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지 [列國誌] 898
■ 3부 일통 천하 (221)
제13권 천하는 하나 되고
제24장 자객 형가(荊軻) (6)
세자 단(丹)과 헤어진 형가(荊軻)는 수레에 올라탔다."번관(樊館)으로!"
번관은 세자 단(丹)이 번어기를 위해 내린 역수가의 작은 성이다.군사훈련을 하고 있었음인가.
번어기(樊於期)는 얼굴에 땀을 흘리며 형가를 맞이했다.두 사람은 구면이다.
세자 단(丹)의 소개로 이따금씩 어울려 술을 마셨다.그런데 그 날의 형가(荊軻)의 표정은 달랐다.
번어기(樊於期)도 그것을 직감했다."무슨 일이신지요?""긴히 의논드릴 일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말씀하시지요.""지난날 장군은 진(秦)나라의 왕통을 바로잡으려다가 오히려 화(禍)를 당했으니
참으로 애통한 일이오. 더욱이 장군의 부모는 물론 가족까지 몰살당했으니 그 원한이 얼마나
깊으시겠소?""이제 장군의 목에는 황금 1천근과 1만호의 성(城)이 걸려 있소. 장군께서는 장차
이 원수를 어찌 갚으려 하시오?"형가의 말에 번어기(樊於期)는 별안간 하늘을 향해 머리를 쳐들었다.
그런 그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방울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내 진왕(秦王)의 일을 생각하면 원통함이 뼛속까지 사무칩니다. 그러나 내게 아무런 힘이 없으니
통탄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형가(荊軻)의 눈이 잠깐 동안 번뜩였다.슬그머니 가까이 다가앉았다.
"내게 연(燕)나라의 우환을 해소하고 동시에 장군의 원수도 갚을 수 있는 계책이 하나 있는데,
장군은 내 말을 들어보시겠습니까?"번어기(樊於期)는 대뜸 되물었다."그것이 무엇이오?"
"..................!""어째서 말씀을 하시지 않소?나를 못 믿어서이오?"
"그것이 아니라......... 좋습니다. 말씀드리지요."
"제가 필요한 것은 바로 장군의 목입니다. 만일 장군의 목을 선물로 가져가면 나는 쉽게 진왕(秦王)을
만날 수 있습니다.그때 왼손으로 진왕의 소매를 잡고 오른손으로 그의 가슴을 찌르면
어찌 연(燕)나라의 근심을 덜어주고 장군의 원통함을 갚아드리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장군께서는 저의 이 계책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에 대한 번어기(樊於期)의 대답은 어떠했을까.역시 <사기(史記)>에서 그 답을 들어보자.
- 형가의 말을 들은 번어기(樊於期)는 한쪽 소매를 걷어올려 어깨를 드러냈다.
그러고는 팔을 세차게 휘두르며 외쳤다."그것은 내가 밤낮으로 이를 갈며 가슴 태우던 일이었소.
이제야 비로소 가르침을 받게 되었구려."그러고는 칼을 뽑아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대단한 번어기(樊於期)다.아니 대단한 형가(荊軻)다.
대체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열정에 휘말리게 했을까. 이것이 바로 의협(義俠)이라는 것인가.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번어기(樊於期)는 금방 죽지 않았던 모양이다.
몸을 뒤틀며 몹시 고통스러워했다.이를 보고 있던 형가(荊軻)가 자리에서 일어나 칼로
번어기의 목을 내리쳤다.번어기(樊於期)의 목이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그제야 번어기의 몸은 움직임을 멈췄다."......................."
형가(荊軻)는 한참 동안 번어기의 목을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
번어기의 부하 중 하나가 세자 단(丹)에게 이 일을 보고했다.세자 단은 놀라 번관(樊館)으로 달려왔다.
목이 끊어져 있는 번어기(樊於期)의 몸을 끌어안고 통곡했다."아아, 어지러운 시대여!"
