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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에는 붉은 와인을, 다른 손에는 기다란 바게트를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된 빵은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빵의 천국' 프랑스에서도 전통방식이 아닌 슈퍼마켓이나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대량생산된 빵이 식탁을 채우고 있다. 이른바 '전통 빵의 수난시대'다. |
이집트에서 시작된 빵의 불꽃은 유럽각지로 퍼져나갔다. 유럽인들에게 빵과 치즈, 와인은 음식의 삼위일체로 인식되었고 그 중 빵은 삶의 일부이자 문화가 되었다. 빵의 천국이자 빵의 모든 기술들이 꽃핀 빵의 나라들. 하지만 그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더이상 빵이 숭배의 대상이 아닌 섭취해야할 연료쯤으로 그 지위가 격하된 것 같다. 대부분의 도시인들은 슈퍼마켓에 진열된 봉지 식빵을 사거나 대형마트에 입점한 베이커리에서 빵을 구입한다. 이러한 베이커리들은 매장에서 빵을 굽긴 하지만 직접 반죽을 하는 것이 아니라 냉동 생지를 대량으로 들여와 오븐에 굽기 때문에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든 빵에 비해 품질이 떨어진다. ‘밥심’으로 산다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갓 지은 고슬고슬한 밥 대신 인스턴트 밥을 소비하는 것처럼, 빵 없는 식탁은 생각할 수도 없다는 유럽인들도 편리함을 위해 건강과 미각을 포기하고 있다. 동서양을 망라하고 거칠지만 깊은 풍미를 자아내는 전통의 맛보다 부드럽고 즉각적인 단맛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이다.
내 입맛도 다르지 않았다. 빵은 촉촉하고 달콤한 디저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요리학교를 다니며 나는 전통 방식으로 구운 프랑스 빵을 자주 먹게 되었다. 나무껍질처럼 겉면이 딱딱하고 거친 빵을 한 입 베어 물면 뭔가 싱거운 것 같으면서도 짭짤한 맛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무엇보다 특유의 향이 깊어서인지 먹으면 먹을수록 새로운 맛이 느껴지고 질리지 않는다. 빵맛의 신세계가 열린 것이다. 그렇게 프랑스 빵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유럽의 ‘빵 대국’이라고 불릴 만큼 오늘날 빵으로 가장 인정받는 나라, 한 손에는 기다란 바게트, 다른 한 손에는 붉은 와인을 들고 있는 모습이 하나의 클리셰가 되어 빵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프랑스인들의 그 대단한 빵 이야기가 궁금했다.
아니나 다를까,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다른 나라들보다 골목 어귀에 자리잡은 작은 베이커리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이른 아침과 퇴근 무렵의 저녁 시간이 되면 작은 빵집 앞은 어김없이 길게 줄을 선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이러한 빵집들은 대개 전통 방식으로 발효빵을 만드는 ‘아티잔 베이커리artisan bakery’, 바로 장인들의 빵집이다. 갓 구운 바게트를 품에 안고 나오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프랑스가 왜 아직까지도 빵의 종국으로 불리고 있는지 알 것도 같았다. 인스턴트 빵의 공습 속에서도 좋은 빵의 맛과 그 가치를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골목골목에 스며든 빵의 향을 음미하며 나는 서둘러 발길을 돌렸다. 프랑스 빵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알려진 빵 전문가를 만나기 위해서이다. 미국인이지만 프랑스 빵의 매력에 흠뻑 빠져 아예 프랑스에 눌러앉았다는 특별한 노장의 요리인류, 스티브 로렌스 카플란Steven Laurence Kaplan이다.
