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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헌 <月刊중앙 WIN 기자> -------------------------------------- SGI에 대해서 알고자 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월간중앙의 기사 내용을 그대로 전재합니다. |
SGI 한국불교회에서 상임중앙회의는 최고 의사결정기관이다. 이사장과 부이사장, 부인부·청년부·남녀부 책임자 등 20명 미만의 대표자들이 월 1회 모여 조직운영 방침을 결정하며 결정사항을 각 방면과 권에 전달한다. 10명 안팎의 불교회 원로들로 구성된 이사장추천위원회에서는 49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을 이사장으로 추천하고, 추천된 인물은 평의원회(1백61명)의 인준을 거쳐야 이사장으로 선출된다.
이사장의 업무는 대내적으로 SGI 한국불교회를 대표해 회원을 위한 지도(설법)를 담당하며 각 일선조직을 순회, 회원들을 격려하는 것이다. 또 모든 회원들의 행복을 위해 상담과 지도역을 함과 동시에 SGI와 밀접한 교류를 통해 전세계 SGI회원국과 행동을 같이하는 연대활동을 주도한다. 대외적으로는 사회적 인사들과의 만남을 통해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철학과 이케다 SGI회장의 사상과 이념을 전파하는 일을 맡는다.
현 박재일 이사장은 지난해 12월 UN세계평화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세계평화교육자협의회(IAEWP)에서 주관하는 것으로 세계평화를 위해 활약하는 명확한 실적이 있는 사람에게 수여된다.
김수헌 <月刊중앙 WI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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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GI에 대해서 알고자 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월간중앙의 기사 내용을 그대로 전재합니다.
SGI(Soka Gakkai International·國際創價學會)는 니치렌 대성인(日蓮 大聖人·1222∼1282년)의 불법(佛法)을 공부하며 이를 전 세계에 전달하는 단체다. 회원국은 1백28개.
니치렌 대성인은 일본 가마쿠라막부시대 승려다. 그는 민중을 멸시하고 괴롭히던 당시 권력과 이와 결탁한 기성불교에 정면도전, 탄압 속에서 뜻을 굽히지 않고 민중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대법이라고 믿었던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를 설파했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사상을 이어받아 이를 체계적으로 확립하고 교육하는 기관으로 탄생한 것이 창가학회(애초 명칭은 창가교육학회)다. 초대회장은 교육자 출신의 마키구치 쓰네사부로(牧口常三郞). 도다 조세이(戶田城聖) 회장 역시 사회교육운동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중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에 입신(1928년)한 것을 계기로 불법을 근본으로 하는 인간변혁과 새 사회건설을 위해 ‘창가교육학회’를 결성했다(1930년).
두 사람은 각종 좌담회와 포교활동의 선구에 나섰다. 애초 교육자가 중심이던 학회에는 차츰 각계각층 사람들이 들어왔고 1934년에는 기관지 “가치창조”를 발간하기 시작했다. 이때 회원수는 2천명 정도. 이후 도다 회장은 명칭을 ‘창가학회’로 개칭하고 독자적 종교법인으로 새출발했다. 57년 말에는 신도수가 75만 세대에 육박하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원자폭탄 금지 선언’으로 사회에 파문
일본창가학회를 모태로 SGI(국제창가학회)가 결성된 것은 75년. 이후 SGI는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회장을 축으로 한 전 회원의 열성적인 활동으로 세계 1백28개 국가, 1천3백만명의 회원을 둔 민중평화세력으로 성장했다.
SGI의 마키구치 초대회장은 세계 2차대전을 전후해 일본군국주의가 횡행하는 분위기 속에서 불법(佛法)의 생명존엄·평화사상에 상반되는 제국주의 전쟁을 반대하고 일본 국신(國神) 참배를 거부해 불경죄와 치안유지법 위반혐의로 감옥에 갇혔다가 순교했다.
또 도다 회장은 57년 학회 청년들 앞에서 불법의 ‘생명존엄’과 ‘절대평화사상’에 기초한 ‘원자폭탄금지 선언’을 강력하게 호소, 당시 사회에 큰 파문을 던져 주었다.
