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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ght mare-마계도시
두 번째 이야기 : 사라지는 아이들
1-고모
김상인씨의 일이 무사히 해결되고 세열과 승우도 건강을 되찾았다. 하지만 진이는 자신의
의지는 아니었지만 여러 사람을 다치게 하고 수많은 영혼들을 소멸시켜 버린 일 때문에 그
후로도 계속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만약 다시 한번 그 존재가 눈을 뜬다면 어떻게 될지는 자신도 장담하지 못했다. 자칫하다
간 그 존재에게 완전히 지배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어제 세열에게 잠시 자신이 자란 절에 다녀온다는 쪽지 한 장만 남겨둔 채 무작정 뛰쳐나
오긴 했지만 막상 나오고 보니 갈곳 하나 없었다. 절에 가려해도 이미 그런 절은 남아 있지
않았다.
"휴, 무작정 뛰쳐나오긴 했는데 어떻게 한다..."
진이는 집을 뛰쳐나와 노선번호도 확인하지 않고 지나가는 버스를 탔기에 현재 자신이 어
디로 가고 있는 지도 몰랐다. 새벽 첫차인지 버스 안에는 자신과 운전기사를 포함해 6명의
사람이 타고 있었다, 대부분 잠이 덜 깨었는지 앉은 채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아마도 아
침출근 길이거나 밤새 일한 다음 집으로 향하는 길이였는지 피곤한 모양이었다. 그 중에 가
장 눈에 띄는 사람은 다 떨어진 누더기 승복을 입은 스님이었는데 몇 일을 씻지 안았는지
얼굴에 때가 덕지덕지 붙어있었고 머리에선 기름기가 번들거렸다. 거기다 맨 뒷좌석에 자신
의 안방이라도 되는 듯 퍼질러져 신나게 코를 골아 대며 자고있었다.
확 트인 왕복12차선을 신나게 질주하다 보니 눈에 익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월드
컵 기념공원이였다. 하지만 버스는 시지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좌회전을 했고 월드컵 기념공
원은 점점 눈에서 멀어져 갔다.
버스가 들어선 길은 비포장 도로였는지 쉴 세 없이 덜컹거렸고 그 바람에 맨 뒷좌석의 스
님이 굴러 떨어지는 소동이 일어났지만 정작 당사자인 스님은 아무 일 아니라는 듯이 제자
리로 돌아가 다시 잠을 청했다. 버스가 들어선 곳은 군부대 옆으로 난 군 전용 도로 같았는
데 오른쪽에는 제5군수지원사령부가 있었고 왼쪽으로는 군인아파트가 들어서 있었다.
조금을 더 들어가서 버스가 멈춘 곳은 고모라는 작은 마을이였다. 약 30여 가구가 들어선
고모란 마을은 군 지대가 근처에 위치해서 인지 개발이 별로 되지 않아 바로 옆에 위치한
시지지구에 비하면 촌이라 불러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마을 중간에 위치한 작은 진입로 옆
으로 실개천이 흐르고 있었고 마을 북쪽으로는 금호강이 흘렀다. 거기다 남으로는 군부대가
있고 동,서로 작은 산이 위치해 완전히 고립된 마을이라 할 수 있었다. 유일하게 밖과 연결
된 교통수단이라고는 고모역이라는 간이역과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작은 진입로
였는데 기차는 하루 몇 번밖에 지나가지 않았고 버스는 2시간마다 한 대씩 있었다.
정류장에 도착하자 버스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갔고 스님과 진이 두 명만 남았
다. 하지만 버스기사가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스님도 꿈에서 잠에서 깨었다.
입가에 흥건히 묻어있는 침을 닦으며 일어난 스님은 아직 잠이 덜 깨었는지 휘청거리며
문으로 걸어갔다. 버스에서 내리려던 스님은 진이를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이상하다는 듯
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
"허참, 몸뚱이는 하나인데 속에 있는 영혼은 두 개라 거 신기한 꼬마녀석 다 보겠군..."
그 말만 남긴 채 스님은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기왕 이런 곳까지 온 김에 마을 구경이라도 하기 위해 진이는 버스에서 내린 후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포도가 이 마을의 특산품인지 마을 외각에 포도밭이 많이 있었고 다른 곳과
는 달리 이곳의 산에는 소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었다. 한참을 돌아다녀 다리가 아파진 진이
는 다리도 쉴 겸해서 마을 뒷산에 올라 마을 전체를 둘러보았다.
