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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정통과 이단 비평 개요-정통과 이단의 역사-이단 판별의 역사-3. 이단 판별의 기준
1. 적절한 인정심문
2. 정통과 이단의 역사
최대의 오판
최초의 이단 소송
정통과 이단 이야기
미국의 정통 파동
한국으로 옮겨진 정통 파동
3. 이단 판별의 기준
“---론”과 “---관”의 판별 기준
정통 신앙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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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적절한 인정신문
재판과정의 첫 단계는 대상의 신원[身元]을 확인하는 인정신문이다. 만약 대상을 잘못된 이름으로 칭한다면 그것은 오판[誤判]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이름은 법적인 신원은 물론, 개인이나 단체의 성격과 인상을 전달하는 예민한 문화수단이기 때문에 부르거나 쓸 때에 정확을 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말과 글로 본 교회를 비평하는 분들이 거의 예외 없이 잘못된 이름으로 칭하여, “안식교”[安息敎]로 통용하고 있다.
본교회의 공식명칭은 [제칠일안식일 예수재림교](Seventh-day Adventist)이다. 이 명칭 속에는 개신교인 본교회가 일반 개신교회들과 대부분의 기본 신조를 같이하고 있지만 특징이면서 다른 점이기도 한 성경 진리의 일부를 드러내고 있다.
우선 제칠일 안식일 준수가 그것이다. 주일 중 첫째 날인 일요일 대신, 신구약 성경에 명시된 일곱째 날인 오늘날의 토요일을 십계명 중 넷째 계명에 언급된 진정한 안식일로 준수하고 있다. 그것을 유대교가 준수하던 율법주의적인 안식일로서가 아니라, 창조와 구속[救贖]의 기념이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오늘의 참 안식과 [마 11:28] 장차 경험할 영원한 안식의 예표로, 예수께서 그 주인[Lord]이라고 선언하신 [막 2:28; 마 12:8] 성경상의 “주의 날”을 안식일로 준수하고 있다.
또한 재림교회란, 이 죄된 세상 역사의 종결이요, 구원의 완성인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인류의 유일한 소망으로 강조하며, 그 임박함을 선포하고 준비시키는 사명을 힘써 이행하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임을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신분은 세상 역사의 마지막에 존재할 것으로 예언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계 12:17]의 입장을 상기시킨다. 아울러 세상에 보내시는 하나님의 마지막 기별인 셋째 천사의 기별을 전파하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계 14:6-12]로서의 역사적 사명을 자각[自覺]하게 한다.
미국 등 외국에서는 후자에 관심을 두어 재림신자[Adventist], 혹은 재림교회[Adventist Church]로 약칭하고, 한국에서는 전자를 강조하여 안식일교인, 혹은 안식일교회로 통칭하고 있다. 유기화학에서는 안식향산[安息香酸]을 안식산[安息酸]으로 줄여서 부를 수 있지만 신학적으로는 안식일교회를 안식교로 부를 수가 없다.
위에 말한 비평 서적들에는 이름 이외에도 본교회의 역사나 신조 설명에 너무나 많은 오전[誤傳]이 있어 일일이 지적할 수는 없으나 본서에서는 관련사항에 접할 때마다 그 때 그 때 지적할 것이다.
2. 정통과 이단의 역사.
최대의 오판
연전에 이스라엘 법원에는 특별한 관심을 끈 재판이 신청되었다. 내용인즉 1900여년 전에 십자가에 처형된 나사렛 예수의 사형판결은 로마제국의 총독 빌라도의 오판[誤判]에 의한 것이므로 현 이스라엘 법원이 이를 다시 재판하여 바로 잡음으로써 유대인의 얼룩진 명예를 회복하자는 예수 사형판결 재심청구 소송이었다.
물론 적법성이 없어 기각되기는 했지만 이성과 양심을 일깨워준 사례였다. 맞는 말이다. 결국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인류의 구주이신 예수께서 독선[獨善]과 편견[偏見]에 사로잡힌 종교지도자들의 거짓된 고소와 명예에 눈이 어두워 양식과 공의를 저버린 한 총독의 오판에 의해 돌아가신 것이다. 참으로 결과가 끔직한 최대의 오판이었다.
