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전 눈 내리는 날, 정동진에서 기차를 타고 도계로 짧은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도계 역 앞 중국집 벽에는 체게바라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중국집 사장 남편은 귀걸이를 하고 주방에 있었고, 아내는 식탁에서 한자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때 내가 물었다.
“제게바라를 아세요?”
“옆의 호랑이 그림을 주문하니 덤으로 주던데요”
어느 진보 지식인의 서재에나 있어야 할 체게바라가 기울어진 탄광지역에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체게바라는 지식인 보다 탄광에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내가 읽던 <체 게바라 평전>을 딸 아이가 먼저 읽고 나서 한다는 말이 가관이었다.
장차 커서 ‘반미연합군’을 만들겠다는 거였다. 중국하고 힘을 합치면 가능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제국주의와 부조리에 저항하며 쿠바혁명을 이끌었던 인간 체 게바라는 여전히 매력적인 인물이다.
그것은 그가 사회주의 혁명가여서가 아니다.
그에게 이념은 깃발일 뿐이었다. 우리는 그의 깃발보다 깃발을 부여잡고 있던 손목에 더 주목하고, 불가능한 꿈에 도전했던 한 인간의 구체적인 고투에 감명할 따름이다.
그의 청년 시절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낡은 오토바이 ‘포데로사’는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는 세계의 청춘들을 흥분시킨다.
아들을 아홉명쯤 낳아 야구팀을 만들고 싶다는 발언, 동지였던 카스트로와 함께 군복을 입고 골프를 치는 사진에 야유를 보내는 사람은 지극히 적다.
오히려 열광한다. 이념으로 세계를 양분하는 방식에 동의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공연에서 출연자들이 체 게바라 티셔츠를 입은 게 논란이 되고 있다.
아직 냉전적 사고로 사상 검열의 시스템을 작동시키려는 이들이 있는 모양이다. 체 게바라 티셔츠를 판매하는 자, 체 게바라 사진을 소장한 자, 쿠바를 여행하고 싶은 자는 그럼 어떡해야 하지?
사회주의자였던 사르트르를 읽지 말고, 네루다의 시를 불살라 버려야 하나?
얼마 전, 다시 그 중국집을 찾아서 도계 역에 갔을 때, 중국집은 오래 전에 문을 닿았다고 했다.
대신 그 자리에는 부대찌개집이 들어서 있었고, 20 년전 중국집에서처럼 나는 부대찌개를 안주 삼아 소주를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