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라는 무대를 앞두고 국내에서 갖는 마지막 A매치.
5만여 관중이 운집한 이래 우리 대표팀은 이렇다할 찬스 몇번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결국 우려되던 수비진의 붕괴로 한골을 헌납한 채 1:0으로 졌습니다.
진 것 자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수도 있고,
여기에 대해 얼마든지 옹호론을 펼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최소한 사실관계에 대한 파악 정도는 제대로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튀니지전 이후로 대톡을 쭉 둘러보면 늘 그렇듯 프레임은 언제나 양분되어 있습니다.
일상이니 그렇다손 치지만, 비판세력도 그렇고 옹호세력도 그렇고 지나치게 극단적인 경향이 극소수이긴 하지만 보이긴 했습니다.
아직까지도 튀니지전 경기력에 관해 말이 많은걸 보면 실망감이 그만큼 컸단 반증이기도 하겠죠.
여기에 관해 짧은 제 소견을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전체적인 경기력
경기력에 대한 논의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우리는 시종일관 튀니지에 밀리는 모습이었습니다.
전반에 한 차례씩 나왔던 손흥민과 박주영의 중거리슛 장면을 제외하면 정말 골문 근처에도 제대로 가질 못했죠.
월드컵 엔트리에서 구자철을 공격수로 뽑은 이유에 대해서는 말이 거의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전 개인적으로 구자철을 투톱형태로 쓰지않을까 하는 예상을 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맞아떨어지긴 했지만요.
이러한 구자철 시프트는 최소한 튀니지전에선 실패로 돌아갔다고 하는게 맞을것 같습니다.
국내리그 선수들 위주로 꾸려갔던 비시즌기간의 전훈.
비시즌기간에 강도높은 체력훈련까지 동반된 훈련임을 감안하면 좋지 않은 경기력이 어느정도 수용되긴 합니다.
다만 김신욱-이근호 투톱을 사용했을 때, 2선과 3선 간 간격이 지나치게 벌어진다는 단점이 노출되었죠.
이러한 문제점이 튀니지전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구자철은 올림픽 때 보여줬던 폼을 상실한 채 위협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내지 못했고,
최전방 공격수 박주영은 2선과 3선 사이까지 내려오면서 볼을 받는데 급급했습니다.
이 결과는 전방으로 볼이 투입됐을 때 경합해줄 선수가 없어져 소유권을 그대로 튀니지에게 넘겨주는 형태를 반복했죠.
손흥민과 윤석영의 호흡적인 문제도 커 보입니다.
윤석영은 오버래핑 시 상대 측면 깊숙한 곳까지 직접 침투하는 플레이를 즐겨 하는 선수고,
손흥민은 전형적인 인사이드커터로서 측면->중앙으로 직접 볼을 몰아 공격포인트를 올리는 유형의 선수죠.
그런데 홍감독이 손흥민에게 측면에서 공간을 만들라는 주문을 했고,
이 결과 손흥민과 윤석영의 동선이 자꾸 겹치고 좌측면에서 공격주도권을 뺏기는 흐름이 너무 잦았습니다.
윤석영의 폼 난조도 하나의 이유가 되겠지만은,
손흥민에게 부여한 또다른 롤은 몸에 맞지 않는 옷이 되었다고 평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수비진의 불안함은 그리스전과 마찬가지로 여지없이 노출되었습니다.
김영권도 홍정호도, 스타일상 스위퍼에 가깝다 뿐이지 전형적인 리베로타입은 아니죠.
그런 스타일이 너무도 닮아있다 보니 결국 장점은 사라지고 단점이 극대화되는 현상이 너무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실점장면을 복기해보면,
두 선수는 동시에 튀어나와 있다가 미처 튀니지의 패스템포를 끊지 못하고 그대로 뒷공간을 헌납했죠.
패스를 차단하지 못한 이용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글들도 자주 보이는데,
이용에게도 분명 일정부분은 책임은 있겠으나 전 센터백들의 실수가 더 컸다고 봅니다.