최초의 이단 소송
그런데 우리는 흡사한 소송사건을 사도행전에서 거듭 대하게 된다. 그리스도교의 처음 순교자인 스데반이 유대교의 지도자들의 거짓된 송사로 돌에 맞아 죽었으며 [사도행전 7장], 곧 이어 사도 바울이 같은 자리에 선다. 원고[原告]인 유대교 지도자들이 로마 총독에게 제기한 고소내용이 다음에 적혀 있다.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 저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우리의 송사하는 이 모든 일을 아실 수 있나이다 하니 유대인들도 이에 참가하여 이 말이 옳다 주장하니라”[행 24:5-9].
기소된 죄목은 “이단”[異端]이었다. 이단이란 도대체 무슨 뜻인가? 이 말은 본래 “선택”이란 뜻을 가진 헬라어 “하이레시스”[hairesis-영어의 heresy]에서 비롯된 것인데 전통적인 것을 벗어나 남과 다른 것을 택하여 믿고 가르치는 종파나 학파를 가리켰다.1 이와 반대되는 정통[正統-영어의 orthodoxy]은 옳고 바른 것을 뜻하는 헬라어 “오토도스”[orthos]에서 연원하여 본래의 학설이나 교의[敎義]를 올바르게 계승한 주류를 가리켰다.
이러한 개념에 따라 당시의 유대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고수해 온 인간적인 전통을 거부하고 그들과 다르게 믿고 가르치는 나사렛 예수와 그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을 “나사렛 이단”으로 정죄하고 당당히 고소한 것이다. 이렇게 막을 연 정통과 이단의 시비[是非]는 역사가 흐르면서 더욱 깊어지고 넓어져서 교회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오점들을 남겨놓았다.
정통과 이단 이야기
4, 5세기를 어지럽게 한 그리스도의 본성[基督論]에 관한 정통 논쟁이나 중세기와 종교개혁을 둘러싼 로마 가톨릭 교회의 살벌했던 이단 박해의 역사를 모두 접어두고서라도 우리는 빗나간 역사의 전철[前轍]을 거듭 밟고 있는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쉽사리 보게 된다. 다음의 일례를 통하여 역사에 비친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일별해 보자.
종교개혁과 함께 로마 가톨릭 교회가 고수해온 전통[傳統]은 성경과 맞먹는 권위를 가진다는 트렌트 종교회의[Council of Trent; 1545-1563]의 결정에 어긋나게 가르친 루터나 칼빈 등 개혁자들은 즉시 저주받을 이단으로 정죄되고2 생명까지 위협을 당하였다. 이러한 역경 중에서도 중세 교회에 의하여 유린된 진리의 회복을 위하여 이들이 치룬 희생과 교회사에 끼친 공헌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본서의 말미[末尾]에서 이 점을 언급하겠지만 여기에서는 시간에 속하여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제한된 인간이 만들어 가는 역사의 한 부분을 밝힘으로 오늘을 위한 교훈을 찾고자 한다.
