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구속사 강해
인간 창조와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시고 삼라만상(森羅萬象)을 질서 있게 운행하시는 것은 온전히 이 땅에 사는 인류에게 가장 적합한 생활의 환경을 제공해 주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인류는 우주의 핵심(core)이며 우주가 존재하기 위한 원인이기도 하다. 인류를 위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주를 창조하셨다 할지라도 그 우주는 한갓 하나의 공작품(工作品)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우주가 아름답고 질서 있고 공고하게 창조되었다 할지라도 그 안에 인류가 없다면 그것은 생명이 없는 일종의 기구(器具)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인류가 이 땅에 존재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우주는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과 같이 생동감이 있고 활기가 넘치게 되는 것이다(창 1:1).
1. 인간 창조의 궁극적인 목적
하나님은 인류를 우주의 주인으로 창조하셨다. 인간을 창조하시되 하나님만이 가지시는 고유한 성품(person)으로서의 인격을 인류에게 주시고 신적 생명력을 발휘하도록 하셨다. 그리고 그 인격을 정상하게 나타내어 우주 안에 있는 모든 자연물과 특히 이 땅에 있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 하셨다(창 1:27-30). 그것들이 미세한 광물이든 연약한 생명체이건 혹은 커다란 몸집을 가진 것이건 상관하지 않고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점에서 인류가 다스리는 통치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인류의 통치력은 가시적(可視的)인 거리 안에 있는 자연이나 생명체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가지고 있는 생명이라는 독특한 능력이 발휘되고 있는 한 그의 영향력과 통치력은 온 우주에 미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인류의 통치는 우주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담이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통치권은 에덴동산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에덴동산이 일정한 담으로 둘러 쌓인 한정된 공간이 아니라는 점에서 아담의 통치권은 제한적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아담은 하와와 공동으로 이성(理性)의 능력을 발휘하여 에덴동산을 점차 확장하여 온 세상에 가득하게 할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인간이 살고 있는 에덴동산은 이 세상에 인간이 살고 있지 않은 다른 곳에 비하여 얼마나 아름답고 건실한 곳인가를 알 수 있다. 따라서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이 정상한 인격을 바탕으로 통치력을 발휘한다면 그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어디든 에덴동산과 같이 아름답고 건실한 세상을 건설해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인격과 그것을 바탕으로 행사할 수 있는 통치권은 실로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고 방대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통치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통치를 대신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인간의 통치로 말미암아 세워지는 문화의 고도함과 아름다움이 에덴동산에서 그 자태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실로 원상의 세계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시는 나라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그 극치를 이루고 있음이 분명한 것이다. 때문에 인류는 자신이 통치하는 이 세상에 대하여 만족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세계에 속하게 될 것을 간절히 사모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인간 창조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류가 하나님께서 주신 인격을 가지고 우주를 다스리며 이 땅의 모든 생물을 통치하는 영역적인 의미를 초월한다. 인류가 통치자로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께서 당신의 세계를 다스리시고 있음을 늘 의식할 수 있도록 보여주는 일종의 시청각 자료인 셈이다. 실제로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통치 행위를 수행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를 통치하시는 사역을 모방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지음 받았음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인간은 신적인 속성을 발현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세계를 다스리시는 그 통치의 원상을 인간이 가시적으로 깨닫도록 하기 위하여 천지를 창조하여 인류에게 주신 것이며, 이러한 이성적(理性的)인 활동을 통하여 하나님만이 가지시는 독특한 성품의 성향을 인간이 마음껏 누리고 향유(享有)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인류는 자신이 이 세상의 피조물과는 달리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같은 신적 존재임을 늘 확인할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세계에 직접 참여하는 영광을 바라보도록 하셨던 것이다.
2. 인간 존재의 궁극적인 목적
인류는 이 땅에서 정상한 이성을 발휘하며 여타의 피조물을 다스리는 작업을 통하여 이 세상을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그 세계와 같이 방불할 정도로 발전시킴으로서 원상의 세계 곧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시는 세계를 소망하여야 한다. 이 세상의 통치는 어디까지나 인간이 하나님과 같은 성정을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표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과정은 인류가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보여주며 늘 그 목표를 향하여 인간이 전진해야 할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은 인간을 3차원의 세계에 살도록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인류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되 그 안에서 발전의 과정을 통하여 완전의 상태, 즉 하나님이 다스리는 원상의 세계에 참여하도록 하신 것이다.
이것은 소위 말하는 진화론과는 전혀 그 성격이 다르다. 오히려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의 특성은 장성함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하나님만이 가지는 고유한 특성인 창조적 속성을 가지고 늘 새롭게 자신을 창조해 나간다는 점에서 그 독특한 존재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신적인 속성을 발휘함으로서(인간의 신적 속성이 현저하게 발휘되는 것은 통치 사역이다) 하나님과 같은 영적인 실체(實體)를 향하여 나아가게 되며 이 과정을 거쳐 마침내 영적인 실체에 도달하도록 하신 것이다(창 1:26-28).
인간이 영적인 실체가 된다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나라에 허용되는 신적인 존재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인간이 피조 세계에 속하지 않고 원상(essence)의 세계, 즉 하나님이 실재하시는 나라, 즉 하나님과 공존하는 세계에 도달함으로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인 것이다. 이와 같은 상태 즉, 인간이 하나님과 같은 영적인 실체(實體)로 승화하는 상태를 가리켜 새 창조 사역이라고 한다. 이 새 창조 사역을 통하여 인간이 하나님과 같이 되는 신인합일(神人合一, theanthropos)에 도달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셨고 그에게 하나님의 전인격을 불어넣어 주신 것이다(창 2:7). 이런 점에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신 형상(imago Dei)은 장차 인간이 하나님과 같이 되기 위한 씨(seed)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창 1:26-27).
인간이 하나님께서 직접 다스리시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간다는 사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성경이 계시하고 있는 중요한 사상이다(계 21:1-7). 이러한 사상이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사건들은 아브라함의 언약을 근거하여 애굽에서 가나안을 사모하는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에서, 그리고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의 남은자들이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기를 고대하는 제2의 출애굽 사건에서 현격하게 나타난다. 그들에게 있어서 약속의 땅은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창 17:7-8, 출 6:7, 삼하 7:14,24, 렘 30:22, 31:1, 고후 6:18, 계 21:3,7)고 약속하신 언약의 결정체일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이 세상이 아닌 하나님의 세계를 사모하는 신앙의 결정체였던 것이다(히 13:16).
여기에서 그들이 바랐던 소망은 윤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또는 상징적으로 말하여지는 하나님의 백성이나 아들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실지로 약속의 땅(가나안 땅)에 들어간다는 것은 그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대면하고, 하나님과 같이 사고(思考)하고, 하나님과 같이 성정을 발현하는 신성(神性)을 가진 새 인간으로서 이 세상과 같은 피조된 세계가 아닌 하나님께서 존재하시고 통치하시는 원상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