이어 3대 이케다(池田) 회장에 이르러서도 ‘인간을 지키는 안전보장사회 구축’을 목표로 일본 내 일부 우익세력과의 마찰도 불사, 재일한국인 참정권 보장을 주장했고 초국가주의적 인권·환경위원회 설치, 세계 차원의 비폭력센터 설립을 제안하는 등 민중의 편에 선 평화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SGI 한국불교회의 형성과 발전
한국에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철학이 유입된 것은 두가지 경로를 통해서다. 첫번째는 일본에 거주해 살고 있던 재일교포들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며 만다라(불교에서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 것·本尊)를 유포함과 동시에 조국의 친지들에게 이를 적극 권유, 귀의케 한 것이다. 두번째는 당시 일본에서 발간되던 간행물 책자를 접하게 되면서 신앙자 자신이 스스로 요청하여 창가학회에 입문한 경우다.
60년대를 전후, 이 두 경로를 통해 신앙생활을 하게 된 사람들은 스스로 조직을 결성하고 좌담회를 통해 불법(佛法) 유포에 힘쓰기 시작했다.
SGI 한국불교회 관계자들은 “니치렌 대성인의 사상이 특정계층이나 훈련된 성직자에 의해 전해졌거나 혹은 위에서 아래로식의 조직형성이 아닌 민중에서 민중으로 전해지고 넓혀진 자연발생적 전파의 성격을 띠었다”고 말한다.
이들은 또 “사람들이 SGI의 역사나 SGI 한국불교회의 본모습을 보지 못한 채 선입견으로 일관하여 일본을 숭앙하는 종교라느니, 왜색종교·친일종교라고 매도하고 있다”며 “그동안 3·1절이나 8·15광복절이면 어김없이 언론의 표적에 올랐다”고 주장한다.
서울·경기지역에서는 이정순씨가 처음으로 창가학회 회원이 되었고 61년 8월 한국 최초의 교리좌담회가 8명의 신도가 모인 가운데 서울 돈암동에서 열렸다. 이후 황석환씨를 중심으로 이경덕(李景德)·이연순·양한규(梁漢奎)·최남익(崔南翼)·조제국(趙濟國)·김택근(金宅根)·윤신하·김주성·송일봉(宋日鳳)씨 등이 조직 구축에 앞장서 갔다.
창가학회의 좌담회는 교리문답을 비롯, 신도 서로의 고민과 경험을 구체적으로 주고받으며 이야기하는 열린 대화의 광장이다.
SGI 한국불교회 발전의 모태가 된 좌담회는 초창기부터 이어져 내려온 모임으로 도시화 및 핵가족화, 급격한 사회변동에 따라 인간본성이 황폐화되는 것을 막으며 사람간 교류를 통해 사회 속에서 ‘인간주의’를 소생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한다.
한편 서울 및 대구지역에서는 62년 3월부터 전국적인 포교를 시작했다. 대구지역에서는 최규원(崔圭垣)씨를 중심으로 박경식(朴暻植)·김임선(金任先)·배일식(裵日植)·석남수(石南秀)·이종원(李種憲)·김익조(金益祚)·임옥이(任玉伊)·서인구(敍寅九)·여상락(呂相洛)씨 등이 초창기 포교활동의 핵심에 있었다.
부산지역에서는 대구에서 입문한 윤인선(尹仁善)씨가 부산으로 이사, 그후 이광익(李光益)·이민승(李敏勝)·이상술(李相述)·홍쾌만씨가 합세하면서 부산시 범일동에서 6명이 모여 좌담회를 열었다. 또 마산에서는 김동순(金東淳)씨가 67년 8월 첫 좌담회를 개최했으며 2∼3개월만에 급격한 신장을 보여 1년만에 지구(地區) 결성을 보기도 했다.
그밖에 제주지역은 김윤옥(金潤玉)씨 등이 일찍부터 재일교포와 연이 닿아 조직형성에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그후 전라·충청 등지에도 대구지역에서 유입된 신앙자 혹은 지역에 거주하던 김경수(金璟秀)·김경평(金景平)·이일성(李日成)씨 등이 간행물을 접한 것을 계기로 속속 입문했다.
