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살려 하니 그렇지
봄꽃이 피어난다는 목소리가 들뜬다. 화면 가득 산수유며 개나리, 목련 하며 색색의 꽃을 흔들더니 이내 희멀건 하늘을 내보이며 야외활동을 피하라고 한다. 춘심을 건드려놓고는 초를 쳐댄다. 얼기설기 바람이 세는, 신통치도 않은 마스크 하나 꼭 차고 다니란다. 관청의 말은 다 알면서 뭘 그러냐는 투다.
며칠 전부터 꽃 보려 산에 가려다 벼루기만 한다. 희뿌연 하늘에 걸렸다. 눈에 보이지도 않은 그물에 움츠린다. 눈바람 속, 봄 첫머리의 산자락에 샛노란 얼굴로 날 못 살게 하던 복수초, 늦기 전에 그녀를 보러 가야 한다. 해마다의 약속이다. 하늘 꼴이 왜 이러냐며 분통이 나지만, 고함 한번 내질러 댈 곳도 없다. 그러다가 언제는 먼지 안 먹고 살았나 하며 배낭을 메었다.
격렬한 운동 하지 말라는 아침 기상 게스트의 말이 귀에 울린다. 문득 이 공기란 놈이 날 죽이려 드는가 싶어 손을 휙 저어본다. 기침을 내뱉어 본다. 칼칼하다. 내 명줄의 걱정 앞에 자구책이 있을 리 없고, 나라님 말씀은 언 발에 오줌 누기다. 나는 빨리 하차하는 수밖에 없는 건가 싶어 머리를 굴리며 대책 회의를 한다. 걸터앉은 바위가 나른하게 따뜻하다.
나는 명대로 못 살 것 같아 속 터지는 사람이오.
미세먼지로 죽어 나가는 사람이 많다는 뉴스에 움찔했어요. 사람이 이렇게 먼지에 주눅이 들 줄 누가 알았겠소. 공기 청정기가 불티나게 팔린다는 소문 듣고 나도 하나 드려놓긴 했는데 내 몸뚱이가 덕을 보고 있는 잘 모르겠소. 전기세 많이 나온다는 마누라 쫑알거림에 트는 둥 마는 둥 하니 그렇소. 마스크도 엉터리가 많다고 하니 도대체 어디서 뭘 사야 할지 헷갈리기만 해요. 그렇다고 문 걸어 잠그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을 수도 없고. 운동도 못 하고, 나날이 같은 얼굴만 쳐다보다가 오래 살기는커녕 스트레스 더 받아 일찍 문 닫지 싶소.
나는 늘 쫓기며 사는 터라 별로 관계없는 사람이오.
이 많은 먼지를 무슨 수로 막는다고 이 야단이요. 하루하루 벌어 사는 내 주제엔 관계없소. 사람이 원래 먼지 먹고 산다 했잖소. 잘 살고 잘 배우고 힘 있고, 똑똑한 사람이 먼지를 더 만들고 있잖소.
먼지 덜 내고 전기 만드는 법은 놔두고, 게살궂은 애처럼 작심하고 먼지 더 내는 어깃장을 놓고 있으니 나 같이 못 배운 놈 보기에도 가관이오. 힘들게 살아도 이념병 환자를 알아보는 눈은 있소.
하기야 미세먼지 줄인다고 대중교통 공짜로 타게 해준 그 시장이 고맙지. 두 번인가 하고 그만두니 그리 아쉽데요. 매일 공짜로 해주면 뭐 힘든 일도 아닐 터 또 찍어주려 했는데. 못 사는 처지에 먼지 원망하려면 끝도 없지만 말 않겠소. 그건 사치지요. 입만 아프지.
나는 입이 있어도 말 못 하는 사람이오.