개혁 초기부터 이단으로 몰린 칼빈은 모국 프랑스를 떠나 스위스로 피하여 제네바에 정착했다. 거기서 칼빈은 같은 프랑스인이며 로마 가톨릭 수도승으로 모진 박해를 무릅쓰고 개혁신앙으로 전향한 의사 볼섹[Jerome Bolsec]이 자신의 예정론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그를 시정부의 재판에 회부하여 1551년 제네바로부터 영구히 추방하였으며 볼섹은 결국 그의 옛 교회로 돌아가고 말았다.3
또 다시 칼빈은 영아세례를 반대하고 전통적인 삼위일체 신조에 대해 이설[異說]을 주장한 또 다른 의사 세르베드[Michael Servetus]를 재판에 회부한 후 1553년 불살라 죽였다.4 또한 같은 때에 종교와 정치의 엄격한 분리를 주장하고 영아세례를 반대하며 사람이 죽은 후 부활 때까지는 잠자는 상태에 머문다고 가르치는 재세례파[Anabaptists]를 "겉도는 이단“으로 규정하고 가차 없이 취급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칼빈의 제네바 신정[神政] 기간의 일부인 1542년부터 4년간, 58명이 이단으로 정죄되어 처형되었으며 76명이 제네바로부터 추방되었다.5 19세기를 대표하는 교회사가인 필립 샤프[Philip Schaff; 1819-1893]는 이러한 과와가 칼빈 자신보다도 중세 가톨릭교회의 그릇된 신정[神政]의 전통을 미처 벗어나지 못한 칼빈의 신정제도에 있다고 지적했다.6
미국의 정통 파동
이러한 비극적인 역사는 개신교의 신천지 미국 땅에서도 반복되었다. 로마 교황이나 국왕이 교회의 머리[首長]가 된 유럽 대륙과 영국에서 이단자로 정죄되어 살 곳을 찾지 못한 회중파 청교도들은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찾아 만난[萬難]을 무릅쓰고 신대륙인 미국의 동부에 정착했다. 거기서 그들은 과거를 까맣게 잊은 채, 오히려 정교[政敎]일치, 신앙의 일치를 내세우면서 이에 반대하는 침례교도와 퀘이커교도들을 추방하거나 이단으로 정죄한 후에 목매달아 죽이는 끔찍한 일을 1662년, 도리어 영국의 국왕 [Charles II]이 이를 법으로 금지하기까지 계속했다. 7
이러한 모순들에 대해 필립 샤프[Philip Schaff]는 이렇게 개탄했다. “개신교가 로마 가톨릭과 다른 것은 단지 이단의 정의[定義]이며, 그 형벌이 훨씬 온건했다는 것뿐이다.”8 오늘날도 그러한 본을 좇아 자기중심적인 교리를 기준으로 형제 그리스도인들을 함부로 이단으로 정죄하는 개신교계는 과거의 역사에서 뼈저린 교훈을 배워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혼탁한 역사는 20세기에도 계속되었다.
19세기 후반부 유럽을 휩쓴 자유주의신학이 20세기와 함께 미국에 뿌리를 내리면서 1세기 동안 칼빈주의 보수신학의 보루였던 프린스턴 신학교가 여기에 휩쓸리고 만다. 이에 보수신학을 대표하는 메이천[J.G. Machen]은 자유주의신학을 이교적[異敎的]이요, 로마 가톨릭교회보다 더 심각한 배도[背道]라고 선언하고9 1929년 그리로 기울어진 프린스턴 신학교를 떠나 새로운 정통보수신학의 요람으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분립시키기에 이른다. 때를 맞춰 자유신학에 휩쓸린 북장로교를 탈퇴한 상당수의 목사들이 정통 장로교[正統長老敎] 창립에 나섰으나 10년을 못 넘기고 또 다른 신학 논쟁으로 분열되어 신앙신학교파와 성경장로교파로 갈라서고 만다.10
이보다 앞선 1919년 스위스의 한 작은 교회 목사였던 칼 바르트[Karl Barth]에 의하여 시작된 새로운 신학은 당시 편만하던 자유주의 신학을 압도하고 신정통주의[新正統主義]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30여년 간이나 신학계를 지배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신학의 약호[藥效]가 채 입증되기도 전에 이를 과다[過多]하게 복용한 국내외 신학계는 증상조차 가리기 어려운 각종 신학병[神學病]에 시달리게 되었다. 1967년 미국 연합장로교는 바르트의 신정통주의 영향을 받아 1647년 이래 전통적인 장로교 신앙고백이었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크게 상반되는 수정[修正] 신앙고백을 채택함으로써 일대 혼란을 일으키게 되었다.11
한국으로 옮겨진 정통 파동
바다 건너 미국에서 소용돌이친 자체 교단 내의 정통 파동은 그대로 바다 이 편의 한국교회에 파급되어 험난한 정통 파란이 재연되었다. 같은 교파이면서도 격렬한 논쟁으로 신학적 공존이 더 이상 어렵게 되어 결국 한국 기독교장로회와 대한 예수교 장로회로 양분되고 미국의 경우처럼 각각 별도의 신학교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그 후로도 정통파동은 계속되어 통합[統合], 합동[合同]주류, 합동 비주류, 합동 진리, 고신[高神], 고신 법통[法統], 호헌[護憲], 성경 장로회, 한국 기독교장로회 등으로 거듭 세분되어 이제는 정통의 계보마저 가리기 어려운 현실에서 1980년 문공부 집계에 의하면 “장로교의 교파 수는 그 당시에 29개 교단”이라고 밝히고 있다.12
