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아랍 전사로 나오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13번째 전사'가 미국에서 개봉한 지 27일(현지시간)로 정확히 사반세기가 됐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디즈니 플러스에 2022년 10월쯤 올라와 볼 수 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갖춰야 할 것들을 모두 갖췄다. 반데라스 같은 스타 진용을 갖췄고, '프레데터'와 '다이하드'로 유명한 액션 감독 존 맥티어난이 '쥐라기 공원'의 작가 마이클 크라이튼과 공동 연출했다. 크라이튼의 '시체를 먹는 자들'(Eaters of the Dead)이 원작이다.
베어울프(Beowulf, 8세기 영문학 최초의 두운 頭韻 서사시)를 재창조한 원작처럼 이 영화는 바그다드에서 추방된 뒤 바이킹 무리에 원치 않게 가담하게 돼 의문스럽고 공포스러운 악과의 대결에 초대받는 10세기 아랍 외교관 아메드 이븐 파들란의 역정을 그린다.
이런 흥행 요소를 갖췄는데도 혹평과 참담한 흥행 실패를 맛봤다. 내부 시사를 했다가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아 재촬영을 하는 바람에 예산보다 무려 1억 달러가 초과됐다. 전 세계 입장 수입은 6170만 달러에 그쳐 제작비의 절반도 못 건졌다.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당시 평점 5 만점에 1.5을 매기며 "스크린에 돈 많다고 자랑했지만 생각이 적었다. 끝없는 액션과 도륙 장면에서 줄거리만 추출하면 값어치보다 애만 쓴 것이었다"고 적었다.
그러나 일반 대중들에게는 오래 잊혔지만, 이 작품을 숭배하는 컬트 마니아를 키워냈다. 특히 무슬림 영화 팬들은 대형 스크린에 다시 걸리길 손꼽아 기다린다.
할리우드는 오랜 세월에 걸쳐 무슬림과 이슬람 문화를 중독된 것처럼 묘사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오늘날에도 무슬림 주인공에 대한 긍정적이거나 미묘한 묘사의 예를 찾기가 어렵지만 악의적이거나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그럴 듯하다. 무하마드 알리나 말콤 X 같은 중요한 무슬림 인물에 대한 특이한 전기 영화도 있으며 '트레이터'(Traitor, 2008년 돈 치들과 가이 피어스 주연)와 '빅 식'(The Big Sick, 2017년)도 그런 트렌드에 맞선다. 하지만 누구도 '13번째 전사'가 해낸 만큼 자원들을 몽땅 투입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성적은 신통찮았지만 이 작품이 남긴 유산은 복잡하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TV 프로듀서, 캘리포니아대학 리버사이드 캠퍼스 문예창작학과 교수인 레자 아슬란 박사는 "무슬림 정체성을 맨앞에 세우는 영화와 TV 쇼를 만들기 위해 20년을 바친 사람으로서 난 '13번째 전사'가 박스오피스 재앙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할리우드의 몇몇 사람들이 무슬림 주인공을 내세운 영화를 절대 만들지 않겠다고 하지 않을까 걱정한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그 뒤, 거의 즉각적으로, 우리는 9/11 테러를 맞아 할리우드는 무슬림을 무조건 적으로 간주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어떻게 책이 영화로 만들어졌을까
무슬림 주인공을 내세우는 일이 흔한 일이 아니었을 때인데 어떻게 스크린에 걸리게 됐을까? 아슬란은 "크라이튼이 친구와 앵글로 색슨의 초기 문학 작품으로 중요한 '베어울프'의 이점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 현대 독자들을 위해 다시 쓸지 내기를 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며 "우연히 크라이튼은 파들란의 기행문이 바이킹 문화를 우리 같은 외부자들에게 처음으로 소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해서 그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이야기를 쓰기로 마음먹었다"고 소개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 풀러튼 캠퍼스에서 극작을 가르치는 워런 루이스는 이 영화 각색 작업에 참여했는데 이슬람 믿음을 가진 캐릭터가 중심이 될 것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고 돌아봤다. 사실 아메드가 취향있는 인물임을 드러내려고 많은 생각을 기울였다. 이전에는 이런 캐릭터가 스크린에서 우스꽝스럽게 그려지다 그냥 버려지곤 했기 때문에 다르게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왜 많은 무슬림 관객들이 그에게 이끌리는지 알아내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반데라스가 조용하면서도 위엄있는 아메드를 연기했기 때문에 바이킹처럼 물 밖에 나온 물고기 같은 존재가 됐는데 그를 놀림감 삼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적이며 용감한 면모를 부여하고 싶었던 덕분이다. 바이킹들은 그의 말 몸집을 갖고 놀렸지만 그는 얼마나 잘 다룰 수 있는지 보여줘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 바이킹들이 그에게 너무 무거워 들지도 못하는 칼을 줬는데 그는 언월도(scimitar)로 바꿔 쉽게 부린다.
