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경다양성 포럼 행사 포스터. ⓒestas, 세바다, 한국후견신탁연구센터, 국회의원 용혜인, 국회의원 최혜영, 국가인권위원회
작년 8월 24, 25일 양일간 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대한민국 정부의 제2·3차 병합국가보고서에 대한 심의가 있었다. 위원들에게 이슈 로비활동을 했고, 그 결과 ▲장애인권리협약과 장애의 인권적 모델에 따른 장애인실종 예방정책 수립, ▲자폐성 장애인 등에 대한 자살, 실종 예방정책 수립 등의 권고를 얻었다. 물론 자폐성 장애인에 대한 학교폭력 방지 등의 권고를 얻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아직도 치료감호소에서 해당 형기 이상으로 장기수용된 자폐성 장애인 소식을 어렵지 않게 접한다. 자폐성 장애인의 장애를 치료한답시고, 부모들은 오늘도 언어치료, 행동치료 등에 전념하지만, 당사자의 장애 완치는커녕 삶의 질 하락은 계속되고 있다(장애 완치는 인권침해지만 말이다,). 또한, 양육 부담을 이유로 부모가 자폐성 장애인을 살해하는 사례도 들린다.
이 모두가 자폐인 등 장애인을 권리의 주체로 보았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일이다. 자폐성 장애인 등 신경다양인 당사자에게 만연한 차별을 당사자 스스로 고발함은 물론, 당사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길을 모색하기 위해 신경다양성 지지모임 세바다와 자폐성 장애인 자조모임 estas, 국가인권위원회, 한국후견신탁연구센터 등이 공동주최로 제2회 신경다양성 포럼을 개최했다.
필자의 경우, 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나온 권고의 성과, 아쉬움, 앞으로의 과제 등을 발표했는데, 발표할 게 많아서 그런지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돼, 포럼 진행이 좀 지체돼 힘들어하는 청중들 모습에 마음이 무거웠다. 짧게 발표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런 시간을 통해 나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는 게 필요함을 보지만 말이다.
신경다양성 포럼 전경 중 일부. ⓒestas
이번 포럼엔 여러 가지 세션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필자의 마음을 가장 많이 끌었던 건 세션 2에서 스코틀랜드의 자폐와 신경다양성에 대한 동영상 발표였다.
신경다양성을 지닌 사람들이 다른 이들과 동등한 기회와 권리를 갖도록 보장하는 게 스코틀랜드 정부의 포부라고 한다. 스코틀랜드 정부에선 신경다양인이 개인으로 존중받을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활동하며 실제로 기여하는 사회가 되길 원하고, 이렇게 되기 위해 신경다양당사자 및 가족, 돌봄 제공자의 목소리를 매우 중시하고 있다고 한다.
이 정부에선 2021년 3월에 “학습/지적장애와 자폐: 변화를 향하여” 계획을 발표했다고 하는데, 그 계획은 위의 장애가 있는 사람의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하며, 이들이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보장하는 지원, 서비스 및 태도 형성에 필요한 행동계획이다.
행동계획 가운데, 교육의 경우 진단기반 교육체계가 아닌 니즈 기반 교육체계를 따른다고 했고, 공식진단을 받지 않았거나, 진단을 기다리는 아동도 여전히 지원받을 권리가 있다고 했다. 또한, 모든 학생의 추가 지원 필요를 확인·제공·검토하는 동시에 아동의 필요 충족 보장을 위한 맞춤형 지원에 힘쓴단다.
또한, 스코틀랜드 정부에선 자폐인과 신경다양인 삶의 개선을 위해 2020년 12월부터, 국가 진단 후 지원서비스 시범 계획에 자금을 지원하며, 이 사업은 자폐진단 후 초기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자폐인 및 자폐지원기관과 함께 설계되었다. 서비스 계획은 사람들이 자신의 진단을 이해하고 최대한의 잠재력 발휘는 물론 사회에서 필요한 조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 되는 지원의 이해가 가진 중요한 역할을 인식하고 있단다.
정부는 2년 전엔 스코틀랜드 인구의 자폐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높이기 위해 자폐성 장애인과 함께 개발한 ‘다른 마음’ 캠페인을 시작했다. 스코틀랜드 전역의 기금 프로젝트와 연계해 진행되며, 자폐에 대한 잘못된 인식 불식은 물론 이 사회에서 자폐 수용성 증진을 목적으로 한다.
이외에도 스코틀랜드 정부의 리더십 및 참여 모델은 지난 18개월 동안 정신건강 지원과 관련된 정책을 개발하기 위해 실제 경험을 가진 개인들과 직접 협력해 몇 가지 독창적인 이니셔티브를 이끌어냈으며, 살아온 경험을 가진 사람들뿐만 아니라, 의사 결정자와 예산 책임자 등의 이해관계자들과 긴밀히 협력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협력할 것이라 한다.