친히 번어기의 목을 오동나무 상자 안에 넣어 형가에게 내밀었다.
목함 위에는 두루마리 하나가 얹혀져 있었다.형가(荊軻)는 아무 말없이 세자 단(丹)이 내민
목함을 받았다.위에 놓인 두루마리를 펼쳤다.독항(督亢)의 지도였다.
형가(荊軻)는 세자 단을 쳐다보았다.세자 단(丹)도 형가를 향해 시선을 고정시켰다.
- 자, 이제 떠나시오.그 눈빛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두루마리 지도 안에는 또 하나의 작은 물건이 들어 있었다.비수(匕首)였다.형가(荊軻)가 물었다.
"이것이 바로 서부인(徐夫人)의 비수입니까?"- 서부인의 비수.
칼 이름이다.
서부인(徐夫人)은 조나라 사람으로 단도(短刀) 제작의 명인으로 여자가 아니라 남자다.
부인(夫人)은 공인(工人)의 오자(誤字)라는 설도 있다.세자 단(丹)은 진작부터 서부인에게 비수의
제작을 의뢰했다.물론 진왕 정(政)을 살해하러 갈 형가에게 내주기 위해서였다.
황금 1백 근을 서부인에게 사례금으로 주었고, 그 칼로 독을 묻혀 사형수를 상대로 실험까지 해보았다.
칼끝이 닿자 핏방울이 비쳤고, 피가 채 흘러내리기 전에 그 사형수는 죽었다.
이로써 모든 준비는 완료되었다.이제 그 비수(匕首)를 독항의 지도 안에 숨겨 진왕 정(政) 앞으로 가
번어기의 목과 지도를 바치는 척하다가 찔러죽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899편에 계속
열국지 [列國誌] 899
■ 3부 일통 천하 (222)
제13권 천하는 하나 되고
제24장 자객 형가(荊軻) (7)
세자 단(丹)으로부터 번어기(樊於期)의 목과 서부인의 비수(匕首)와 독항(督亢)의 지도를 들고도
형가(荊軻)는 여전히 출발하지 않았다.'또 무엇인가?'
형가(荊軻)를 바라보는 세자 단(丹)의 눈빛은 이제 의심으로 가득찼다.
형가(荊軻)가 이런 마음을 눈치채고 먼저 말했다."기다리는 사람이 오질 않는군요. 그는 검술의 대가입니다.
그와 함께 가야 능히 성공할 수 있습니다."그랬다.형가(荊軻)는 전광에게서 이번 일을 의뢰받았을 때부터
사람을 보내 '그 누군가' 를 찾아오게 했던 것이다.'그 누군가' 가 누구인지는 사서(史書)에는 나와 있지 않다.
<열국지> 의 저자는 그 사람을 개섭(蓋聶)이라고 했지만, 앞에 소개한 일화대로라면 그것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형가(荊軻)는 개섭의 검술론에 실망하고 말없이 떠나오질 않았던가.
더욱이 개섭(蓋聶)은 의협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그를 이번 일의 파트너로 삼을 리 없었다.
여기서는 그냥 '그 누군가' 로 하겠다.세자 단(丹)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듯 채근했다.
"시간이 급박하오. 그대가 기다리는 사람이 언제 올지 알 수 없는데, 어찌 마냥 기다릴 수 있겠소?"
"형경(荊卿)께서 만일 다른 뜻이 없으시다면 내 문하 중에 진무양(秦舞陽)이라는 자가 있는데,
그를 데려가는 것이 어떻겠소?"이에 대해 형가(荊軻)는 버럭 화를 냈다.
