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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道詵)이 춤춘 길지(吉地)...수도암(修道庵)
전 국민을 걷기열풍에 빠지게한 제주 올레길에 이어 이제는 각 지역마다 특색을 지닌 이름으로 탄생한 길 위에 사람들의 발걸
음이 분주하다. 경북 김천의 '모티길'도 그 중의 하나다. '모티'는 '모퉁이'의 경상도 사투리다. 그만큼 구비구비 모퉁이가 많은
길을 느리게 걸어봄으로써 삶의 여유를 맛볼 수 있다는 길이다. 이 길은 어느 사찰의 사하촌(寺下村)에서 시작된다.
약 1,150년 전, 33살의 한 젊은 승려가 '모티길' 사하촌의 절터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다. 무엇이 그리 좋은 일이 있는지
그의 춤은 사흘 밤낮으로 계속되었다.
그는 다름아닌 신라말에서 조선시대에 걸쳐 조정과 민간에 생활의 가치관으로 자리잡은 '풍수지리도참설(風水地理圖讖說)'을
주장한 풍수지리의 대가 도선국사(道詵國師)였다.
도선(道詵)이 저토록 좋아라 한 이유는 그가 그동안 만난 많은 명당 중에서도 손꼽히는 명당터를 발견한 환희심때문이었다.
신라 헌안왕 3년(859)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김천 청암사의 터를 닦고는 수도산을 오르며 그 자신이 수도할 곳을 찾던 중
지금의 수도암(修道庵) 터를 발견하고 기쁨에 겨워 춤을 춘 것이다.
▲ 수도암 입구
수도암에는 일주문(一柱門)이 없다. 암자길을 오르다보면 그간에 보던 것과는 크기와 수종이 확연히 다른 곧은 전나무
숲을 만난다. 장승처럼 서 있는 이 나무들이 속세와 경계를 구분짓는 일주문이다.
▲ 대적광전 오르는 계단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 해발 1,317m 불령산(佛靈山), 일명 수도산 정상부근 1,080m에 위치한 수도암(修道庵)
은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로 해발 1,244m에 자리한 설악산 봉정암과 해발 880m에 자리한 지리산
칠불암과 더불어 예로부터 이름난 수행처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 관음전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수도 도량으로 수도암(修道庵)을 창건하였다고 전할 뿐, 고려시대의 사적(寺蹟)은 전해오는 것이 없
다. 조선시대에는 인조 27년(1649)에 벽암각성(碧巖覺性)이 중창했으며, 동학농민운동 당시 암자의 일부가 소실된 것을 광
무 3년(1899)에 포응이 재건했다 한다.
▲ 관음전
그 뒤 6·25전쟁 당시 빨치산 소탕 작전으로 일부 건물을 제외하고 소실되어 1960년대까지 대적광전, 약사전, 정각암, 요사채
등 4동의 건물에서 3, 4명의 스님이 수행하고 있었을 뿐인데,1969년부터 15여 년 동안 현재 조계종 종정이신 법전(法傳)스님
께서 주지로 계시면서 크게 중수하여 현재의 가람으로 변모하였다
▲ 관음전
수도암은 크게 두 구역으로 구분된다. 관음전 마당에서 대적광전을 오르는 계단에서 보듯이 표고차가 상당한 두 구역은
높은 곳에 위치한 예불및 참선공간과 낮은 곳의 생활공간이다.
특이한 것은 낮은 관음전 구역에 있는 전각들의 지붕은 모두 청기와로 이었다는 점이다.
▲ 관음전 뜰 앞의 감로수
수도암은 해발 1,000m가 넘는 고지대임에도 사시사철 물이 마를 날이 없다.
이 물이 있었기에 수행자와 신도들에게 좋은 정진처요 기도처가 되었다.
▲ 약광전 오르는계단
도선국사가 수도암을 창건한 뒤 ‘앞으로 무수한 수행자가 여기서 나올 것’이라며 예언한 탓인지, 수도암은 우리나라에서 손꼽
히는 선원이요 이름난 수행처로 명성을 날렸다.
