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1 : 2000년 2월 10일에 쓴 글입니다. 어느 대학교의 법대문학회 '넉두리 논쟁모음'에서 퍼왔습니다.
사람 2 : 麗澤 ... 열려 있는 연못은 공존의 장입니다. 결코 썩지 않는 아름다움입니다. 이 글을 읽고 많이 느꼈습니다. [ ]를 덧붙여 올립니다.
사람 3 : 저도 올립니다. '한겨레 좋은책 추천 게시판'에 실린 글입니다.
이문열을 보며 법과 문학을 생각하네~
2월 8일자 중앙일보 시론에 이문열이가 '홍위병을 돌아보며'라는 제목으로 글을 하나 올렸다. 이 글을 읽고 나의 아버지께서는 무릎을 치시며 "명문이로세"하셨다. 나의 어머니께서도 이문열이라면 너무 좋아하시는 분이시라 반색을 하시며 그 글을 읽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나의 어머니께서는 그동안 시민단체들의 낙선운동을 순수한 것으로 생각하시던 분이셨는데, 이문열의 이 글 한편으로 생각이 바뀌시고 말았다. 문학이 갖는 힘의 위대함이랄까..
이문열의 이 글에 대해 어떻게 중국현대사에까지 그 박식함이 미쳐 이토록 적절한 비유를 생각해냈느냐고 그의 작가적 역량에 경외심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하는데,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이문열 그가 이것저것(특히 반공분야에서) 아는 게 많은 사람이라는 것은 대다수가 이미 인정하고 있던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의 문학은 이인화를 비롯, 오늘날의 젊은 소설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그는 단순히 문학의 대가에 그치는 것만이 아니라 얼마전부터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지식인으로까지(맙소사~) 행세를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어느새 그의 소설 '영웅시대' '젊은날의 초상' '사람의 아들' '황제를 위하여'는 우리나라에서 고전의 반열에 올라섰다고 일컬어지고 있다. '삼국지'는 백만 고등학생들의 필독서가 되었고, '레떼의 연가'는 수많은 여대생들을 잠 못 자게 만들도록 감동시켰다고 한다(언젠가 무슨 티브이 토크프로에서 노영심이 새빨개진 얼굴로 이문열 앞에서 '레떼의 연가' 한대목을 외워보이던 장면이 기억난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한때 우리나라에 잉게보르그 바흐만 열풍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내 친구는 '들소'와 '서늘한 여름'을 읽고 이문열을 사랑하게 되었다고까지 말한 적도 있다.
'새하곡'은 한동안 역대 중앙일간지 신춘문예 중편당선작의 최고봉으로 평가받아왔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역대 이상문학상 수상작 가운데 다시 없을 걸작이라고 찬양받았다. '구로아리랑'은 한때 대학 운동권생들의 필독서였다. 서울대학교 대학신문은 한때 이문열을 가리켜 "우리 대학교가 낳은, 한국에서도 가장 우뚝선 소설가"라 하며 그를 추켜세운 적이 있다. 그가 여태껏 소설인세로 벌어들인 돈만 해도 백억에 육박할 것이라는 웃지 못할 예측이 나돌기도 했다. 우리나라 작가들 중에서 전세계에 번역된 작품수가 가장 많은 작가라는 명예도 그의 뒤를 따라다닌다.
