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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종로 네거리를 가로질러 서북편 귀퉁이에 있는 금은상 앞으로 가노라고 가는데
"고랏. (이놈아)"
소리가 들리며 삐그덕하더니 펜더가 앞 정강이를 지분거리며 머물러선다.
고개를 들어 보니 운전수가 눈을 부라리며 두덜거리고 교통순사가 이리 오라고 손짓을 한다.
무렴해서 슬슬 달아나고 싶은 것을 그리하지도 못하고 순사 옆으로 가니까 꾸지람을 하다가는 세워놓고 교통정리를 하고 또 몇마디 하다가는 제 볼일을 보곤 한다.
‘기니’ 어쩌고 하는 소리에 비위가 버럭 상했으나 쇠다가는 더 창피하겠어서 짐짓 고개를 숙여버렸다.
한바탕 졸경을 치르고도 그는 먼저에 바라고 가던 서북편 귀퉁이의 금은상 앞으로 가서 진열창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제법 지나는 길에 물건을 간색이나 하는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들여다보기는 하나 가슴은 두근거렸다.
팔십이 원인가 하는 금비녀 한 개가 유독 눈에 들었다.
잡히면 오십 원은 줄 듯싶었다. 그러나 오십 원을 가지고 이것저것 쓸데를 생각하니 모자랐다.
값이 비슷한 놈으로 가락지를 하나만 더…… 이렇게 투정을 하다가 문득─기왕 도적질을 하는 바이면 그까짓것 백 원?
하고 돌아서버렸다.
그는 비로소 도적질이라는 생각에 연달아 내가 도적질을 하려고까지 하다니! 하고 얼굴이 화틋 달아올랐다.
엣! 치사스럽다. 이렇게 거진 입 밖으로 말이 흘러져 나올 만큼 중얼거리고 그곳을 떠나려다가 지남철에 끌리는 쇠끝처럼 뒤를 돌아본다.
돌아다보는 눈에 다시 아까 그 금비녀와 금가락지가 어른거리자 그는 그대로 금은상으로 들어섰다.
"어서옵쇼."
젊은 점원이 진열창 너머서 직업적으로 인사는 하나 이 초라한 손님의 몸맵시를 여살펴본다.
"저기 진열창에 있는 금비녀 좀 보여주시요."
범수는 떨리는 가슴을 겨우 누르고 말을 했다.
"네 어느겁쇼?"
하고 점원은 진열창의 유리문을 열면서 내어다본다.
"바로 고 팔십이 원 정가 붙은 놈…… 그러고 여러 가지로 좀…… 그러고 가락지도 여러 가지로……"
점원은 비녀를 여러 개 가로 꽂아놓은 곽과 가락지를 끼워놓은 곽을 집어다가 범수 앞에 내놓는다.
"이게 몇돈쭝이지요?"
범수는 아까 눈독 들인 금비녀를 빼어 손바닥에 놓고 촐싹거려보며 묻는다.
점원이 그것을 받아 저울에 달고 있는 동안에 범수는 다른 놈을 두어개 빼어가지고 아름하는 듯이 양편 손바닥에 올려놓고 촐싹거려 본다.
이것이 기회인 것이다. 그는 그 기회를 이용하려고 다뿍 긴장이 되어서 점원이
"닷돈두푼쭝입니다."
하는 소리도 귀에 들어오지 아니했다.
점원이 저울질을 하는 잠깐 동안에 손빠르게 한 개를 요술하듯이 소매 속에든지 어디든지 감추었어야 할 것을 막상 다물리고 보니 범수에게는 그러한 재치도 없고 기술도 없으려니와 또한 담보의 단련도 없다.
첫시험은 실패를 하고 그 담에는 가락지를 가지고 시험을 해보았다.
그러나 역시 실패를 하고 말았다.
그는 점원의 멸시하는 시선을 뒤통수에 받으면서 금은상을 나와 화신 앞으로 건너왔다. 그는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
보통학교부터 쳐서 대학까지 십육 년이나 공부를 한 것이 조그마한 금비녀 한 개 감쪽같이 숨기는 기술을 배우니만도 못하다고.
