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는 위키피디아요. 그리고 밑줄그어진 거는 쇗이 걍 쓴거.
태조 왕건 (시호 : 응운광렬대정예덕장효위목신성대왕 ) 877년생 918(41살)~943 재위 25년
왕후 : 신혜왕후 유씨(神惠王后 柳氏) 왕후 : 장화왕후 오씨(莊和王后 吳氏) 오다련(吳多憐)의 딸이다 물마시다 체하지 말라고 버들잎띄워준 바로 그 여햇 왕후 : 신명순성왕후 유씨(神明順成王后 劉氏) 유긍달 (劉兢達)의 딸이다 왕후 : 신정왕후 황보씨(神靜王后 皇甫氏) 황보제공(皇甫悌恭)의 딸이다 아들 : 대종 (戴宗) 왕욱(王旭): 성종 의 아버지, 경종 의 장인. 딸 : 대목왕후 (大穆王后) - 광종 의 왕비이자 경종 의 어머니. 왕후 : 신성왕후 김씨(神成王后 金氏) 김억렴 (金億廉)의 딸이다 아들 : 안종 (安宗) 왕욱(王郁): 현종 의 아버지 왕후 : 정덕왕후 유씨(貞德王后 柳氏) 유덕영(柳德英)의 딸이다 아들 : 왕위군(王位君) 아들 : 인애군(仁愛君) 아들 : 원장태자(元莊太子) - 대명궁부인 의 아버지 아들 : 조이군(助伊君) 딸 : 문혜왕후 (文惠王后) - 문원대왕의 아내이자 헌의왕후의 어머니. 딸 : 선의왕후 (宣義王后) - 대종 욱의 아내이자 성종 ,헌애왕후 ,헌정왕후 의 어머니. 딸 : 公主 (의성부원대군의 처,義城府院大君妻) 후궁 : 헌목대부인 평씨 (獻穆大夫人 平氏) 평준 (平俊)의 딸이다 아들 : 수명태자(壽命太子) - 문덕왕후 의 전남편인 흥덕원군의 아버지. 후궁 : 정목부인 왕씨 (貞穆夫人 王氏) 왕경(王景)의 딸이다 후궁 : 동양원부인 유씨 (東陽院夫人) 유금필 (庾黔弼)의 딸이다 아들 : 효목태자(孝穆太子) 아들 : 효은태자(孝隱太子)
태조의 결혼정책이 한 눈에 보이는구랴. 지방호족을 포섭하기 위해서 딸이랑 다 결혼했으니;;;
후손들이 엄청 많아서 그런가 서로 결혼하오. 왕족끼리 결혼해서 입지를 강화하고 싶었던 모양이오.
혜종 인덕명효선현의공대왕 912년생 943(31살)~945 재위 2년
어머니 오씨가 바로 물에 버들잎 띄워서 왕건 눈에 든 그 여인이라오.
엄마 뒷배가 별로 없어서 왕위경쟁에 엄청 치였다고 하는 왕이오.
의화왕후 임씨 (義和王后 林氏) 임희 (林曦)의 딸이다 흥화군(興化君) 경화궁부인(慶化宮夫人), 광종 의 후궁 왕위에 있을 때 위협적인 동생에게 권력의지가 있는지 시험해보다가 딸도 줬다하오. 정헌공주(貞憲公主) 후광주원부인 왕씨(後廣州院夫人 王氏) : 대광(大匡) 왕규 (王規)의 딸, 고려 태조 의 후궁 광주원부인 의 여동생 아부지 후궁의 여동생이니까 이모뻘을 자기도 후궁으로 들였구랴. 왕규의 위세가 뜨르르 했을 법 하오.
왕 두명에게 딸을 시집보낸 셈이니까.
청주원부인 김씨(淸州院夫人 金氏) : 청주(淸州) 사람, 원보(元甫)를 지낸 김긍률(金兢律)의 딸 궁인 연씨(宮人 連氏) 애이주(哀伊主) : 본관은 경주 (慶州), 신라 대간(大干)을 지낸 연예(連乂)의 딸
정종 지덕장경정숙문명대왕 재위 923년생 945(22살)~949 재위 4년
형이 죽고 추대를 받은 게 아니라 자기가 자리에 올랐다는 설이 있다 하오.
