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영옥 대령은 1919년 독립운동가 김순권님의 아들로 미국에서 출생.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사병으로
미 육군에 입대한 그는 장교 후보생에 선발되어 보병 장교로 임관되어 유럽 전선에 배치된다.
그가 배치된 부대는 일본계 미국인들로 구성된제 100 보병대대였다.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과 일본이 전쟁 상태로 변하자 미국 내 11만명 가량의 일본계 미국인들은 어려운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미국인의 증오의 표적이 되어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수용소행이 되었다
그러나 독일이나 이탈리아 미국인은 그런 차별을 받지 않았는데 유독 일본은 제외되었다.
일본계미국인은 떳떳한 미국인으로 인정받고 싶어서 그것을 증명하는 것은 군대에 입대하는것이다.
그당시는 백인과 유색인종의 피를 따로 수혈을 할정도 인종차벽이 심하던 당시 일본계 군인들을 백인과 함께
둘수가 없어 그들만 따로 태평양 전선으로 일본군과 싸우게 하여 그들의 충성심에 의심이 가 그들만 묶어서
만든 부대가 100대대이고 간부는 백인이고 이 대대는 어는 사단이나 연대에도 소속되지 않은 독립대대라
고아부대라고 불렀다 한다
유럽전선에서는 엄청난 전공을 세워는데 특히 이탈리아 전선에서는 눈부신 활약으로 로마에 입성할때는 연합군
최선두에서 행진하는 영예를 갖었다 한다 미 제 5군 사령관 마크 글라크 대장은 <100대대를 휘하에 둔것이 자랑스럽다> 라고 하였단다 이 크라크 장군이 한국전으로 한국에 와있을때 그의 아들은 유럽전쟁에서 돌아오자 다시
스스로 자원하여 한국전에 참전하자 마자 황해도 근방에서 전사한것은 우리가 기억하여야 할것이다 .
"싸우다 죽어라", 제 100대대의 모토였다
부대의 구호 "Go for Broke!"(싸우다 죽어라)가 상징하는 것처럼 2년이 채 안되는 기간동안 442연대와 100대대는 전 미군 중에서 가장 많은 훈장을 탄 단위 부대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김영옥 대령도 100대대의 소대장과 중대장 임무를 수행하면서 이탈리아 전선과 프랑스 전선에서 보여준 눈부신 전공으로 미국 특별무공훈장, 프랑스 십자무공훈장, 이탈리아 최고무공훈장을 받습니다. 특히 그는 프랑스 비브뤼에 전투와 비퐁텐트 지역을 해방시킨 주역으로 손꼽히고 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잠시 군을 떠났던 그는 한국전이 발발하자 미 육군 7사단 31연대 1대대장으로 참전, 은성무공훈장과 동성무공훈장을 받았다 그런데 그가 미국사회에서 전쟁영웅으로 기억되는 이유는 수많은 무공훈장 때문이 아니라, 전장에서 그가 보여준 휴머니즘에 있다. 한국전에서는 고아원 ‘경천애인사’를 설립해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고아 100여명을 보살폈고 “대대차원에서 맥주와 잉여 보급품들을 시장에 내다 팔고 장병 가족들이 보내주는 의류로 고아들을 돌보았다”고 생전에 그는 회상하였다 한다
72년 대령으로 전역한 김영옥은 유색인의 권익 확보에 여생을 바쳤다. 한인 정신건강 정보센터와 한인 청소년 회관 등이 그의 리더쉽 아래 세워졌고, 일본계 참전 용사들이 만든 ‘고포브로크’ (Go for Broke) 교육재단의 공동의장으로 활동했다..
특히 일본계 미국인들의 그에 대한 존경심은 대단해서 1999년 캘리포니아 주의회에서 ‘위안부 결의안’이 상정되었을 때, 고 김 대령은 100대대 출신 일본계 지도층들에게 지지서명을 이끌어냈고 김대실이라는 여 작가는 정신대 필름을 찍어서 여러곳에서 일본을 고발한것은
뉴욕분들은 잘 아실것이다
2007년 11월 1일)자 국방일보는 미국의 전설적인 한국계 전쟁 영웅 고 김영옥 대령의 이름을 딴 연구소가 캘리포니아 주립대 리버사이드 캠퍼스(UC Riverside)에 설립된다고 보도했습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은 이 연구소가 미주 한인 동포들의 이민 역사와 생활 등을 학술적으로 연구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700만 달러의 연구소 설립 비용은 학교 측이 300만 달러, 나머지는 재외 동포 재단과 미주 한인들의 성금으로 충당할 계획이란다
2009년 7월 한국 이름을 붙인 중학교로는 미국에서 처음이고 무엇보다 커뮤니티의 단결된 힘이 결정적 역활은
일본계 미군 참전용사들이 동참하였고 교육위원 7명이 만장일치로 결정되었다
'김영옥 대령 중학교' Col. Young Oak Kim Academy 라는 이름으로 2009년 9월부터 개학을 한
것으로 안다
|
첫댓글 이민사를 공부하고 그리고 미국 각곳에 있는 한국인의 거리를 찾으며 한국이민사가 자랑스러움을 감출수가 없습니다 뉴욕 롱아이랜드에는 아름다운 거리가 있어요 아름다운(Arumdaun St. 이라는것을 보며 무슨 말인가 ? 하였더니 그것은 아름다운 교회가 그근처에 있는데 그 교회가 community에 봉사와 지원을 많이 하여서 교회 이름을 거리에 붙인것을 며칠전에 알았어요 . 이민사에 우리가 배우고 학생들에게 알려 주려고 계속 자료들을 준비합니다
어느 영화에서 뉴욕에 자살테러를 하려고 잠입한 이라크(?)인들을 잡았는데 그들은 반미지하드 소속이 아니라 미국측에서 양성한 반 이라크정부 (사담?) 조직 소속이었습니다.
까닭은 미국에서 갑자기 작전을 중지하는 바람에 이들 친미 이라크인들이 잡혀 죽었기 때문에 그 배신감으로 미국에 복수하러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한국전 당시 휴전협정직전까지도 계속 군번없는용사들을 함경도같은 적의 후방에 낙하산으로 투하시키다 휴전이 되자 그대로 내버려두어서 그들이 꼼짝 못하고 잡혀 죽게 한 미국은 반성하고 이에 대해 사과와 배상을 해야 합니다.
미국의 이러한 무책임한 행위가 오늘날 남한의 반미운동의 중요 원인중의 하나임을 알아야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