그렇다면…… 그렇다면…… 하고 그는 그 뒤를 생각하다가
도스토엡스키의 『죄와 벌』의 라스꼴리니꼬프가 도끼를 높이 들어 전당쟁이 노파를 내리찍는 장면을 생각하고 오싹 등어리가 추워 눈을 감았다.
그는 허위대가 이만이나 하고 명색이 대학까지 마쳐 소위 교양이 있다는 사람으로 도적질을 하려고 한 자기를 나무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바로 자기 자신에게 항거를 한다.
도적질을 하는 것이 왜 나쁘냐고.
이 말에는 자기로서도 자기에게 대답할 말이 나오지 아니한다.
아니, 도적질을 하는 것이 나쁘고 악하고 하다는 것보다도 무엇보다도 더럽다. 치사스럽다.
이 해석이 마침 자기의 비위에 맞았다. 그래 그는 싱그레 혼자 웃었다.
그러면서 마침내
"뺏기지 않는 놈은 도적질할 권리도 없다“
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느결에 구름은 흩어져 서편 하늘가로 몰려가고 불볕이 쨍쨍 내려쪼인다. 범수는 팔을 짚어 쓰러지려는 몸뚱이를 지탱했던 전신주 옆을 떠났다.
새까만 거지아이놈이 조그맣게 두 손을 내밀면서
"나리, 나 동전 한푼만"
한다.
범수는 어이가 없어서 발을 멈추고 멀거니 거지아이를 치어다보느라니까 고놈이 마치 자기의 큰아들 종석이인 것같이 생각이 들었다.
"너 어데 사니?"
이렇게 물으니까 거지아이는 되레 뚜릿뚜릿한다.
"부모 없니?"
"없어요."
더 물어볼 말이 없다.
"돈 시방 없다. 이담에 주마."
"흥, 한푼만 줍쇼."
거지아이놈은 범수가 상냥하게 말을 하니까 어리광하듯 떼를 쓰고 달라붙는다.
"너 배고프니?"
"네 어제 아침두 못 먹었어요."
"거 배고프겠구나."
"그러니깐 한 푼만 주세요. 여기 사전 있으깐 호떡 하나 사먹게요."
거지 아이는 딸랑하고 노랑돈 너푼을 손박에서 채어보인다.
범수는
"네가 나보담 낫다’고 하려다가 빙그레 웃고 말고
"시방 한 푼도 없다."
하고 화신 정문으로 들어섰다.
마침 뒤에서 쑥 들어서는 사람이 담배연기를 훅 내뿜는 서슬에 향긋한 담뱃내가 뼛속까지 스미는 것 같아 범수는 무심코 돌아보았다.
양복 입은 젊은 사람이 반도 못 탄 담배토막을 내버리면서 들어서서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고 있다.
담배는 경사진 시멘트바닥에서 대그르 굴러 길바닥에서 그대로 솔솔 타고 있다. 오고 가는 발들이 위태위태하게 그것을 밟으려고 한다.
얼핏 허리를 굽혀 집고 싶은 것을 겨우 참고 차마 그 옆을 떠나지 못하는데 지게 진 품팔이꾼이 성큼 집어 그대로 입에다 물고 가버린다.
범수는 삼층으로 향해 올라가면서도 속으로 만나면 말을 넣을까말까하고 망설였다.
중학때에 퍽 가까이 지내던 동창생 하나가 서울서 전문학교를 마치고 벌써 삼사 년 전부터 이 화신에서 일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S라고 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되어서 그런지 무슨 주임이 되었다는 소식을 범수는 들었었다.
돈을 취해 달라고 하자면 일부러 찾아온 것같이 해야 하겠는데, 그랬다가 눈치가 달라 돈 말을 내지 못하게 되면 친한 사이라도 쑥스럽겠고, 그렇다고 문득 만난 것처럼 만나서는 아예 돈 말을 내려도 낼 수가 없을 것이고 해서 범수는 S가 있는 데를 어름어름하다가 S의 눈에 띄고 말았다.
S의 첫번 인사는 왜 이렇게 신색이 못되었느냐는 것이다.
굶어서 그렇다고는 못하더라도 그저 고생살이를 하느라니 그렇지야고쯤 대답했겠으나 범수는 쓰게 웃으면서
"신병 때문에……"
했다.
