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정말로 부끄러워해야 할 것]
먼저 포스팅에서 공적 제도의 사유화에 대해 얘기했었다. 선거와 같은 공적 제도를 개인의 필요, 감정, 판단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와 사유화하는 것의 오류를 지적한 것이었다.
박근혜 탄핵의 본질도 제도의 사유화였다. 이때는 개인에 의한 사유화가 아닌 집단에 의한 사유화였다. 국민의 집단적 충동이 거꾸로 탄핵의 합리성을 구성해 버린 사건이었다. 박근혜 탄핵 이후, 문정권 하에서 사람들은 줄곧 대중의 찰나적 선호를 공적 제도의 정당성과 혼동해 왔다. '민의를 따르는 것이 민주주의인데, 그것이 감정이건, 충동이건, 무엇이건 다수가 그들끼리 합의만 되면 되지 않는가?'
그러나 제도는 당세대만의 소유물이 아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를 포함하여 후손들도 같이 사용해야 할 하나의 공유재산이다.
제도를 만들면 만들어진 절차와 규칙대로, 또 그것을 운용하면 운용되는 선례와 관례대로 후세대에게로 전승된다. 우리가 제도를 사적인 필요와 감정으로 만들고 운용하면, 우리의 필요와 감정을 제도를 통해 그들에게 강요하는 것이 된다. 그런데 그들은 우리가 아니다. 바로 여기에 제도를 만들고 운용함에 있어서 후세대들에게 이익을 끼치고 그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합리성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투명한 선거제도의 운용은 이런 보편적 합리성의 대표적인 예다.
불행하게도 문재인정권은 주권자의 참여라는 명분하에 제도를 실질적으로는 '지금', '여기'의 '우리 인민'의 울분과 기분에 좌지 우지되도록 만들었다. 시민참여단을 통한 원전폐쇄 결정, 청와대 국민청원제도, 그리고 이제는 유권자 100만명에 의한 개헌발의 얘기가 나오고 있다. 절차와 규정을 조작과 선동에 완전히 노출된 그때 그때 부는 바람의 흔들림에 맡겨버린 셈이다.
지금 우파내에서 4.15선거조작 의혹제기를 탐탁치 않게 보는 사람들은 몇 가지 이유를 내세운다. 조작의혹은 선거참패를 부끄러워 해야 할 미통당에게 면죄부를 준다, 우파야당으로부터 개혁의 동력을 뺏아갈 수 있다, 낭설로 드러날 시, 우파를 재기불능하게 만드는 도박이다. 선거조작 시비보다 개헌저지가 더 시급하다, 근거없는 조작의혹은 우파의 에너지와 국가예산의 낭비를 가져온다, 개중에는 옳은 얘기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이런 기준들은 보편적인 합리성을 가져야 할 중요한 국가제도를 '지금' '여기' '우리들'만의 필요와 특수한 상황속으로 가두어 버리는 것이다.
이번 의혹을 규명하지 않아서, 만일 선거제도의 조작이 실질적 면죄부를 얻게 되면 당장 닥칠 수 있는 개헌 국민투표나 대선 등 어떤 선거도 이제 의미가 없어진다. 그러나 더 큰 실수는 후세들에게 의혹으로 만신창이가 된 제도를 유산으로 물려주어 그들의 삶을 망쳐 놓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지금 우리가 정말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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