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대사 해탈시) (생야일편부운기) (사야일편부운멸) (부운자체본무실) (생사거래역여연)
아파트 엘레베이터 공지사항에 붙어있는 글을보고서....
근심 걱정 없는사람 누군고 출세하기 싫은사람 누군고 시기 질투 없는사람 누군고 흉 허물없는 사람 누구겠소
가난하다 서러워 말고 장애를 가졌다 기죽지말고 못 배웠다 주눅들지 마소 세상살이 다 거기서 거기외다
가진거 많다 유세떨지 말고 건강하다 큰소리 치지 말고 명예 얻었다 목에 힘주지마소 세상에 영원한것은 없더이다
잠시 잠깐 다니러 온 이세상 있고 없음을 편가르지 말고 잘나고 못남을 평가하지 말고 얼기설기 어우러져 살다나 가세
다 바람같은 거라오 뭘그렇게 고민하오 만남의 기쁨이건 이별의 슬픔이건 다 한순간이오 사랑이 아무리 깊어도 산들 바람이고 오해가 아무리 커도 비 바람이라오
외로움이 아무리 지독해도 눈보라일 뿐이요 푹풍이 아무리세도 지난뒤엔 고요하듯 아무리 지극한 사연도 지난뒤엔 쓸쓸한 바람만 맴돈다오 다 바람이라오
버릴것은 버려야지 내것이 아닌것을 가지고 있으면 무엇 하리요 줄게있으면 줘야지 가지고 있으면 뭐하노
내것도 아닌데 삶도 내것이라 하지마소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일 뿐인데 묶어 둔다고 그냥 오겠소
흐르는 세월 붙잡는다고 아니 가겠소 그저 부질없은 욕심일 뿐 삶에 억눌여 허리 한번 못피고 인생계급장 이마에 붙이고 뭐그리 잘났다고 남의것 탐내시오
훤한 대낮이 있으면 까만 밤하늘도 있지않소 낮 밤이 바뀐다고 뭐 다른게있게소 살다보면 기쁜일도 슬픈일도 다 있는것 잠시 대역 연기 하는것일 뿐 슬픈 표정 짓는다하여 뭐 달라 지는게 있소 기쁜 표정 짓는다하여 모든게 기쁜것많은 아니오
내인생 네인생 뭐 별거랍니까 바람처럼 구름처럼 흐르고 불다 보면 멈추기도 하지않소 그렇게 사는 겁니다
휴정[ 休靜 ] 서산대사라는 호로 잘 알려져 있고, 사명대사의 스승으로도 알려져있다.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고 한양 수복에 공을 세웠다. 유(儒)·불(佛)·도(道)는 궁극적으로 일치한다고 주장, 삼교통합론(三敎統合論)의 기원을 이루어 놓았다 1552년(명종 7) 승과(僧科)에 급제, 대선(大選)·중덕(中德)을 거쳐 교종판사(敎宗判事)·선종판사(禪宗判事)를 겸임했으며, 보우(普雨)를 이어 봉은사(奉恩寺) 주지가 되었다. 1556년 요승 무업(無業)의 무고로 정여립(鄭汝立)의 역모에 연루되었다 하여 투옥되었다가 곧 풀려났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73세의 노구로 왕명에 따라 팔도십육종도총섭(八道十六宗都摠攝)이 되어 승병(僧兵) 1,500명을 모집, 명나라 군대와 합세, 한양 수복에 공을 세웠다. 이 공로로 국일도대선사선교도총섭 부종수교보제등계존자(國一都大禪師禪敎都摠攝扶宗樹敎普濟登階尊者)가 되었으나 1594년 유정(惟政)에게 승병을 맡기고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서 여생을 보냈다. 스님의 법명은 휴정(休靜)이고, 법호는 청허(淸虛)이며 서산(西山)이라 불리우기도 한다. 자(字)는 현응(玄應)이다. 시조(始祖)는 완산(完山) 최씨(崔氏)이고 어머니의 시조는 한남(漢南) 김씨(金氏)이다. 태종(太宗)때에 이르러 친가와 외가의 현고조(玄高祖)들이 각각 용호방(龍虎榜)에 올라 창화(昌化)로 옮겨가 살았으므로 부모들은 모두 창화를 고향으로 삼게 되었다. 그뒤 현윤(縣尹)으로 있던 외할아버지 김우(金禹)가 연산군(燕山君)에게 죄를 지어 안릉(安陵)에 귀양가서 살게 되자 스님의 부모들도 이에 연루되어 집안식구 모두 관리[館吏]가 된다. 8년이 지난 뒤 외할아버지에 대한 지가 다시 논의되어 특별히 조정으로부터 사면(赦免)을 받고 복직(復職)이 허용됐으나 그러나 마침내 관서(關西)사람[]이 되고 말았으니 운명이 아니겠는가. 아버지의 이름은 세창(世昌)이다. 나이 30에, 어떤 사람의 천거로 기자묘(箕子廟)의 조그만 관직[參奉]에 임명된 일이 있었다. 관리가 와서 떠나자고 하며 부임 날짜를 말해주자 세창은 웃으면서 한마디로 이를 거절한다. |
출처: 시간과공간 원문보기 글쓴이: 재휘애비溢空총루
첫댓글 좋은 글이네요.
생각은 항상 그렇게 하지만
막상 시비와 이해가 엇갈리면 그저...
에호~~
좋은 글 감사합니다
덕분에 이렇게 지식이 쌓이는거같아서 좋습니다
잘 읽었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