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773) - 자연과 역사가 어우러진 명소탐방
내일모래는 6‧25 70주년, 6‧25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의 어린이가 어느새 70대 후반에 이르렀건만 동족상잔의 비극을 치른 한반도는 아직도 남북 간의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일촉즉발의 긴장상태를 되풀이하고 있음이 안타깝다. 게다가 코로나19로 함께 잘 살자는 인류공영의 평화무드가 사라지고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고립주의와 국가 중심주의의 장벽이 곳곳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분단과 갈등의 유산을 후손들에게 넘겨주어야 하는가. 인류는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잠언 21장 31절)는 성경의 교훈을 거울삼아 모든 위정자들은 하늘의 뜻에 어긋나는 도발과 책략에서 벗어나라.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지난 주말, 인근의 명소들을 탐방하며 가족들의 화목과 우의를 돋우고 활력을 증진하였다. 고을마다 특산인 과일이 무성하고 오랜 전통과 역사를 지닌 문화유산이 빛을 발한다. 목전의 상황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긴 안목으로 하늘의 섭리를 응시하자.
1. 천오백년 역사의 숨결이 담긴 법주사
토요일(6월 20일) 오전, 청주에서 한 시간 거리의 속리산 법주사를 찾았다. 국도주변의 짙푸른 초원이 대도시를 오가며 살피는 풍광과는 다른 느낌, 내륙 산간의 보은 땅에는 지역특산인 대추밭이 곳곳에 널려 있고 속리산 입구에 반듯이 서 있는 정이품 소나무가 지역의 품격을 높여준다. 호서제일가람 법주사라 새긴 산사에 들어서니 오전 10시 반, 대웅전에서 펼쳐지는 법회의 설법이 우렁차다. 한 때 3천 승려가 거처했다는 대가람, 2년 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천오백년 불교문화의 숨결이 유장하다. 조선 제7대 왕 세조가 피부질환 치료차 머물던 것을 기념하여 세조길이라 명명한 산책로가 일품,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올랐으나 그 삶이 오롯이 영광만은 아니었던 역사의 숨결이 스며있다. 속리산국립공원사무소가 설치한 ‘세조의 뉘우침’이라는 세조길 안내판이 이를 뒷받침하네. 자연탐방로를 겸한 오솔길이 호젓하고 계곡에 자리한 호수를 지나는 힐링 코스가 운치 있다. 점심은 사찰입구의 소박한 음식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좋은 경관 돌아본 후 맛보는 칼국수가 별미로세.
법주사에서 바라본 속리산
2. 운보의 집에서 살핀 예술가의 삶
돌아오는 길에 청원구 내수읍 형동리에 있는 ‘운보의 집’에 들렀다. 운보 김기창(1914~2001)은 근대 한국의 유명화가로 미술부문 인지도에서 가장 좋아하는 한국인으로 선정되기도 한 청각장애예술인, 부인 박래현도 널리 알려진 화가였다. 어머니의 고향에 있는 운보의 집은 말년에 그가 거처했던 아름다운 정원의 집, 운보의 예술혼을 고이 간직한 운보미술관, 자연과 예술의 조각‧수석공원이 한데 어우러진 문화공간으로 운보문화재단이 관리하고 있다. 운보는 여덟 살 때 장티부스를 앓다 귀가 멀어 평생을 청각장애로 산 미술계의 거장, 입구에 세운 돌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나는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을 불행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아내의 목소리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것이 유감스럽고 아이들, 친구들과 다정한 대화를 하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 예술가는 자연의 품에 안겨 창조주와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소원은 도인처럼 선(禪)의 삼매경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운보의 집에서 살핀 운보의 그림 그리는 모습
거처인 운보의 집 ‘예수의 생애관’에는 6‧25 피란 중 군산에서 그린(1952~1953) ‘예수의 생애’ 30점의 한복차림 성화가 전시되어 있다. 예수의 일대기가 동족상잔의 고난을 겪은 우리 비극과 유사하다고 생각하여 통일과 평화의 염원을 담아 그린 그림들이 6‧25 70주년에 즈음하여 별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운보미술관의 여러 전시품을 살피며 알게 된 사실, 우리가 사용하는 만 원권의 세종대왕 초상은 운보의 작품으로 1975년에 한국은행 요청으로 제작하여 지금까지 전 국민이 이를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이란다. 지난주에 쓴 글 중 ‘화수분이 된 목걸이’ 부분에서 다룬 세종대왕 초상이 들어간 지폐의 연원을 이렇게 확인하게 될 줄이야. 이래저래 알맞은 때 운보의 집으로 인도한 발걸음이 오묘하다.