스코틀랜드의 자폐와 신경다양성에 대해 케빈 스튜어트(Kevin Stewart) 스코틀랜드 정신보건 및 사회돌봄 장관 대신 동영상으로 발표하는 마리 토드(Maree Todd) 스코틀랜드 공중보건, 여성보건 및 스포장관(좌측), 학습장애, 자폐, 신경다양성 법안 논의 시 신경다양인을 스코틀랜드 정부에서 찾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 중 일부(우측). ⓒScottish government, Learning Disability Today
스코틀랜드 정부에서 입안한 학습장애, 자폐, 신경다양성 법률안의 경우도 자폐인 등 신경다양인을 포함해 삶의 경험을 지닌 사람들이 법안의 공동설계에 온전히 참여할 수 있도록 인권기반 접근 방법론을 채택했으며, 국가돌봄서비스에서도 학습/지적장애인, 자폐인과 기타 신경다양성을 지닌 사람들의 욕구 충족을 위해 지역사회가 지원방식 공동 설계과정에 초청된단다..
이 자료들을 읽고 들으면서, 자폐인, 정신장애인을 포함한 신경다양인의 정책 및 사회 참여 관련한 공식통로가 마련됐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신경다양성 법률안 입안 논의, 정신건강 관련 정책 개발, 자폐 인식 증진 캠페인 기획이나 국가 진단 후 지원서비스 시범 계획을 세울 때 자폐성 장애인 등을 참여시키는 걸 보면, 장애인의 의사와 의지가 존중됨이 느껴진다.
물론 완전하지는 않지만, 자폐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높이기 위한 캠페인의 최종목적을 자폐 수용성 증진이란 것으로 내세운 스코틀랜드 정부의 인식을 보면 이 사회가 앞으로 자폐 등의 신경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이려는 방향으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려는 움직임을 읽을 수 있다는 게 고무적이다.
또한, 교육에 있어서 공식진단을 받지 않거나 진단을 기다리는 사람에게도 지원받을 권리가 있다는 말을 통해 설령 진단이 없더라도 자폐 등의 특성이 있으면 개인에 맞게 지원한다는 정부의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결국, 진단보다는 장애 특성이 있는 사람의 욕구(니즈)에 기반해 지원한다는 정부의 말이 신빙성 있게 다가왔다.
이를 통해 장애인의 욕구, 의지, 선호를 중시하며 장애인의 활발한 참여가 기반이 되는 장애의 인권적 모델이 스코틀랜드에서 활발히 시도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이렇게 하고 있으니, 스코틀랜드, 잉글랜드에서 교수나 변호사 등으로 활동하는 자폐인들이 우리나라에 비해 훨씬 많은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해보니 이들의 이야기는 더욱 부럽게 느껴진다. 왜냐면 장애가 있는 학생이 교육을 받을 때 개별화교육이라는 걸 받긴 하지만, 말만 개별화교육이지, 실제로는 장애인 개인의 욕구에 따른 교육이 아닌 예산, 혹은 교육당국의 의중이 주로 반영된 교육이라 개별화교육이라 부르기 민망하다.
그리고, 특수교육대상자를 선정할 때도 진단이 내려진 후 특수교육 등의 지원이 이뤄지는 등 욕구에 기반한 교육체계라 보기 어렵다. 스코틀랜드의 국가돌봄서비스가 장애인의 욕구, 선호에 기반한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소득수준, 구 장애등급, 예산 등에 따라 장애인가족지원서비스가 제공되기에, 인권적 모델과는 완전 거리가 멀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 장애인정책연구센터 오욱찬 연구위원이 작년 9월 7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이 주최한 ’제2차 장애인리더스포럼‘에서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 수립방안 연구 추진 경과 및 계획을 밝히는 모습.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또한, 자폐인 및 신경다양인의 정책과 사회 참여에서의 배제는 여전하다, 올해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을 구상하고 개발하는 것에 있어 자폐성 장애인과 신경다양인, 정신장애인 등은 여전히 초청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의 부모는 초청받았다. 심지어 장애인정책종합계획 초안 공유는 당사자에게도 거의 되지 않았고 뉴스를 통해서만 알았을 뿐이다.
부모들이 요구하는 게 돌봄 중심의 서비스니, 지적·자폐성·정신 장애인 및 신경다양인의 정책은 오로지 돌봄을 위주로 한 권리 객체의 제공자 중심 정책일 우려가 생기는 건 무리가 아닐 것이다. 자폐성 장애인을 포함한 장애인의 정책 등의 의미 있는 참여를 보장하라는 권고가 나왔음에도 아직도 자폐인 등을 배제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나라는 한참 멀었단 생각마저 든다.
장애인의 욕구는 무시되고 장애인의 정책·사회 참여는 배제된 채 장애의 의료적 모델에 따라 자폐성 장애인, 신경다양인 관련 정책이 진행되니, 앞으로 우리의 과제가 막중해지는 것 같다. 신경다양성의 개념과 운동 방향 등에 있어 우리 내부에서 치열한 고민과 토론을 진행해야 함은 물론, 장애계 단체, 시민사회단체 등과의 연대를 위한 전략을 세울 논의를 해야 할 듯싶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회에서 신경다양성을 알리고 수용하기 위한 중장기적인 전략을 지금부터 차근차근 세워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 통해 결국, 우리가 가고자 하는 건 스코틀랜드가 시도하는 장애의 인권적 모델이 지배하는 사회, 즉 신경다양인 등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고 증진되는 인권 보장의 사회임을 명심하며 말이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첫댓글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