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 場 春 夢
一:한 일 場:마당 장 春:봄 춘 夢:꿈 몽 (한바탕 봄날의 꿈 / 부귀영화가 덧없이 사라짐) 소동파(蘇東坡)는 송나라 최고의 문장가다. “독서가 만 권에 달해도 율(律·왕안석의 신법을 지칭)은 읽지 않는다”고 해 초유의 필화사건을 일으킨 타고난 자유인이다. 그의 적벽부(赤壁賦)는 중국 문학 불후의 명작이다. 자신은 문장의 최고봉이면서 “인생은 글자를 알 때부터 우환이 시작된다(人生識字憂患始)”는 그의 말 또한 아이러니다. 하기야 그 스스로가 문자로 인해 큰 우환을 겪었으니 ‘식자우환(識字憂患)’이 틀린 말은 아니다. 소동파가 해남 창화 유배지 생활 하던 중 큰 표주박 하나 메고 콧노래 부르며 산책을 하다 70대 노파를 만났다. 노파는 소동파의 초췌한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다. 문장으로 당대 천하를 놀라게 한 그가 초라한 몰골로 시골길을 걷는 것을 보면서 인생무상이 느껴졌다. 노파가 말했다. “지난날의 부귀영화는 그저 한바탕 꿈에 지나지 않는구려(一場春夢)!” 소동파가 태연히 말을 받았다. “맞습니다. 참으로 맞습니다.” 북송의 조령치가 지은 후청록(侯鯖錄)에 전해오는 이야기다.
일장춘몽(一場春夢)은 여름이 오기 전에 사그라지는 ‘한바탕의 봄 꿈’이다. 덧없이 왔다 덧없이 가는 봄 한철의 아지랑이 같은 꿈이다. 당나라 한단에서 노씨 성을 가진 서생이 도사 여옹의 베개를 빌려 잠깐 눈을 붙인 사이에 부귀영화 꿈을 꾸었다는 한단지몽(邯鄲之夢), 노생지몽(盧生之夢)도 뜻이 같다. 부귀영화라는 게 부질없고 덧없는 것이니 애타게 매달리지 말라는 거다. 허무주의자는 모든 게 덧없다고 생각하고 . 비관주의자는 안 될 거라고 염려하고, 낙관주의자는 잘될 거라 믿는다. 세상은 믿음대로, 생각대로 펼쳐지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삶의 걸음은 믿음의 방향, 생각의 방향으로 펼쳐진다. 삶을 일장춘몽으로 생각하면 당신의 꿈은 여름까지도 가지 못한다. 일장춘몽을 ‘한바탕 꿈’이 아닌 ‘인생의 꿈’으로 바꿔봐라. 그럼 그 꿈은 끝이 아닌 시작이 되고, 속이 영근 꿈이 된다. 꿈이 어디 봄뿐인가, 뜨거운 여름의 꿈, 익어가는 가을의 꿈도 있는 게 인생 아닌가.
덧없다 말고, 감사하다 하자. 지나 왔다 말고, 갈 길이 남았다고 하자. 춘몽에서 깨면 다시 가을을 꿈꾸자.
출처 : 후청록(侯鯖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