이토록 지루하고 어두운 이야기는 동일한 신조를 표방하는 같은 교파 안에서 겪고 있는 정통시비의 부분적인 사례에 불과하다. 섭섭하게도 형제 그리스도인들을 성경적인 뚜렷한 기준도 없이 나름대로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국내외의 인사들이 거의 모두 이상과 같이 자체 안의 정통 파란을 겪고 있는 칼빈주의 신앙을 표방하는 교회 지도자들인데 대해 참으로 의아하게 생각한다. 교회사의 상식을 가진 우리 일반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더 이상 자기중심적인 기준에 따라 형제 그리스도인들을 함부로 이단으로 정죄하고 비평하는 정통 시비에 지쳤고 식상[食傷]해 있음을 차제에 알리고 싶다.
선교 역사 한 세기를 넘어선 한국교회도 이제는 사도행전의 베뢰아교회 신자들처럼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행 17:11, 12]아지는 성숙한 교회의 진면목[眞面目]을 드러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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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illiam Barclay, The Apostles' Creed for Everyman [New York; Harper & Row Publishers, 1967], 272.
2. Henry Bettenson, Documents of the Christian Church[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963], 261-263.
3. Philip Schaff, The Creed of Christendom, Vol 1 [New York; Harper & Row Publishers, 1887], Vol I, 474.
4. 전경연, 칼빈의 생애와 신학사상[서울: 한국 신학대학 출판부, 1984] 복음주의 신학 총서 제27권, 48-55. Schaff, 464.
5. L. E. Froom, The Conditionalist Faith of Our Fathers[Washington, D.C.: Review and Herald, 1965], 115.
6. Schaff, 464, 465.
7. W. Walker, A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New York: Charles Scribner's Sons, 1959], 433, 473.
8. Schaff, 465.
9. J. Gresham Machen, Christianity and Liberalism [New York: The Macmillan Co, 1926], 52.
10. 김의환, 도전받는 보수 신학[서울: 서광문화사, 1973], 99, 100.
11. Ibid, 209-214.
12. 기독교 대백과사전 [서울:기독교문사, 1985], 13, 611.
3. 아닌 판별[判別] 기준
“-론[論]”과 “-관[觀]”의 판별기준
모든 판정에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운동경기에는 경기 규칙이 있고 법정의 재판은 법률에 의하며, 선악 간의 심판은 하나님의 율법에 따른다고 성경은 언급한다[약 2:9, 12]. 그렇다면 정통과 이단을 판별[判別]하는데도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탁명환 씨의 말대로, “이단을 규정하기 위해서는 정통적 진리의 기준이 세워져 있어야”하고 “정통의 기준에서 위배되면 이단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1이라는 데는 이의가 없다. 탁명환 씨는 이 정통의 기준으로 성경과, 신론, 메시야론, 성령론, 속죄론, 재림론 등 열 가지 항목을 나열했다.2
그런데 문제는 이 “론”[論]이라는 것이 누가 말하는 “론”이며, 이 “관”[觀]이라는 것이 누가 보는 “관”이냐는 것이다. 뒤에 자세히 다루겠지만, 예를 들면 탁명환 씨가 정통의 기준으로 제시한 재림론[再臨論]은 전혀 비성서적인 세대주의[世代主義] 재림론이다.3 이것은 성경에 전적으로 어긋날 뿐만 아니라 루터, 칼빈, 웨슬리 등 어느 개혁자도 그렇게 가르친 바가 없어 결국 이단이 되는 것은 안식일교회 뿐만 아니라, 위에 언급한 루터교, 장로교, 감리교의 창시자들이 모두 이단이 되는 셈이다.