하지만 벗뜨! 이것만 갖고 그를 위대한 작가이자 지식인으로 생각하면 안된다. 위 '시론'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그는 김동리 이래로 한국문단에 보수반동의 맥을 면면히 이어나간 작가라는 성격도 아울러 갖고 있기 때문이다. 97년 대통령선거가 임박했을 때에도 그는 위와 같은 '시론'이란 글을 통해 이인제가 경선결과에 승복한다는 약속을 어겼다며 이회창이야말로 보수세력의 대표자라는 식의 결론을 내려 당시 혼란스럽던 선거정국에서 갈팡질팡하던 보수세력들에게 이정표를 세워준 적이 있다. 이번 '시론'도 그러한 중요한 시점의 중요한 결정타가 될 것임을 예견하고 그는 회심의 펜대를 휘둘렀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 정도의 대가가 한 얘기라면 우리 모두 존중해줘야 되는 거 아닌가. 그의 문학이 훌륭하다는 것만큼은 우리 모두 절대 부인할 수 없다"는 말을 할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많이 있을 것이다. 이문열 소설은 기이하리만큼 우리 법대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언젠가 고시원에서 이문열문학에 대해 얘기가 나왔는데 그의 '우리가 행복해지기까지는'이라는 소설을 안 읽은 사람이 그 자리에서 나 한 사람밖에 없었다. 난 그자리에서 문학적 교양도 없는 무식한 법대생으로 망신 당했다. 다른 소설은 하나도 안 읽으면서.. 우리 법대생들은 이문열 소설만큼은 챙겨서 읽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 이유는? 무척이나 간단하다. 한때 사법고시공부를, 그것도 꽤나 오래 했던 그였기 때문에, 우리 법대생들 좋아하는 논리적이고 간결한 문체로 소설을 쓴 탓이다. '그해 겨울'이라고 읽어보았는가. 강원도 산골짜기를 눈 속에 헤매이면서 존재의 의문을 찾아 헤매이던 그의 젊고 순결하던 영혼.. 수많은 여대생들이 그 소설을 읽고 뿅갔다. 넘 낭만적이다~ 넘 치열하다~ 이문열 옵바~
그러나 그가 그렇게 긴 고행의 여정을 마치고 난 후 새 희망을 얻었다고 하는 것은 "고시공부를 해야겠따"는 것이었다. 나도 고시공부를 하는 주제에 그런 결심을 나쁘다고 탓하고 싶지는 않지만, 웃긴다는 것은 겨우 고시공부하겠다는 결심 하나 할려고 그가 그렇게 눈 내린 강원도 산골을 헤매이며 그 정신적 고행을 할 필요가 있었냐는 것이다. 이해가 안 되는 사람 '젊은날의 초상: 그해 겨울' 함 사서 읽어바라. 당시의 학생운동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함께 자기는 뭔가 차원 높은 숭고한 것을 추구한다는 식의 얘기가 펼쳐지고 있다. 그 차원 높은 게 결국 고시합격이었나?
한때 지성인들 사이에서 유행어(?)가 되었다는 '칼레파타칼라'도 마찬가지다. '아테르타'라는 그리스의 한 도시(도시 이름도 진짜 유치하게 지었다 차라리 스파테네라고 하지 그랬나?)에서 민주정치라는 게 얼마나 간단하게 그 허울이 벗겨지고 추악하게 변질되고 결국 그로 인해 국가까지 비참하게 붕괴되는가를 지루하게 서술하고 있다. 한마디로 그 소설의 결론은 민주주의정치란 결국 중우정치기 때문에 나라만 말아먹는다는 소리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한술 더 뜨고 있다. '엄석대'라는 한 초딩이 교실에서 독재자로 군림하면서 급우들에게 숱한 부정을 저지르고 있다. 서울에서 전학온 공부잘하는 주인공이 보자보자 하니까 어처구니가 없어서 거기에 저항해보려 하지만 결국 그의 힘에 굴복하게 되고, 그렇게 일단 굴복하고 보니 독재란 게 참 의외로 좋더라는 것이다. 엄석대의 권력은 담임선생님이 바뀌면서 붕괴되지만, 주인공은 장성해서까지도 옛날의 엄석대를 그리워하는 변태 매저키즘적 증후군을 보여준다.
[후배 이인화는 소설 '영원한 제국'을 통해 1등우월주의, 발전우선주의, 브랜드주의, 소수 엘리트주의, 박정희식 독재, 우민화 사상, 권력기득보수주의 사상을 고취시킨다. 그의 홈페이지에는 서울대 우등졸업, 이화여대 베스트 티쳐 선정의 문구가 반짝이고 있고, 국문과 교수이면서 목차가 순 영어로 도배되어 있다. 민주화 운동을 위해 강경대 학생이 죽어갈 때 도서관에서 공부만 했던 소심한 우등생 우월론자는 진정한 가진자들의 대변지 조중동을 위해, 자신을 조선일보 평론에서 극찬으로 치켜세워준 이문열 스승을 역시 극찬으로 변명해주고는 네티즌의 비난을 피해 잠시 숨어 버렸다.]
