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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대왕 천장 만사〔孝宗大王遷葬挽〕 서하 이민서 선조 지음
서하집 제5권 / 오언배율(五言排律)
하늘이 대성을 낳으시어 / 自天生大聖
중흥기 빛나게 여셨으니 / 光啓中興期
달효에 신명이 감격하고 / 達孝神明感
총명함은 선왕을 이으셨도다 / 亶聰古后追
탕에게 내려 준 용기와 지혜 겸하였고 / 錫湯兼勇智
순이 전수한 위미를 전해 받으셨도다 / 傳舜授微危
성대한 덕은 긴 하수를 터놓은 듯하고 / 盛德長河決
웅대한 재주는 이역에서도 알았도다 / 雄材異俗知
오랑캐 땅에서 고초 겪으며 / 艱難戎馬地
패왕의 자질로 오랫동안 근심하셨지 / 淹卹伯王資
초나라 구슬이 신명을 당하여 / 楚璧當神命
와신상담하여 쇠약한 운수 일으켜 세우셨도다 / 吳薪拔運衰
물 가득 찬 그릇 받들듯 경외심 갖고 / 捧盈存敬畏
먹는 것도 잊은 채 외로운 백성 구휼하셨네 / 忘食卹惸嫠
지극한 이치 비로소 더욱 엄밀해지고 / 至理初更瑟
큰 계책 위해 자주 경연 여셨도다 / 鴻猷屢闢帷
몸소 검소하게 하여 궁중의 본보기 되고 / 刑家躬儉節
안색 화락하게 하여 문안하셨도다 / 問寢色愉怡
문덕으로 잘 지켰을 뿐만 아니라 / 不獨文能守
바야흐로 큰일을 하려 하셨도다 / 方將大有爲
간정이 못과 숲에 모두 이르고 / 干旌窮澤藪
목마가 섬돌에 있었도다 / 木馬在階墀
해묵은 병폐 모두 척결하니 / 宿蠹消除盡
만방의 품서가 마땅해졌도다 / 群方品敍宜
맞아 등용함에 사람들이 허물할 게 없고 / 延登人莫間
주밀함은 세상에서 엿보기 어려웠도다 / 密勿世難窺
약세에 주나라의 폐단 징계하고 / 弱勢懲周弊
큰 규모는 한나라의 비속함을 하찮게 여기셨네 / 宏規陋漢卑
새로운 기상을 널리 펴고 / 恢張新氣象
옛 기강을 정돈하셨네 / 整頓舊綱維
시옹의 교화 바라면서 / 佇望時雍化
오히려 일모의 슬픔 품으셨도다 / 猶懷日暮悲
위대하여라 모훈과 공열 드러남이여 / 巍巍謨烈顯
혁혁하여라 덕망 드리우셨도다 / 赫赫德譽垂
유명을 슬퍼한들 어찌하리 / 末命嗟何及
하늘은 어찌 차마 이러신단 말인가 / 蒼穹豈忍斯
주선한 일 세월이 필요하건만 / 斡旋將歲月
승하하시어 천수를 누리지 못하셨도다 / 殂落不期頤
십 년 동안 오궁을 애통해하였는데 / 十載烏弓痛
오늘 아침 옥갑을 옮겼나이다 / 今朝玉匣移
땅이 영험하여 응당 기다린 듯하니 / 地靈應有待
하늘의 뜻 미루어 알 수 있나이다 / 天意此堪推
조상에 가까우니 신도 편리하고 / 近祖便神道
선왕 모시어 효성스러움 위로되시리라 / 寧親慰孝思
구중궁궐에 사모하는 마음 새로우니 / 九重新孺慕
만세토록 유택이 편안하시리라 / 萬歲妥幽基
죽지 않은 외로운 신하 한스러워 / 未死孤臣恨
차마 만사를 지어 올리나이다 / 忍題相紼詞
[주-D001] 효종대왕(孝宗大王) 천장(遷葬) 만사 : 효종의 능은 영릉(寧陵)으로, 동구릉(東九陵)의 건원릉(健元陵) 서쪽에 있었으나, 석물에 틈이 생겨 봉분 안으로 빗물이 샐 염려가 있다 하여 1673년(현종14) 세종의 무덤인 영릉(英陵) 동쪽으로 능을 옮겼다.