뭐.. 야망있는 게 나쁜 건 아니지라.. 그런데 천둥과 우레에 놀랐다가 병석에 누워 세상을 떴소.
문공왕후 박씨(文恭王后) : 박영규(朴英規)의 딸, 견훤 의 외손녀 문성왕후 박씨(文成王后) : 박영규(朴英規)의 딸, 견훤 의 외손녀 청주남원부인 김씨(淸州南院夫人 金氏) : 신라 원보(元甫) 김긍률(金兢律)의 딸.
광종 홍도선열평세숙헌의효강혜대성황제 (태조만큼길구랴) 925년생 945(20살)~975 재위 30년
배다른큰형이 죽고 친형이 왕위를 물려받았다가 일찍 죽어서 광종에게까지 오는구랴.
노비안검법 과거 시행 호족숙청으로 왕권강화를 하려 했다. 국사시험본 거 아직도 생각나오.
왕권강화를 위해서인지 왕씨네 집안끼리의 근친결혼을 장려하오.
대목왕후 황보씨 배다른 형제사이 아들: 고려 제 5대 국왕 경종 (景宗,955~981, 재위: 975~981) 뒤에 나오지만 이 아들의 네 왕후가 다 근친결혼이오. 손자: 고려 제 7대 국왕 목종 (穆宗,980~1009 재위: 997~1009) 아들손자로 내려가는 게 아니라 중간에 낑긴 왕이 있는데 뒤에 나오오. 아들: 효화태자 (孝和太子) 딸: 천추공주(千秋公主) 딸: 보화공주(寶華公主) 딸: 문덕왕후 (文德王后) : 고려 6대 국왕 성종 의 정비 성종은 대목왕후 친형제의 아들이오. 사촌끼리 결혼시킨거. 경화궁부인 임씨(慶和宮夫人) : 혜종 (惠宗)의 딸 배다른 형한테 시험당하다가 조카를 얻은 거. 아까 나왔지라.
경종 지인성목명혜헌화대왕 955년생 975(스무살)~981 재위 6년
광종의 아들이오. 세번째 형제승계 한 끝에 겨우 아들승계 하는구랴..
대종이 태조와 왕후인 황보씨 아들이고(그래서 성을 그 쪽으로 따른듯) 경종 엄마 대목황후와 친형제요.
네 부인 다 사촌이고 황보씨들은 친 외사촌이오. 이렇게 결혼하라고 한 건 아버지 광종이오.
성종 강위장헌광효문의대왕 960년생 981(21살)~997 재위 16년
위에도 나온 대종의 아들이오. 부인은 경종의 여동생이고 자기 여동생은 경종에게 시집갔소.
경종에게 시집간 여동생이 낳은 아들이 두 살일 때 경종이 죽으면서 외사촌이자 처남이자 매제인 이 햇에게 왕위를 넘겼소.
문덕왕후 유씨 (文德王后) - 고려 제 4대 광종 의 딸 딸: 선정왕후 (宣正王后) - 목종의 비이며 성종과 혼인하기 전 태조와 헌목대부인의 손자 홍덕원군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라 성종과는 의붓관계이다. 문화왕후 김씨 (文和王后) - 선산 김원숭의 딸 낙랑군대부인 최씨(樂浪郡大夫人, 연창궁부인) - 경주 최행언의 딸
목종 위혜극영정공선양대왕 980년생 997(17살)~1009 재위 12년
위에 나온 경종의 두살배기 아들이고 외삼촌이면서 이모부면서 고모부인 성종의 의붓딸이랑 결혼하고 왕위에 올랐구랴. 경종의 아들이라서라기보다는 성종의 사위로서 왕위에 오른 면이 더 크다는 글도 봤소. 엄마햇이 헌애황후. 드라마에 나온 천추태후요. 엄마햇이 바람피워서 낳은 아들에게 밀릴뻔하고 결국에는 강조에 의해 폐위됐소.
현종 대효덕위달사원문대왕 991년생 1009(18살)~1031 재위 22년
아까 5대 경종이 죽고 그 부인 헌정왕후가 왕궁밖으로 나가 살게 되고 한 십년쯤 있다가 근처에 살던 숙부(태조의 다른 아들)이랑 정을 통해 낳은 아들이오. 근데 그 부인은 6대 성종의 여동생이기도 하지라. 두 살 때 엄마가 죽고 조카라 불쌍했는가 성종이 딸을 둘이나 주오. 이모인 천추태후의 압뷁에 시달리다가 목종이 폐위된 이후 왕으로 옹립됐소.
