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서울 대부분의 중학교에서는 고등학교 입시를 위한 내신 성적이 산출되어 나왔다. 교과 성적과 출결, 봉사활동, 행동발달 점수 등의 비교과 점수를 합산하여 소수점 셋째 자리까지 환산한 석차백분율 즉 전교생의 중학 3년간 성적을 계산하여 1등부터 꼴등까지 한 줄로 세운 최종 성적이 나온 것이다.
바로 며칠 전에 기말고사가 끝나 모처럼 화색이 돌던 아이들에겐 짧은 그 며칠의 여유도 잠시, 내신 성적표를 나눠주니 전에 없이 술렁이는 모습들이다.
항상 밝고 낙천적인 줄 알았던 K가 청소시간에 갑자기 다가오더니 어제 집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 이제 고등학교 입학을 목전에 두니 슬슬 불안해 지기 시작하는 것 같다.
“어제 엄마하고 새벽 2시까지 얘기했어요.”
“왜?”
“이렇게 공부해서 고등학교는 뭐하러 가느냐고 하시더라구요. 엄마도 나중엔 쪼금 울고...”
뿐만 아니라 교무실을 제 방 드나들 듯하며 항상 까불까불하던 M이 오늘 느닷없이 심각한 얼굴로 찾아와서 하는 첫마디가
“선생님, 저 대학 갈 수 있을까요?” 였고,
심지어 어떤 아이는
“쌔앰~ 저 고등학교 떨어지면 어떻게 해요?”라며 울상을 짓고 있다.
갑자기 교실은 전에 없이 심각한 분위기다.
안 그래도 심란한 아이들 앞에 오늘 따라 근처의 자사고 아이들까지 세련된 교복을 입고 학교 홍보라는 것을 하러 왔는데 가만히 그들을 쳐다보는 3학년 아이들의 얼굴빛이 복잡하다.
가고 싶어도 성적이 안 되거나 혹은 여의치 않은 가정형편 탓에 이미 오르지 못할 나무가 되어버린 것에 대한 외면, 어쩌면 최종레이스의 유리함에서 벌써 멀찍이 한 발 떨어진 것일 수도 있는 소외감, 그리고 어쩔 수 없는 부러움 등등.
그러나 오후가 되자 더 복잡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성적이 대략 전체에서 98%를 넘어가면 인문계 고등학교에 탈락하게 되는데 그 고비에 서 있는 학생의 부모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인근 특성화고등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싶다는 것이다. 요즘 특성화고 가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만 혹시 몰라서 그곳에 전화하여 문의했더니 취업자 전형이라는 것이 있단다. 대략 작년의 커트라인과 출결사항, 특정 과목의 점수가 어느 정도여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고 알려왔다.
그 어느 것에도 조건이 부합되지 않으면 지원해봐야 헛수고인 것이다.
올해도 어느 중학교에서나 나오게 될 인문고 탈락 학생들.
이들은 어느 곳으로 가야하나?
학업 결손이 누적된 아이들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수업을 듣느라 하루 종일 앉아 있는 고역, 몇 년에 걸친 그 생활 끝에 무사히 졸업해 주는 것만도 감사하다고 해야 하면 학교의 일은 끝나는 것인가?
특성화고 중에는 그나마 이 아이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분야가 더러 있긴 하지만 그 마저도 성적이 낮으면 받아주지 않는다.
이럴거면 인문계에서 아예 떨어뜨리지나 말든지 갈수록 태산이다.
몇 년 전에 인문고를 탈락하여 학력인정 학교에 보냈던 한 제자는 결국 그곳에 적응하지도 못하고 지금은 그냥 집에 있다.
인문고 탈락생들에 대한 구제 방법으로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비교내신평가’라는 것을 보면 된다고 하지만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도 의문이고 간혹 거론되는 대안학교라는 것도 이들에게 과연 진정한 의미의 ‘대안’인지 의심스럽다.
따라오려거든 각자 알아서 따라와 봐! 라며 올라갈수록 추스리고 걸러내기만 할 뿐 탈락된 아이들에 대한 배려는 없는 것이 우리의 교육이다.
이미 중학생 시절부터 일찌감치 등수로 서열화된 아이들이 그 서열 그대로 구축된 특목고, 자사고, 특성화고, 일반고에 진학하는 형편인데 차라리 모 퀴즈 프로그램처럼 탈락자들을 위한 패자부활의 기회라도 한 번 확실히 주면 안 되는 것일까? 이들이 곧 예비 사회 취약층이 아니라고 누가 자신할 수 있을 것인가.
새학기가 되면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즐겨 보여주는 동영상이 하나 있다. 겨울을 나기 위해 먼 거리를 떼지어 나는 기러기들 중에도 몸이 약하거나 다친 기러기가 있으면 무리의 비행 속도를 따라 가지 못하므로 따로 몇 마리가 옆에서 기다려 주었다가 같이 가 준다는 내용이다.