64년 6월부터는 회원수가 급격히 증가, 지구단위가 편성되고 조직정비가 시작됐다. 65년 3월부터는 전국에서 지도중심자제도가 실시되어 2천5백80세대가 입문했고 69년에는 7개 지부 3만세대로 조직이 성장했다.
74년 5월에는 조직을 ‘한국일련정종(日蓮正宗)불교회’로 명명, 회원수가 50만명으로 확대되었고, 78년 8월에는 1인 의장제 실시와 23개 총합본부 편성이 이루어졌다.
79년 2월 이사장제를 실시, 초대 김동현(金東鉉) 이사장이 취임했다. 이후 81년 9월 김동현 초대이사장의 서거에 이어 조대철 2대 이사장이 잔임 기간 이사장으로 취임, 32개 총합본부, 1백27개 지역, 5백48개 지부, 1천7백95개 지구, 6천7백39개 반으로 조직이 편성되었다. 그리고 82년 2월 전국대표자회의제를 평의회제로 만들었다. 92년 SGI 한국불교회로 개명하고 94년 3대 박덕현 이사장을 거쳐 97년 4대 박재일 현 이사장이 취임, SGI 한국불교회는 비약적 발전의 발판을 구축하고 있다.
SGI 한국불교회 초창기인 60∼70년대 신문·방송매체에는 ‘노래하는 종교 창가학회’ ‘군국주의 왜색종교’‘침략종교’라는 말이 종종 등장했다.
급기야 64년 1월에는 내무부장관 명의로 ‘이 종교의 집회와 포교를 금한다’는 집회정지 행정처분이 내려졌으며 문공부에서도 비상회의를 소집해 ‘창가학회는 사종교집단’이라고 낙인찍었다.
SGI 한국불교회측은 “당시 정부에서는 학회 간부들을 ‘외환관리법 위반’이라는 죄목으로 체포했지만 정작 심문과정에서는 외환관리법 위반에 대한 질의는 한마디도 없이 ‘남묘호렌게쿄를 하지 않는다면 내보내 주겠다’는 말만을 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즈음 체포된 대구의 최규원·배일식·김익조·윤신하씨 등 4명은 “신앙은 자유다. 법치국가에서 종교탄압은 위법이다”라고 맞서며 29일 동안 수감되었다가 결국 무죄로 대구 동인동교도소와 서대문구치소에서 풀려났다.
그 후 65년 1월 창가학회측은 국가를 상대로 한 ‘종교탄압과 신교의 자유에 대한 소송’을 제기, 서울고등법원으로부터 ‘창가학회의 포교를 위한 집회 및 통신 연락과 간행물의 반입·배포·취득·열람을 금지한다는 처분을 취소한다’는 승소판결을 얻어냈다.
SGI 조직과 특성-사회적 차별없이 생명철학 실천하는 평등집단
"인간조직에서 사람 사이의 관계에는 아래 위가 없어야 한다. 사회적 차별도 SGI에 들어오면 없어진다. 이것이 불법(佛法) 본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SGI 한국불교회측이 설명한 조직구성원간 관계의 기본이다.
SGI 한국불교회의 기본단위는 ‘반’(班)이다. 30∼40명의 인원이 모여 반을 이루며 3∼6개의 반이 모여 1개 ‘지구’(地區)를 형성한다. 역시 3∼6개의 지구가 모이면 1개 ‘지부’(支部)가 만들어진다. 지부는 대개 면·동 단위로 구축돼 있다. 이러한 지부가 3∼6개 모여 ‘지역’(地域)을 이루며 지역이 모인 것이 ‘권’(圈)이다.