카플란은 프랑스인들조차도 인정한 최고의 빵 권위자이자 『굿 브레드 이즈 백good bread is back』의 저자이기도 하다. 직역하자면 ‘좋은 빵이 돌아왔다’ 라는 뜻인데 과연, 프랑스 최고의 빵 박사가 꼽은 좋은 빵이란 무엇일까? 그의 집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이 60대 남자가 얼마나 빵에 미쳐 있는 사람인지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서부의 카우보이에게 허리춤에 찬 권총이 필수이듯 그의 품에는 무시무시하게 큰 빵칼이 함께하고 있었다. 사냥용 나이프처럼 접이식으로 된 칼을 그는 늘 휴대하고 다닌다고 했다. 흉기처럼 보이는 그 칼을 들고 다니며 언제 어디서나 빵을 잘라먹을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한 번은 관공서에서 볼 일을 보고 있는 그의 품에 꽂힌 칼을 본 사람이 경찰에 신고를 하는 통에 수갑까지 차고 경찰서에 붙잡혀 가기도 했단다. 세계 어디를 가도 무언가에 제대로 꽂힌 사람들은 세상의 시선 따위는 상관하지 않는 것 같다. 날카롭게 펼쳐진 빵칼을 다시 접어 품안에 넣는 카플란을 향해 나는 얘기했다.
“오늘날 프랑스 빵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프랑스 빵을 향한 예찬론이 이어질 거라는 예상과 달리 카플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과거와 확연하게 달라진 점은 소비 패턴입니다. 평균적으로 현재 프랑스에서 한 사람이 하루에 소비하는 빵의 양은 120그램입니다. 반면 1900년에는 650~670그램의 빵을 먹었습니다. 1850년에는 900그램 정도, 18세기에도 900그램 정도 먹었습니다. 20세기 들어 빵 소비량이 놀랄 만큼 줄어든 것이죠. 이것은 곡물, 밀가루, 빵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습니다. 제빵사의 수와 제분소가 급격히 줄었습니다. 과거, 프랑스 사람들이 굉장히 가난해서 대부분의 칼로리를 큰 빵 덩어리에서 얻어야 했는데 반해 19세기 말, 고기와 신선한 음식, 야채가 넉넉해지면서 빵 소비량이 줄어든 것이죠.”
카플란은 프랑스 빵 역시 다른 서구 국가들처럼 공장 빵과 대량생산된 빵으로 소비가 줄어들었고, 빵의 질도 떨어졌다고 덧붙였다. 좋은 빵을 만드는 ‘아티잔 베이커리artisan Bakery’들이 문을 닫으면서 프랑스도 전통 빵의 수난시대를 맞고 있는 것이다.
“빵을 만드는 데 있어서 굉장한 변화가 있었지요. 천연 효모가 들어간 빵, 주로 미국에서는 사워도우라고 부르고 프랑스에서는 르방 혹은 효모로 만든 빵이 전통적인 방식인데요. 천연 효모로 빵을 구우면 24시간동안 네 번은 리프레시 해야 합니다. 이것은 굉장히 힘들고 삶의 제약을 가져오는 방식이죠. 제빵사는 밤새도록 일을 해야 하니까요. 치명적인 업무량입니다. 18세기 제빵사, 그중에서도 빵을 만들던 견습생들은 오븐 위에 있는 작은 매트리스에서 쪽잠을 자며 3시간마다 일어나서 천연 효모를 새롭게 해야 했어요. 결국 도시화, 산업화되면서 제빵사가 나쁜 직업이라는 것이 확실해졌습니다.”
그렇게 혹독한 노동을 요하는 천연 효모의 자리는 이제 단시간에 놀라운 능력을 선보이는 이스트가 꿰차게 되었다. 덕분에 빵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졌고 제빵 장인들 스스로도 기계화에 앞장섰다. 전통적인 방법 대신 자동으로 작동하는 오븐을 샀고, 가스를 빼고 품질을 보장해주는 기계를 도입했다. 결국 그들은 보통 품질밖에 되지 않는 하얀 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본래의 방식으로 제대로 된 빵을 만드는 빵집, 동네의 블랑제리들은 점점 줄어들었다. 빵의 나라 프랑스에서조차 구운 빵만을 팔아서는 생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제빵사들 중에는 유독 이혼한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장시간의 노동 때문에 가정생활이 엉망이 된 탓이다. 그저 소소한 먹거리일 뿐인데 그 쇠락의 과정이 자본주의 시장의 논리와 정확히 맞물리니 씁쓸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프랑스 빵의 정통성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프랑스어로 ‘지팡이’라는 뜻의 바게트가 휘청거리는 전통 빵의 새로운 버팀목이 된 것이다.