성경을 바로 아는 일이 이단의 기준을 세우는 일보다 앞서지 않으면 자가당착[自家撞着]으로 인한 논리적인 자괴[自壞]에 이르게 된다. 탁명환 씨는 사도신경, 니케아신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등을 열거한 뒤 이단이란 “공인된 신앙고백을 거부하거나 반대하는 집단을 의미한다”4고 했다.
박영관 씨 역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도르트[Dort] 종교회의 결정을 기준으로 삼았다.5 그리고 그의 책 서두에서도 자신이 규정한 이단들을 열거한 뒤, “그들의 역사와 원리 및 현황과 전망을 역사적 칼빈주의 입장에서 비판했다”6 고 전제했다. 한 마디로, 칼빈사상에 어긋나면 이단이 된다는 결론이다. 교황이나 그들의 종교회의 결정에 어긋나면 이단이 되는 중세적인 로마 가톨릭의 기준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기준이다.
1967년 미국 연합장로교회가 내용을 바꿈으로써 집안을 다스리는 일에도 권위를 상실한 3백여년 전의 웨스트민스터 회의[Westminster Assembly] 신조나,7 처음부터 강압적이고 편파적이어서 그 당시 집안 교회들도 대부분 따르지 않았던 도르트 종교회의[Synod of Dort; 1618-19] 결정을8 지금의 집 밖의 교회들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는 일은 상식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그것은 중세교회가 강요한 모든 전통[傳統]을 배격하고 “오직 성경”[sola scriptura]만이 신앙의 규범임을 부르짖으며 일어난 종교개혁자들의 개신교 정신에도 전적으로 배치된다. 비록 교파는 다를지라도 모든 교회들이 성경을 중심으로 회전[回轉]해야지, 어떻게 칼빈을 중심으로 돌아가서야 되겠는가? 그것은 마치 교황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중세교회가, 모든 천체는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한다는 천동설[天動說]을 뒷받침했던 과오를 또 다시 신학적으로 반복하는 칼빈주의 천동설이 아니겠는가?
박영관 씨는 자신이 설정한 자기중심적인 이러한 이단 판별기준에 따라 안식일교회를 “교회와 사회에서 노략질하는 이리”, “하나님의 교회에 미지불[未支拂]된 잔고”, “현대 바벨탑을 쌓는 집단”, “제2의 인본주의 그룹”, “정통 기독교가 아닌 이단”9 등의 표현으로 혹평하고 있음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대단히 섭섭하게 생각한다.
이단종파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마르틴[Walter Martin]이 지적한 대로, 이런 기준을 적용한다면, 상기한 도르트 종교회의에서 이단으로 정죄한 아르미니우스[Arminius]의 예지예정설[豫知豫定說]을 전부 혹은 일부라도 믿고 있는 감리교를 비롯하여, 성공회, 감독교, 루터교, 일부 침례교, 오순절교회도 모두 이단이 되고 만다.10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마 15:6]해서는 안 된다고 하신 주님의 경고를 우리 모두는 늘 기억해야 한다.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사 8:20]라는 명백한 말씀을 함께 상기해야 한다. 정통이든 이단이든 성경만이 유일한 판단의 기준임을 못박고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참고로 루터와 칼빈을 저주받을 이단으로 정죄한 로마 가톨릭 교회의 이단 판정기준을 교리 문답서에서 인용한다. 성경을 기준으로 하지 아니한 이단의 판별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공감하기 바란다.
“이단이란 무엇인가?
이단이란 가톨릭교회가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것으로 가르치는 특정한 진리를 분명히 알면서도 고집을 가지고 이에 반대하며 자기가 원하는 대로 믿을 것과 믿지 않을 것을 자신을 위해 스스로 선택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영세 받은 신자이다.”11
정통신앙고백
이제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 그리스도교의 공식적인 이단 소송의 첫 번째 피고인, “이단의 괴수”로 기소된 사도 바울의 정통 신앙고백을 들어보자.