[주-D002] 달효(達孝)에 신명이 감격하고 : 달효는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인정하는 효를 뜻하니, 효종의 효성을 칭송한 말이다. 《국역 효종실록》 부록(附錄)의 〈효종 선문장무신성현인 대왕 행장(孝宗宣文章武神聖顯仁大王行狀)〉에 “철 따라 나는 과일을 처음 보면 먼저 반드시 양전(兩殿)께 바친 뒤에야 맛보았으므로 양전이 항상 ‘우리 집의 효자(孝子)이다.’ 하였다. 매일 새벽이면 번번이 먼저 일어나 양전을 문안하고 좌우에서 모셨다.” 하여 효종의 효성을 일컬었다
.[주-D003] 총명함은 선왕을 이으셨도다 : 원문의 ‘단총(亶聰)’은 천자의 총명함을 가리킨다. 《서경》 〈태서(泰誓)〉에 “천지는 만물의 부모이고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니, 진실로 총명한 이가 임금이 되고 임금은 백성의 부모가 된다.[惟天地萬物父母, 惟人萬物之靈, 亶聰明作元后, 元后作民父母.]” 하였다. 여기에서는 효종이 인조의 총명함을 잘 이었음을 말한다.
[주-D004] 탕(湯)에게 …… 겸하였고 : 《서경》 〈중훼지고(仲虺之誥)〉에 “유하(有夏)가 덕에 어두워서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거늘 하늘이 마침내 왕에게 용맹과 지혜를 내려 주시어 만방을 표정(表正)하여 우왕이 옛날 행하셨던 것을 잇게 하셨다.[有夏昏德, 民墜塗炭, 天乃錫王勇智, 表正萬邦, 纘禹舊服.]” 하였다.
[주-D005] 순(舜)이 …… 받으셨도다 : 《서경》 〈대우모(大禹謨)〉에 순 임금이 우(禹) 임금에게 선위(禪位)할 때 이르기를 “인심은 오직 위태롭고 도심은 오직 은미하니, 정밀하고 전일하게 하여 진실로 그 중도를 잡으라.[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 하였으니, 선왕의 도통을 잘 전수받았음을 말한다.
[주-D006] 웅대한 …… 알았도다 : 효종이 봉림대군(鳳林大君) 시절 심양(瀋陽)에 있을 적에 관상을 보는 사람이 효종을 보고는 은밀히 말하기를 “참으로 임금 노릇할 사람이다.” 하였는데, 소현세자(昭顯世子)가 본국에 돌아와 병으로 별세한 뒤 실제로 왕위에 오르게 된 일을 가리킨다. 《국역 효종실록 부록 효종 선문장무신성현인 대왕 행장》
[주-D007] 패왕의 …… 근심하셨지 : 1637년(인조15) 2월에 소현세자와 함께 볼모로 심양에 갔다가, 1645년에 소현세자가 별세한 뒤 8년 만에 조선으로 돌아와 세자로 책봉되었는데, 심양에 있는 동안 마음고생을 많이 하였음을 말한다. 《국역 효종실록 부록 효종 선문장무신성현인 대왕 행장》
[주-D008] 초(楚)나라 …… 당하여 : 초나라 구슬은 화씨벽(和氏璧)을 가리킨다. 초나라 변화(卞和)가 형산(荊山)에서 보옥(寶玉)이 들어 있는 박옥(樸玉)을 찾아내어 초나라 여왕(厲王)에게 바쳤으나, 옥이 아니고 돌이라는 옥공(玉工)들의 감정(鑑定) 때문에 죄를 받아 왼쪽 발이 잘렸다. 여왕이 죽은 후 다시 무왕(武王)에게 바쳤으나 같은 이유로 오른쪽 발이 잘렸다. 그 후 문왕(文王)이 즉위하자 화씨는 형산 아래에서 박옥을 안고 사흘 밤낮을 울어 피눈물이 흘렀다. 문왕이 이 말을 듣고 사람을 보내 “천하에 발이 잘린 사람이 많은데 그대만이 유독 이렇게 우는 것은 어째서인가?” 하고 묻자, 그가 대답하기를 “나는 발이 잘린 것을 슬퍼하는 게 아니라 보배로운 옥을 돌이라 하고 곧은 선비를 미치광이라 하니, 이 때문에 슬피 우는 것입니다.” 하였다. 이에 왕이 옥공을 시켜 박옥을 다듬게 하니, 직경이 한 자나 되고 티 한 점 없는 큰 옥이 나왔다 한다. 《韓非子 卷4 和氏》 여기에서는 화씨의 옥이 문왕과 같은 임금을 만나 천하의 보배가 되었듯이, 효종과 같은 훌륭한 임금이 나왔음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9] 와신상담하여 …… 세우셨도다 : 효종이 청나라에 볼모로 있으면서 와신상담(臥薪嘗膽)하며 복수설치(復讎雪恥)하여 나라를 일신하려 한 일을 가리킨다. 춘추 시대 오왕(吳王) 합려(闔廬)가 월왕(越王) 구천(句踐)에게 패하여 부상을 입고 죽자, 합려의 아들 부차(夫差)가 3년 안에 복수하기를 다짐하고 군대를 정비하여 월나라를 대파하여 멸망 직전까지 갔던 일을 말한다. 《史記 卷31 吳太伯世家》 ‘오왕 부차가 복수를 다짐하며 섶에 누워 잤다[臥薪]’는 말은 《사기》에는 보이지 않고, 소식(蘇軾)의 〈손권(孫權)이 조조(曹操)에 답하는 편지를 의작하다[擬孫權答曹操書]〉에 “제가 유지를 받든 이후로 섶에 누워 자고 쓸개를 맛보며 세월이 더욱 흘러감을 슬퍼하고 공명을 세우지 못함을 탄식하였습니다.[僕受遺以來, 臥薪嘗膽, 悼日月之逾邁, 而嘆功名之不立.]” 한 뒤로, 복수를 다짐하는 뜻을 표현하는 전거로 쓰였다. 《東坡全集 卷100 擬孫權答曹操書》
[주-D010] 물 가득 …… 받들듯 : 《예기》 〈제의(祭義)〉에 “효자(孝子)는 마치 옥을 손에 쥔 것처럼, 물이 가득 찬 그릇을 받드는 것처럼 하여 조심조심 경건하게 감당할 수 없는 것처럼 하고 잘못되면 어찌할까 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孝子如執玉、如奉盈, 洞洞屬屬然如弗勝, 如將失之.]” 하였다.