그러니까 S는 더욱 캐어묻는 것이다.
"무슨 병인데?"
"체증."
체증이라고 대답을 하고 보니 범수는 미상불 위장병─못 먹은 병─이 아닌 것은 아니라고 속으로 웃었다.
"그래 요새 지내는 형편?…… 저기 그만두구 아즉 아무데두……?"
S는 고개를 흔들어 묻는다.
"응 그냥 번둥번둥 놀구 있지……"
"그럼 지내기두 곤란일걸! 어서 무얼 좀 붙들든지 해야지……"
범수가 웬만하면 S의 이 말끝을 받아서 양식이 없어 그런다든지 무엇에 급히 쓸 일이 있어 그런다든지 하고 돈을 암만만 돌려달라고 말을 내놓았겠지만 그는 그 반대로
"머 그저 그럭저럭 살어가지."
하고 대수롭잖은 듯이 씻어넘겨 버린다. 그러고는 말줄이 끊이니까 되레 S더러
"그래 자네는 요새 어떤가?"
하고 묻는다.
"나? 하이구 말도 말게…… 일은 고되구 얻어먹는 건 칙살스럽게 적구…… 어서 이 노릇 작파허구 무엇이든지 내 영업으로 장사라두 시작해야지 허천나 죽겠네…… 월급이라구 받는다는 게 다달이 적자야……이삼십 원씩은 항용 밑져 들어가니 그 노릇을 누가 해먹나!"
이렇게까지 말이 나오매 범수로는 영영 돈 취해 달라는 말은 낼 수가 없고 만다.
나중 갈릴 때에 S는 범수더러 시방 그의 ‘생리상태’를 알 길이 없는 지라
"삼방 같은 데라도 가서 몸조섭을 잘 해야지 그대로 두어서는 못쓴다."
고 신신 당부를 한다.
범수는 S를 작별하고 무엇에 빨리듯이 사층 식당으로 올라갔다.
사층 층계를 다 올라서면서 신형의 동그란 선풍기에서 나오는 선풍기에 더위를 들이느라고 섰느라니까 등 뒤에서 누가 어깨를 턱 짚으며 서슴잖는 큰 소리로
"긴상 웬일이슈?"
하고 옆으로 다가선다.
범수는 깜짝 놀랄 뻔하다가 돌아다보고 그가 P인 것을 알았다.
전에 서울서 중학때도 알았지만 동경서 대학을 일 년만 같이 다녔고 술동무로 친해진 사람이다.
범수가 동경서 나오니까 P는 대학을 일 년만 졸업하고 먼저 나와 종로판의 행세꾼이 되어 있었다.
긴상이니 박상이니 하는 말투를 보면 장사패가 된 것 같으나 그는 장사를 하는 것 같지도 아니했다. 그는 장사를 할 사람도 아니요 또 할 줄도 모르는 귀골 서방님이다.
남북촌 백화점의 식당과 찻집과 삘리아드집과 빠와 요리집의 다섯 개 각(角)의 선(線) 위로 뱅뱅 도는 종로 활량 가운데 한 사람이다.
범수도 언제든지 종로에 오면 한번 이상은 기어코 이 P와 그 일행을 만나곤 했던 것이다.
"아! 나는 누구라구!"
범수는 언제 보나 근심기 없고 명랑해 보이는 P의 기분에 끌려 같이 웃으며 인사를 했다.
"그래 얼마나 더우시요?"
"나야 머 이렇게 야윈 사람이 더우를 타우? P씨야말로 얼마나 부대끼시요?"
어디다 내놓아도 늠름하니 호장부로 생긴 P를, 그리고 좋은 체격과 풍족한 생활에서 오는 근심기 없이 언제나 유쾌해 보이는 그의 언동을 절절히 부러워하며 범수는 윤기 있는 그의 얼굴을 다시금 바라보았다.
"아 참, 그러니 말이지 참 더워 죽겠수. 발개벗구 다니랬으면 좋겠어! 하하하하."
P는 근처가 요란하게 큰 소리로 웃는다.
"그런데 무슨 볼일 계시유? 긴상? 가서 점심이나 자십시다."