그리스전도 잘 복기해보면 공격진에서의 움직임이 좋았던 거지 수비력까지 안정된건 아니었습니다.
2~3번 골대에 맞아서 망정이었지, 사실상 실점과 다름없는 움직임이었어요.
수비밸런스의 붕괴는 저를 포함한 많은 분들이 제기하는 문제니 더 이상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너무 점유율에 신경쓰는 것도 문제죠.
전 홍명보호의 점유율이란건 사실상 허상에 가깝다고 봅니다.
빌드업에 취약한 한국영의 특성상, 태클로 볼을 뺏어낸 후 무조건 기성용에게 연결하는 방식이죠.
2-3선 연결고리의 역할과 동시에 전반적인 플레이메이킹을 도맡아 하는게 기성용의 역할인데,
튀니지전에서 드러났듯 그의 컨디션 여부에 따라 공격전개가 되지 않을수도 있음을 시사해준 부분도 컸다고 봅니다.
상대방은 필드플레이어 10명이 전부 후퇴하여 10백을 구축하는 와중인데 공격은 단 4명이서 철저하게 형태를 유지시킵니다.
이렇게 되면 중간 연결고리인 기성용은 결국 횡패스나 백패스를 남발할 수 밖에 없죠.
그러한 패스들이 90% 가까이를 차지하는 와중에 점유율을 8:2 정도로 가져가봤자 아무 소용 없다는겁니다.
전 지공보다는 역습, 뻥축이라 까이겠지만 롱패스에 이은 간결한 선굵은 축구를 좋아합니다.
이러한 선호도의 문제도 있겠지만 확실히 홍명보호의 공격전술은 매우 단조롭고 한정적인게 사실이죠.
*확실히 정상컨디션은 아니었다.
인정합니다.
100% 컨디션은 아니었지요.
그리고 전력으로 경기에 임한것도 아니었구요.
그렇지만 이시점에서 현재 선수들의 컨디션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월드컵이 몇달 내내 장기레이스로 치뤄지는 대회도 아니고,
한달 정도의 텀을 둔 단기레이스인 점을 감안하면 선수들의 컨디션 여부는 본선경기에까지 큰 영향을 미칠 확률이 높습니다.
현재 마이애미 전훈가있는 와중에 몇몇 선수들이 고열과 감기증세를 보이며 훈련에서 이탈하기도 했죠.
프로선수들이니 관리는 철저히 하겠지만, 내몸이라고 해서 내맘대로 좌지우지 되는것도 아니지요.
튀니지전 하나로 한국의 조별예선 성적을 비관적으로 보는것도 문제라 봅니다.
너무 낙관적인 것도 문제지만 비관적인 것도 문제라고 봐요.
*튀니지전 연막설?
이건 좀... 아니라고 봅니다.
세계 어느 국가도 자국에서 여는 마지막 출정식에서 경기력을 8할 이상 숨기고 패하려 들진 않아요.
출정식은 자국 국민들앞에서 '다녀오겠습니다' 인사하는 식의 의미부여가 큰 경기입니다.
정말 실전경기는 필요한데 전력을 숨기고 싶었다면,
굳이 그 돈 들여가면서 튀니지를 홈으로 부를 필요도,
5만여명 국민들이 자기 돈 내면서 경기장으로 운집할 필요도 없죠.
그런 경우에는 제 3국이든 어디든, 훈련장에서 만나 비공개로 연습경기 몇 차례 가지면 될일입니다.
보는 이들도, 욕하는 이들도 없는 마당인데 이편이 훨씬 합리적이죠.
이정도도 모를만큼 축협이나 홍감독의 생각이 모자른건 더더욱이 아닐테구요.
만약 튀니지전이 연막이라고 한다면, 우리와 경기를 치뤘던 그리스도 당시 경기에선 연막작전을 펼쳤을 가능성이 농후하죠.
일본, 코트디부아르, 콜롬비아에게 본인들의 전력을 숨기려고 들 수도 있으니까요. 마찬가집니다.