덕종 덕종선효강명광장경강대왕 1016년생 1031(15살)~1034 재위 4년
현종의 아들로 왕위에 오르는 나이가 어려서 약하다 생각했는지 부인이 다 이복누이들이오.
경성왕후 김씨 (敬成王后) - 현종 과 원순숙비 김씨(元順淑妃)의 딸. 경목현비 왕씨(敬穆賢妃) - 왕가도의 딸. 원질귀비 의 여동생. 효사왕후 김씨 (孝思王后) - 현종과 원혜왕후 김씨의 딸.
정종 정종홍효안의문경용혜대왕 1018년생 1034 (16살)~ 1046 재위 12년
이 햇은 덕종의 친동생이오 형이 왕위 오른지 사년만에 죽어서 왕위에 오른 듯 한데 형과는 달리 근친결혼을 안 하고 그냥 귀족들 중에서 부인을 맞소. 이제 근친결혼 안해도 될 정도로 왕권이 탄탄해졌나 싶구랴.
용신왕후 한씨(容信王后) 용의왕후 한씨(容懿王后) 용목왕후 이씨(容穆王后) 용절덕비 김씨(容節德妃) 연창궁주 노씨(延昌宮主)
문종 강정명대장성인효대왕 1019년생 1046(27살)~1083 재위 37년
선대왕의 이복동생이구랴. 3 7년동안 재위했다는 거만 봐도 안정적이었다는 게 눈에 보이지라. 이 때가 고려의 황금기라 불렸다는 시기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부인이 다 이자연이라는 사람의 딸이오. 이자연이 나는 새도 떨어뜨렸겠구랴.
인평왕후 김씨(仁平王后) - 현종과 원성왕후 의 딸. 인예왕후 이씨(仁睿王后) - 이자연 의 첫째 딸. 순종 (고려 제 12대 왕) 국원후(國原侯) : 선종 (고려 제 13대 왕) 계림공(鷄林公) : 숙종 (고려 제 15대 왕) 대각국사 의천 상안공(常安公) 도생승통(道生僧統) 금관후(金官侯) 변한후(卞韓侯) 낙랑후(樂浪侯) 총혜수좌(聰惠首座) 적경궁주(積慶宮主) 보령궁주(保寧宮主) 인경현비 이씨(仁敬賢妃) - 이자연의 둘째 딸. 조선공(朝鮮公) 아들: 강릉공 온 (江陵公 溫) - 의종 의 비인 장경왕후 , 명종 의 비인 광정왕후 , 신종 의 비인 선정왕후 의 아버지. 딸 셋을 다 왕에게 연속으로 시집보내는 것만 봐도 세도가 뜨르르 하지라. 외할아버지 이자연 다음대가 바로 이자겸의 난의 그 이자겸이오. 벌써부터 딸들이 왕가로 죽죽 시집가는게 이 집안의 세도가 창창함이 느껴지지라? 인절현비 이씨(仁節賢妃) - 이자연의 셋째 딸. 인목덕비 김씨(仁穆德妃)
순종 영명정헌선혜대왕 1047년생 1083년(36세) 3개월 재위
선대왕의 큰아들이시오. 아버지 돌아가신 게 충격이었는지 빨리 돌아가시오 그래서인지 시호도 짧구랴
선종 관인현순안성사효대왕 1049년생 1083(35세)~1094 재위 11년
선대왕의 친동생이오.
헌종 공상정비회효대왕 1084년생 1094년(10살)~1095 재위 2년
아버지가 35살에 늦게 얻은 아들인데 10살 때 아부지 죽고 왕위에 올랐지만 어머니가 수렴청정한 것 같고 이리저리 치이다가 결국 선위하고 2년 뒤 승하하오. 그래봤자 14살.. 가엾소.
숙종 문혜강정명효대왕 1054년생 1095(41살)~1105 재위 10년
이 햇은 방금 헌종의 친삼촌이오. 수양돋네. 6촌 이내는 결혼하지 말라고 법령도 제정하고 그런다오.