권은 조직에서 가장 많은 권리와 의무가 지워지는 단위로 조직을 정비하고 이끌어 나가는 최고 사령탑이다. 권이 모이면 1개 ‘방면’(方面)이 된다. 현재 SGI 한국불교회 조직에는 25개 방면이 있다. 방면은 불교회 본부의 방향을 그대로 권에 전달하여 조직이 매끄럽게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
25개 방면은 서울 6개, 부산·경기·대구가 각 3개, 경북이 2개, 인천·강원·충청·전북·전남·울산·경남·제주가 각 하나씩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직의 주요회합은 협의회·연찬회·간부회·좌담회로 이루어져 있다.
조직운영의 가장 큰 특징을 SGI 한국불교회측은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첫째, 청년육성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청년이 육성되고 성장하는 단체는 정체가 없으며 활력이 넘쳐 발전하게 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둘째, 여성의 의견을 소중히 한다. 불법의 본래 뜻도 남녀평등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의견에는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감성이 들어있어 창조적 조직운영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셋째, 개개인의 고민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한사람이라도 번민하는 사람이 있으면 조직구성원들이 힘을 다해 도와주고 상담한다. 이 역시 참된 불도수행자의 자세라고 보기 때문이다.
SGI 한국불교회에서 상임중앙회의는 최고 의사결정기관이다. 이사장과 부이사장, 부인부·청년부·남녀부 책임자 등 20명 미만의 대표자들이 월 1회 모여 조직운영 방침을 결정하며 결정사항을 각 방면과 권에 전달한다. 10명 안팎의 불교회 원로들로 구성된 이사장추천위원회에서는 49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을 이사장으로 추천하고, 추천된 인물은 평의원회(1백61명)의 인준을 거쳐야 이사장으로 선출된다.
이사장의 업무는 대내적으로 SGI 한국불교회를 대표해 회원을 위한 지도(설법)를 담당하며 각 일선조직을 순회, 회원들을 격려하는 것이다. 또 모든 회원들의 행복을 위해 상담과 지도역을 함과 동시에 SGI와 밀접한 교류를 통해 전세계 SGI회원국과 행동을 같이하는 연대활동을 주도한다. 대외적으로는 사회적 인사들과의 만남을 통해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철학과 이케다 SGI회장의 사상과 이념을 전파하는 일을 맡는다.
현 박재일 이사장은 지난해 12월 UN세계평화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세계평화교육자협의회(IAEWP)에서 주관하는 것으로 세계평화를 위해 활약하는 명확한 실적이 있는 사람에게 수여된다.
세계평화교육자협의회는 교육을 통해 대기· 수질오염으로부터 환경을 보호하며 세계인권선언을 실천하는데 공헌해 온 단체. 73년에는 UN경제사회이사회의 NGO(비정부기구)로 등록했고, 90년에는 UNICEF(국제아동기금)·UNCED(UN환경개발회의)와 정식으로 협조관계를 체결한 세계 1백35개 가입국가를 가진 국제단체다. 박이사장의 수상은 한국인으로서는 네번째며 종교인으로서는 최초. 경희대 조영식 박사, 손재식 전 통일원장관, 김상철 전 서울시장이 수상한 바 있다.
한편 SGI 한국불교회에서는 전국에 걸쳐 2백20개의 문화회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조직 내 각종 행사나 회합장소이면서 신앙활동의 무대로 활용되고 있다. 또 국가적 차원의 선거 때면 투표장소로 제공되며 지역 주민바자회나 야간주차장, 각 기관이나 단체의 세미나 등 발표장소, 예식장 등으로도 이용된다.
충북 진천에 위치한 연수센터는 두타산 아래 초평호수를 낀 2만평 대지 위에 건립되었다. SGI 한국불교회 회원들이 연간 1만명 연수를 받는 장소이며 현재 올 10월 말 완공예정으로 신축공사가 진행 중이다.
SGI 한국불교회는 연수에 대해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佛法)과 이케다 SGI 회장의 평화·문화·교육사상을 서로가 배우고 익히는 게 목적”이라며 “단체연수생활을 통해 이체동심(異體同心)과 신심(信心) 수행의 자세를 연마한다”고 설명했다.
93년에는 이곳에서 1만6천여명이 연수를 받았으며 92∼97년까지 연수회 3백96회 개최에 연인원 6만3천7백여명(연수센터 1일방문 포함)이 이곳을 찾았다.
