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있는 마음이란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을 자각하는 능력이다.
한 잔의 물을 마실 때 나는 깨어 있는 마음으로 마시거나, 다른 생각을 하며 마실 수 있다.
깨어 있는 마음으로 물을 마실 때, 나는 진정한 존재가 된다.
그때 나는 나 자신이 되고, 내 몸과 마음은 100퍼센트 하나가 된다.
내가 100퍼센트 나 자신이기 때문에 물 또한 내게 스스로의 모습을 100퍼센트 드러낸다.
따라서 나와 물 둘 다 진정한 존재가 되고, 물을 마시는 순간 삶이 그곳에 진정으로 존재하게 된다.
깨어 있는 마음으로 물을 마실 때, 나는 집에 이를 것이다.
그 집에서 나는 나를 만나고 내가 마시는 물을 만난다.
이것은 결코 추상적인 말이 아니다. 나날의 삶 속에서 우리는 먹고 마시고 악수를 한다.
하지만 진정으로 거기 있지 않다. 우리는 과거와 미래에 정신을 빼앗기고, 걱정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우리는 진정으로 그곳에 있지 않다. 모든 것이 피상적이고 모든 것이 유령처럼 공중에 떠 있다.
깨어 있는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은 그대의 진정한 존재를 창조하는 일이다.
그대의 진정한 존재는 그대의 몸과 마음이 지금 이곳에 존재함을 뜻한다.
그대는 물 한 모금을 마시는 일을 통해 자신을 훈련시킬 수 있다.
100퍼센트 진정한 존재가 되는 방식으로 물을 마시라.
내가 어린 승려였을 때 어느 날 스승이 내게 말했다.
"나가서 대나무 막대기를 하나 갖다 주겠나?"
나는 스승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밖으로 나가면서
깨어 있는 마음으로 문을 닫지 않았다. 그때 스승이 나를 불러 세웠다.
"틱낫한!"
나는 다시 와서 두 손을 합장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그대는 깨어 있는 마음으로 문을 닫지 않았구나. 다시 하라."
그래서 나는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잠시 시간을 갖고 나 자신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마음을 집중하고, 내 행동을 자각하면서 문쪽으로 걸어갔다.
문 손잡이를 잡고,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문을 열었다.
나는 계속해서 깨어 있는 마음으로 걸음을 옮긴 뒤 무을 닫았다. 깨어 있는 마음으로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문에서 대나무 막대기가 있는 곳까지 가는 동안 걷는 수행을 했다.
그때 나는 비로소 스승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스승을 사랑하는 길은 그가 원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대는 자신의 스승을 사랑한다. 스승뿐 아니라 그대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
하지만 그대는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모른다. 스승은 나를 두 번 가르칠 필요가 없었다.
나는 그 이후 올바로 문닫는 법을 늘 기억하고 있다.
베트남 전쟁이 일어났을 때, 나는 베트남에 대한 폭격을 중단할 것을 호소하기 위해 미국으로 갔다.
그때 나는 미국의 트래피스트회 수도사인 토머스 머튼을 방문했다. 나는 하루 종일 그오 함께 있었다.
원래 수도사들에게 강연할 계획이 잡혀 있었지만 나는 목이 너무 쉬어 있었다.
정신없이 강연을 하고 다니면서 목을 너무 많이 썼던 것이다. 그래서 오로지 토머스 수도사와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나 대신 토머스 머튼이 그 수도회의 수도사들에게 강연을 했다.
나는 그냥 앉아서 귀를 기울였다. 그때 그가 말했다.
"친애하는 형제들이여, 나는 틱낫한 스님이 문 닫는 모습을 보면서, 그가 진정한 수도승임을 알았습니다.
수도사는 수도승을 알아보는 법이지요."
그때 독실한 카톨릭교도인 한 독일 여성이 청중석에 앉아 진지하게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녀는 틱낫한이 어떻게 문을 닫는가를 보기 위해 매화 마을을 방문하고 싶어했다.
그녀는 지난겨울에 나를 찾아왔다. 그녀는 우리 마을에서 거의 한 달 동안 머물면서 관찰을 했다.
이곳의 수행자들과 방문객들을 관찰했고 나를 관찰했다.
나는 그녀가 정말로 우리가 문을 닫는 모습을 관찰하려고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가 떠나기 전날, 우리는 이곳의 '고요한 물의 집'에서 그녀에게 정식으로 점심을 대접했다.
그녀는 특별한 말로 작별 인사를 했다. 그녀는 자신이 매화 마을에 오게 된 이유에 대해 말했으며,
매화 마을에 머물면서 자신이 진정으로 문을 닫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매화 마을에 올 때, 올바로 문 닫는 법을 배우라. 올바로 물 마시는 법을 배우라.
텐트에서 주방까지, 화장실에서 명상실까지 가면서 올바로 걷는 법을 배우라.
깨어 있는 마음을 잃어버린 채로 다니지 말라. 그것이 이곳 매화 마을에서 하는 수행이다.
깨어 있는 마음 없이 발걸음을 내딛지 말라. 숨을 들이쉬면서 한 걸음이나 두 세 걸음을 내딛으라.
그대가 원하는 만큼 발걸음을 옮기라. 그리고 숨을 내쉬면서 똑같이 하라.
숨을 들이쉬면서 그대는 한 걸음, 두 걸음을 걷는다.
처음에 그대는 걷으로만 평화롭고, 긴장이 풀린 것처럼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대 안에 있는 원숭이가 아직도 소란을 피우고 있기 때문이다.
원숭이는 심지어 밤에도 소란을 피운다. 하지만 그대는 안다.
원숭이를 길들이고, 말을 길들이고, 사나운 코끼리를 길들이는 법을.
그것이 붓다가 우리에게 가르친 것이다. 길들여지지 않은 마음은 큰 고통을 불러일으킨다.
반면에 길들여진 마음은 큰 행복을 가져다 준다.
마음에는 평화 얼굴에는 미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