는 꿰차기 힘든 게 통설이다.
국방홍보원장도 지난 1분기에 공모한 총 30개 개방형 직위 중 하나였다. 지난 1월 말 전임 원장이 퇴임하고 석 달 이상 원장 공백 상태다. 지원자가 역대급으로 60명 가까이 몰렸던 1차 공모는 무산됐다. 발탁이 유력시되던 인사의 성추행 전력이 밝혀져서다. 40명 이상이 도전했던 2차 공모도 최종 심사에 올라간 인사들의 음주운전과 보직 해임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발표가 연기되고 있다. 3차 공모를 한다는 말이 나돈다. 이러니 홍보원장 임명에 대통령실이 개입한다는 소문이 자자한 것 아닌가.
국방홍보원은 국방TV, 국방일보 등을 거느린 국방부 직할 기관이다. 최근 몇 년 간 비정규직 위주 인력 운용, 잦은 방송사고 등으로 입방아에 올랐고, “천안함 폭침은 북한 소행”이라는 정부 발표를 부정하는 취지의 글을 썼던 인사가 직전 원장에 취임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군의 사기를 높여야 하는 기관이 제 앞가림도 못하는 처지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작지 않았을 터. 정권이 바뀌면 달라질까 했다. 어설픈 기대는 접어야 할 판이다. 임명권자인 국방장관의 역할이 아쉽다.
오지 말라는 檢, 그래도 간 송영길…
정치인들의 자진 출석
검찰에서 출석요구서를 받으면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은 정치인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수사 상황과 여론을 살피기 위해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시간을 끌기 일쑤다. 현역 의원의 경우 “국회 일정이 있다”는 게 불출석 사유의 단골 메뉴이고, “수술이 예정돼 있다”거나 “변호인이 다른 스케줄이 있다”며 출석을 미룬 정치인도 있었다. 반면 정치인이 자발적으로 검찰청에 출석하기도 한다. 그 속에는 검찰과의 치열한 수 싸움이 깔려 있다.
▷형사소송법에는 “수사에 필요한 때” 피의자를 불러서 조사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출석 조사 절차의 주도권은 검찰에 있다는 얘기다. 피의자가 출석을 미룰 수는 있지만 계속 피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반복적인 출석 거부는 체포의 사유가 되고, 도주 및 증거 인멸 우려를 높여 구속될 가능성도 커진다. 이런 한계 속에서 피의자들은 최선의 출석 시점을 고민한다.
▷정치인들은 정치적 손익도 계산해야 한다. 자진 출석은 ‘내 발로 떳떳하게 나갔다’고 말할 명분이 생긴다는 점에서 하나의 선택지가 된다. 2003년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차떼기 사건’과 관련해 “내가 감옥에 가겠다”며 자진 출석하고, 2019년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내 목을 쳐라”라며 검찰청에 나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검찰로서는 정치인이 스스로 찾아오는 것이 달갑지 않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수사팀에서 준비가 덜 됐어도 그냥 돌려보내면 ‘조사받겠다고 온 사람을 왜 조사 안 하냐’는 말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자진 출석한 정치인들은 대부분 조사는 받았다. 2018년 ‘미투’ 의혹이 제기된 뒤 잠적했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갑자기 검찰청에 나타났을 때 수사팀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일단 조사를 진행했다.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과 관련해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일 검찰에 자진 출석한 것도 이런 점들을 두루 고려한 전략으로 보인다. 하지만 검찰은 송 전 대표를 아예 조사하지 않고 돌려보냈다. 특별수사 경험이 많은 한 법조인은 “어지간하면 차라도 한잔 내줬을 텐데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한창 수사망을 좁혀가고 있는 검찰로서는 전 야당 대표를 문전박대했다는 비판을 들을지언정 ‘패’를 보여줄 수 없는 시점이라는 취지다.
▷유·무죄는 증거에 따라 갈리는 것이지 기습 출석을 한다고 해서 달라지지는 않는다. 안 전 지사는 유죄가 확정돼 3년 6개월간 복역한 뒤 출소했고, 황 전 대표는 재판이 진행 중이다. 송 전 대표 역시 증거에 따라 처벌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법적인 문제는 정상적인 법적 절차를 통해 대처하는 것이 최선이다. 다른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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