진천 외에도 강릉·충주·경주·방어진·제주 등에 문화회관을 겸한 연수시설이 있다.
내부혼란에 따른 시련
한편 조직이 발전하면서 불법(佛法) 본래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민중을 위한 종교라는 목적의식을 상실한 채 조직을 어지럽히는 신앙자들도 생겨났다.
70년대 들어 전국 규모 조직형성의 필요성을 실감한 창가학회측은 조직통합 노력을 기울였다. SGI 결성이 이루어지면서 75년 내한한 이즈미 한국지도장은 76년 홍쾌만·석남수·이돈수씨의 3인 의장제를 중심으로 전국운영위원회를 발족했고 79년 초대 이사장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조직통합과정에서 통합에는 모두 찬성하였지만 실제 통합작업에서는 개인의 사리사욕으로 인한 견해차가 심해 결국 조직을 이끌고 이탈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출판물이 조악하던 초창기에는 신앙 지침서도 없어 창가학회를 알기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등사본 유인물을 나누어주기도 했다. 89년에서야 불법 이론지인 월간 “법련(法蓮)"을 창간했고 아울러 서울 구로동에 화광(和光)신문사를 설립, 주간신문을 발행하고 있다.
SGI 한국불교회는 점차 사회로 시야를 넓혀가기 시작했다. 불우이웃 성금 모으기, 농촌모내기 일손돕기 등에 적극 나섰다.
SGI 한국불교회의 정신과 미래
85년 12월에는 제1회 서울청년체육문화제를 수원실내체육관에서 개최했고 다음해인 86년 10월에는 경북청년평화문화제를 열었다. 89년에는 부산시민문화회관에서 부산청년예술제를 개최, 지역적 토속성을 살린 문화제로 승화시키기도 했다.
이후 문화운동에 본격적인 불이 지펴지면서 일본 오키나와를 비롯한 후쿠오카에서 열린 세계청년평화음악제에서 농악·부채춤과 함께 클래식이 연주되었고, 문화제에서는 사물놀이와 오고무 등을 공연, 세계무대에 우리 문화의 보급과 교류에 앞장섰다.
이밖에 SGI 한국불교회는 환경사진전·환경예술제·국토대청결운동 등 자원봉사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해 대학기관 및 사회 각 기관과 단체로부터 각종 표창을 받기도 했다.
21세기를 이끌어 갈 청소년에게 책을 읽히기 위해 초·중·고에 양서보내기 운동을 펼쳐 60여개 학교에 30여만권의 도서를 기증했다. 서울대를 비롯, 전국 각 대학에 전문서적과 컴퓨터 등 기자재를 지원했으며 장학기금, 소년소녀가장돕기, 무의탁노인을 위한 경로잔치 등 사회복지사업을 벌여왔다.
SGI 한국불교회에서는 “정말로 ‘사회를 위해’‘민중을 위해’그 사람이 행동하느냐 아니냐를 따져 신앙생활의 진실성 여부를 판단한다”고 주장했다.
한 관계자는 “SGI 한국불교회는 지금처럼 일관되게 각자 현실의 인생에 도전하고, 자기자신의 인간혁명을 완수하면서 사회의 가치창조, 세계시민의식 확립에 노력해야만 ‘민중 속으로’‘사회속으로’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SGI 한국불교회측은 “인간혁명이야말로 21세기의 키워드이며 한국불교회의 역사는 어느 영웅적 인물에 의해 주도된 것이 아니라 한사람 한사람의 서민들이 중심이 되어 엮어낸 하나의 장대한 인간혁명이며 승리의 드라마였다”며 “앞으로도 이와 같이 사람들 속에서 또 사회 속에서 불법의 본질을 펼쳐나가는 운동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SGI 조직과 특성-사회적 차별없이 생명철학 실천하는 평등집단
지난해 9월 서울역 광장. 열차 이용객들로 붐비는 광장 여기저기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새벽녘부터 서울역을 중심으로 종로·명동·을지로·광화문과 용산 원효대교와 한강변까지 싹쓸이 청소를 해온 참이었다. 광장 한쪽에서는 환경보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담은 ‘그린콘서트’와 사진전시회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각종 폐자재를 활용해 만든 가구·액자·탁자 등도 전시되어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거 어떻게 만들었어요?” “아이디어가 참 좋네요.”
