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시월 동창모임에 즈음하여 아름다운 한시 한편 올리옵니다.
중국 성당 때 시불로 불리우던 대시인 마힐 왕유의 녹채라는 한시를 제 나름대로 해석해 보았읍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 그 해석은 달리 할 수 있으니 제 견해와 다르더라도 이해하여 주시고 미흡하거나 과한 부분은 지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녹채(鹿柴) 사슴울타리 왕유(王維, 701~761?)
空山不見人(공산불견인) 빈산에 사람은 보이지 않고
但聞人語響(단문인어향) 다만 사람들 말소리만 메아리 되어 들리네
返景入深林(반경입심림) 저무는 햇살이 깊은 숲에 들어
復照靑苔上(부조청태상) 푸른 이끼 위로 다시 비추네
●채(柴): 울타리, 울짱을 의미할 때는 채(寨)나 채(砦)와 같은 글자로 취급해 채라고 읽고,
섶, 장작이라는 뜻으로 쓸 때는 시라고 읽는다.
●반경(返景) : 저녁 무렵의, 해질녘의 태양광(傍晚的陽光) 또는 석양빛(夕照)
돌이킬, 돌아올 ‘반’ , 볕 ‘경’==> '돌아서 비추는 햇빛'
●부(復) : ‘다시’라고 할 때는 부로 읽고
‘회복하다, 돌아오다, 반복하다’라고 할 때는 복으로 읽는다.
스스로를 부처님 때의 「유마경」을 설한 유마힐거사에 비유 '왕마힐王摩詰'이라 자처한
중국 당나라 시인 왕유(701~761)의 ‘녹채(녹시라는 판본도 있음)’ 라는 선시禪詩다.
후세에 ‘시불詩佛’로 칭송되기도 한 왕유는 시선 이백, 시성 두보와 함께 당나라 3대 시인의 한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향적사를 지나며(過香積寺)’, ‘종남산의 별장(終南別業)’ 등 많은
선시를 남긴 초기 선종의 거사였다.
이 시는 왕유(王維)가 안록산(安祿山)의 난이 진압된 다음 좌천당하자 장안(長安) 근처에
위치한 남전(藍田)의 망천(輞川)에 별숙(別塾)을 지어 은거하던 시기에 쓴 오언절구이다.
<망천집(輞川集)>에 실려있는 20 수의 시 중 5 번째에 해당되며,
‘사슴을 가두는 울타리’라는 뜻의 녹채(鹿柴)는 왕유가 사슴을기르기 위해 만들어 놓은
진짜 사슴울타리를 가르키기도 하지만 망천에 있는 지명이기도 하다.
<망천집>은 왕유가 절친 배적(裵迪)과 함께 망천에 있는 20 군데의 명승지를 돌아보고
그 풍광을 읊은 시를 모아 편찬한 시집이다.
압운은 향(響)과 상(上)을 사용하고 있다.
禪意詩的 視覺으로 바라본 ‘녹채’는 시의 분위기가 차갑고 고요하며 편안함이 가득차있는
禪詩의 백미白眉다.
. 自然詩(作家의 情緖를 調和 시키는 情景交融을 基本으로하는 詩)
. 禪意詩(禪 思想을 바탕으로 自然景觀을 觀照的 視覺으로 읊은 詩)
空山 : 텅 빈 것 같으나 비어있지 않은 山(現象世界)에
不見人 : 사람은 보이지 않으나 있음이다. '色卽是空 空卽是色’
無는 存在論的,感覺的으로 없는것이지만,
空은 思惟的으로 없는 것 같지만 있으며 있는 것 같지만 없음
(無常:죽었지만 다시 태어남)이다.
‘空山’ 은 이 詩의 主眼點이면서 禪的인 이미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深山 密林의 고요가 단지 無聲, 無色을 投影하는데 그친다면 죽어 있는 사적死寂이요,
暗黑이다. 이러한 禪의 境地나 禪詩라면 사선死禪에 불과할 뿐 아무런 맛이 없다.
이 시의 예술적 묘미는 시의 제목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선적 경계를 아주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禪學에서는 空은 現象(色)에서 本體(空)를 보고, 무無에서 유有를 보며, 손님과 주인이
자유자재로 자리를 바꾸는 體用一如 즉 회호回互, 왕환往還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것이 바로 '色卽是空 空卽是色’ 이다. 深山의 寂靜을 無聲, 無色으로 묘사하지 않고
사람의 말소리와 석양빛이라는 聲色을 통해 禪이 추구하는 고요를 한층 심화시켰다.
