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 누이
김 난 석
그해 유월 피난 내려가 어수선하던 어린 시절
또래들과 참 무던히도 돌아쳤는데...
그건 불안한 마음을 떨쳐버리기 위한 몸짓이었다.
연못이나 개울가에 이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돌팔매질 하거나
창포 잎줄기 밑 휘저어대며 송사리 피래미 물방개만 놀래키곤 했지만
이젠 몸도 어지간히 굳어 허리 굽혀 밑창을 더듬기보다
고개 들어 파란 하늘 밑 창포꽃 위에 눈을 맞추게 된다.
어느 묘원의 연못가에 이르니 검은 상장(喪章)의 호접(蝴蝶) 한 마리
진보라 꽃창포 머리 위에 사뿐히 내려앉는 듯 허공으로 날아가더이
창포의 꽃말은 경의(敬意)요 호접은 조신한 몸짓이려니
마치 유월의 원혼을 달래려 나들이 하는 것 같았다.
얼마 전 경기도 화성 어느 해변가에서 일박이일의 휴식을 취했다.
목가풍 2층 주택 주변으로 포도넝쿨과 금별초, 쑥부쟁이 꽃
울타리를 이루고 있었지만
가며 오며 차창 너머 물논으로 가지런한 못줄기가 눈을 끌고
해 어둑해지면 개구리 울음소리도 들려오려니
지난날의 기억이 되살아 났던 것이다.
유월전쟁의 그 무덥던 여름날, 나는 일곱 살의 나이로 홀로 피난길에 올랐다.
시골에 도착은 했으나 누적된 영양부족으로 야맹증에 시달리기도 했으니
그런들 밤이 지나면 낮이 오느니 무슨 상관이랴.
허나 내 어머니는 나보다 한참이나 뒤늦게
내 아우와 어린누이를 데리고 시골에 도착하셨으니
그 고생이 얼마나 컸으랴.
아우는 너무 굶어서 눈이 헛돈다고 했다.
어린누이는 아예 눈을 감고 누워있었으니
나는 그 위급함을 알 턱이 없었다.
할아버지가 장롱 깊숙이 넣어두었던 인삼뿌리를 내어 보이셨다.
하얀 창호지 속에 백삼이 대여섯 뿌리나 되었던 것 같았다.
부슬부슬한 게 하도 오래되고 좀이 슬어 껍데기만 남은 것이었지만
이것이라도 다려 마시고 일어나라는 것이었을 게다.
그것이 효험이 있었던지 아우는 곧 일어났으나 어린누이가 문제였다.
이른 새벽이었다.
밖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이어서 헛간에 삽을 내던지는 소리가 났다.
아침밥상에서 알고 보니 어딘가에 묻고 왔다는 이야기였으니
참으로 허망했던 기억이다.
나는 또래들과 함께 들로 산으로 쏘다니기 시작했다.
어디에 묻혔을까?
덤불 사이에 찔레나무가 무성했다.
찔레 순 꺾어 요기를 했지만
어린 순이 마치 내 어린 누이의 손일 것 같았다.
까슬까슬한 가시는 손사래로 다가왔던 것이다.
어디다 묻었을까?
나무 그늘 밑에 수영이 수북이 자라고 있었다.
수영 순을 꺾어 요기도 했지만 새콤한 맛에 가슴도 아렸다.
어디에 묻혔을까?
서낭당 돌무덤에 걸려있는 원색 헝겊들이 바람에 울고 있는 듯 했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감정들이 무뎌지는 법,
얼마나 지났을까...
그때는 가뭄이 들어 모두들 비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밤, 천둥이 한번 치더니
앞들 논에서 어린 소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천둥이 서너 번 더 치더니
굵은 빗줄기가 꽝! 하고 마당을 때리는 게 아니던가.
한참 만에 비가 그치더니 개구리들이 어두운 밤에 요란하게 울어댔다.
소녀의 울음소리도 비에 씻기고
개구리 소리에 묻혀 가슴에 엷은 여운으로만 남았지만
어른들이 걱정 하던 가뭄이 해갈되었을 테니
평안한 마음에 밤은 그렇게 지나갔던 것이다.
집을 나서니 지난밤 앞들 논에
어린 소녀가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피난길이었을까?
길을 잃은 걸까?
배가 고팠을까?
갑자기 개구리소리가 귀를 때리며 내 어린 누이를 떠올려줬다.
배골 배골 배고르르 배고르르~
지금도 여름날 찔레덤불을 보거나 개구리소리를 들으면
그해 무덥던 그 여름날들이 떠오른다.
나는 피난길에 올라 뒤를 돌아다보지도 아니한 채 홀로 살아남았고
어느 빗발치던 날 애타게 울다 죽어갔을 이름 모를 소녀를
내다보지도 아니한 채 평온히 잠에 들었을 뿐이라니...
선과 악은 무엇이며 그 판단의 기준은 무엇인가?
