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4. 큐티
마태복음 19:22 ~ 30
결핍의 사고를 갖는 부자 청년
관찰 :
1) 부자 청년
- 22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여 가니라”
- 예수님께 나아온 부자 청년에 대해서 마가복음 10:21에는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이 청년이 불량하거나 악의적이거나 교만하다기 보다는 진실한 사람이었을 가능성을 볼 수 있습니다.
- 이 부자 청년은 진실로 영생에 대한 추구를 했던 사람이고, 그는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것을 통해 영생에 도달하고자 노력하고 애썼던 사람이었습니다. 율법에 대해서는 어려서부터 최선을 다해 지켜왔고, 나름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던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그렇게 해도 영생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는 안타까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 나아와서 영생에 이르는 길을 묻고 자신의 행한 일들에 대해 확인받고 싶어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청년은 자신의 의도와 다른 예수님의 이끄심에 당황하게 되었습니다. 이 청년이 생각지 못했던 것은 자신의 재물에 대한 관점이었습니다. 그는 영생을 얻고 싶었지만 자신에게 속한다고 생각한 재물도 함께 가지고 가는 천국, 그런 영생을 원했던 것입니다.
2) 부자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
- 23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 24절.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처럼 어렵다. 이에 대한 두 가지의 견해가 있습니다. 첫째, 부자는 절대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사로와 마르다, 마리아 남매들도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워지고, 아리마대 요셉이나 니고데모도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재산의 반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고, 토색한 자에게 네 배의 재물을 돌려준 삭개오는 그랬음에도 여전히 부자였기에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둘째,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지만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견해는 예수님이 부자들에게 주시는 경고에 대해서 좀 희석시키는 감이 있기 때문에 또 생각을 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혹은 부자들이 숨통을 튀기 위해서 이렇게 해석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 중요한 것은 물질에 대한 태도입니다. 예수님이 이 부자 청년에게 원하신 것은 주님을 따르는 것이고, 물질보다는 주님을 좇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모두가 다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님을 좇았습니다. 주님은 이 부자 청년에게 그런 헌신을 원하셨고, 그런 제자로서의 길을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부자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는 싶었지만 주님의 그런 부르심에는 부담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부담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을 좇아야 하는데, 주님이 원하시는 요구에는 부응하기 어렵고, 세상의 욕구와 욕심은 끝이 없고.... 적당한 타협점을 찾으려는 우리의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 바늘귀에 대해 세 가지의 견해가 존재합니다. 첫째는 액면 그대로의 바늘귀. 실이 겨우 통과하는 바로 그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하는 표현으로 보아야 합니다. 둘째는 아람어 가믈라(낙타)와 가믈타(밧줄)가 혼동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바늘귀에 낙타가 아니라 밧줄이 통과하는 것처럼 어렵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당시에 존재하던 바늘귀(The eye of a needel)라는 문이 예루살렘에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평상시에는 쓰지 않다가 성문이 닫히거나 위급 상황에서 사용하던 사람 하나 간신히 빠져나가는 문이 있었고, 주님은 그것을 관용적인 표현으로 사용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사족을 달자면 부자가 자신의 것을 주렁주렁 달고서는 이 바늘귀 문을 통과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다 내려놓고 나야 비로소 그 문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 주님이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요지는 부자가 자신의 물질에 억매여 있는 경우에는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들어가는 곳입니다. 자신의 물질을 의지하는 자는 어떤 경우에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지 아니하면 천국은 없습니다.
3) 결핍의 사고방식
- 25절.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 26절.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 부자청년이 결국 근심하며 돌아간 근본적인 이유는 그가 '결핍의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이 견해는 조성의 목사의 “예수와 함께 가는 부자 청년”에서의 견해입니다.
- “결핍의 사고”란 '내 손에서 빠져나가면 없어져 버린다'는 생각입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따르고자 한다면 '가장 버리기 싫은 그것'을 포기해야만 합니다. 그것을 버리는 순간 그리스도인은 참된 하나님의 풍요 안에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세상에는 엄연히 풍요와 빈곤의 법칙이 존재합니다. 수고하고 정직하게 열심히 일해서 번 재물에 대해 손가락질을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번 재물이라고 해도 자신만을 위해서 쓰겠다 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자세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시고 맡기신 것이 아니라면 그렇게 재물이 모여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혼만 잘되는 것을 원하시는 분이 아니시라 범사가 잘 되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 진정한 부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물질의 가치를 뛰어넘는 사고와 행동을 할 수 있는 자입니다. 주님은 그것을 기대하시면서 부자 청년에게 결핍의 사고를 뛰어넘도록 솔루션을 제시하셨지만, 그 청년은 주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돌아가고 만 것입니다.
4) 제자들의 질문
- 27절.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 제자들의 본전생각입니다. 주님의 교훈에 궁극적으로 드는 생각은 자신들이 얻어야 할 몫이었습니다.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죽지 않으면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5) 예수님의 대답
- 28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 이 말을 염두에 두고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면서 설렜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의 의도하심은 십자가를 지러가는 때가 아닌 이 세상을 심판하러 오시는 때의 일을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이 오해하는 영역이 되었습니다.
- 29절.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니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 주님을 위해서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게 될 것이라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게 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상급을 이렇게 분명하게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 약속은 저 세상에서의 약속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의 상급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허언을 하시는 분이 결코 아니십니다.
- 30절.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 주님이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본심입니다. 제자들의 관심과 예수님의 관점이 매우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부자 청년 뿐 아니라 제자들일지라도 어떤 기득권을 요구하는 세력에 대해서 그것을 요구하는 이들의 기대치가 주님이 원하시는 것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또한 여실히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가르침 :
1) 결핍에 대해 생각이 갇혀있으면 주님의 부르심도 소용이 없게 됩니다. 주님이 사랑하신 그 청년은 물질에 대해 생각이 갇혀 있었습니다. 그것을 내려놓고 주님을 좇았더라면 그가 그토록 추구하던 영생을 얻을 수 있었고, 세상의 재물에 생각이 갇히지 않았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2) 영생은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 보내신 자 독생자를 아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어떠한 재물로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영생을 소유하고 주님이 주시는 물질에 대해서는 바른 사용법을 따라 나누고 베푸는 삶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먼저 영생을 소유하지 못하기에 그 차등의 가치가 되는 것으로 채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3) 이 땅의 재물로 하늘의 보화를 쌓을 수 있다면 그보다 남는 장사가 없을 것입니다.
4) 주님은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나의 것을 포기하는 자의 헌신을 눈 여겨 보시는 분이십니다. 때문에 성도의 헌신을 헛되이 없이 하시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적용 :
1) 나에게는 결핍의 사고가 없는가를 살피겠습니다. 결핍의 사고를 가지면 필연적으로 본전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 것이 없어졌기에 손해 보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른 곳에 쌓이고, 새로운 일에 써지는 것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질 사용에 있어서의 원리는 첫째, 분수에 맞게 쓰는 것이고, 둘째가 하늘에 보화를 쌓는 일에 우선적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2) 부자 청년과 같이 물질에 마음과 생각이 매이지 않도록 날마다 나를 죽이고 주님께 나의 생각과 마음을 붙들어 매지 않으면 물질로부터 마음을 지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은 너무나 물질주의적으로 흐르고 물질을 많이 가져야 행복하고, 성공한 듯이 우리를 세뇌시키고 있습니다. 주님을 소유함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야 물질의 굴레, 결핍의 사고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3) 예배당과 개인기도실이 있는 병원에 있음으로 인해서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