그래서 空山은 죽어 있는 靜寂이 아니고 계속해 작용하고 있는 空의 본질을 상실하지
않는다.
但聞人語響 단지 사람의 말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린다.
起句와 承句는 관계는 眞俗二諦로서 두 개의 세계를 설명하고 있다.
起句는 眞諦로서 絶對 不變의 眞理 즉 空의 세계로 分別妄想이 끊어진 直觀으로
체득한 절대적 진리의 세계이다.
承句는 俗諦로 世俗法에 의한 分別智,差別智로 인식한 상대적 진리이다.
眞,俗이 거리상 떨어져 있으나 山이란 한 공간에 처해 있으며 메아리(響)로 둘의 관계를
이어간다. 시인의 眞俗不二의 삶, 半隱半士의 행위와 有關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산의 空寂함을 묘사하기 위해 빈 산에 사람을 진입시켜 소리를 내게 함으로써 산속의
고요를 파괴하는 반츤법反襯法을 동원한다. 그리고는 독자들을 사람의 말소리가 어디서
들려오는지 모르는 신비한 부지不知의 세계로 안내, 산 속의 寂靜을 깨닫도록 한다.
反襯法 : 이것은 원래 그림을 그릴 때 종이의 앞 뒤 양쪽에 백분을 발라 화상을 선명하게 드러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소설에서는 다른 인물이나 사물에 의해 주요인물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직접적인 묘사로는 도달할 수 없는
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 동시에 작자의 인물에 대한 주관적인 평가를 객관적인
성격 묘사 속에 감출 수 있게 된다.
返景入深林 저무는 햇살이 깊은 숲에 들어
返景 : 夕照 빛이 되비침. 저녁 햇빛. 해질 무렵의 되비쳐 오는 빛.
깊은 산속의 그윽함과 어둠을 묘사하는데 어둠에 정반대되는 한 줄기 석양빛을 숲에
끌어들이는 반츤법反襯法을 활용한다. 그 한 줄기 석양빛은 어두운 밀림 속을 어렵사리
뚫고 들어오면서 미약하지만 황금빛 햇살을 흐트린다.
태양이 높이 떠있을 때는 나뭇잎이 무성해 빛이 숲 안으로 들어오지 않지만 해질녘의
석양빛은 비스듬히 비추니 나무들 사이로 숲 속 깊숙이 까지 빛이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復照靑苔上 푸른 이끼 위로 다시 비추네
復照 => 返 :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 간다. 自然法에 의해 生態系가 持續 되고 있음.
第三者의 視覺으로 主觀的 感情 없이 自然의 한 場面을 있는 그대로 如如하게 읊음으로
인간의 分別智가 끊어진 깨달은 尊者처럼 보이는 그대로 자연을 표현하여 禪味를
완성하였다.
如如 : 모든 存在와 現狀의 本性,分別이 끊어져 對象에 대한 마음의 작용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
禪味 : 깨달은 존자의 눈으로 보는 자연 (보는 그대로의 자연의 모습).
“공산에 사람은 보이지 않으나 소리가 들리고, 깊은 산속바위 이끼에 석양 빛이 비쳐 반사한다”는 묘사로써 대자연에서 느끼는 자신의 미묘한 감정 체험을 통해 철리哲理를 깨닫고 있음을 나타내 보여 주고 있다. 다시 말해 시인이 이 시를 통해 밝히려 한 선의禪意는 깊고 그윽한 참선수행 과정 가운데 활연대오豁然大悟를 읊조렸다고 할 수 있다. 그의 구체적인 깨달음은 色(現象)을 通해 空(本體)을 보는 체용일여體用一如의 宇宙觀을 體得한 것이다.
석양의 광반光返은 차가움을 나타내는 푸른빛의 이끼 위에 떨어짐으로써 禪이 지향하는 바 냉철함과 무소유의 가난을 상징한 ‘차가움’ 을 한껏 고양시키면서 그런 경지를 획득하도록 권유한다.
사람의 말소리와 석양빛을 끌어들여 깊은 산림 속 혼암昏暗(迷妄)을 깨부수고 독자들로
하여금 혼암보다도 훨씬 더 감동을 주는 禪的인 유암幽暗(깨달음)의 세계를 열어 준다.
이 詩는 겨우 20자에 불과하지만 소리(聲)가 있고 색(色)이 있고 경치(景)와 감정(情)이 있다.