이 소설이 발표되니까 우리나라 수많은 보수반동 평론가들.. 이병주, 이어령, 김동리, 권영민, 김윤식.. 입이 찢어져라 좋아하고 뒤집어지고 난리가 났다. '압권'이라느니 '불후의 명작'이라느니 '이상이 다시 살아돌아와도 이 소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이상의 찬사가 있을 수 있겠는가'라느니 차마 눈 뜨고 봐줄 수 없는 극찬이 이어졌다. 이 소설에 대한 대대적인 독후감공모가 이루어졌고, 수많은 얼라들이 "독재란 거시 봉께 참 조흔 것일수도 있겠꾸마니라~"는 식의 독후감을 써보내 문학사상사로부터 상품을 받았다.
'들소'도 마찬가지다. 원시부족내 사유재산제가 확립되는 과정에서 자본가 권력을 상징하는 '뱀눈'과 원시시대의 공산주의적 이상을 상징하는 '큰 아가리'의 갈등을 그리고 있는데, 결국 평등의 이상은 권력의 현실 앞에 깨질 수밖에 없고, 그 이상 자체부터가 허구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소름끼치도록 재미난 소설적 구성 속에 그려대고 있다. 여기서 양시양비론으로 왔다리갔다리 하던 주인공은 결국 뱀눈에게 투항하여 그의 비호 속에 원시시대 불후의 순수예술명작(?) '알타미라 동굴벽화'를 완성한다. 만약 그 벽화를 완성한 실제인물 원시인이 저승에서 이 소식을 들었다면 돌도끼를 들고 펄쩍 뛰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 벽화가 완성된 구석기시대에는 인류문화에 사유재산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약속'이라는 단편은 우리 법대생들 입장에서 아주 음미할 만한 소설인데, 어느 시골소년이 진상이 은폐된 살인사건을 파헤친다는 댓가로 귀신과 계약을 맺어 생명을 담보로 사법고시에 합격한다. 하지만 그 진상을 파헤칠려니 이런저런 권력이 얼기설기 얽히고 설키고 심지어는 차기 검찰총장이 될려고 한창 애쓰고 다니는 자기 장인어른까지 연루되어서 이걸 도저히 파헤칠 수가 없었다는 거다. 그래서 결국 귀신과의 약속대로 청년검사인 주인공은 자기 생명을 빼앗긴다는 얘긴데, 결론은 한마디로 "진실 그거 함부로 건드릴라고 하지 마라. 다친다.."는 것이다. 우리 법대생들 입장에서 참으로 존 거 가르치는 소설임에 분명하다.
'구로아리랑'이라고 괜찮은 줄 알면 오산이다. 여자주인공 공순이가 운동권 출신 대학생이라고 노동현장에 뛰어든 남자주인공에게 홀딱 넘어가 사랑에 빠졌는데, 나중에 붙잡혀 고문받는 과정에서 남자주인공이 가짜 대학생이었고 노동운동한다는 핑계로 예쁜 여공이나 후려보려던 사기꾼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는 줄거리다. 마지막 부분에서 여주인공이 '흔들리지 않게 흔들리지 않게 흔들리지 않게' 투쟁하겠다고 발악하는 걸 보며 순진한 운동권 학생들이야 다들 눈물을 흘렸지만, 대다수 어른들은 그 소설 읽고 "노동운동이니 머니 하는 거 다 우낀 지랄이다"라는 저자의 본의를 금새 알아차렸다.
빨갱이사상을 가진 놈들에겐 파멸이 있을 뿐이라는 '영웅시대'나 신분제적 왕조질서도 알고보면 참 괜찮은 것이라는 수구반동이념의 극치 '황제를 위하여', 유부남이 처녀랑 바람을 펴도 육체관계 안하고 정신적 사랑만 하면 괜찮다는 도덕교과서 '레떼의 연가', 유비가 위대한 것은 "옛날보다 더 나쁘게는 만들지 않겠다"는 식의 보수이념을 가졌기 때문이라는(민중을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고?) 황당무계한 정치이론이 펼쳐지는 '삼국지' 기타 등등.. 그의 모든 소설들은 이처럼 꼴통보수이념을 근거로 하고 있다.