루이스의 말이다. "불쌍하고 혼돈스러운 아메드는 자신이 어떤 환경에 던져졌는지 알지 못한다. 그에게 칼 하나가 던져졌는데 크고 오래 돼 두 손으로도 들 수조차 없었다. 그래놓곤 그에게 더 강하게 자라야 한다고 농담한다. 아메드는 더 똑똑하게 자란다. 대장장이를 찾아내 아름다운 아랍 원월도를 제조하도록 한다. '더 강하게 자라라'는 미 육군의 특정 부대 슬로건으로 유명했다. 견장에도 붙여져 있다. 그 순간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반향을 남겼다."
바이킹 지도자가 학자 아랍인을 문맹인 노스맨과 나란히 놓고 소리를 그릴 수 있는지(글을 쓸 수 있는지) 묻는 장면도 나온다. 그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아메드는 아랍 글자로 "알라 외에 신은 없고 모하메드는 그의 선지자"란 무슬림의 신앙 선언을 적는다. 영화에서 이렇게 교육적으로, 죄악으로 부풀리지 않는 식으로 영화에 나온 것을 보는 것은 신선했다. 루이스는 "그는 남성들 이름이나 다른 어떤 것을 적을 수도 있었는데 그저 마음 속에 있던 것을 적었다"고 말했다.
콜로라도 주립대 영문학과 부교수인 린 셔터스 박사는 "이 글씨를 본 서구 관객들은 아랍 글자와 이슬람이 서구 문화에 반대하는 것으로만 배웠기 때문에 아마도 방향을 잃었을지 모르는데 좋은 방향"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서구를 뒤바꿨는가
아메드를 무슬림 추종자로 그리며 영화는 할리우드가 긍정적인 표현을 목표로 할 때조차도 관철되는, 그는 신앙과 거리를 유지하기 때문이 아니라 신앙 때문에 호의적인 사람이란 또 다른 수사(修辭)를 피한다. 아메드가 빛을 발하는 존재로만 묘사된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유부녀와 불륜을 저질러 바그다드에서 쫓겨났다. 독실한 무슬림이라면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이다. 그의 캐릭터는 초반 결단력 있거나 오만하거나 허튼 인물로 출발하는데 루이스는 "댄디한 구석도 많다"고 표현했다.
루이스의 말이다. "앞선 문명에서 온 남자가 있다. 원죄 때문에 쫓겨난 그는 싸울 자격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이상한 사람들과 맞서고 있다. 거의 우주 영화이거나 그 경계에 놓여 있다. 그러나 아웃사이더로서, 고향에서 가장 존경받지는 않은 누군가로서, (바이킹들과 함께 있는) 방 안에서 문명을 깨친 남자로 그려진다. 그래서 선진 문명에서 온 무슬림이 바이킹족과 어울려 놀고 있는 것이다."
셔터스의 말이다. "아랍 무슬림이 바이킹을 관찰하며 그들의 행동이 얼마나 야만적이며 거친지 보는 것, 그리고 영화 초반을 장식하는 것을 보는 일은 흥미로웠다."