[주-D011] 자주 경연 여셨도다 : 효종은 학문을 좋아하여 6월의 무더위에도 하루 세 차례의 경연을 열 정도로 열성적이었으며, 추위에 몸이 상할까 신하들이 걱정하는 데도 경연을 그만두지 않았다. 《국역 효종실록 부록 효종 선문장무신성현인 대왕 행장》
[주-D012] 간정(干旌)이 …… 이르고 : 간정은 깃털을 쪼개서 깃대 끝에 댄 것으로, 현달하고 귀한 사람의 행차를 가리키니, 귀한 사람이 현자를 찾아감을 표현한 말이다. 《시경》 〈간모(干旄)〉에 “펄럭이는 간정이여 준읍(浚邑)의 성(城)에 있도다. 흰 실로 짜서 매달고 좋은 말 여섯 필을 멍에 하니, 저 아름다운 그대는 무엇을 말해 주려는고?[孑孑干旌, 在浚之城. 彼姝者子, 何以告之?]” 한 데서 유래하였다. 여기에서는 효종이 사방에서 어진 인재를 구함을 말한다.
[주-D013] 목마(木馬)가 섬돌에 있었도다 : 송나라 효종(孝宗)이 금(金)나라를 치려는 뜻을 다지기 위해, 앞뜰에 목마를 세워 말타기와 활쏘기를 익히고, 철장(鐵杖)으로 힘을 단련한 고사가 전하는데, 여기에서는 조선의 효종이 청(淸)나라를 정벌할 뜻을 다지기 위해 내사복시(內司僕寺)에 사정(射亭)을 만들었던 일을 가리킨다.
[주-D014] 약세에 …… 징계하고 : 주(周)나라의 폐단은 문(文)을 지나치게 숭상함으로써 생긴 폐단을 가리킨다. 효종이 청나라에 당한 치욕을 씻기 위해 즉위한 후 어영군(御營軍)과 금군(禁軍)을 정비하고, 관무재(觀武才)를 다시 실시하였으며, 지방에 영장(營將)을 복설하는 등 군비 증강을 위해 힘쓴 일을 가리킨다. 《이희환, 효종대의 정국과 북벌론, 전북사학 제42호, 2013, 212~213쪽》
[주-D015] 큰 규모는 …… 여기셨네 : 효종의 규모가 커서 왕도(王道)를 숭상하고 패도(覇道)를 비루하게 여겼음을 말한다. 이일상(李一相)이 지은 효종의 애책문(哀冊文)에 “주나라와 하(夏)나라의 왕도를 따르고, 한(漢)나라와 당(唐)나라의 패도를 비루하게 여겼다.” 하였다. 《국역 효종실록 부록 효종대왕 애책문》
[주-D016] 시옹(時雍)의 교화 : 임금이 덕정을 펴서 백성들이 교화됨을 말한다. 《서경》 〈요전(堯典)〉의 “능히 높은 덕을 밝혀 구족(九族)을 친하게 하시니 구족이 친하고, 백성을 고루 밝히시니 백성이 덕을 밝히며, 만방을 화목하게 하시니 여민이 아, 변하여 온화하게 되었다.[克明俊德, 以親九族, 九族旣睦, 平章百姓, 百姓昭明, 協和萬邦, 黎民於變時雍.]” 하였다.[주-D017] 일모(日暮)의 슬픔 품으셨도다 : 효종이 평소 뜻을 견지함이 너무 예리하고 때때로 극심한 분노를 드러내어 감정을 절제하지 않는 등의 행동을 보이자, 이경여(李敬輿)가 차자를 올려 우려를 표하며 덕을 권하였는데, 효종의 비답에 “기욕(嗜慾)을 끊고 밤낮으로 몸 달아 하면서 조그마한 효과라도 보고자 하는 것이 말단적인 일임을 모르지는 않지만, 진실로 지극한 애통함이 마음속에 서려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日暮途遠]’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한 일이 있다. 《국역 효종실록 8년 5월 5일》
[주-D018] 위대하여라 …… 드러남이여 : 《서경》 〈군아(君牙)〉에 “크게 나타났도다, 문왕의 모훈(謀訓)이여! 크게 계승하였도다, 무왕의 공렬이여![非顯哉, 文王謨! 非承哉, 武王烈!]” 하였다.