진무양 따위로는 어림도 없다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진무양(秦舞陽)은 세자 단의 문객 중에 가장
용맹스럽다는 용사였다.이미 13세 때 사람을 죽인 경력의 소유자다.<사기(史記)> 에는 '진무양(秦舞陽)' 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전국책(戰國策)> 에서는 '진무양(秦武陽)' 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형가(荊軻)의 눈에 진무양은 풋내기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진무양(秦舞陽)을 데려가면 이번 일은 실패합니다. 비수 한 자루에 의존하여 흉포하기 짝이 없는
진왕을 죽이는 일입니다.""그놈은 진왕 앞에 서기만 해도 오줌을 쌀 놈입니다. 하지만 제가 기다리는 벗은
그렇질 않습니다. 그 벗만이 가히 나와 함께 갈 만한 사람입니다."
형가의 이런 대답에 세자 단(丹)은 무척 낙담했던 모양이다.형가(荊軻)는 이내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세자께서 더 이상 기다리실 수 없다고 하니 진무양(秦舞陽)이라도 데리고 떠나겠습니다."
이리하여 형가(荊軻)는 마침내 운명의 길을 떠나게 되었다.공식적인 외교 절차를 밟았다.
형가(荊軻)는 연나라 정사(正使)가 되고 진무양은 부사(副使)가 되었다.
독항(督亢)의 지도와 번어기(樊於期)의 목이 담긴 목함을 바치는 것이 이번 함양행의 명분이었다.
그에 따른 국서(國書)도 준비가 되었다.그들이 진(秦)나라로 떠나는 날이 되었다.
세자 단(丹)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 흰 옷에 흰 갓을 쓰고 역수(易水) 강변으로 나가 형가
일행을 전송했다.흰 옷은 곧 상복이다.죽음의 길이었다.
아무도 그들이 살아서 돌아오리라고는 생각지 않은 것이다.형가(荊軻) 자신도 그런 각오였다.
이때의 역수 강변의 이별 장면은 너무나 유명하다.먼저 도조신(道祖神)에게 제사를 지냈다.
흙을 쌓아 제단을 만들고 제물을 바쳤다.이어 송별연을 베풀어주었다.모두들 술을 한잔씩 마셨다.
형가(荊軻)의 둘도 없는 친구 고점리도 그 곳에 나와 있었다.고점리(高漸離)는 개도살업자이자
축(筑)의 명인이었다.당연하다는 듯 형가를 위해 축을 탔다.변치(變徵)의 가락이었다.
변치란 고대 중국의 음률 중 하나로 그 소리가 처량하고 구슬프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형가 또한 이 곡조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형가(荊軻)의 노래 솜씨는
뛰어났다.청아한 소리가 역수 강변에 울려퍼졌다.
바람 소리 쓸쓸하고
역수(易水)는 차갑구나.
장사(壯士) 한 번 떠나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리.
이른바 <역수가(易水歌)> 로, 애달프고 참담했다.
노래가 울려퍼지자 강변에 모여 있던 모든 사람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고점리(高漸離)는 더 이상 비애감을 이길 수 없었음인가.문득 축(筑)소리가 끊어졌다.
축을 팽개친 채 오열하듯 어깨를 떨고 있었다.형가(荊軻)는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았다고 생각했음인지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호랑이 굴이여
이무기의 소굴이여!
하늘을 우러러
한 소리 외치니
흰 무지개 이루었도다!
이번 노래는 우성(羽聲)의 곡조였다.소리가 높고 격앙강개한 음조였다.
어찌나 힘차고 격렬했던지 사람들은 모두 두 눈을 부릅떴고, 머리카락을 곤두세웠다.
노래를 마친 형가(荊軻)는 어느 순간 튀어오르듯 자리에서 일어나 수레에 올라탔다.
진무양(秦舞陽)이 그 뒤를 따랐다.형가는 채찍을 들어 말등을 후려쳤다.히히힝!수레는 달리기 시작했다.
세자 단(丹)과 고점리(高漸離)는 언덕 위에 올라가 떠나가는 그들을 지켜보았다.'.................!'
형가(荊軻)는 끝내 뒤 한 번 돌아보지 않았다.그렇게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900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