그렇다면 그리스에게 이겼다고 해서 마냥 국대가 잘 풀릴 것이다, 라는 예상도 근거없는 주장밖에 안 되는 거죠.
결국 자승자박입니다.
국대선수들 감싸주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제돈주고 경기보러간 5만 국민들,
집에서 티비로 시청하며 응원한 다른 국민들 바보만드는 주장은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체력훈련을 이제서야 시작했다.
이건... 더 아닙니다.
월드컵이 2년씩 남은게 아니라 이젠 진짜 2주남았습니다.
월드컵 2주남기고 경기력에 지장이 생길 정도로 체력훈련을 실시하는 국가, 혹은 다른 스포츠가 어딨을까요?
축구처럼 단시간에 엄청난 양의 스태미너를 요구하는 스포츠의 특성상,
체력훈련은 못해도 대회가 시작하기 6개월 전에는 그 스케줄을 완료해야 합니다.
축구는 체력으로만 하는게 아니죠. 전술에 대한 점검도 있어야 하고, 선수 컨디션에 대한 파악도 필요하고.
전 축구를 전문적으로 해본적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일단 제가 이전에 8여년간 전공했던 배구 쪽으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배구경기에 주전으로 나서는 인원은 6명입니다.
총 5세트. 세트당 25점, 마지막 5세트는 세트스코어 21점.
축구만큼 많이 뛰어야 하는것도 아니고, 거친 몸싸움을 필요로 하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구는 단기전 대회를 염두에 둔 훈련이라면 체력훈련에 관한 것은 못해도 대회시작 6개월 이전에 끝을 냅니다.
그럼 그 나머지 6개월은 뭘 하냐구요?
주로 전술에 관한 부분을 많이 다듬습니다.
축구에 비해 배구는 상대적으로 그 세부전술이 매우 복잡합니다.
축구로 예를 들면,
원톱 공격수에게 미드필더가 패스해주는 길이나 방법을 적어도 5가지 정도는 숙지하고 발을 맞춰야 하거든요.
주공격수에 의한 득점루트가 막힐 시 플랜 B, C로 이어지는 대안도 찾아야 하구요.
축구보다 더 적은 인원으로 적은 체력을 소모하며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전술에 할애하는 배구마저도 체력훈련을 일찍 끝내는데,
경기당 평균 10km이상을 뛰어야 하는 축구에서 체력훈련을 이 시즌까지 끌고온다는게 당위성이 성립하는 주장일까요?
만약 이 주장대로 아직까지 체력훈련을 실시하는 중이라면,
우리나라 국대는 러시아전 하루전까지 회복훈련만 겨우 하다가 바로 예선 첫경기를 치뤄야하는 암울한 상황에 놓입니다.
아무리 프로선수들이라도 체력훈련은 정말 힘겨워요.
6시간 이내의 짧은 시간동안 최고강도로 실시하는 훈련을 여태까지 수행하고 있다면,
홍감독은 기본중의 기본도 모르는 감독밖에 되지 않는겁니다.
그렇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홍감독에게 별로 호의적인 시선을 두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국대를 응원하지 않는건 아니죠.
감독은 감독이고, 국대는 국대죠.
감독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내가 좋아하는 선수들까지 잘못되길 바라는 마음까진 가질 수가 없네요.
그렇지만,
팬이라고 해서 무작정 호의적일 필요도 없고, 비관적일 필요도 없습니다.
3전 전패하라는 말도 싫고, 튀니지전은 연막이니 입닫고 축구나 봐라 하는 말도 똑같이 싫습니다.
프레임이 양분되었다고는 하나 서로 주고받는 주장을 보면 모두 비슷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구요.
진짜 얼마 안남았습니다.
기대는 안되더라도 응원은 하자구요.
첫댓글 글 잘 읽었습니다.. 공감되는 부분이 많네요 ^^
처음부터 끝까지 공감합니다
응원합시다 화이팅
대표팀 응원해야죠.
비판은 비판이고 응원은 응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