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5. 큐티
마태복음 20:1 ~ 16
천국은 마치 – 포도원 주인의 마음
- 2절.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 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 3절.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 4절.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 5절. “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 6절.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 7절.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 8절.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 9절. “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 10절.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 11절.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 12절.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 13절.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 14절.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 15절.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 16절.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관찰 :
1) 부자 청년에 대한 메시지 이후 제자들이 자신들의 분깃을 요구하는 상황에 대하여 가르치신 먼저 된 자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에 대한 말씀에 이어 붙는 가르침입니다.
2) 천국은 마치
- 주님은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상황을 천국에 대한 비유로 설명해 주시고 있습니다.
- 천국은 마치 포도원 주인의 마음과 같은 양상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3) 포도원의 품꾼들
- 이들은 하루 품삯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한 데니리온. 그것이 당시의 규정된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 문제는 포도원 주인이 품꾼들을 각기 다른 시간에 불러 모았다는 것입니다. 제 삼시(오전 9시), 제 육시(낮 12시), 제 구시(오후 3시), 제 십일시(오후 5시).
- 오후 5시에 온 사람들이 해떨어질 때까지 일해 봐야 얼마나 했겠습니까? 주인의 표현대로 종일토록 놀고서 일하기 위해 모여 있던 이들을 주인이 데리고 들어온 것입니다.
4) 포도원 품꾼들의 원망
- 주인이 늦게 온 사람부터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주자, 자신들은 더 받을 것이라고 착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주인에게 원망을 했습니다. 왜 똑같이 주느냐고. 우리는 더 고생했는데, 왜 한 시간 밖에 일하지 않은 이들과 똑같은 취급을 하느냐고 원망한 것입니다. 일 좀 했다 이겁니다. 일하게 해준 은혜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본전만 생각한 것입니다. 은혜를 잃어버린 모습입니다.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 받은 것은 진작에 잊어버린 모습입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한 데나리온이 정해진 품삯이기에 이들이 왜 늦게 온 이들이 똑같이 받냐고 하는 것은 그들은 적게 받아야 된다는 주장인 것입니다. 자신들의 품삯을 더 달라는 것보다 사실은 이 의미가 더 큽니다. 늦게 온 이들에게 적은 품삯을 주고, 자신들은 한 데나리온만 받았다면 불만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주장은 악한 것입니다. 은혜본위의 생각이 아닙니다. 죄성의 발현입니다.
5) 주인의 반응
-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입니다.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다”라는 것입니다. 나중 온 이들은 한 데나리온을 받지 않으면 결국 집에 있는 가족들이 굻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들에게 대해 자비를 베푸시는 것이 주인의 뜻인데, 그들의 것을 받는 것이 불의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일찍 온 자들의 주장이었습니다. 이들은 적게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악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선을 행하고자 하는 주인이 악하다는 것입니다.
-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는 주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영생은 참 하나님과 그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보다 선행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천국은 주님의 마음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먼저 소유하는 이가 먼저요, 먼저 왔다고 먼저가 아닌 것입니다.
가르침 :
1) 예수님은 사도들이 자신들의 분깃을 주장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원하셨습니다. 아무리 목숨을 걸고 주님을 좇았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수고를 가지고 하나님께 따지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앞에서 자신의 공로를 가지고 인정을 받는 자는 없습니다. 모두가 다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전 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도들이 고전 15:11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라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2) 자신이 받을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데, 내 것이 다른 사람 것보다 적다고 느끼는 것은 내가 더 받아야 하는 것보다 저 사람이 적게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우선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악한 것이고 죄성의 발현입니다.
3) 포도원 주인의 마음이 천국입니다. 천국은 마치 포도원 주인의 마음과 같이 모든 이들에게 동일한 은혜를 줌으로 온전케 되기를 원하시는 아버지의 마음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을 품꾼들은 이해를 못했지만, 그럴지라도 주님은 주님의 일을 행하십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그렇게 넓고 크시고, 그 은혜로 나 같은 존재도 주님의 은혜에 거하게 됩니다. 그것을 감사하는 것이 나의 본분입니다. 남이 받는 주님의 은혜를 가지고 내 것과 비교하여 따따부따 따지는 것은 주님의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불의해 보인다 해도 그것은 나의 죄성으로 말미암은 허물 때문에 그리 보이는 것이고, 주님의 입장에서는 그것은 공의인 것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봉사하는 자나 그렇지 않고 간신히 구원받은 자나 똑같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먼저 주님을 알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것, 그 자체가 큰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먼저 아는 것, 그만큼 더 많이 누리는 것, 주님을 더 많이 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 이것이 성도의 기쁨이요, 먼저 포도원에 들어간 품꾼들의 기쁨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적용 :
1) 자족하겠습니다.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비교의식, 그리고 본전생각을 떨쳐버리겠습니다. 종은 종일뿐입니다. 할 일을 했을 뿐으로 만족하고, 무익한 종의 본문을 망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포도원의 품꾼들이 주인의 마음을 가지고 왈가왈부 하는 것은 불의한 일이었습니다. 나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의도하심을 내가 모른다고 주님께 따지고 드는 것은 미련한 행위입니다. 오직 내가 누리는 주님의 은혜와 주님과의 교통으로 만족하는 자세가 흩어지게 하지 않겠습니다. 나에게는 오직 주님만이 필요할 뿐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상급은 주시면 감사한 것일 뿐입니다. 나머지는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2) 극심한 스트레스로 당뇨 수치가 너무 올라서 병원에서 일주일간 입원했습니다. 오늘 퇴원합니다. 오늘의 말씀으로 나의 스트레스를 내려놓고자 합니다. 내가 감당해야 할 책임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을 품고 끙끙댈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나의 모든 사역과 사고와 행위의 중심이 되어야 함을 다시금 깨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