이런 동학은 서구를 깨우치고 우월한 존재로 여기는, 루돌프 발렌티노의 출세작인 '족장'(The Sheik, 1921년)까지 그 연원을 추적할 수 있는데 할리우드의 표준적인 묘사와 그리 동떨어지지 않았다. 아랍 주인공이 자신의 문화에 동떨어진 곳, 서구권 사회에 들어갔다가 더 나은 인물로 바뀌어 귀향하는 것인데 셔터스는 이를 "뒤집힌 서구인"이라고 일컬었다.
결국 아메드와 바이킹은 서로 존경하는 사이로 바뀌며 가슴을 덥히는 결말을 장식힌다. 루이스에 따르면 ' 13번째 전사'는 웨스트 포인트 육군사관학교의 수업 도중 시사될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루이스는 "내가 이 영화를 자랑스러워하는 한 가지는 바이킹들은 그의 믿음에 대해 결코 질문하지 않는 점"이라며 "그들은 냉소적이며 신랄하긴 한데 모든 면에서 바이킹이어서 그냥 그곳에 그와 함께 있었다"고 말했다.
바이킹 캐릭터들을 포용력 있는 인간으로 묘사했기 때문에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이 영화에 시비를 걸기 어렵게 했다. 셔터스는 중세를 가공으로 묘사해야 했기 때문에 주요한 우려 사항이었다고 말했다. 바이킹은 원래 다인종, 다문화적이었는데도 극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화이트워싱하며 역사적으로 부정확한 내용들을 다뤘다고 공격했다.
지금도 지속되는 비평
이 영화를 둘러싸고 제기되는 또 하나의 이슈는 남성의 폭력을 정당화시키는 것 아닌가 하는 점이다. 셔터스는 "아메드를 배운 남자로 긍정적으로 묘사할 때조차. 애초에 실재하는 남자가 아닌데 바이킹 전사 문화에 들어서고 나서야 진짜 남자가 됐다고 추정하는 것이다.
이런 유형의 남성론 뒤에는 판타지가 자리하는데 나쁜 사람들이 있고 나쁜 일이 있기 때문에 그들을 물리치기 위해 군사적으로 막강해져야 한다는 얘기인데 아주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긍정적으로 무슬림을 묘사한 영화가 거의 없기 때문에 진정성을 의심받기도 했다.
아슬란의 말이다. "내가 무척 즐겼던 이 영화에 대한 내 개인적 느낌과 결별할 수가 없다. 오늘날 할리우드에서도 똑같은 현실이 빚어지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 대해 생각하며 25년 전의 렌즈로 돌아가면 스페인 식으로 아랍을 바라봤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비아랍인, 비무슬림이 쓰고 연출하고 제작한 영화다. 만들고 후반 작업을 하는 과정은 완벽하게 어떤 진정성이 결핍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오늘날 이 영화가 만들어졌더라면, 할리우드는 문화적 진정성의 가치를 더 살리는 쪽으로 제작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13번째 전사'는 결코 완벽한 영화가 아니다. 하지만 사반 세기가 흐른 지금 봐도 재미있는 영화다. 빠져들 줄거리, 대단한 세트와 의상, 강렬한 액션 시퀀스를 갖췄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 잔인한 평단의 컨센서스를 얻기가 얼마나 힘들었던가?
아슬란은 "'캐러비언의 해적'이 '13번째 전사'가 될 수 있었던 좋은 예"라며 "할리우드가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모든 연령대와 인구 분포를 만족시키는 '사 방면'(four quadrant)를 갖춘 비슷한 모험물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나아가 "오늘날 '13번째 전사'를 만든다면, 발전시킬 모델이 있었기 때문에 한결 성공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루이스는 "내가 '13번째 전사' 작업에 참여한 것이 정말 자랑스럽다"면서 "비평가들이 어떻게 나올지 추정하는 일이 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예상하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이것은 공상과학물이 아니었다. 서부극도 아니었다. 호러 영화도 아니었다. 지금껏 다 그랬다. 해서 아마도 그들은, 할리우드에서는 그런 식으로 말하는데, 깃털 달린 물고기였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