▲ 대적광전
수도암은 한국불교를 이끈 여러 큰스님들이 수행 정진하였으며, 특히 한국불교의 중흥조인 경허스님, 조계종 종정을 지내고
상원사에서 좌탈입망(座脫入亡)하신 한암스님, 송광사 조계총림 방장을 지내신 보성스님, 조계종 총무원장을 역임하고 직지
사 조실로 계셨던 관응스님, 현재 조계종 종정이신 법전스님 등 여러 큰스님께서 수도암에서 수행 정진하셨다.
▲ 대적광전, 석탑과 석등
▲ 대적광전
수도암의 중심전각인 대적광전(大寂光殿)은 맞배지붕에 앞면 3칸, 옆면 2칸의 규모로 지난 1969년에 지어진 전각이다.
대적광전 안에는 창건 당시 조성되어 보물 제307호로 봉안된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을 봉안하였다.
▲ 수도암의 석탑과 석등
보물 제297호로 지정된 수도암 삼층석탑은 대적광전을 중심으로 하여 동서(東西)로 서 있는 쌍탑으로, 신라 헌강
왕 3년(859)에 도선국사가 세웠다는 설이 전해온다.
수도암은 마치 옥녀(玉女)가 베 짜는 형국을 하고 있는 명당 터로 베틀의 두 기둥을 상징하는 뜻으로 두 탑을 세웠
다고 한다.
있어 단탑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앞뜰이 좁아서 탑과 법당과의 거리가 가깝지만 탑의 위치가 높은 곳에 위치한 관계로 운무(雲霧)가 그득한 날에는
구름 위에 탑이 서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고 한다.
▲ 대적광전 앞의 서탑(西塔)
서탑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것을 볼 때 동탑보다 먼저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층 몸돌에 비해 2층 몸돌이 크게 줄었으나 3층은 2층과 비슷하다.
1층 몸돌의 각 모서리에는 기둥만 새겨져 있고, 그 사이에 여래좌상이 조각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옥개석은 동탑보다 얇고 넓으며 밑받침은 5단이며 높이는 425㎝이다.
▲ 대적광전의 비로자나불좌상
보물 제307호로 지정된 높이 2.51m의 통일신라시대 석조불상으로 진리의 세계를 두루 통솔한다는 의미를 지닌 비로자나불을
형상화한 것이다. 민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작지만 분명하게 표현되었다.
얼굴은 네모나며 풍만하고, 긴 눈·작은 입·평평한 콧잔등에서 위엄있는 모습을 살펴볼 수가 있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쳐 입고
있으며 옷주름은 느슨하고 형식적으로 표현되었다.
손은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데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였으며 단정하고 강인한 느낌을 준다. 거구의 불상이면
서도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특이한 손모양과 함께 당시 시대양식의 반영인 것 같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는 크게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래쪽은 연꽃을 엎어 놓은 모양으로 8각형을 이루고 있다.
맨 위에는 반원형에 가까운 연꽃이 2줄로 교차되어 있고, 앞면에 3마리의 사자상과 용머리 같은 것이 새겨져 있어 독특하다.
전체적으로 정제되고 균형잡힌 모습을 나타내는데, 위축되고 긴장감이 감소하며 탄력이 줄어든 점으로 볼 때 신라말에 만든
작품으로 추정된다. (daum 자료)
▲ 대적광전의 비로자나불좌상
도선 국사가 이 부처님을 조성할 때의 일이다. 수도암 터에 어울리는 탑과 모든 것을 조성했으나 석불을 만들 만한 석재가 없
었다. 산 너머 거창 땅 부처골에서 큰 돌을 발견하고 다듬기 시작했다. 드디어 칠 척이 넘는 거대한 부처님을 조성했으나 수도
암까지 옮길 일이 막막했다. 이에 모든 대중들이 지극정성으로 7일 기도를 올리는데 마지막 날 수염이 하얀 노스님이 나타나
부처님을 옮겨준다며 큰 석불을 등에 업고 나는 듯이 산을 오르고 넘어가는 것이었다.
불러 놓고 “부처님을 모시고 오는데 칡덩굴에 걸려 그만 부처님께 큰 죄를 지을 뻔하였다. 앞으로 다시는 이 절 주위에 칡이
자라지 못하게 하라.”고 호통을 치고는 부처님을 수도암에 모셔놓고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그때문인지 이곳 수도암 주위에서는 지금까지 칡덩굴을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daum 자료사진)
▲ 약광전과 석등
▲ 약광전
▲ 약광전과 석탑
▲ 약광전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인 약광전은 대적광전과 함께 1969년에 건축된 전각이며 보물 제296호로 지정된
석불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 약광전 앞의 동탑(東塔)
동탑은 단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으로 기단의 각 면에는 모서리기둥을 얕게 새겼다.