"이상하네...마을에는 넘쳐 나도록 음기(陰氣)가 충만한데 비해 이 산만은 양기(陽氣)로 넘
쳐 나잖아..."
분명 좀 전까지 마을을 거닐 때만 해도 불쾌하고 음한 기운들이 가득해 저절도 기분이 나
빠졌는데 이 산으로 올라오자 기분이 상쾌해 지면서 몸 전체로 양의 기운이 차 올랐다.
"이산에 먼가 있을 듯한데... 어디 한번 찾아봐야겠다."
이미 전에 있었던 일들은 진이의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다. 지금 머릿속에 진이를 지배하
고 있는 것은 이 마을의 신기한 현상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이었다.
하지만 호기심도 허기를 이기진 못했는지 뒤에 짊어진 가방에서 빵을 꺼내 입에 문 다음
에서야 산을 살피기 시작했다. 산에 심어진 소나무는 하나 같이 수령이 오래 됐는지 높이도
높이거니와 둘래 길이도 상당해 최소 100년은 넘은 것 같았다. 산에서도 가장 양기가 충만
한 곳을 찾아 계속해서 산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산 자체가 그리 큰 편이 아니라 얼마가지 않아 찾을 수 있었는데 양기의 중심지는 다름
아닌 산중턱에 위치한 무덤이었다. 생전에 꽤나 이름 있는 사람이었는지 상당한 규모였는데
놀라운 것은 묘지를 세울 때 인위적으로 마을의 모든 양기가 묘지로 모이게 했는지 산 전체
를 거쳐 일종의 진법 같은 것이 묘지를 중심을 펼쳐져 있었다. 아마 후손들의 번창을 위해
능력있는 풍수사(風水士)를 시켜 산세(山勢), 지세(地勢),수세(水勢) 모두를 인위적으로 조성
한 것 같았다.
"나원! 아무리 후손들을 위한 거라지만 마을 전체의 양기를 이렇게 끌어 모으다니...하여튼
돈 좀 있는 사람들이란..."
마을의 불균형한 기운의 원인을 알게된 진이는 한시도 더 산에 있을 마음이 없어졌다. 자
신들만의 이기심으로 마을의 기운을 엉망으로 만든 사람에게 맘속으로 욕을 해대며 산을 내
려 올 때 멀리서 경찰차의 사이렌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지? 헤헷, 심심한데 잘됐다."
직감적으로 사건이 발생했다고 생각한 진이는 소리의 근원지를 따라 바쁘게 발걸음을 옮
겼다. 도저히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의 발놀림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속도로 마을로 내려
온 진이는 금방 사이렌소리의 근원지를 찾을 수 있었다.
산 바로 밑에 위치한 마을에서도 얼마 되지 않는 양옥집에 경찰차가 머물러 있었다. 집주
인으로 보이는 남자와 부인이 경찰관과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집 주위에 몰려들은 사람 중
에 아침에 버스에서 보았던 스님도 있었다.
"그러니까 어제 밤 8시경에 친구 집으로 숙제하러 나간 이후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 말씀
이시지요?"
"네..."
남편은 힘없는 말투로 대답을 했고 부인인 듯한 여자는 아무 말 없이 울고만 있었다. 두
사람의 마음이 진이에게도 느껴져 왔는데 자식이 실종된 것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 외에 알
수 없는 공포마저 느껴졌다. 이상한 것은 주위에 나와있는 마을주민 모두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도대체 이게 몇 번째래."
"그러게 말이야. 이번이 벌써 4명째지 아마."
"마을에 저주가 내린 것이 분명해...그렇지 않고서야 멀쩡한 애들이 그렇게 감쪽 같이 사
라질 수가 있겠어?"
동네 아주머니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최근에 아이들이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난 것 같았는
데 1-2번이 아닌 듯 했다. 좀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독심술(讀心術)의 일종인 밀교 술법
심성(心性)을 사용하려 했다.
"허허, 함부로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은 옳지 않단다."
나쁜 짓을 하다 걸린 아이처럼 깜짝 놀란 진이는 그 자리에 경직되어 버렸다. 고갤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했다.
뜻밖에도 목소리의 주인공은 완전히 거지꼴을 하고 있던 그 스님이었다. 유난히도 큰손을
진이의 두 어깨에 올리며 나타난 그 스님은 행색은 비록 아니 완전히 거지였지만 건장한 풍
체와 풍겨 나오는 기운은 범상치가 않았다.