명의왕후 유씨(明懿王后)
예종 상당후(上黨侯) 왕필(王佖) 원명국사(圓明國師) 대방공(帶方公) 대원공 (大原公) 왕효(王侾) 제안공(齊安公) 왕서(王偦) 통의후(通義侯) 대녕궁주(大寧宮主) 흥수궁주(興壽宮主) 안수궁주(安壽宮主) 복녕궁주(福寧宮主)
예종 명렬제순문효대왕 1079년생 1105(26살)~1122 재위 17년
아들승계구랴.
경화왕후 이씨 (敬和王后 李氏) - 선종 의 딸. 친사촌이구랴.. 순덕왕후 이씨 (順德王后 李氏) - 이자겸 의 둘째 딸. 빠지지 않는 이씨가문.. 이런 게 문벌귀족인가.. 인종 (仁宗) 승덕공주(承德宮主) 흥경공주(興慶宮主) 문정왕후 왕씨(文貞王后) - 종실 진한공 유의 딸 숙비 최씨
인종 극안공효대왕 1109년생 1122(13살)~1146 재위 24년
나이가 어렸지만 외할아버지 이자겸 (가계를 보면 이씨가문에서 부인이 많이 들어오오) 버프를 받아 왕위에 오르오. 그리고 이자겸의 작은딸들과 또 결혼하지라. 위세를 떨치고 댕기는 외조부이자 장인을 인생퇴갤시키고(이자겸의 난) 허전한 마음을 의탁한 곳이 묘청이라오.
폐비 이씨 (이자겸 3녀,이모) 폐비 이씨 (이자겸 4녀,이모) 공예왕후 임씨 (恭睿王后 任氏, 1109년 ~ 1183년 ) 의종 대녕후(大寧侯) 익양후(翼陽侯) : 명종 원경국사(元敬國師) 평량공(平凉公) : 신종 승경궁주(承慶宮主) - 공화후 영에게 하가 덕녕궁주(德寧宮主) - 강양공 감에게 하가 창락궁주(昌樂宮主) - 신안후 성에게 하가 영화궁주(永和宮主) - 소성후 공에게 하가 선평왕후 김씨(宣平王后)
의종 강과장효대왕 1127년생 1146(19살)~1170 재위 24년
선대왕의 큰아드님
장경왕후 김씨 (莊敬王后) - 강릉공 왕온의 딸이며 여동생들도 의종의 동생인 명종 과 신종 의 왕비가 되었다. 효령태자(孝靈太子) 경덕궁주(敬德宮主) 안정궁주(安貞宮主) 화순옹주(和順翁主) 장선왕후 최씨 (莊宣王后) - 최단의 딸 궁인 무비 (宮人 武比)
명종 황명광효대왕 1131년생 1170년(39세)~1197 재위 27년
윗 왕의 동생이고 셋째아들이오. 형이 무신정변으로 폐위된 후 옹립됐소. 나름 무신들끼리의 견제를 이용해서 왕권을 강화시켜보려 한 듯 하오. 그렇지만 최충헌이 정변을 일으키며 폐위되고 그 6년 후 죽는다오.
광정왕후 김씨(光靖王后) - 강릉공 온의 딸이자 의종의 비인 장경왕후 의 여동생. 강종 (康宗, 1152년~1213년) 연희궁주(延禧宮主) 수안궁주(壽安宮主) 선사 홍기 홍추 홍규 홍균 홍각 홍이
신종 경공정효대왕 1144년생 1197(33살)~1204 재위 7년 명종 바로 아래동생이고(출가하신 왕자 제외) 최충헌에 의해 옹립되오. 7년 재위 후 등창이 심하다는 이유로 태자에게 양위한다오.
선정왕후 김씨(宣靖王后) - 강릉공 온의 딸. 의종 비 장경왕후와 명종 비 광정왕후 의 여동생. 희종 양양공(襄陽公) 서 효회공주(孝懷公主) 경녕궁주(敬寧宮主)
이로써 형제로 왕위가 세번째 물려내려갔구랴. 왕하고 겹사돈을 셋이나 맺은 강릉공도 대단하오 ㅋㅋ
희종 인목성효대왕 1181년생 1204(23살)~1211 재위 7년
겨우 아들로 승계를...그러나 최충 헌에 의해 또 폐위크리를 맞소. 이게 벌써 몇 번 째냐며...