흔히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사회에서
서로 해(害)하지 않고 불편함이 없도록 하는 보편적 사회규범을
윤리나 도덕이라 말하고, 여기에 그 논점의 근거를 두려 한다.
또한 미풍양속이라 하는 풍속에 그 논점의 근거를 두기도 한다.
허나 이와 같은 사회규범이나 풍속은 시대조류에 따라 변하는 것이니
영원불변일 수는 없다.
인간은 의식과 육신의 복합체다.
허나 의식의 지향점과 육신의 욕구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의식은 내면의 문제이므로
그것이 어떤 내용을 가지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치명적인 영향은 끼치지 않는다.
양심의 자유라는 말로 그것을 보호해주기도 한다.
이와 달리 육신은 그것이 외부의 행동으로 나타나므로
그 모습 여하에 따라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인간의 갈등이 싹트는 게 아닐까?
인간은 의식 또는 인식만으론 만족할 수 없다.
(카프카의 ‘고독과 죽음의 미학’).
인식에 따라 행동하려 하지만 거기엔 힘이나 자유가
무한대로 주어지지 않는데도
때로 자신의 파멸을 예상하면서까지 행동에 이르려 하고
선과 악의 인식을 지워버리려 하지만
지워버릴 수 없는 것, 그게 바로 원죄의식이 아닐까?
“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
(창세기 2장 16절, 17절)
흔히 말하기를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고도
왜 선악과를 만들어 그것을 먹지 못하도록 했느냐 한다.
그것을 어겼다 하여 에덴동산에서 내쫓을 수 있느냐고도 한다.
성경이 사실만의 기록이라면 틀린 말은 아니리라.
그러나 고도의 은유성도 있다고 보면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인간은 세상을 자율 의지에 의해 가꾸어나가도록 되어있으나
그 자율엔 한계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세상이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님을 이해한다면
이를 잘 가꾸어나갈 책무가 나에게 있는 것임과 더불어
나의 몸놀림을 함부로 함이 허여되는 건 아님을 알아야 하리니
그건 바로 선악의식에 의해 행동이 제어되어야 함을 일깨워주는 게 아니던가.
염세주의철학자라 일컫는 쇼펜하우어도
원죄의식을 인정함에는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세계의 내적인 본질과 모든 현상의 핵심은 의지요
인간도 의지의 덩어리이기에
육신을 가진 인간은 한없는 정욕과 포식을 탐하지만
영원히 충족되지 않는 것이기에 비관적인 것이라니 말이다.
의지의 긍정이 원죄요 의지의 부정이 구원이라면
의지를 부정하기 위해 예술과 윤리 도덕을 동원함이니
인간은 이렇게 깨어있는 의식에 의해 유신론자이든 무신론자이든
원죄의식을 갖고 심신을 가다듬거나
예술이나 윤리 도덕에 의해 자기억제를 하며
살아가야하는 게 아닐까?
하여, 나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브레히트)” 이듯
그해 무덥던 여름날을 지금도 잊을 수 없어
원죄의식으로 가슴에 안고 살아간다.
첫댓글 난석님~
그시절의 추억어린 이야기들 말씀 해주셨습니다.
어린시절 물방개 잡으면서 놀기도 했습니다.
지나간 시절은 되돌아 올수 없네요.
무더운 여름 건강하시고 행복 넘치는 날 되세요.
맞아요 되돌아오지 않지요.
이불이야기 하다가 발가락이야기 하다가
이중인격이야기 하다가 기정수님이 형님이야기를 했기에
유년의 어린누이를 불러 냈네요.
난석님께서도 순수하게 자랄 나이 7살. 어린 시절 참으로 흉한 일을 보셨네요
염세주의자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삶을 부정적으로 보면서도 오래 살았고
내가 늘 보는 (유난히도 눈빛이 놀처럼 살아있는 사진)
카프카 역시 인간 운명의 부조리성으로 날카롭게 지적한 작가이나
이런것을 읽었으면서도 난 사는 것이 왜 무지렁이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일요일 아침 약간의 무거운 주제의 글을 읽으며 내 존재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어린시절의 충격이 평생을 지배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무지렁이라니요?
득천하영재이교육지삼락야라 했는데
낭만선생님의 품성이라면 어린이들에게 좋은꿈 많이 심어주었을겁니다.
저도 조금 해봤지만요.
난석님~
어린 누이의 죽음이 크게 다가 왔겠네요
이게 다 전쟁의 비극입니다
오늘도 건강하게하루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글 잘 읽고 갑니다
네에 우크라를 보면 인간의 잔인성만 보입니다.
일곱살의 나이에 외가로 피난을 오고
어머닌 누이를 업고 동생을 데리고 기진맥진
할아버지가 인삼을 달여 먹여 살아났으나 업혔던 동생은
어느 산 무덤에 묻혔군요...아이고 서러운 세월이여....
49년생이니 별꽃님은 잘 비켜서 태어나셨죠.