"뭘 그렇게 놀라냐? 그리고 너 같은 꼬마가 돌아다니기에는 이 동네는 너무 위험하단다.
어서 돌아가는 것이 좋아."
"......"
진이에게 씨익하고 웃어 보이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휘파람을 불며 유유히 사라
져버렸다.
"도대체 누구지? 보통 스님 같지는 않았는데."
자신이 술법을 쓰는 것을 저지하던 사람도 사라졌지만 술법을 사용해 사람의 마음을 읽으
려던 마음은 싹 사라져 버렸다.
"뭐, 마음을 읽어야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이미 가출한 이유는 모두 잊어버린 진이었다.
해설편
고모:정확한 명칭은 행정상 대구시 수성구 고모동으로 불리운다. 오래된 노래인 비 내리는 고모령의 무대가 된 곳으로 실제로도 제5군수지원사령부가 마을 앞에 위치 한데다 비교적 구석진 곳에 위치해 발전이 덜되었다. 거기다 진입로도 버스한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다.
이곳을 찾아가려면 910번 시지방면 일반버스를 타야 되는데 거의 1-2시간마다 1대있는
고모,가창 방면 버스를 타야지 갈 수 있다.
풍수사(風水士): 산세(山勢) ·지세(地勢) ·수세(水勢) 등을 판단하여 이것을 인간의 길흉화
복(吉凶禍福)에 연결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
풍수란 약칭 풍수설 ·지리설이라고도 한다. 도성(都城) ·사찰(寺刹) ·주거(住居) ·분묘
(墳墓) 등을 축조(築造)하는 데 있어 재화(災禍)를 물리치고 행복을 가져오는 지상(地相)을
판단하려는 이론으로, 이것을 감여(堪輿:堪은 天道, 輿는 地道), 또는 지리(地理)라고도 한다.
또 이것을 연구하는 사람을 풍수가(風水家) 또는 풍수선생 ·감여가(堪輿家) ·지리가(地理
家) ·음양가(陰陽家) 등으로 부른다.
그들은 방위(方位)를 청룡(靑龍:東) ·주작(朱雀:南) ·백호(白虎:西) ·현무(玄武:北)의 4가지
로 나누어 모든 산천(山川) ·당우(堂宇)는 이들 4개의 동물을 상징하는 것으로 간주하였고,
어느 것을 주로 하는가는 그 장소나 풍수에 따라 다르게 된다. 그리고 땅 속에 흐르고 있는
정기(正氣)가 물에 의하여 방해되거나 바람에 의하여 흩어지지 않는 장소를 산천의 형세에
따라 선택하여 주거(住居)를 짓거나 조상의 묘를 쓰면 자손은 그 정기를 받아 부귀복수(富
貴福壽)를 누리게 된다고 믿었다.
이와 같이 풍수의 자연현상과 그 변화가 인간생활의 행복에 깊은 관계가 있다는 생각은 이
미 중국의 전국시대(戰國時代) 말기에 시작되어, 그것이 음양오행의 사상이나 참위설(讖緯
說)과 혼합되어 전한(前漢) 말부터 후한(後漢)에 걸쳐 인간의 운명이나 화복에 관한 각종 예
언설을 만들어냈고, 그것은 다시 초기 도교(道敎)의 성립에 따라 더욱 체계화되었다.
한국 문헌에서 풍수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유사》의 탈해왕(脫解王)에 관한 대목에
왕이 등극하기 전 호공(瓠公)으로 있을 때, 산에 올라 현월형(弦月形)의 택지(宅地)를 발견
하고 속임수를 써서 그 택지를 빼앗아 후에 왕이 되었다는 내용이 있다. 또 백제가 반월형
(半月形)의 부여(扶餘)를 도성(都城)으로 삼은 것도, 고구려가 평양을 도읍으로 삼은 것도
모두 풍수사상에 의한 것이다.
삼국시대에 도입된 풍수사상은 신라 말기부터 활발하여져 고려시대에 전성을 이루어 조정과
민간에 널리 보급되었다. 특히 신라 말기에는 도선(道詵)과 같은 풍수대가가 나왔으며, 그는
중국에서 발달한 참위설을 골자로 하여 지리쇠왕설(地理衰旺說) ·산천순역설(山川順逆說)
및 비보설(裨補說) 등을 주장하였다. 그는, 지리는 곳에 따라 쇠왕과 순역이 있으므로 왕지
(旺地)와 순지(順地)를 택하여 거주할 것과 쇠지(衰地)와 역지(逆地)는 이것을 비보(裨補:도
와서 더하다)할 것이라고 말한 일종의 비기도참서( 記圖讖書)를 남겼다.
