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만약 영만 가진 존재라면 하나님께서 성령만 보내셨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육체를 가지고 있기에 성경이 필요하다. 우리 안에는 성령이 계시고, 밖에는 성경이 있다. 이 둘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래야만 양식이 된다. 그리스도인이 내적인 영감만 의지하면 실수를 많이 하고, 영감 없이 성경만 보면 모든 말씀이 지식이 되고, 율법이 되어 정죄를 받아 사망의 길을 걷는다.
성령의 내적 능력은 기관차의 연료와 같고, 성경은 열차의 궤도와 같다고 말들을 한다. 말씀을 읽다가 얻는 감동은 말씀으로 감동 받았는지 성령의 감동인지 사실 우리는 잘 모른다. 다만 그 말씀 속에 성령의 감동이 있음은 분명히 안다.
영은 형이상학 적이며, 추상적인데 예를 들면 라디오 방송의 전파와 같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전파가 무형이지만 라디오에 잡히면 소리로 나타난다. 같은 이치로 성령과 성경이 만나는 순간 체현(體現), 곧 우리 육신 안에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 없이 성경을 읽을 수는 있으나 선악간의 지식이 되어 전파를 받을 수 없는 라디오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을 구하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눅11:9-13) 하나님께 담대히 구할 수 있는 자녀의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다면 성령을 간절히 구하고 성령과 성경의 컨퍼런스를 믿음으로 잘 이루어 보라. 놀라운 일이 생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관계를 잘 알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으로 이루어 놓으신 구원의 장치는 믿는 자의 위치와 신분을 확실하게 바꾸어 놓은 특수한 영적인 공정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은 참으로 기가 막히는 하나님의 지혜의 총 집합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성령이 믿는 자 안에서 작업 하실 수 있는 모든 기본적인 문제를 다 이루셨다. 죄, 사망, 옛 사람, 신분, 소속등을 싹 바꾸고 갈아치우셨다.
그러므로 십자가 없는 성령의 역사는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회개와 세례와 성령의 선물은 일직 선상에 있는 것이다(행2:38) 아담 안에서 걸머진 모든 죄와 육신의 문제를 깨끗이 처리하지 않는 한 성령은 작업을 시작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성령님은 그리스도인들을 십자가로 인도하신다. 거기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사실을 생각나게 하신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사는 방법을 가르치신다. 성령의 역사 없는 기독교는 마른 막대기와 같고 타다 남은 부지깽이와 같다. 성령의 작업 곧 그 분의 역사하심만이 참 그리스인의 능력과 지혜가 된다.
따라서 이 고난 주간을 그 분의 발자취를 따라 천국을 침노하는 고난으로 채워야 한다. 자신을 부인한다는 것, 죽는다는 것, 우리 주님이 로마의 군인들이 겉옷은 잘라서 나누고 속옷은 제비를 뽑는 것을 보시는 무참함을 당하셨듯이 우리도 주님을 따르려면 그런 수욕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부활의 환희와 감격, 그리고 그 영광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 길이 필수선택이다.
첫댓글 아멘!! ...너무 쉽게 아멘으로 응답하는 제 자신이 또한 부끄럽습니다. 진정 그럴수 있을까? 주님이 아시겠지요.. 주님! 주님의 도우심으로 깨어있어 기도하게하시고. 천국을 침노하는 고난을 이기게 하옵소서!!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