축복^^
배골 배골 배고르르 배고르르 느낌으로 들렸을 배고픈 개구리의 울음소리.
어찌 요런 표현이 생각났을까요 ? 저는 수십년 해마다 들린소리는 개굴 개굴 개굴로만 ㅎ
6.25 가 뭔지도 모르면서 부모님 따라 피난길 나서는데 옆 집 젊은 아주머니가 팔에 완장을 두르고
손에는 다듬이 방망이 같은것을 들고 화난표정에 " 어디들 가시는거냐고 당장 집으로 들어가라"고 위협 ?
엄마의 순간 기지로 핑계됨이 통과 할 수있어 살아 남은것 같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인민군 앞잡이로 포섭이 된듯 .
어제의 이웃이 오늘의 웬수로 돌변 했었던 피난시절 실화이네요 . 어린누이는 피난때문에 굶어 배고파 그리되었구먼요 .
역사의 귀한 한 토막을 진술하셨네요.
그게 무슨 소리인지는 이제 저만 입증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참 엊그제였는데요.
오래오래 역사의 증인이 되십시오.^^
첫 줄부터
찬찬히 읽어 봅니다~
7살의 기억이
어느 하나 버릴 수 없는 풍부한 지성과 감성으로
컸네요~
이제는 그 어린 누이가 이렇게
말할 거 같아요~
너의 원죄를 사하노라~~
편안한 휴일 되십시오~~^^
그런가요?~~~ㅎ
샬롬 ^^
그렇지요.
그해 그여름 밤이면 개구리의 울음소리
아련히 떠오릅니다.
어린누이는 배고픔을 못넘겨 먼져 보내셨군요.
모든게 전쟁의 참상이었지요.
그렇습니다.
어린 딸과 누이를 전쟁통에 잃었으니 얼마나 가슴아프셨을지 가늠이 안됩니다
오늘 아침 인터넷에 미군 참전용사가 죽은아이를 등에 업고 거리를 헤매는 미친여인을 봤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아이는 이미 부패해 있었고 여인의 시계는 아이가 죽은후로 멈추었다 합니다
그랬군요.
그여인은 미쳐서 그랬겠지만
산 목숨을 생으로 사지로 몰았으니
생각할수록 치가 떨리지요.
제발
악
이럴수가.......
도대체
이 잔혹한 인간들의 땅따먹기는 언제나
끝날까요
이럴땐
차라리
외계인의 등장
어쩔수없이
지구인끼리 뭉쳐야하는
일이 생기면 좋겠어요
각나라
그 많은 전쟁통에
군인 아니고
민간인의 사망률이
젤 높은 곳이 우리 한반도라네요
ㅜㅜ
통곡을 할 일입니다
한반도의 한을
우리의 한을
급기야
나의 한을
이렇게 풀어내시다니
나무에 달린 어린 순이 마치 누이동생의 손 같았다는
어릴적부터 선배님의
남다른 두뇌와 감성을 느낍니다
선배님
감히 제가
카페라는 곳에서 느끼는 것 중
저렇게 단순한 인격이 있구나
저렇게 복잡한 회로를 가진 인격도 있구나
어느쪽인지는 말씀 안드려도 아시지요? ㅎㅎ
모태이과의
머리가 아니고
가슴을 쿵쿵 울리는 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거 아부성 아닌감 요?
아부면 부아날 일이고
아부 아니면 고마울 일인데
오늘 밤장이 잘 오려는지 아닌지
보면 알겠네요.~~~ㅎ
@난석
아부할 이유없으니
아양으로 봐주시고
푸욱 주무세요 ㅎ
@온유 꽃 속에 잠들고 싶은 난석이지만
아직은 한낮.
유월 장마기에 터진 물꼬 다져놓고온
삽자루 소릴것이며.
어린 노랑모사이로 에미 따라나선 어린
뜸부기 울음을 착각한게 아닐까요 ...
악법도 법이라던 소크라테스가
악처도 처다라고 수설한다면 난 따를래요
다만 본질과 표출을 한 덩이에 묶기에는
수명제한된 인간은 제외하는게 맞지 않느냐란 생각입니다
생각과 상상은 자유니까요.
그런데 뜸부기가 밤에도 울던가요?
잘 모르겠네요.
유월전쟁의 그 무덥던 여름날
일곱살 어린나이에 겪어야 했던
힘들었던 기억
작은 누이를 떠나보냈다는 글에
제 어릴적 기억이
태어난지 얼마안돼서 파상풍으로
바로 위 언니와 제가 갓난아기 제
동생을 산속에 묻고 온 기억이
되돌아오네요
선배님 동생 어디에 묻혔을까
찾아다녔다는 글에서
마음이 아픕니다.
슬픈과거는 슬프네요.
요즘 너무 더워요
선배님 건강 관리
잘 하세요.
태어나서 얼마 안돼서 ~
아이구우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