그 후 고려 때에 성행한 《도선비기(道詵 記)》 등은 그 전체를 도선이 지은 것인지는 분명
치 않으나, 그의 사상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같이 비기라 일컬어지는 예언서가
그의 사후 세상에 유전(流轉)되어 민심을 현혹시킨 일은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그 사
례가 많다. 고려 태조도 도선의 설을 믿은 것이 분명하여, 그가 자손을 경계한 《훈요십조
(訓要十條)》 중에서, 절을 세울 때는 반드시 산수의 순역(順逆)을 점쳐서 지덕(地德)을 손
박(損薄)하지 말도록 유훈(遺訓)하였다.
개경(開京:개성)도 풍수상의 명당(明堂)이라 하여 《삼국사기(三國史記)》 <궁예전(弓裔
傳)>, 《고려사(高麗史)》 <태조세가(太祖世家)>, 최자(崔滋)의 《삼도부(三都賦)》, 이중환
(李重煥)의 《팔역지(八域志)》, 송나라 서긍(徐兢)의 《고려도경(高麗圖經)》, 명나라 동월
(董越)의 《조선부(朝鮮賦)》 등에도 개경의 풍수를 찬양하였다. 즉 개경은 장풍득수(藏風得
水)의 형국으로 내기불설(內氣不洩)의 명당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첩첩으로 산이 둘러싸여
있어 국면(局面)이 넓지 못하고 또 물이 전부 중앙으로 모여들어 수덕(水德)이 순조롭지 못
하다는 것이며, 이것을 비보하기 위하여 많은 사탑(寺塔)을 세운 것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한양으로 도읍을 정한 것도 그 태반의 이유가 풍수지리설에 의
한 것이다. 즉 개경은 이미 지기(地氣)가 다해 왕업(王業)이 길지 못할 것이라는 풍수가들의
의견에 따라 구세력(舊勢力)의 본거지인 개경을 버리고 신 왕조의 면목을 일신하기 위해 천
도를 단행하였다. 그 밖에도 《정감록(鄭鑑錄)》을 믿고 계룡산이 서울이 된다는 등 실로 풍
수지리설이 국가와 민간에게 끼친 영향은 크다. 오늘날에도 민간에서는 풍수설을 좇아 좌청
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 운운하며 묘(墓)를 잘 써야 자손이 복을 받는다고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다.
독심술(讀心術): 【초심리학에서의 독심술】 감각기관에 의존하지 않고 사물을 인지(認知)하
거나, 남의 마음을 아는 것을 흔히 육감(六感)이라고 하는데, 초심리학에서는 원감(遠感) 또
는 초감각적 지각(ESP)이라고 한다. 원감은 두 가지로 나누는데, 감각기관에 의존하지 않고
사물을 인지하는 원격인지(遠隔認知) 또는 투시(透視)와, 감각기관에 의존하지 않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을 하는 원격감응(遠隔感應:telepathy)이 있다. 독심술은 이 원격감응의
일종으로 되었다. 초심리학은 이와 같은 신비적이고 특이한 심리현상을 실험적으로 연구 하
는 학문으로, 독심술도 두 사람을 격리하고 한쪽이 마음속에 생각한 것을 다른 쪽이 알아맞
히는 실험을 하고 있다. 초심리학의 실험방법에 관해서는 현재까지도 많은 비판이 있으나,
연구의 여지가 있다.
【연예에서의 독심술】 이것은 미국과 유럽에서 마술사들이 많이 하고 있다. 연기자 모르게
어떤 물건을 감추어 놓고 손님 한 사람을 나오게 하여 물건이 감추어진 곳을 강렬하게 마음
속으로 생각하게 한다. 연기자는 이 손님의 손을 잡든지 나무막대나 쇠사슬 양 끝을 두 사
람이 들고 감춘 물건을 알아맞힌다. 이 독심술의 비밀은 손님이 물건 곁으로 오면 ‘여기
다’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으로, 손님의 관념(觀念)이 근육의 움직임으로 바뀌는 이른바 관
념 운동에 의하여 알아맞히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미세한 움직임이지만, 연습의 반복에 의
해 알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