지나가며 한마디씩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행사주최측 청년들이 진지하게 하나하나 설명을 했다. 한손에 집게나 빗자루, 혹은 흙칼을 들고 거리에 버려진 쓰레기를 치우고, 껌을 떼내는 사람들의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이날 서울역 광장 일대에서 벌어진 이 모든 행사는 SGI 한국불교회에서 벌인 ‘국토대청결운동’이라는 사회·환경운동의 일환. SGI 한국불교회는 서울·부산·광주 등 전국에 걸쳐 해마다 ‘국토대청결운동’을 펼쳐오고 있다. 참여인원만 해도 연 30여만명. 이날 서울역 일대에서만 6천여명의 회원과 가족들이 이 운동에 참여했다.
SGI 한국불교회측은 사회운동의 한 분야로 환경운동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 6월1일 개최한 ‘푸른환경 예술제’에서는 그달 5일 ‘세계 환경의 날’을 맞아 NGO(비정부기구) 산하 민간단체 주최 행사로서는 최대규모인 3천여명의 출연진이 나와 ‘인간과 환경은 하나’를 주제로 공연을 펼쳤다.
SGI 한국불교회의 이러한 환경운동은 니치렌 대성인이 평소 밝혔던 사상과 일치한다. 바로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인간이 결코 별개의 것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성인은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청정하게 하느냐, 더럽게 하느냐 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에 달려 있다”며 “인간은 주위환경과 조화를 이뤄 살아가지 않으면 파멸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SGI 한국불교회는 함부로 쓰레기나 빈 깡통을 버리는 것은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 이기주의라고 본다. 쓰레기를 버리는 것은 자신의 ‘인간성’을 버리는 것으로 보고 환경을 깨끗이 하기 위해 쓰레기를 줍는 마음은 어떤 손해나 이익을 따지지 않는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한다고 한다.
SGI 한국불교회는 환경운동뿐 아니라 사회사업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초·중·고에 양서보내기 운동, 청소년을 위한 음악제, 장학기금 조성, 소년소녀 가장돕기, 무의탁노인 돕기, 경로잔치, 농촌일손돕기, 재활원 방문 등이 대표적인 사업이다. 또 ‘부모님세미나’를 열어 청소년 문제를 살펴보고 올바른 교사상, 부모의 자세, 청소년들의 바람직한 모습 등을 현장 교사들과 부모·청소년들이 함께 모여 토론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다. 이밖에도 청소년들의 진로, 진학상담을 해주는 고민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96년 여름 전국에 수재민이 많이 발생했을 때는 피해지역을 중심으로 각 지역 SGI 한국불교회 문화회관에 대책위원회를 설치해 구호물자를 긴급조달하고 문화회관을 수재민 임시숙소로 개방하는 등 활발한 구호활동을 벌였다.
SGI 한국불교회측은 “우리는 관념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현실생활에서 신앙을 실천하고 모범을 보이기 위해 사회봉사활동, 환경운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며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모범시민으로서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sgi불교회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http://cafe.daum.net/allksgi
첫댓글 글을 게시하려면 날자와 출처를 최대한 적시해 주시길 바랍니다.
위의 글은 과거에 박재일님이사장으로 재직할 때의 것같습니다.
그리고 올라있는 유엔평화상은 사깃꾼의 농간으로 밝혀졌으며
그 자는 현재 기성 불교계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압니다?
누가기성불교에서 어떤자리를차지하고 있다는거지요
올린 글에다가 추가를 하셨군요.
추가된 내용은 십수년 전후의 월간 중앙에 게제된 내용이라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날짜를 생략하면 보는 사람은 근래의 것으로 햇갈리게도 됩니다.
무슨무슨 賞, 명예칭호, 감투....
이런 겉치레를 좋아하는 것은 그만큼 속이 비었다는 것의 반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