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하더라도 이 험악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크고 작은 죄악들을 적지 아니 범하게 되곤 하고, 그로 인해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들 등과 같은 징계들에 종종 빠지게 되곤 하는데..
그때는 결코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는 것이기에 최대한 빨리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하늘의 힘과 은혜를 덧입어 자복하고 돌이키며 다시 한 번 어떤 모양으로든 말씀의 자리를 사모하고 찾으며 결단하고 몸부림칠 수 있어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죄악들로 인한 시련과 곤고들보다는 상대적으로 많이 적은 경우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나 어쨌든 꼭 그렇게 죄악들로 인한 것이 아닌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섭리 가운데에서의 고난들, 곧 의로운 시련과 환란들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꽤 있을 수 있는 것인데..
그때는 반드시 그 순간순간이 하나님의 선하시고 공의로우신 손길 안에 있고, 머잖아 그 이상의, 진정 그 시련과 고난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은혜와 복과 영광들이 예비되어 있는 것이며, 무엇보다 하나님 안에서의 더욱 더 귀한 쓰임과 계획들을 위해 깊이 훈련되고 단련되며 연단될 수 있는 시간인 것이기에 결코 낙심하거나 좌절하기보다는 오히려 더욱 소망을 가지며 감사하고 찬미하면서 용기를 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고, 무엇보다 그때에도, 아니 그때에야 말로 내 힘과 세상적 능으로 되는 것이 아닌 것이 분명하기에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더 붙잡고 그 이름으로 간구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하늘의 힘과 은혜를 덧입어 죄악과 세속과 유혹들 등과 싸우면서 주야로 더욱 말씀을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도 나아가고 또 나아감과 함께 더더욱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의 생생하심과 충만하심들,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과 풍성하심들을 갈망하고 간구하며 그 속에 거하고 누리면서 모든 어려움과 버거움들을 감당하며 맞서고 이겨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뭔가 잘 되고 풍족하며 아무 문제도 없고 은사들이 임하며 형통한 것으로 보일 때 생각보다는 큰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으로 그러한 때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도 악한 세력들이 우는 사자들과 같이 삼킬 자들을 찾는 이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은 채 살아가고 있는 한 점점 안일해 지고 나태해지며 미지근해지고 자만하게 되며, 특히 하나님보다는 자신의 힘과 의, 세상적 능력과 방법들에 자신도 모르게 젖어들게 되곤 하고, 심지어는 크고 작은 죄악과 세속과 정욕들에 빠지곤 하는 것일 뿐 아니라 참으로 있을 수 없는 죄악들까지도 범하게 되면서 마치 병들고 죽은듯한 신앙이 됨과 함께 하나님의 시간까지, 때로는 그러한 죄악들의 모양과 정도와 강도에 따라, 또한 하나님의 시간과 계획과 섭리에 따라, 그리고 그 당사자의 영성과 분량과 준비 등에 따라 꽤 오랜 시간을 심각한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 등과 같은 징계들에 허덕이게 되고 마치 광야 40년과 같이 방황케 되는 경우들도 얼마든지 있곤 하는 것을 여러 모양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다른 그 누구보다 사실 가장 대단한 믿음의 선배라 할 수 있는 다윗이 그러했는데 심지어는 간음 및 살인 교사와 유사하다 할 수 있는 죄악과 같은, 실상 초신자들이나 믿지 않는 자들도 범해서는 안 되는 정말 있을 수 없는 죄악들까지 범한 것과 함께 사무엘하 12장 9~11절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여호와께서 또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라고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증거케 해 주신 것에서도 잘 알 수 있는 것이듯이 실제로 사무엘하 12장부터 보면 20장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 동안 다윗에 있어 그의 온 몸에 진액이 빠져 여름 가뭄과 같이 되는 듯이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들로 가득하게 된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고..
뿐만 아니라 정말 대단한 믿음의 선배인 솔로몬 또한 노년에 우상 숭배와 같은 있을 수 없는 죄악들을 범함과 함께 결코 작을 수 없는 징계들이 넘쳤던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며, 더 나아가 구주 예수님을 3년간 따라 다니면서 가장 가까이에서 직접적으로 예수님의 복음 말씀을 들었고 구원의 일들을 생생하게 보고 경험했으며 특별 훈련을 받았다고 볼 수 있는 수제자 베드로까지도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의 가장 결정적이고 절대적인 상황에서 오히려 세 번이나, 그것도 마지막에는 저주하고 맹세까지 하며 부인했던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모든 현실과 실제들 속에서 아무리 대단해 보이고 말로 표현 못할 은혜들을 경험했으며 그 누구보다 위대한 사역들에 쓰였고 다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의 열매들이 넘쳤던 사도 바울에 있어서도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있는 인간인 이상 결코 별개이거나 예외일 수 없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셨고, 그 고통으로 인해 바울이 하나님 아버지께 세 번이나 간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라고 말씀하시면서 바울이 기도한 그대로 들어 주시는 대신 바울이 전혀 예상치 못했고 처음에는 결코 원치 않았던 방향으로 응답하시며, 그때 그렇게 그 자신이 구한 내용들과 응답이 완전히 달랐고, 여전히 고통스러운 육체의 가시를 계속해서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된 상황이었던 것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바울이 도리어 크게 기뻐했으며, 심지어 약한 것들로 인해 자랑하게 되었고, 게다가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이유들도 모두 다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며, 잘 통찰해 보면 다 마찬가지의 이치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좀 더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말하면 바울은 자신의 약함과 시련들로 인해 자만하게 되거나 죄악들의 유혹에 빠지거나 안일해 지게 되는 대신 그 약함과 고통들 때문에 순간순간마다 더욱 더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고, 그것이야 말로 은혜이자 강함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인데..
다시 말해 바울은 그 약함과 시련들로 인해 하늘의 힘과 은혜가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임을 분명히 체감했고 그러한 현실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며 그러면서 오직 믿음으로 헤쳐 나가지 않으면 도저히 안 되는 실상이었기에 더욱 더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를 덧입어 더욱 더 죄악들과 싸우며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다른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더욱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로 나아가고 또 나아갔다고 볼 수 있는 것으로 그와 함께 가면 갈수록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생생하고 충만하게 될 수 있었던 것이고,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특히 온갖 은혜와 은사와 응답들, 치유와 기적과 승리들, 복과 열매와 부흥들 등이 그와 그의 온 지경에, 그가 가는 곳들마다, 기도하는 제목들마다, 심지어는 대략 200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들에 이르기까지, 더 나아가 따지고 보면 땅 끝까지, 더 나아가 바울 서신들과 같이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그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세상 끝 날에 이르기까지 차고 넘치게 된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고린도후서12:7~10)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3년 11월 15일(수)1/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