3. 천년고찰 마곡사에 스민 백범의 자취
하지인 일요일(6월 21일), 행정복합도시 세종시를 거쳐 공주시 사곡면에 있는 마곡사를 찾았다. 공주시계에 접어들자 만산에 활짝 핀 밤꽃들이 공주가 밤의 특산지인 것을 실감케 한다. 차를 멈춰 세워 한 컷, 이를 스마트폰으로 살핀 친지가 들길과 밤꽃이 예쁘다고 답을 보낸다. 어제는 대추밭이 지천이더니 오늘은 밤꽃 풍년, 올 가을에 그 맛 제대로 음미할 수 있기를.
마곡사 가는 길의 밤꽃 풍경
마곡사에 이르니 오전 10시 반, 입구에 자리 잡은 엿장수와 토산품 행상들이 상품선전에 힘을 쏟는다. 생활전선에 열심인 민초들의 삶은 언제쯤 활짝 펼까. 마곡사를 찾기는 두 번째, 8년 전 한일우정걷기 멤버들과 함께 들렀을 때와는 달리 매표소에서 대웅전까지의 출입로가 말끔하게 정비되어 낯설다. 법주사의 웅장함과는 대조적인 현묘함이 느껴지는 마곡사는 신라시대의 고찰, 매표소에 비치된 팸플릿에는 자장율사가 선덕여왕 때 창건한 명찰로 2018년 6월 30일에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적혀 있다. 팸플릿에 적힌 또 다른 내용은 백범의 발자취,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며 독립운동가인 백범 김구(1876~1949) 선생은 1896년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분노로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나루에서 일본군 장교를 죽이고 인천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탈옥하여 마곡사에 은거할 때 원종(圓宗)이라는 법명으로 잠시 출가하여 수도하였던 곳이다. 이에 관한 백범일지의 한 구절, ‘나는 마곡사를 향하여 계룡산을 떠났다. 마곡사 앞 고개에 올라설 때에는 벌써 황혼이었다. 뎅, 뎅 인경이 울려온다. 저녁 예불을 알리는 소리다. 일체 번뇌를 버리라 하는 것 같았다.’ 팸플릿에는 마곡사의 산책로로 1코스 백범 명상길(산책코스 3km), 2코스 백범길(트래킹코스 5km), 3코스 송림숲길(숲길 11km)이 적혀 있기도. 며칠 후(6월 26일)면 백범 71주기, 때에 맞춰 그의 숨결이 스민 곳에 이른 발걸음이 뜻깊다.
마곡사 탐방을 마치고 공주로 향하였다. 공주는 도시전체가 백제의 숨결이 깃든 문화유적도시로 최근 10년간 회상의 피란길 걷기(2010년), 한일우정걷기(2012년),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길 걷기(2017년) 등으로 세 번이나 걸어서 지난 곳이다. 함께 온 가족들도 10년 전에 회상의 피란길 걸었던 기억(그때 30여명의 가족이 주말을 맞아 공주에서 부여까지 30여km 걷는 동안 TV 촬영도 하였다)을 되짚으며 감개, 비단결처럼 아름다운 금강을 건너 백제와 조선의 숨결이 스민 공산성을 살핀 후 귀로에 올랐다. 코로나 여파로 나들이하기가 쉽지 않은 때, 잠시 틈을 내어 가족 간의 유대를 다지고 심신의 활력을 다진 발걸음이 가벼워라. 우리 모두 나름의 대처방안으로 코로나19와 한반도에 짙게 드리운 안보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첨병이 되자.
공산성에서 바라본 문화유적도시 공주의 모습
첫댓글 가 보진않았지만
글을 읽으면서 그 길을 걸으며
경치를 구경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언제 구경시켜주세요
세종대왕님의 초상화를 운보선생님께서
그리셨다니 이제부터 만원짜리를 더 귀하게 보관할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