[주-D019] 유명(遺命) : 원문의 ‘말명(末命)’은 제왕이 임종할 때에 남긴 유명이다. 《서경》 〈고명(顧命)〉에 “위대한 군주께서 옥궤에 기대어 유명을 말씀하셔서 너에게 명하여 가르침을 잇게 하셨다.[皇后憑玉几, 道揚末命, 命汝嗣訓.]” 하였다.
[주-D020] 천수를 누리지 못하셨도다 : 원문의 ‘기이(期頤)’는 백 세의 나이를 가리킨다. 《예기》 〈곡례 상(曲禮上)〉에 “백 세를 기(期)라고 하니, 잘 봉양해야 한다.[百年曰期, 頤.]” 하였다. 효종이 1659년(효종10) 5월 4일에 41세의 비교적 이른 나이에 승하한 일을 가리킨다. 《국역 효종실록 10년 5월 4일》
[주-D021] 오궁(烏弓)을 애통해하였는데 : 오궁은 오호궁(烏號弓)으로, 임금의 승하를 말한다. 황제(黃帝)가 승천할 적에 여러 신하와 후궁들이 따르는 자가 70여 명이었는데, 용이 승천하자 여기에 오르지 못한 나머지 소신(小臣)이 모두 용의 수염을 잡으니, 용의 수염이 뽑혀 모두 떨어지고, 황제의 활도 같이 떨어졌다. 백성들이 이미 승천한 황제를 우러르고, 그 활과 수염을 안고 통곡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후대에 그 활을 ‘오호궁’이라 불렀다고 한다. 《史記 卷28 封禪書》
[주-D022] 옥갑(玉匣) : 한(漢)나라 때 제왕(帝王), 후비(后妃) 및 귀족의 장례에 사용했던 염복(殮服)이다.
[주-D023] 조상에 가까우니 : 세종의 무덤인 영릉(英陵) 동쪽으로 능을 옮긴 일을 가리킨다.
[주-D024] 사모하는 마음 : 원문의 ‘유모(孺慕)’는 어린아이가 부모의 죽음을 슬퍼하듯 깊이 사모함을 말한다. 《예기》 〈단궁 하(檀弓下)〉에 유약(有若)이 자유(子游)와 함께 어린애처럼 사모하는 자를 보고 자유에게 말하기를 “나는 상중에 발을 구르는 의미를 전혀 몰라서 없애고자 한 지가 오래였는데, 슬퍼하는 정이 이 발 구르는 데에 있음을 이제야 알겠다.”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효종대왕 천장 만사〔孝宗大王遷葬挽〕 서하 이민서 선조 지음
ⓒ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ㆍ한국고전문화연구원 | 장성덕 전형윤 이주형 (공역) | 2018
孝宗大王遷葬挽
自天生大聖。光啓中興期。達孝神明感。亶聰古后追。錫湯兼勇智。傳舜授微危。盛德長河決。雄材異俗知。艱難戎馬地。淹恤伯王資。楚璧當神命。吳薪拔運衰。捧盈存敬畏。忘食恤惸嫠。至理初更瑟。鴻猷屢闢帷。刑家躬儉節。問寢色愉怡。不獨文能守。方將大有爲。干旌窮澤藪。木馬在階墀。宿蠹消除盡。群方品敍宜。延登人莫間。密勿世難窺。弱勢懲周弊。宏規陋漢卑。恢張新氣象。整頓舊綱維。佇望時雍化。猶懷日暮悲。巍巍謨烈顯。赫赫德譽垂。末命嗟何及。蒼穹豈忍斯。斡旋將歲月。殂落不期頤。十載烏弓痛。今朝玉匣移。地靈應有待。天意此堪推。近祖便神道。寧親慰孝思。九重新孺慕。萬歲妥幽基。未死孤臣恨。忍題相紼詞。
효종대왕 천장 만사〔孝宗大王遷葬挽〕 서하 이민서 선조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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