탑신부에서는 1층 탑신이 위가 좁고 밑이 넓은 독특한 형태를 보이고 있는데, 각 면에는 사각형의 감실(龕室)을
두고 그 안에 여래좌상을 도드라지게 새겼다.
2층과 3층의 탑신에는 각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우주(隅柱)를 새겨 놓았다.
옥개석은 얇고 넓으며, 받침은 4단으로 구성되어 있고 탑의 높이는 376㎝이다.
▲ 약광전의 석불좌상
도선국사가 사찰의 창건당시에 조성했다고 전하는 약광전 석불좌상은 보물 제296호로 지정되었다.
이 불상은 머리에 관을 쓰고 있고 좁은 이마의 중앙에 커다란 백호(白毫)가 박혀 있다. 얼굴은 사각형에 가까운 풍
만한 모습으로 온화하면서도 중후한 느낌을 주며 목에는 세 줄의 삼도(三道)가 나타나 있다.
몸에는 선으로 표현된 법의를 걸치고 있으며, 좁은 어깨는 굴곡이 없이 단정하게 표현되어 다소 경직된 느낌을 준
다. 머리에 관을 쓰고 있어 보살(菩薩)처럼 보이지만, 전반적인 형태나 손가짐으로 볼 때 여래상에 가깝다.
두손을 무릎위에 나란히 모아 보주를 들고 전각에 모셔져 있는 것으로 보아 약사여래(藥師如來)로 보인다.
불상은 전체적으로 경직된 신체에 도식적인 옷주름이 표현되고 광배(光背)나 앉아 있는 모습이 형식화되어 있는 것
으로 보아 10세기경 고려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daum 자료)
▲ 석주(石柱)
약광전 앞에는 한눈에도 오래되어 보이는 사각의 돌기둥이 하나 서 있다.
세월의 풍상에 마모가 되긴 했으나 '창주도선국사(刱主道詵國師)'라 새겨진 글씨를 알아보는데는 어려움이 없다.
석주 왼편 너머로 법보종찰 해인사를 품은 가야산 상왕봉이 구름처럼 아스라히 떠있다.
도선국사는 가야산이 보이는 이곳에서 명당터를 찾은 기쁨의 춤을 원없이 추었을 것이다.
▲ 나한전
한 노스님이 수도암에서 수행을 하고 있었다. 스님에게는 한 가지 고민거리가 있었으니, 거대한 나무가 대적광전에 걸쳐있어
비가 오면 빗물이 새고 늘 그늘이 진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노스님이 홀로 수행정진을 하고 있는데 법당 밖에서 “영차,
영차”하는 소리가 나더니 이윽고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스님이 나와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골치거리였던 거대한 나무가 뽑혀 한 쪽에 치워져 있었다. 스님이 이상하다 생각하여
나한전에 가보니, 16나한상의 어깨와 손에 나무껍질과 나뭇잎이 묻어있었다.
그제서야 스님은 나한님들이 은덕을 배풀었음을 알게 되었고, 나한전에서 정성껏 예불을 올렸다고 한다.
그 후부터 수도암의 영험력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고 전한다. (daum 자료)
<수도암의 늦가을 >
내가 수도암을 처음 찾은 때는 어느해 늦은 가을이었다. 말이 가을이지 산아래보다 한달 가량 계절의 순환이 빠른 산사는
이미 쌀쌀한 겨울날씨였다. 수도암 관음전 마당의 남쪽에는 마치 너와집처럼 보이는 목재로 지은 창고가 있다.
그곳에서 운동복 차림의 이십대의 청년이 빗자루를 들고 나오더니 마당을 쓸기 시작했다.
얼마가 지난 후 하산길에 다시 관음전으로 내려오는데 아까의 청년과 서너명의 어른들이 툇마루에 앉아 대화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중 한 여자분은 청년의 어깨를 두드려주기도하고 어느 분은 양손을 이리저리 번갈아 만지작거리며 안쓰러워하는 것 같았
다. 그 모습은 오랜만에 만난 가족상봉이 분명해 보였다. 점점 가까이 다가간 내 귀에 들리는 대화는 잘 지냈느냐, 지내기는 괜
찮으냐, 열심히 잘하라는 격려와 안부의 내용이었다. 맑은 얼굴에 또렷한 이목구비를 갖춘 청년은 열심히 잘하겠다며 당찬 어
조로 말하고 있었다. 그는 이제 곧 행자생활을 끝내고 사미승으로 출가하려는 것 같이 보였다.