성평왕후 임씨(成平王后) - 종실 영인후 왕진(寧仁侯 王稹)의 딸.
창원공(昌原公) 시령후(始寧侯) 경원공(慶原公) 대선사(大禪師) 충명국사(冲明國師) 안혜왕후 (安惠王后) - 고종 의 왕비. 영창궁주(永昌宮主) 덕창궁주(德昌宮主) - 최충헌 의 아들인 최성과 혼인. 가순궁주(嘉順宮主) - 신안공 전과 혼인하여 딸 경창궁주 를 낳음. 경창궁주는 고려 원종 의 비로 들어감. 정희궁주(貞禧宮主)
강종 명헌원효대왕 1152년생 1211(59살)~1213 재위 3년
딱봐도 허수아비왕이었구랴... 아까아까 최충헌에게 폐위된 명종 큰아들이오.
고종 충헌안효대왕 1192년생 1213(21살)~1259 재위 46년
시호를 보면 필이 오는 분도 계실텐데 시호에 "충"이 등장했소. 원나라크리를 맞기 시작할 때라오. 원나라에 충성하라는 뜻으로 내렸기 때문에 앞으로는 충충충충충. 이리 된다오. 강화도까지 천도하며 몽골에 항쟁한 왕이오. 무신 최씨정권 마지막햇인 최의햇이 1958년에 죽고 정권을 되찾소만..
안혜왕후 유씨 (安惠王后 柳氏) - 희종 의 딸. 오촌고모랑 결혼했구랴.
원종 (元宗, 1219년 ~ 1274년, 재위:1259년 ~ 1274년)식 안경공 (安慶公) 창 수흥궁주(壽興宮主)
원종 충경순효대왕 1219년생 1259(40살)~1274 재위 15년
잠시 폐위된적도 있는데 원나라 버프 받아서 다시 왕위에 오르오. 원나라 내정간섭이 본격화되는구랴. 이 햇이 뭐뭐 종이니 조니 묘호를 받는 마지막 왕인 게 아들인 충렬왕이 원나라 간섭이 더 심해지기 전에 올렸기 때문이오.
정순왕후 김씨 (靜順王后) - 경주 김약선의 딸 경창궁주 유씨 (慶昌宮主) - 종실 신안공 전의 딸 시양후 태(始陽侯 珆) 순양공 종(順安公 悰) 경안궁주 (慶安宮主) - 종실 제안공 숙과 혼인 함녕궁주 (咸寧宮主) - 종실 광평공 혜와 혼인
충렬경효대왕 1236년생 1274(38살)~1308 재위 34년
보시다시피 묘호가 없소. (종 조 이런거) 원나라보다 한 급 아래라고 못 쓰게 한 것이지라..이 왕부터 원나라의 부마국이 되오.
제국대장공주 (齊國大長公主) 정화궁주(貞和宮主) 왕씨 강양공 (江陽公) - 공양왕 의 모후인 국대비 왕씨(國大妃 王氏)의 조부. 정녕원비(靜寧院妃) 명순원비(明順院妃) 숙창원비 김씨(淑昌院妃)
충선헌효대왕 1275년생 재위 1298(23살) 복위 1308(33살)~1313 1297년에 엄마인 제국대장공주가 죽고 나자 아버지인 충렬왕의 후궁이었나 싶은 무비의 관련자들을 싸그리 죽이오. 그래서인가 충렬왕은 왕 안하겠다고 해서 즉위했으나 정비인 계국공주가 본인의 반대파였소;; 그래서 7개월만에 다시 반환하고 원나라로 떠나오. 거기서 공을 좀 세워서 심양왕이라는 작위를 받는데 이것을 물려받는 고려 왕족이랑 고려 왕이랑 서로 기싸움 작렬이 계속된다오. (원나라가 분열시켜 다스리려는 꼼수가 아닌가 싶소.) 십년 뒤 아버지 돌아가신 뒤에 왕위에 오르긴 하오만 귀국하지 않는다오.