이 말에 범수는 어금니로 신침이 스미고 와락 시장기가 들었다. 그러나 그러는 것이 괜히 천적스러운 것 같아 얼핏 나서지를 못한다.
"멋 나는 괜찮으니 어서 가서 자시요."
"아니야, 같이 가서 자십시다…… 볼일 계시유?"
"응 아니, 머 볼일은 없지만…… 나는 조반을 늦게 먹어서……"
“
원 참 이게 어느때라구! 네시반인데! 자 갑시다."
P는 범수의 팔을 잡아 끈다. 진열창을 들여다보다가 조선 런친지 하는 것을 먹기로 하고 P가 레지 앞에 가서 식권을 사는데 바른편 포켓에 손을 푹 집어넜다가 아무렇게나 꺼내는 것이 커다란 백원짜리가 두어 장 십원짜리가 여러 장이다. 그 밖에도 더 많이 들어 있는 모양이다.
"가부를 좀 했지요."
P는 십원짜리 하나를 내놓고 식권을 사면서 범수를 돌아다보고 웃는다.
"심심해서 장난삼아 해봤지요. 하하. 그랬더니 오늘 삼 백 원 도망갔어 하하하하…… 그래두 재미는 있어!"
너무 크게 웃고 크게 지껄이니까 드나드는 사람이 저마다 P를 한번씩 돌아다보고 간다.
하루에 백 원을 써도 이백 원을 써도 장난삼아 주식을 해서 삽백 원이 도망갔어도 돈은 아깝지 아니하고 재미만 있다는 이 P를 바라볼 때에 범수는 그냥 몸부림을 치고 싶게 안타까왔다.
식당으로 들어가 잠깐 앉더니 P는 양복저고리를 벗어 걸상 위에 놓아두고 변소에 간다고 도로 나갔다.
마침 바른편 돈 들어 있는 포켓이 위로 가서 있다.
범수는 침을 꼴깍 삼키며 그 속에 돈이 시글시글할 그 포켓을 바라다 보았다 아까 금은상점에서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확확 달아오른다.
그는 진득이 가슴을 가라앉혀 가지고 좌우 옆을 둘러보았다.
전체로 손님이 드물고 범수네가 자리를 잡은 식탁 근처에는 아무도 앉지 아니했다.
고개를 들고 보아도 누구 하나 범수를 보는 사람은 없다.
기회는 절대로 좋다.
백원짜리는 없어지면 바로 자리가 날 테니 못쓴다지만 십원짜리 한두 장은 없어진대도 함부로 넣기 때문에 어디가 빠진 줄 그저 심상히 여기고 말 것이다.
이렇게 마음의 계획을 세우고 범수는 걸상을 다가놓는 체하면서 살며시 손을 뻗쳐보았다.
그러나 바르르 떨리는 손은 조금 나오다가는 무엇에 꼭 비끄러맨 듯이 더 뻗쳐지지를 아니했다.
그러면서 ‘도적놈의 권리’가 머리속에 떠오른다.
단행을 아니한 것이 섭섭도 하나 어쩐지 가슴이 홀가분해서 걸상을 도로 물려놓고 앉았느라니까 P가 터덜거리고 돌아와 앉으며
"아 참 긴상, 어데 편찮으슈? 신색시 아주 못됐어!"
하고 속도 모르고 걱정을 해준다 P가 돌아와서 자리에 앉고 그리하여 기회가 가고 없으며 범수는 ‘도적질도 할 수 없는 인종’이라고 속으로 자기를 저주했다.
범수는 본시 술을 못 먹는 편이 아니나 다뿍 시장했던 판에 날맥주를 한 조끼나 들이켜 그 위에다가 더운밥을 먹어, 해놓아서 술에 취하고 밥에 취하고 했다.
더구나 시장한 판에 정신없이 퍼먹은 밥이 술에 뒤섞여 배가 불러오매 그것은 배부른 안심이나 만족을 주지 아니하고 도리어 배고픈 때보다 더한 고통을 주었다.