“바게트는 새로운 소비 패턴을 제안했습니다. 20세기에 사람들은 점점 빵을 덜 먹게 되었어요. 빵이 생존에 더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구요. 아무도 빵에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이스트를 사용하면서 맛이 나빠졌고, 기계화로 인해 빵의 풍미도 부족해졌죠. 그러한 분위기가 1980년대 역전됐습니다. 의식 있는 장인들이 천연발효종을 이용한 반죽과 전통방식의 오븐을 대량생산에 결합시키기 시작했고, 프랑스 정부도 1993년 ‘프랑스 전통 바게트 법’을 제정해 바게트의 품질을 관리하기 시작한 것이죠.”
제빵사들의 의지와 정부의 관리가 더해져 바게트는 단기간 안에 프랑스를 대표하는 ‘좋은 빵’이자 ‘평등한 빵’이 되었다. 현재 프랑스의 전통 바게트에는 어떠한 화학 첨가물도 넣어선 안 되며 오직 자연 발효만을 거쳐 만들어야 한다. 대부분의 빵은 현대화되었지만 전통 바게트만큼은 좋은 빵을 원하는 프랑스인들의 갈망과 바람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셈이다. 때마침 카플란이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바게트를 들고 나왔다. 드디어 빵칼이 제 역할을 할 때다.
“이게 바로 전통 빵입니다. 정말로 맛있는 프랑스 바게트죠. 한번 속을 봅시다. 중간에 긁은 모양이 보이시나요? 빵에 새긴 제빵사의 문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빵사의 시그니처죠. 그리고 여기 구멍 보이죠? 이 구멍이 넓게 퍼져서 자리하고 있어요. 큰 구멍도 있고, 작은 구멍도 있군요. 이것은 발효 과정의 기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긴 발효 과정을 온전히 기억하고 있는 빵. 어쩐지 구구절절 사연 많은 여인네를 마주한 것 마냥 마음이 숙연해졌다. 딱딱하지만 섬세하고 윤기가 흐르는 겉모습을 보면 ‘지팡이’라는 이름이 너무 하찮은 것 아닌가, 라는 생각마저 든다. 첫 맛은 딱딱한 껍질 때문에 꼭 누룽지를 깨무는 것 같지만 이내 부드럽고 푹신한 감촉의 쫄깃한 속살이 입 안을 에워싼다. 구수함과 고소함이 마구 난타전을 펼치고 있는 듯한 맛이랄까. 프랑스 바게트의 저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통 빵의 위기라며 목소리를 높였던 카플란, 그럼에도『굿 브레드 이즈 백good bread is back』라는 책을 쓴 그가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카플란과의 대화 덕분에 다음 목적지가 분명해졌다. 전통의 바게트를 만드는 제빵사들의 무대,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그 오묘한 빵집이 다음 목적지였다.
“절대 제빵사에게 ‘평범한 바게트baguette ordinaire’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프랑스 제빵사들은 ‘나는 절대 평범한 것은 만들지 않아요!’ 라고 발끈할 테니까요.”
자신이 만든 빵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한 그 요리인류들은 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섬세하고 여린 제빵사들이 반죽을 주무르고 빵을 진열하고 있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내가 찾아간 블랑제리에는 눈만 마주쳐도 움찔하게 만드는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상남자들이 떼로 몰려 있었다.
카플란이 소개해준 블랑제리에 가기 위해 숙소를 나선 시간은 밤 12시. 어두워진 골목길에 유독 환하게 불을 밝힌 가게가 단박에 눈에 띈다. 언뜻 봐도 20킬로그램은 족히 될 것 같은 밀가루 포대자루를 어깨에 이고 가게로 향하는 남자의 뒤꽁무니를 쫓았다. 모두가 잠든 고요한 밤, 그 작은 매장 안은 빵을 만드는 남자들의 묵직한 열기로 뜨거웠다. 이른 아침 갓 구운 빵을 손님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제빵사들은 밤을 잊은 듯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나무로 만들어진 전통 방식의 오븐에 불을 지피며 한 남자가 말했다.
“일하러 오자마자 불을 지펴요. 오븐의 열기로 방의 온도가 올라가면 빵 반죽도 발효가 잘 되거든요. 이 오븐을 일반 전자 오븐과는 비교하지 마세요. 맛이 전혀 달라요. 맛뿐만 아니라 빵의 보관기관도 더 깁니다. 4일에서 5일 정도는 문제없이 보관할 수 있어요. 바로 이 점이 나무장작 오븐의 장점입니다.”