정비 계국대장공주 왕비(王妃) 조씨 의비(懿妃) 야속진 정비(靜妃) 조비(趙妃)
충숙의효대왕 1294년생 1313(19살)~1330, 1332~1339
아부지인 충선왕이 심양왕이라는 작위를 받았다 했잖소. 그 작위는 조카에게 물려줬다오. 충숙왕으로 보면 사촌인 그 햇이 왕위를 욕심내 원나라 황실에 고자질같은 걸 해서 원나라에 5년이나 끌려가고 난리라오. 중간에 1330년에 그 사촌한테 양위할라했다가 신하들이 반대해서 아들에게 양위했지만 2년 후 다시 왕위에 올라 7년 후 죽소. 왕이 무슨 장난도 아니고 원나라가 줬다뺏었다 하는 게 벌써 몇번째인지.
공원왕후 홍씨 (恭元王后 洪氏, 1298년~1380년) - 남양 홍규의 딸. 충혜왕 (忠惠王, 1315년~1344년, 재위: 1330년~1332년, 복위 1339년~1344년) - 고려 제 28대 왕. 공민왕 (恭愍王, 1330년~1374년, 재위: 1351년~1374년) - 고려 제 31대 왕. 복국장공주 (濮國長公主, ? ~ 1319년) - 원 세조 쿠빌라이(忽必烈)의 5남인 영왕(營王) 야선첩목아 (에센티무르, 也先帖木兒)의 딸. 조국장공주 (曹國長公主, 1308년 ~ 1325년) - 다루마바라 (원 순종)의 아들 위왕 에무게(아목가, 魏王 阿木哥)의 딸로, 쿠빌라이 (원 세조)의 고손녀.
쿠빌라이의 손녀와 고손녀를 동시에 부인으로 맞았구랴. 원나라에 대한 충정을 결혼으로 증명해라 이건가;;;
충혜헌효대왕 1315년생 1330(15살)~1332, 1339~1344
아버지의 양위로 왕위에 올랐지만 애가 좀 음탕했다고 고려사에 계속나온다오.. 그 이유로 폐위됐다가 아버지 죽은 이후에 다시 왕위에 오르오 그렇지만 5년 후에 다시 또 원나라에 의해 폐위되고 귀양까지 가다가 죽소.
정순숙의공주 (貞順淑儀公主, 덕녕공주(德寧公主)) 충목왕 (忠穆王, 1337년~1348년, 재위: 1344년~1348년) - 고려 제 29대 왕 장녕옹주 희비 윤씨 - 파평 윤계종의 딸 충정왕 (忠定王, 1337년~1352년, 재위: 1348년~1351년) - 고려 제 30대 왕 은천옹주 석기
충목현효대왕 1337년생 1344(7살)~1348 재위 4년 아버지는 원나라에 끌려가 죽었고 자신도 원나라 볼모였다오. 너는 아빠가좋아 엄마가 좋아? 할 때 엄마요. 라고 대답해서 일곱살 나이에 왕위에 오르고 엄마인 덕령공주가 수렴청정했지만 일찍 죽었구랴.
충정왕 1337년 년생 1348 (11살) ~ 1351 재위 3년
충목왕의 이복동생이오. 형이 죽은 뒤에 왕위에 올랐지만 역시 나이가 어려서 엄마인 희비가 수렴청정을 하오. 계속 어린아이가 왕을 하는 게 맘에 안 들었던지 원나라가 폐위시킨 것 같고. 아들이 있었지만 (어린나이에;;;) 당연히 그 뒤는 아들이 아닌 숙부(충혜왕의 동생)이 잇게 되오.
공민인문의무용지명열경효대왕 1330년생 1351(21살)~1374 재위 23년
햇들 다 아시는 공민왕이오. 원나라 버프를 받아 왕이 되었지만 독립적인 고려가 되려고 노력했지라. 왕위에 오르자 조카인 충정왕은 사사되오.