다음에 수도암을 들렀을 때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관음전 주변을 서성거렸다.
그때 그 청년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를 나약하게 만드는 온갖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자신를 극복하고 부처의 가르침에 온전히 자신을 맡길 용기
가 생겼을까...
지리산 깊은 골 외딴 암자 도솔암에서 수행 중이던 20대 후반의 직지사 출가승 '소능(所能)' 스님에게, 스님이 되신 걸 후회하
지 않느냐는 물음에 대한 스님의 확신에 찬 대답이 떠올랐다.
" 나자신을 깨우치고 알아가는 데 전념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부처님께 얼마나 감사한 줄 모르겠습니다.
밖에 있으면 어느 누가 그런 일을 해주며 마음의 길을 내어주겠습니까?"
David London / The Way To My Heart
' 내마음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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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얼마전에 간 인심이 너무 좋았던 ,,,,,,,,,,,,,,,,,,,,
그곳에 계신 분들이 얼마나 정답던지...
무상신님~늘 고맙습니다, 자주 오세요~
무상신님 감사합니다.()()()
저도 수도암은 몇번 다녀온 사찰입니다 . 가는길이 험하고 가파른데 비하여 절터는 참으로 온화하고 넓은 ...그래서 명당인가요...
한번은 수도암 삼층석탑 돌틈에서 금낭화가 피어있었습니다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좋은 사진 글 감사합니다 ()
금천님~그렇죠? 저는 처음 '아토스' 경차를 운전해서 우리 친구를 풀로 채워 오르다가 교행하는 차와 만나 혼줄이 났던
가파른 험한 외길이 제일 인상적이었고...약광전의 석조좌상이 기억에 남네요, 어제 만나 방가왔습니다()
금천선배님 어제 반가웠습니다.^^*
저도 청암사를 가게 되면 꼭 들리는 암자인데 절뒤에 등산로가 있어 더욱 좋았습니다,
도선국사가 명당으로 찍었다는 것이 확실하네요,
한국의 큰스님들이 모두 이 곳에서 수행을 하신걸보면요...상세한 안내와 멋진 사진 늘 고맙습니다()
방장님의 노력으로 이방이 활성화 되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바뻐유 간 댕겨갔시유 샘님마하반야바라밀()()()
불교대학을 다니기전에 두어번 가본 절입니다, 그때는 별생각없이 구경했는데 불교대학 학생이되어 오늘 글을 읽고 사진을보니 느낌이달라짐니다
상원팀장님~정말 부지런하십니다, 오늘 원각회 절수행에 오셔서 사진 봉사까지 해주셔서
넘 고맙습니다, 이 방에 가끔 오이소()
상원팀장님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법도총무님님~수도암은 가슴에 깊이 묻어둔 사연이 있네요, 직원들을 위해 한 기도로 한 일이니
부처님이 봐주실겁니다...이 방에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법도총무님의 마음 감사합니다.
마음으로만 전달바랍니다.^^*
세상너머님 수도암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사진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직지사하고 아주 인연이 많아요 수도암은 직지사 말사지요
청암사의 소속 아닐까요 동선님
불자되기 이전에 두어번 청암사에 다녀온 바 있습니다요 요즘 같아서는 도저히 시간이 없어요헤헤헤
내심 김천의 인근 사찰에 좀 다니면서 절에관한 공부도 하고 싶은데
반갑습니다^^
스크랩을 막은 것은 별다른 뜻이 있다기보다 제글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일단, 염치불구하고 빗장을 풀기는 풀었는데 걱정이 되는군요.
성불하십시오_()_
아휴 고맙습니다() 세상너머님므흣안녕방가 하기사 이 방에 자주 들려 보고 또 보며 공부해도 될 터인것을 제 욕심이 그렇습니다요굽신 암튼 제 카페로 좀 모셔갑니다. 제가 사는 곳이 김천이기때문에 욕심이 났을래나? 완소나무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가슴이 아려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