“이제 나를 송사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저희가 능히 당신 앞에 내세울 것이 없나이다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저희가 이단이라 하는 도를 좇아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저희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행 24:13-16].
정통신앙의 기수[旗手]인 사도 바울의 이러한 신앙고백을 자신의 편지서들에 나타난 신조를 배경으로 종합해 본다.
1. 구원의 역사를 통하여 우리 믿음의 조상들에게 계시된 신격[神格]의 삼위이신 참 하나님을 믿는다. [구속사적인 신관].
2.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 곧 모든 성경이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으며, 그것을 신앙의 완전한 규범으로 삼는다[성서주의적 신앙].
3. 성경의 목적이요 중심이신 구주에 관한 약속이 나사렛 예수의 속죄의 죽으심과 부활로 성취됨으로써 가능하게 된 구원과 부활을 궁극적인 소망으로 믿는다. 그런데 장차 있을 이 육신의 부활은 의인이 참여하는 생명의 부활과 악인이 참여하는 심판의 부활이 따로 있어 각각 행한 대로 갚아질 것을 믿는다[성서적 종말신앙].
4. 이토록 확고한 믿음과 분명한 소망이 있기 때문에 이에 합당한 생애를 살고자 하나님과 사람 앞에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살아가고 있다[도덕적 실천신앙].
참으로 일목요연한 정통 신앙고백이다.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예수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부인하거나 육신으로 오신 것[成肉身]을 믿지 않는 것을 적[敵]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규정했다[요일 4:1-3]. 또한 참 신앙의 합당한 열매인 올바른 행실을 산출하지 못하는 부도덕한 신앙, 십자가의 복음이 아닌 구원의 교리를 가르치는 것,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는 신앙을 모두 같은 범주에 넣었다[마 7:15-23; 갈 1:7-9; 살후 2:3, 4].
필자가 거주하고 있는 미시간 주 이웃 도시인 그랜드 래피즈에 소재한 칼빈신학교 교수였던 훼케마[Anthony Hoekema]씨는 그의 저서에서 칼빈주의 기준에 따라 안식일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한 후에, 다음과 같은 어리둥절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우리는 재림신자[안식일교인]들이 성경의 무오성[無誤性]과 삼위일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한 신성을 확실히 인정하는 것에 대해 감사한다. 우리는 그들이 창조와 섭리에 관한 가르침과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과 부활, 그리고 거듭나야 할 절대적인 필요와 성령에 의한 성화[聖化], 그리스도께서 문자적으로 재림하심에 대한 그들의 가르침을 감사한 마음으로 인정한다.”12
훼케마 씨 자신도 인정한 안식일교회의 이러한 신앙이야말로, 앞에서 인용된 사도 바울의 정통 신앙고백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식일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한 훼케마 씨의 이율배반적인 태도에 대해 종파연구의 권위자로 그리스도교 연구소장이었던 마르틴[Walter Martin] 씨는 이렇게 비평하고 있다.
“비기독교적인 이단 종파를 연구하고 있는 학자인 내게 있어서, 훼케마 박사 자신도 재림교회[안식일교회]가 그것들을 고수하고 있다고 인정한 바 있는 위에 열거된 것과 같은 성경적으로 앞뒤가 맞는 그러한 교리들을 엄수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동시에 비기독교적인 종파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사실은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13
불행하게도 그동안 국내에 소개되어 안식일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한 책들이 거의 극단적인 칼빈주의자인 훼케마 씨의 저서에 영향을 받은 것들인데, 박영관 씨의 저서도 훼케마 씨의 것을 대본[臺本]으로 삼았음을 스스로 밝히고 있다.14 훼케마 씨는 같은 칼빈 신학교의 대표적인 신학자였던 벌코프[Louis Berkhof]와도 여러 상충되는 주장을 펴고 있는 등 극단주의적 칼빈주의 기수임을 부연해 둔다.