순식간에 후끈 달아오르는 오븐에 놀라 나도 뒷걸음을 치는 찰나, 머리 위로 긴 막대가 쑥 넘어온다.
“어, 조심해주세요. 이 도구는 아주 긴데 저는 뒤를 볼 수가 없거든요.”
오븐 앞에 반죽을 내려놓는 남자의 인상이 심상치가 않다. 덥수룩한 수염과 부리부리하게 치켜 올라간 진한 눈썹, 게다가 칼자국이 분명한 깊은 흉터까지. 영화 <엑스맨>의 ‘울버린’이 빵을 굽는다면 저런 인상일까? 모습은 험악했지만 뭔가 우수에 찬 눈빛은 그야말로 상남자의 정석이었다. 겉모습처럼 성격도 마초이겠거니 싶어 몸을 사렸지만 웬걸, 이야기를 나눌수록 그는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밝고 건장한 진짜 남자였다. 게다가 울버린은 이 빵집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총 책임자였다. 그가 이곳의 제빵사 바질 꺄미흐를 소개하며 말을 이었다.
“저희는 십여 년간 방치되었던 이 오븐을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이 빵집을 인수할 때는 원래 음반장사를 하려고 가게를 인수했었어요. 그런데 이 지역에서 더이상 전통방식의 빵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제빵사가 되기로 결심했죠. 이 오븐은 현재 파리에서 실제 사용하는 오븐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겁니다.”
‘울버린’의 빵집은 나무장작을 태우는 전통 오븐뿐 아니라 화학 처리가 되지 않은 유기농 밀가루와 자연 발효를 통한 효모로만 빵을 만들고 있었다. 나무장작을 모으는 것부터 자연 발효를 고집하는 것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어렵고 복잡한 과정일 텐데 왜 이러한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것일까?
“좋은 바게트란 빵 껍질에도 풍미가 있고, 속은 공기가 알맞게 잘 들어 있어야 합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잘라 보면 속살이 치즈처럼 엉겨 있지요. 이렇게 되면 쉽게 부러지지 않아요. 양질의 밀과 좋은 발효상태를 뜻하는 신내음도 살짝 납니다. 마지막으로 좋은 빵은 오랫동안 맛있게 저장이 가능합니다. 프랑스인들에게 빵이란 문화이자 역사, 프랑스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죠. 빵을 먹는다는 것은 우리만의 문화와 역사를 섭취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더 신경써야죠.”
수분의 양이 적절하고 발효가 제대로 된 반죽을 늘여보면 그물망 조직이 보인다. 55센티 길이에 400그램의 반죽을 240도의 오븐에서 넣으면 겉면이 바삭한 300그램의 바게트로 탄생한다. |
나는 울버린의 안내에 따라 전통 바게트를 만드는 과정을 자세히 지켜보기로 했다.
“빵의 향은 시간에 비례합니다. 가장 중요한 사항이지요. 여기 보이는 이 반죽같이 되려면 적어도 3시간이 필요해요. 여기 망 같은 모양이 보이나요? 서로 연결된 듯한 구조물이 보입니다. 밀가루를 반죽한 후에 1시간동안 이 통 안에서 발효를 위한 휴지기를 갖게 됩니다. 그렇게 발효된 반죽은 어느 정도 그물망 조직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보이세요? 이 반죽은 살아 있어요. 아주 훌륭하죠. 이제 무게를 잴 건데요. 그릇마다 8킬로그램의 반죽 덩어리를 놓게 됩니다.”
그는 반죽을 일일이 떼서 저울에 올렸다. 저 정도의 과정은 기계로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것 같은데, 내 속을 꿰뚫어보듯 울버린이 말했다.
“이곳은 수공업소예요. 인간적이고 장인정신이 담긴 빵을 만들어내는 것이 저희의 목적이기 때문에 모든 과정은 손으로 해결합니다. 특히 저희는 직접 손으로 일하는 만큼 언제든지 원하는 수분의 양을 조절할 수 있어요. 이제 부풀어 오르기가 끝나면 오븐에 반죽을 넣습니다. 발효를 마친 바게트의 반죽은 55센티미터의 길이에 400그램이고, 굽고 난 후에는 300그램으로 무게가 줍니다. 바게트가 잘 구워지려면 열이 반죽 전체를 지날 수 있도록 간격이 벌어져 있어야 해요. 그리고 오븐이 240도는 되어야 합니다.”