이런 경험은 범수는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고통이 영락없이 있을 줄을 미리 알기는 알면서 다들리는 판에 먹지 아니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래 그대로 그 자리에 쓰러져 잠이라도 자고 싶게 몸이 사개가 풀린 것을 억지로 끌려 화신을 나서니까 얼큰해진 P는 또다시 빠로 가자고 우겨댄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요 세 번 만나면 두 번씩은 으레 술집으로 끌려가서 이 돈냥이나 있는 놀이꾼의 술을 얻어먹어 오던 터이다. 그럴 때마다‘병정’이라는 치사한 생각이 들어 범수는 앞뒤가 여살펴졌는데 차차 이러다가는 영영 P의 병정이라는 호를 타고 말겠구나 하기는 하면서, 그러나 그것을 뿌리치지 못하고 슬며시 따라섰다.
그것이 실상 속은 아무렇게라도 술이나 취하고 엄벙덤벙해서 우울한 것을 잊어버리자는 것이나, 그는 그러한 자기의 실속을 속이어
P가 굳이 잡아 끄니까……
P가 적어도 나만은 병정으로 알고 그러는 것이 아니요 일종의 존경하는 뜻으로 그리하는 것이니까.
이렇게 옹색스러운 위안을 만들어내었다.
‘뻐커스’라는 이 빠는 요새 새로 생기기도 했지만 범수는 처음이다.
그러나 종로 뒷골목에 흔히 있는 다른 빠와 역시 다를 것이 없는 곳이다.
그다지 교태도 없는 빠텐더가 있고 값 헐한 도배지를 희미한 전등으로 윤내고 군색한 걸상이 있고 혈색 좋지 못한 여자들이 제가끔 여왕인 체하고 있고,
"이 때갈년들 다 어데 가고 두 마리뿐이냐."
P는 들어서면서 첫 인사가 이것이다. 멀건 대낮에 손님이 있을 턱이 없다. 차를 마시는 한패가 구석자리에서 여자 둘을 다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저 악한이 또 어데서 대낮에 얼어가지구 저래!"
맨다리에 원피스에 싱글에 얼굴 갸름한 여자가 말과는 반대로 해죽해죽 웃으며 P에게 달라붙듯이 어깨를 비빈다.
"더웁다 이년아, 비켜라."
"내 이름이 이년인가! 깍쟁이……"
먼저 여자는 짐짓 쌜룩해서 저편으로 가고 거기 있던 조선옷 입은 얼굴 둥글고 계집애같이 생긴 여자가 갈아든다.
"P상 어쩌면 그렇게 한번도 안 오슈?"
"느이 보기 싫여서 안 왔다…… 자 거기 앉어라. 너 이 어른 첨 뵙지?"
"글쎄……"
"너 시집가구 싶으면 내 소개해 주랸?……참 훌륭하신 어른이다."
"아이구! 그러면 나 같은 것이 어떻게……"
"이 때갈년들아 저런 어른허구 연애만 해봐라. 대번 코가 우뚝해지지."
범수는 듣다 못해서
"원 실없은 소리!"
하고 웃어버렸다.
열모로 뜯어보아야 지금 자기의 몸차림새며 몸태가 여자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는 못하게 생겼는데 P가 자꾸만 그러는 것이 호의로 해석하자면 계집을 조롱하는 것이라겠지만 어떻게 보면 범수를 놀리는 것도 같아 자격지심이 들기도 했다.
그래 간단하게 차나 마시고 일어서자고 하고도 싶었으나 벌써 청한 맥주가 들어오고 여자 하나도 마저 이편 자리로 와서 시중을 든다.
자리가 그렇게 벌어진다고 범수가 먼저라고 일어서자면 못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용단까지는 나지 아니하고 모처럼 당한 이 유흥이 또한 자력(磁力)을 부리어 그대로 주저앉아 있는 것이다.
술이 양에 넘치게 지나갔을 때에도 범수는 몸만 피곤했지 취하지는 아니했다. 도리어 정신이 더 드는 것 같아 도연한 가운데 다시금 자신을 돌아다볼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돈푼이나 쓰는 친구에게 이렇게 병정을 서듯이 끌려다니며 술을 얻어먹는 것을 아까 금은상점 앞에서나 또 화신식당에서나 도적질을 하려던 자기보다 더 비루하고 치사스럽게 생각했다.