유명 시인이자 화가이며 음악가인 시인은 소리에 대해 남달리 특수한 감수성이 있어 감정과
경치의 관계에 있어 깊은 체험이 있고 여기에 자연현상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자연의
이치에 대해 깊은 깨달음이 더해진다.
후인들은 흔히 이 시를 도연명의 시 飮酒5의 彩菊東籬下 悠然見南山(채국동리하유연견남산: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를 따다가 물끄럼이 남산을 바라보네)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고들 한다. 이는 두 사람 다 경건한 수련인이자 두 시 모두 극히 뛰어난 極品이니
그러하지 않겠는가.
청나라 시인 이영의 저술인「시법간이록詩法簡易錄」에 "사람의 말소리는 성聲이고
返景은 색色이다“ 라고 하고,
”空山을 聲과 色이 없는 것으로 묘사하지 않고 유성유색有聲有色으로 묘사해 공空을 더욱
확실히 보도록 했다. 이는 ‘장관의 파도'로 이른바 영롱척투玲瓏剔透(뺏속을 사무치는 옥소리)라 할만 하다" 고 왕유의 '녹채'를 극찬했다.
自然詩的 視覺으로 바라본 ‘녹채’는 전형적인 情景交融의 시로서 보여지는 자연 그대로를
한폭의 수묵화처럼 그려내었다. 蘇東坡는 詩中有畵 畵中有詩라 하였다.
당시 安史의亂 中에 부역사건으로 勞心焦思하고 또 후련히 그 근심을 털어낸 시인의 심사를
自然景物에 비추어 읊었다.
동양선비들의 로망은 初年에는 儒家로서의 立身揚名을 꾀하고 中年엔 道家에 沈潛하여
자연과 더불어 노니고 晩年에 가서는 佛家를 修行,來生을 준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들의 인생관의 기저에는 불려지면 出仕하고 그러지 아니하면 돌아와 隱居한다는
半隱半士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王維 또한 그러했을 것이며 그리하여 그는 安史의亂 이후 고초를 겪은 다음 出家를
결심하였으나 唐肅宗의 만류로 포기하고 出仕한 후 재판 당시에 결과를 기다리며 노심초사하다가 시원스레 벗어난 심정을 自然物을 빌어 노래하였다.
空山不見人 빈산에 사람은 보이지 않고
但聞人語響 다만 사람들 말소리만 메아리 되어 들리네
폭풍전야와 같은 긴장감 도는 적막한 분위기 속 獄에 갇혀있는 상태(空山)로
주변에 대하여 사람이 있건 없건 신경쓰지 않는 무심한(不見人) 마음이 된 상태이다.
무력하고 초연하게(但聞) 듣고있을 뿐 죄목에 대한 소문(人語)이 어떻게 흘러가더라도(響)
무엇이라 할 수 없다.
返景入深林 저무는 햇살이 깊은 숲에 들어
復照靑苔上 푸른 이끼 위로 다시 비추네
어둡고 약한 저무는 석양빛이 아니라 때가 되어 다시 돌아온 햇볕(返景 : 새로 즉위한
皇帝-唐肅宗)이 깊은 숲속에 들어와 다시 푸른 이끼(隱居하고 있는 王維) 위를 비춘다.
반란군의 강압으로 굴복하여 大燕政權下에서 벼슬을 하였으나 결백하고 충성(靑)스러운
시인이 그 죄에서 풀려나 다시 唐의 벼슬을 살게된 상황을 자연경물을 빌어 읊었다.
周易 51 重雷震卦에 따르면
上六(상육), 震索索(진삭삭), 視矍矍(시확확), 征凶(정흉). 震不于其躬(진불우기궁),
于其鄰(우기린), 无咎(무구), 婚媾有言(혼구유언).
象曰(상왈): 震索索(진삭삭),中未得也(중미득야), 雖凶无咎(수흉무구), 畏鄰戒也(외린계야).
상육은 우레가 흩어지고 흩어져서 시선을 두리번거리니 나아가면 흉하다. 우레가 자기 몸에 내려치는 게 아니라 이웃에게 친다면 허물은 없다. 혼인한 짝은 원망하는 말을 할 것이다.
「상전(象傳)」에 이르길 “우레가 흩어지고 흩어진다는 것은 아직 중도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며, 비록 흉하나 허물이 없다는 것은 이웃을 두려워하여 경계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甲辰 中秋 槐花盤谷蝸廬 槐花翁 訥齋 識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