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다물고, 귀를 기울이라'
/ 법정 스님
나무그늘 아래 앉아 산마루를 바라보고 있으면,
내 속 뜰에서 맑은 수액(樹液)이 흐르고
향기로운 꽃이 피어난다.
혼자서 묵묵히 숲을 내다보고 있을 때
내 자신도 한 그루 정정한 나무가 된다.
아무 생각 없이
빈 마음으로 자연을 대하고 있으면,
그저 넉넉하고 충만할 뿐 결코 무료하지 않다.
이런 시간에 나는 무엇엔가
그지없이 감사드리고 싶어진다.
하루 스물네 시간 중에서 잔잔한
이런 여백이 없다면 내 삶은
탄력을 잃고 이내 시들해지고 말 것이다.
자신이 쏟아 놓은 말은
누군가가 가까이서 듣고 있는 줄을 안다면
그렇게 되뇌거나 마구 쏟아놓을 수 있을까?
그러나 명심하라.
누군가 반드시 듣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무심코 하는 말이건 뜻을 담은 말이건 간에
듣는 귀가 바로 곁에 있다.
그걸 신이라고 이름 붙일 수도 있고,
영혼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불성(佛性)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은
곧 그 사람의 속뜰을 열어 보임이다.
그의 말을 통해 겹겹으로 닫힌
그의 내면세계를 알 수 있다.
모처럼 꽃이 피어나고 새잎이 돋아나는
싱그러운 신록의 숲에 와서,
아무 생각 없이 빈 마음으로
입 다물고 귀를 기울이면서 가만히 있기만 해도
충만할 텐데, 사람들은 그럴 줄을 모른다.
일상에 때묻고 닳은 자신을
그 어느 때 그 무엇으로 회복할 수 있겠는가.
입 다물고 귀기울이는 습관을 익히라.
말이 많고 생각이 많으면
중심으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말과 생각이 끊어진데서
새로운 삶이 열린다는 사실을 명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