그것은 대부분이 술기운에서 생긴 객기요, 또 그 자리의 놀이가 웬만큼 싫증난 소치다.
P가 더 놀다가 친구나 몇 청해가지고 시외 어느 요리집으로 나가서 밤새껏 한바탕 놀자고 굳이 붙드는 것을 범수는 내내 볼일이 있다는 핑계를 하고 ‘뻐커스’를 나와 그 문앞에서 P를 작별했다.
벌써 일곱시가 지나고 긴 여름해도 저으기 기울었다.
취하고 지친 몸으로 십리길을 걸어 나갈 일이 아득하여 범수는 몇 번이나 저편으로 가는 P를 돌아다보았다.
그러나 차마 그를 도로 불러 돈 말을 내지 못했다.
범수는 할 수 없이 남대문편으로 향하여 찌는 햇볕을 쪼이며 타박타박 굳은 시멘트길을 걸어간다.
이 더위를 겪으면서 그는 겨울에 추워 고생하던 일을 생각해보았다.
그러자 마침 머리 위에서 하늘이 찢어질 듯이 프로펠라 소리가 쏟아지며 군용비행기 세 대가 소리와는 딴판으로 유유히 북쪽으로 떠가고 있다.
"체, 비행기를 만들어내는 연구, 비행기를 제작하는 노력이면 여름의 태양열을 저장했다가 겨울에 쓸 수가 없을까…… 어느편이 과학을 옳게 이용하는 편일고?"
범수는 이렇게 두덜거리며 다시 한번 비행기를 올려다보고 혀를 찬다.
청파에서 그는 문득 생각이 나 N이라고 하는 자동차 서비스에 들렀다.
그는 역시 청파에서 철공장을 경영하고 있는 친구의 소개로 이 N서비스공장의 주임격인 최씨와 만나 그의 큰아이 종석이를 두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
범수의 욕심 같아서는 방면이야 무엇이 되었든 좀더 규모가 크고 경영도 합리화한 대공장으로 보내고 싶었으나 그런 곳에는 반연을 얻지 못했던 것이다.
월급이나 일급 같은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니 그저 한 십년 하고 데리고 있어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는 직공만 만들어 달라고 그는 최씨더러 부탁을 했었다.
최씨는 그것은 장차 일이고 좌우간 주인과 상의해 보아서 가타고 하면 기별하겠다고 신어붓잖게는 대답했으나 벌써 한 달이 넘은지라 좌우간 어찌 되었나 싶어 둘러본 것이다.
최씨는 기름 묻은 작업복을 입고 공장에서 손수 일을 매만지고 있다가 범수를 보자 처음 만날 때와는 딴판으로 은근히 인사를 하며 사무실로 안내를 한다.
그러면서 그들을 소개한 철공소의 그 친구와 만나 ‘김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며 더우기 ‘자제’를 공장으로 보내려는 포부도 듣고 그 심경을 잘 이해하노라고 일종 존경하는 태도로 범수를 대해주었다.
범수도 그것이 싫지는 아니했다. 그런지라 점잖게 대할 이 사람을 이렇게 취기를 띠고 찾아나온 것이 면구스러웠다.
"진즉 제가 가서 기별을 해드릴렸는데 이렇게 찾어오시게 해서……"
최씨는 급사가 가져온 차를 범수에게 권하며 이렇게 요건을 꺼낸다.
범수는 일이 뜻대로 되었구나 짐작하고 흡족해서
"머 천만에…… 저야 번들번들 놀고 있으니까 얼마든지 찾어와도……"
하고 겸사를 한다.
"그 뒤 조용한 틈이 있길래 주인더러 이야기를 했지요. 친한 친구의 자젠데 무슨 생활이 궁해서 그런 것이 아니요 남다른 포부가 있기 때문에 학교교육보다는 공장에서 기술을 배우게 할랴고 그런다구…… 그랬더니 주인도 어린아이 하나쯤 더 둔다고 별일이야 없을 테니 맘대로 허라구 승낙을 허드군요."
"네 참 감사합니다. 애써 주어서……"
"원 천만에…… 그러면 아주 제게 맡기십시요. 십년 위한하고 그저 다른 것은 몰라도 자동차에 관해서는 누구 부럽잖을 기술자를 만들어 드릴 테니까."