이러한 배경을 염두에 두면서, 이제 독자들은 전개되는 비평과 변증을 편견 없이 지켜보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양심과 이성의 지시를 따라 성경에 입각하여 판단하기를 기대한다. 결정과 선택 앞에서는 언제나 연약해지는 우리 모두에게, 자신과 세상의 운명이 걸린 엄숙한 선택을 위해 보름[Worms] 국회에 소환되었던 루터가 교황의 사절과 제후들 앞에서 고백한 다음의 역사적인 신앙양심선언은 더할 나위 없이 고귀한 것이다.
“나는 나의 믿음을 교황이나 [종교]회의들에 굴복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빈번히 잘못들을 범해왔으며 상충[相衝]되는 일을 했습니다. 이성의 뚜FUT한 논증에 의하여 확신되지 않고서나, 내가 인용한 구절들에 의하여 내가 설득되지 않는 한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얽매인 나의 양심을 풀어놓지 않는 한 나는 취소할 수도 없고 취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으로서 그의 양심에 어긋나게 말하는 것은 안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기 서 있으며 아무 다른 것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저를 도우소서, 아멘.”15
참고 문헌
1. 탁명환, 기독교 이단연구[서울: 도서출판 연구사; 1987], 16, 17.
2. Ibid, 42-73.
3. Ibid. 63, 64.
4. Ibid, 43-75.
5. 박영관, 이단 종파 비판[I] [서울; 예수교 문서선교회, 1976], 21, 249. [1984], 21
6. 박영관, 이단 종파 비판[I], 머리말
7. 김의호나, 209-219.
8. Schuff, 514.
9. 박영관, 13.
10. Walter Martin, The Kingdom of the Cults[Minneapolis: Bethany House Publishers, 1985], 436.
11. M. Muller, In "Familiar Explanation of Catholic Doctrine," No IX 1888 ed, 170.
12. Anthony Hoekema, The Four Major Cults[Grand Rapids: W. B. Eerdmans Publishing Co. 1963], 403.
13. Martin, 424.
14. 박영관, 머리말 둘째 쪽.
15. J. H. Merle D' Aubigne, History of the Reformation of the Sixteenth Century, bk. 7, ch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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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현대종교 홈페이지에 안식교는 이단이라고 정죄되어 있습니다.
http://hdjongkyo.co.kr/main/sub/news_index_detail.html?section=42264&category=42265&num=43
하나님의 율법은 영이신 하나님의 법이기 때문에 성령 받지 않으면 지키지도 않고 지킬 수도 없다는 것
옛 언약은 우리가 지켜야 하지만 새 언약은 성령께서 지켜 주신다는 것
시 119,142; 126; 롬 7:14-24; 요일 3:4-24
히 8:9, 10
9 또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열조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저희와 세운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저희는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저희를 돌아보지 아니하였노라
10 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
사 51:7, 8
7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나를 듣고 사람의 훼방을 두려워 말라 사람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8 그들은 옷같이 좀에게 먹힐 것이며 그들은 양털같이 벌레에게 먹힐 것이로되 나의 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하늘본향님은 유대교입니까?
하늘본향님은 기독교입니까?
갈바리의 십자가는 율법의 불변성을 말해 주는 한편, 죄의 값이 사망이라는 것을 온 우주에 선포한다. 구주께서 임종하시면서 “다 이루었다”고 외치실 때 사단의 멸망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오랫동안 계속하여 온 대쟁투는 이제 판가름이 나고 죄악의 최종적 도말이 확정되었다. 하나님의 아들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히 2:14) 멸하기 위하여 무덤의 문을 통과하셨다. 루시퍼는 자기를 높이고 싶은 욕망으로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사 14:13, 14)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네가 죄악이 많고 … 불의하므로 … 내가 … 너로 땅 위에 재가 되게 하였도다. … 네가 영원히 다시 있지 못하리로다”(겔 28:18, 19).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말 4:1)하리라.
온 우주는 죄의 본질과 결과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