오븐에 들어간 바게트 반죽이 서서히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때 수증기를 넣어주고 보기 좋게 하기 위해 작은 칼집을 낸다. 또한 반죽에 효모를 넣는데, 이때 효모는 빵이 오븐 안에서 부풀어 올라 껍질을 터뜨리는 역할을 한다. 뜨거운 곳에서 반죽 안의 가스가 폭발하여 터지는 원리라고 한다. 그리고 20분 후, “짜잔!” (외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이 같은 액션을 취하며 울버린이 갓 구워진 빵을 꺼냈다.
“전통 바게트는 300그램이고 55센티미터의 길이입니다. 수분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원기둥 모양이 잘 되었는데요. 100킬로그램의 밀가루에는 무려 72리터의 물이 들어갑니다. 물을 많이 넣을수록 좋은 빵이 되죠. 제빵사의 시그니처는 효모로 인해 부풀고 터지는 그 부분에 있습니다. 둔탁한 소리가 들리나요? 아주 맛있는 소리입니다. 또한 껍질을 보세요. 불에 비쳐보았을 경우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죠. 일반 바게트는 속이 하얗고, 전통 바게트는 크림색에 가까운데요, 이 빵은 호밀로 만들었기 때문에 속의 색과 구조가 다른 빵과 완전히 다릅니다. 또한 천연효모를 사용하여 신맛이 납니다. 속은 입에 착착 달라붙으면서도 상당히 부드럽습니다.”
갓 태어난 자식을 자랑하는 부모의 모습처럼 그는 한참동안 전통 바게트의 장점과 특징, 제빵이라는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강조했다. 물론 이곳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들이 울버린처럼 사명감만으로 전통 제빵에 뛰어든 것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새벽 내내 지켜본 제빵공정은 그야말로 전쟁터와도 같았다. 한 쪽에서는 반죽을 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숙성을 하면서 끊임없이 맛을 보고 체크하는 과정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졌다. 잠깐 고개를 돌리면 저쪽에서 갑자기 긴 막대기가 쑥 올라오고 또 한걸음을 떼면 머리 위로 빵 반죽이 가득한 컨베이어 벨트가 있었다. 잠시만 정신줄을 놓아도 사고가 날만큼 장인의 빵집은 숨 돌릴 틈조차 없어 보였다. 제빵사들의 몸이 왜 다부질 수밖에 없는지 그제야 납득이 갔다.
섬세함이 생명인 케이크나 쿠키 등을 만드는 파티시에patissier들과 달리 제빵사들에게 체력은 필수조건인 것만 같았다. 남자들의 거친 숨결과 밀가루 반죽이 어우러진 그 기묘한 풍경 앞에서 나는 문득 토기를 떠올렸다. 빵을 만드는 과정이 토기를 만드는 것과 유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흙 대신 밀가루를 주무르고 굽는 제빵 장인들. 그것을 만드는 데 필요한 내공, 만든 이의 지혜와 지식, 감각과 같은 것들은 도공과 하등의 차이도 없어보였다.
호들갑스러운 인사도, 과장된 찬사도 없이 블랑제리의 아침은 매일 빵을 굽는 남자들과 빵을 찾는 손님들이 주고받는 정겨운 미소로 시작된다. 파리의 아침을 알리는 갓 구운 빵 냄새가 순식간에 골목에 퍼진다. 이곳에는 여전히 좋은 빵의 맛을 아는 사람들이 있고 그 빵맛의 가치를 긍지를 갖고 지켜나가는 상남자들이 있다. 그들이 지켜내는 프랑스 빵이 골목의 일상 속으로 조용히 되돌아오고 있다.
첫댓글 음~~~~ 빵 좋아하는데....
19일오전에 소사장께서 빵에와인까지
한턱내신다니 꼭오세요
네!
바켓빵에 햄 넣고 치즈넣고 오이넣고
넘 맛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