인덕왕후 ( 노국대장공주 )(魯國大長公主,?~1365년) - 원 위왕의 딸. 혜비 이씨 (惠妃 李氏,?~1408년) - 경주 이제현 의 딸. 공민왕 사후 여승이 되었다. 익비 한씨 (益妃 韓氏,생몰년 미상) - 덕풍군 의(德豊君 義)의 딸. 신비 염씨 (愼妃 廉氏,생몰년 미상) - 서흥 염제신의 딸. 혜비와 같이 공민왕 사후 여승이 되었다. 정비 안씨 (定妃 安氏,?~1428년) - 죽성 안극인의 딸. 우왕의 비인 현비(賢妃)의 고모이다. 공민왕의 사후 왕실의 어른이 되었다. 시비 반야 (般若,생몰년 미상) - 신돈의 시비. 차남 : 우왕 (禑王, 1365년~1389년, 재위: 1374년~1388년) - 고려 제 32대 왕
우왕 1365년생 1374(9살)~1388 재위 14년
아시다시피 공민왕이 노국공주 돌아가시고 정신줄 놓고 있다가 반야에게서 겨우 본 자식이고 출신이 미천해서 신돈이 죽은 이후에야 궁에 들어와 봉작을 받소. 그 때문에 이성계가 공민왕의 자식이 아닌 신돈의 자식이라고 공격당하게 되지라. 구빈삼옹주라고 해서 부인이 열 둘이나 되는데 미인이라면 다 뺏어온 늑힘! 이오.
우왕이라는 건 시호도 묘호도 아니고 그냥 이름이 왕우였기 때문에 우에다가 왕을 붙인거요.
근비 이씨 (謹妃 李氏, 생몰년 미상) - 고성 이림의 딸 아들: 창왕 (昌王, 1380년~1389년,재위 1388년~1389년) - 고려 제 33대 왕 영비 최씨 (寧妃 崔氏, 생몰년 미상) - 철원 최영의 딸 의비 노씨 (毅妃 魯氏, 생몰년 미상) - 노영수의 딸 숙비 최씨 (淑妃 崔氏, 생몰년 미상) - 최천검의 딸 안비 강씨 (安妃 姜氏, 생몰년 미상) - 강인유의 딸 정비 신씨 (正妃 申氏, 생몰년 미상) - 평산 신아의 딸 덕비 조씨 (德妃 曺氏, 생몰년 미상) - 조영길의 딸이며 노비 출신 선비 왕씨 (善妃 王氏, 생몰년 미상) - 왕흥의 딸 현비 안씨 (賢妃 安氏, 생몰년 미상) - 죽성 안숙로의 딸이며 공민왕의 비인 정비 안씨의 조카. 화순옹주 (和順翁主, 생몰년 미상) - 기생 출신이며 본명은 소매향(小梅香) 명순옹주 (明順翁主, 생몰년 미상) - 기생 출신이며 본명은 연쌍비(燕雙飛) 영선옹주 (寧善翁主, ?~1420년) - 기생 출신이며 본명은 칠점선(七點仙), 원래는 밀직(密直) 남질(南秩)의 첩(妾)이었다.
창왕 1380년생 1388(8살)~1389 재위 2년
이 때 이미 권력을 장악한 이성계에 의해 폐위되오. 아버지인 우왕이 왕씨가 아니고 신씨니까 너도 퇴갤 이런 식이었지라.. 이 햇도 그래서 왕이 아니라 여겨져 시호도 묘호도 없소. 이름이 왕창이라 창왕이라 불렸을 뿐..
공양대왕 1345년 생 1389 (34살) ~ 1392 재위 3년
이성계가 허수아비로 세운 왕이지라. 공양왕의 형이 이성계랑 사돈관계라 간택된 듯 한데 곧 이성계에게 왕위를 넘기고 공양군으로 격하되오. (단종이 왕위에서 물러나고 노산군이 되는거랑 비슷.) 자신은 유배지를 전전하다가 죽소. 그게 불쌍했는지 이성계가 묘호를 준 게 공양대왕이라오. 그나마 1416년에 준 거라오.
순비 노씨(順妃 盧氏) :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 노진의 여식
왕석
왕우
왕비는 저 사람이 맞는데 더 있는지는 모르겠구랴. 아들이 더 있었는지도 알 수 없으나 유배지에서 아버지랑 같이 죽었다 하니 아들이 더 있었다면 그도 죽었을테지라
틀린 부분 있으면 댓글 달아주시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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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왕조 가계도 끝까지 정리해봤소.
삘렐레별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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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9.16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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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쌍화차 코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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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감자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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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드로 내렸소.

대충 내렸소





......
왕들은 뭘 먹고 아들딸이 저렇게나 많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