"그럼 그렇게 수고를 해주시면……"
"그러고 처음 한두 달은 그냥 공장 안에서 심부림을 시키다가 그 뒤는 견습 직공으로 해가지고 다른 아이들 주는 대로 제 겸심값이라도 주게 하겠읍니다."
이것은 범수로도 애초부터 바라지도 아니하던 것이라 더욱 고마왔다.
그래 진심으로 치하를 한 후 내일 일찌기 아이를 데리고 오겠다고 하고 자리를 일어섰다.
"그렇지만 나는 김선생의 방침에 한가지 찬성 못할 것이 있는데요?"
최씨가 작별차로 따라 일어서며 하는 말이다.
"그러시까요? 왜요?"
"머리속에다가 학문만 처쟁여도 병신이지만, 그 반대로 머리는 텅 빈 데다가 기술만 익혀 손끝 놀리는 재주만 지닌 것도 마찬가지로 병신이 아닙니까?"
"그야 물론 그렇지요."
"그런데?"
"그러니까 적어도 초등 정도로부터 중등 정도까지의 상식은 제가 집에서 가르킬 생각입니다. 그것 못하면 야학이라도 보내고요."
최씨는 비로소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다시 한번 악수를 청한다.
"그러시다면 잘 알겠읍니다. 저도 그걸 유렴해서 다른 아이들보다는 정신들여 보아 드리고 되도록이면 시간 여유도 많이 갖도록 해드리겠읍니다…… 또 그리고 김선생이 손수 그렇게 상식 정도것을 가르켜 주신다면 저도 그 토대에다가 전문 방면의 지식도 가르켜서 머리와 손끝이 다같이 능란하도록 해드리겠읍니다."
최씨는 퍽 유쾌해하며 멀리까지 따라나와 작별을 한다.
"나는 과학의 승리를 절대로 믿는 사람이니까 그 방면의 일꾼이라면 즉접이든 간접이든 웬만한 희생이 있더래도 양성해내고 싶으니까요……나는 인류가 X X X X X X X X X X X하기 전에 과학이 그것을 해결해줄 줄 믿고 있읍니다."
최씨의 이 말에 범수는 다시 한번 그를 치어다보았다.
범수가 지칭하는 ‘X X의 중개자’만은 아니요, 상당히 머리를 써서 세상일을 관찰해 보려는 한 특수한 사람으로서의 최씨를 본 때문이다.
"혹 그럴는지도 모르지요."
그렇다고 와락 속을 줄 수도 없는지라 이렇게쯤 대꾸를 하고 그 담 말이 무엇인지 들어보려는 것이다.
"혹 그럴는지 모를 게 아니라 나는 아주 확신을 가지는데요?"
"어떻게?"
"과학이 지금보다 훨씬 더 발달되어서, 가령 공기 중의 질소를 잡어다가 인공식량을 무제한으로 만들어낼 수가 있다면?…… 아마 식량 문제가 그렇게 해결된다면 싸흠은 없어질 것이 아니겠읍니까?"
"그렇게 된다더래도 그날까지는 싸울 것이지만 그렇게 된 뒤에도 달리 싸흠은 있겠지요. 투쟁이 영영 없어진다면 인류에게는 로마의 말년이 오고 말 겝니다."
최씨는 범수의 이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그런지 또는 알아는 듣고도 찬동할 수가 없어서 그런지 혼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웃어버린다.
범수는 무거운 짐 하나를 벗어놓은 듯이 가슴이 홀가분해서 집을 향했다.
그러나 한 발 두 발 집에 가까와가며 ‘명일’보다는 오늘의 양식이 아득해서 도로 침울해졌다.
언덕비탈을 올라가느라니까 서편을 등진 일본집들이 시원하게 문에다가 발을 쳐놓았고 문앞에는 날아갈 듯이 유까다를 걸치고 아이 데린 일본 아낙네들이 저녁 후에 이쑤시개를 문 채 집집이 나와서 서 있다.
초조 없이 안정된 생활에서 오는 침착과 단란을 족히 엿볼 수가 있는 한폭의 그림이다.