최근작 '아우와의 만남' 역시 남북통일 남북통일 외쳐대는 진보인사들이란 게 실제로 얼마나 추악한 사람들인가를 폭로하는 내용이었으며, '선택'은 역겨운 자기 집안자랑을(조선시대 무슨무슨 벼슬을 했고 지방양반사회에서 무슨무슨 평판을 얻었다느니 하는 지루한 사실의 노골적 나열.. 소설이 무슨 자기 족보자랑인가?) 여성운동비판에다 교묘하게 버무린 데 불과했다(자기 아버지가 서울농대 학장이었다는 그의 주장은 얼마전 허위사실임이 밝혀졌다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나 '서늘한 여름'은 그의 소설 가운데서도 조금 특이한 경향을 드러내는데, 이것은 천하제일 서울법대로 상징되는 베스트엘리트주의의 미화와 찬양이다(지가 서울법대나 나왔으면서 그런 소설을 썼다면 또 모르겠다). 천하제일 서울법대면 미친 사랑의 지랄을 떨어도 아름답고, 과외하는 집 싸모님을 울궈내 그 아이들 데리고 놀다가 슬쩍 공산주의 이론으로 골탕을 먹여도 멋있다는 베스트엘리트주의의 미화.. 이것도 결국 힘센 자 찬양하기 좋아하는 그의 속물근성의 반영이다. 도대체 그 소설 속에서 천하제일 서울법대생 주인공을 등장시켜야 할 필요성이 어디에 있었단 말인가?
['사람의 아들' 역시 주인공들의 열정적인 구도 과정은 다양한 문화권의 토양 속에서 태동된 종교,철학계의 사상을 인용, 짜집기하였는데, 문제는 이문열 자신이 선택한 결말이 대단히 실망스럽고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것이다. 다양한 인류의 삶 속에 녹아 있는 신앙 생활, 수많은 학자와 종교인들이 탐구해온 진리와 학문적 성과들을 일거에 무의미하게 내팽개쳐 버리는 독단과 오만은 일순 아연하게 만든다. 이게 같은 책 속 내용인가?
결국은 가부장적 존재... 오로지 하나- 유일신사상, 종적일방체계, 상대적 공존이 아닌 충돌 흡수를 근간으로 하는 문화제국주의, 지역주의, 선민사상, 기득권력계층보수, 초엘리트주의, '우민한 백성은 선택되고 계도되어질 뿐이다' '개나 소가 어딜 감히...', '사공이 많으면 산으로, 아비규환의 혼란으로...' 식의 맥락은 이문열을 위시한 소수 권력계층들에 의해 가정(가부장적 반페미니즘소설 '선택')과 학교, 사회, 국가, 역사, 종교, 철학 등등 동서고금, 남녀노소, 계층 가리지 않고 곳곳에 망라되어 끊임없이 시도되고 있다... 세뇌...사람의 뇌를 씻어 확고히 입력시키려는 무서운 정신적 지배욕...]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이문열의 문학세계라는 것은 한마디로 웃기고 자빠진 극우보수반동파쇼에 수구왕당독재찬양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문학세계를 갖고 있으니 저따위 시론을 쓰는 게 당연하지.. 그런데도 그를 가리켜 우리 시대 최고의 문호라느니 대가라느니 하는 호칭을 함부로 갖다붙이는 사람들이 많다. 이번에 중앙일보에서 결정적인 시론 한방 쌔렸으니 보수세력들 사이에 이문열 인기는 더 올라갈 것이 분명하다.
그의 소설이 수많은 외국어로 번역되어 우리나라 국제망신시키게 될 거란 것은 내가 그리 상관하고 싶지 않다. 내가 정말 우려하는 것은 우리 법대생들이 이문열 문학에 가장 철저하게 오염되어 암암리에 양시양비론과 수구보수론이 문학적으로도 정당화된다는 착각 속에 살아간다는 현실이다.
그의 말마따나 이젠 우리 모두 '눈을 부릅뜨고' 그의 문학을 들여다 봐야 한다. "그래도 글은 잘 쓰잖아?"식으로 간단히 그를 평가하다간 그의 가증스런 글솜씨에 우리 정신이 썩어버릴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