먼지에 노이로제 걸리겠소. 미세먼지네, 초미세먼지니 따져가며 대책이랄 것도 없지만 말은 꺼내어야 해요. 둔한 머리가 터져 버릴 지경이요. 중국놈이 어디 말 듣나요. 말이라도 시원하게 한번 뱉어낼 만한데 위에 양반들 가자미처럼 눈 굴리기만 하고 있지요.
'푸른 집'에서 비라도 만들어 먼지를 바다에 떨어지게 하라는 지엄한 분부가 있었지요. 한번 연습조차 한 적 없는데 황당했다오. 안 된다는 걸 뻔히 알면서 폼 잡아봤지요. 나라님 하라면 군말 없이 해야 하는 형편이요. 지난 시절에도 이렇게는 아니었소. 지금 나랏돈은 임자가 없어요. 손 먼저 드는 사람 차지요.
석탄 발전 대신 태양광 발전한다고 경관 좋은 호수의 수면을 덮어버려 꼬락서니도 그렇지만, 고기들이 햇볕 못 쬔다고 아우성이요. 그뿐인가요. 산지에는 또 어떻소. 고속도로 휴게소에도, 도로에도 온통 그 네모 유리판이 덮여 나가고 있어요. 투자 대비 효용성은 이미 확인되었지요. 입을 열어야 하겠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닫겠소. 짐작만 하시오.
나는 ‘은하철도 999’ 우주열차 기관사였소.
어지간한 사람은 날 기억할 거요. 은하철도를 보며 우주의 꿈을 키운 아이들이 지금 사십 대는 되어가는 것 같소. 이야기 듣자 하니 답답해요. 원래 먼지에서 만들어진 게 우주라고 했잖소. 내가 들린 행성마다 먼지투성이였어요. 황량한 벌판에 휘몰아치는 그 먼지바람을 화면에서 보았지 않소.
지구의 명이 다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소만, 행성의 명과 함께 사라지는 생명체를 많이도 봤소. 호모사피엔스의 종말에 대해 그대들 땅의 한 학자가 썼잖소. 그리될지도 모르오. 어쩌면 지구란 땅덩어리에서 생물학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인간의 한계에 이 먼지란 놈이 와 있는 것인가도 싶소. 피하기 어려운 일 같소. 사이보그로 진화한다지만 그게 인간의 길인지 불안해요.
다른 행성에 이민 갈 채비를 한다는 말도 들리는데 아직은 까마득한 일이오. 지구는 아직 살만하오. 미세먼지 저감이니 뭐니, 말장난만 하지 말고 제대로 길을 찾으시오. 내가 염라대왕에게 물어볼 수도 있지만, 길을 두고도 말로 헤매는 자들은 빨리 잡아간다고 할 거요. 그대들 말 먼지가 더 위험하오.
전에 보다 사는 형편이 훨씬 나아진 것 같은데, 그에 따른 업보로 여기시오. 오래 살려고 하다가 생긴 일이기도 하오. 안 먹고 배설 안 하면 먼지 걱정도 덜게 되겠지만 그건 문명이 정지되는 것이오. 나는 지금 은하계를 지나 까마득한 다른 외계를 지나고 있어 아이들에게 내 열차를 보여줄 수도 없소. 미안하오.
꿈꾸다 만 것 같다. 이쪽 말, 저쪽 말 들어도 답답하기만 하다. 그렇다. 당장 초대형 선풍기를 서해 높은 하늘에다 중국 쪽으로 매달 수는 없을까. 돌릴 전기는 될까. 그렇지, 그 단기 일자리로 노는 국민이 교대로 손으로 돌리면 되겠네.
부질없는 생각 끝에 산비탈의 노란 꽃, 그녀를 만난다. 희열이 번진다. 희뿌연 하늘 먼지 속에서도 피어났다. ‘인간은 피할 수 없는 먼지로 괜한 엄살들이요. 오래 살려 하니 그렇지. 다 헛일 같으니 그냥 내 옆에 누우시오. 여태 땅의 주인이라며 잘살았는데 뭘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