그와 반대로 자기의 집구석은 시방 어떠할까? 생각하매 마음은 급하면서 그러나 걸음은 내키지를 아니했다.
겨우 언덕바지를 넘어 다시 비탈을 내려가느라니 왼손쪽 자기 집에서 안해의 높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낮에 범수가 나가고 나서……
영주는 줄에 넌 빨래를 만져보아 뿌득뿌득 말랐으면 그만 걷어다가 다듬질이나 할까 하고 마당으로 내려서는데 나가 놀던 작은아이 종태가 들어왔다.
손가락을 입에 물고 비슬비슬 걸어들어오면서 볼 먹은 소리로
"음마."
하는 것이 벌써 이짐을 부릴 눈치다.
"오냐."
영주는 입으로만 대답을 하고 빨래를 주섬주섬 걷느라니까 아이는 옆으로 와서 아랫도리를 안고 매달리며
"음마."
하고 또 부른다.
결혼하던 해 봄에 큰아이 종석이를 낳아서 지금 열 살(임신은 그 전에 연애시절에 되었었다), 그 다음 세 살 터울로 작은아이 종태를 낳고는 이내 포태를 못했다.
작은아이를 해산할 때에 자궁후굴이 생긴 것을 치료도 아니하고 그대로 둔 것이 지금 와서는 포태도 포태려니와 중증의 히스테리를 잃게 한 것이다.
영주는 아이가 작은아이도 작은아이려니와 큰아이 종석이는 남편 범수를 닮았고 작은아이는 자기를 닮았기 때문에 큰아이보다는 작은아이를 더 귀여워하고 그것이 어느때는 남편이나 남의 눈에 띌 만큼 치우치기까지 했었다. 여자의 편성이라고도 하겠으나 거기에는 그의 히스테리증이 다분히 시키는 점이 많았다.
영주는 아이를 마루로 데리고 와서 땀이 까만 꼬장물 되어 흐르는 얼굴과 목을 씻어주며 달랜다.
"종태야."
"응?"
"배고프지."
"응, 배고파 엄마."
아이는 전에 더러 끼를 굶고는 배고프다고 떼를 쓰다가 지천도 먹고 심하면 매도 맞고 해서 이제는 눈치가 올라 이짐은 부려도 제 입으로 먼저 배가 고프다고 밥을 달라고는 아니한다.
"배고파? 오냐 인제 아버지 돈 가져오시거든 쌀 팔어다가 응 고기두 사구 해서 밥 많이 해주께 응. 배고프다구 울구 그러지 마라 종태야."
"응."
아이는 대답만 하지 그래도 이짐은 풀리지 아니한다.
"에, 우리 종태 착허지…… 그러구 언니는 어데 갔나?"
"저기 가개 앞에……"
"혼자?"
"아니 아이들허구……"
"응, 그럼 어머니 다듬이헐 테니까 가서 언니허구 같이 놀아라…… 멀리가지 말구 종태야."
이렇게 살살 어르기는 하나 남편이 무슨 수로 다만 저녁 양식거리라도 구해가지고 돌아올까 싶지 아니해서 한심했다.
한편 속으로야 취직이 되었다든지 혹은 돈을 변통했다든지 해서 기쁜 낯으로 돌아왔으면 좋겠거니 하기는 한다. 더구나 아까 다투다가 나가면서
"돈을 마련해가지고 오면 입이 귀밑까지 째지렷다."
고 한 말은 어쩐지 무슨 도리가 있을 법해서 한 소리같이 느긋이 기대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남편이 돈이나 변통하려고 시장한 것을 참아가며 더운데 허덕허덕 돌아다닐 것을 생각하니, 그러면서라도 마음먹은 대로 돈이나 구처되었으면 신이 나서 돌아오려니와 모두 허탕만 치고 말면 얼마나 더 시장하며 낙심이 되랴 싶어 차라리 나가지 못하게 하니만 못했다고 누위치는 생각이 들기고 했다.
종태가 막 도로 나가려고 하니까 큰아이 종석이가 씨근버근 뛰어들다가 안으로 들어오지는 아니하고 대문간에서 갸웃이 들여다보더니
"종태야 종태야."
하고 긴하게 불러낸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