회복이 된 기러기가 마침내 날 수 있게 되면 함께 대열을 이뤄 무리를 찾아간다는데 우리 곁의 낙오된 기러기는 과연 어찌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
첫댓글 올해 초 신년모임자리에서 하셨던 말씀이 생각나는 글이네요. 우리 교육이 상위권에만 집중되어있고 소외된 사람을 위한 것은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껴요. 제도권 교육에 들어갈 수 없는 아이들, 국가가 책임져야할 아이들은 오히려 그 아이들일텐데... 당사자인 아이들이나 부모님들은 얼마나 막막할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요. 오늘 날씨처럼 우울하네요.
선발 이후 탈락자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너무도 아쉽습니다.ㅠㅠ
저도 올해 둘째가 고등학교에 들어갑니다... 둘째가 성적이 나쁘면 인문계 고등학교도 못들어간다고 쌤이 애기 했다고 해서 난 단순히 위협? 용인줄 알았는데 진짜 그러네요ㅠㅠ 고입 연합고사가 없어져서 고등학교는 다 들어가는 줄 알았어요ㅠㅠ 낙오된 자는 당연히 떨어뜨려야 한다는 교육....우울하네요ㅠㅠ
우리 주변의 소외된 아이들을 보듬으려는 사회적 합의가 있으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
돌베개님같은 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네요. 내 아이가 소중한만큼 남의 아이의 아픔과 부족함에도 마음쓰는 분들이 많아진다면 그것이 곧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더 따뜻해지는 것으로 보답이 올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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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안녕하세요? 이전글 지우셔서 섭섭했습니다... 참 좋은 글이어서 널리 퍼나르고 싶었는데!
내 자식이 98%이하라면.........
그 책임은 저에게 있는 것 같습니다.
사회를 원망하면 98%이하가 아닌 것도 아니고......
그러나 98%이하가 낙오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9년이라는 시간이 공평하게 주어졌고
그동안 많이 누렸고 그 책임을 나아닌 곳에서 찾는 것은 비겁한거죠.
끝까지 의연하게 .......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이 되기위해 켈세라세라를 포함해서 노력해야죠.
모든 학생들이, 인문고를 가고 싶어서 가는 것은 아니랍니다. 특성화고를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학생들도 있지요. 이러한 정책들이 좀더 세심하게 세워져야 할 것 같습니다
상위2프로가 아니라 하위 2프로를 챙겨갈 수 있는 교육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어제 선생님 글을 보여 줬더니 딸이 분개를 하네요. 이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한 삶일 것 같냐고 하면서요...내 아이 하나 행복하고 잘나가면 안심이다 싶겠지만 내 아이 앉은 지하철 옆에 옷속에 폭탄안고 있는 또 다른 아이들이 있는한 그걸 행복이라 누리고 살 순없는거죠. 어서 조약돌 여러개의 힘이 물줄기 방향을 바꿔놓는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마음이 아픕니다. 철모르는 나이에 패자로 결정되어 힘없이 찍어주는 도장에 모든걸 내려놓는 풍경이요...특히 가정상황때문에 기회나 자극이 없었던 아이들이 이후의 삶에서
마음이나 희망까지 짓밟히는 일이 없기를 기도하며 더 힘을 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교에 선생님같은 분들이 더 많아져 한목소리를 내는 공간이 확대되었으면 좋겠네요
맞습니다. 경쟁과 선발 위주의 교육 상황 속에서 갈수록 부모들도 내 아이가 뒤쳐지지나 않을까 피해 받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언제쯤이나 교육 때문에 우리가 고통 받지 않아도 될런지요.
아무리 학업이 부진한 아이라도 한 명 한 명 가정 상황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모두 사연 없는 아이들이 없습니다. 부모님의 여러 경제적, 심리적 어려움이 대부분이죠. 이들에 대한 지원, 열패감 없는 진학 환경을 위해 국가가 더 세심하게 제도 개선해야 할 영역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고교 진학의 양상도 부모의 경제력과 성적순에 따라 고교 서열대로 일치합니다.
때로는 섬뜩함마저 듭니다. ㅠㅠ
오.. 선생님 글을 읽으니... 당장 수능 성적으로 고통받는 고3 아이들뿐만 아니라, 중3 아이들까지 입시의 고통이 크다는 것이 참 가슴이 아픕니다. 정말 큰일이네요. 갈수록 경쟁의 스트레스, 낙오의 아픔이 나이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퍼지니... 말만 다양화일뿐이지, 사실은 아이들을 줄 세우고 있는 이 경쟁, 정말 어떻게 끊어버릴 수 없을까요??
올해는 그동안 줄었던 외고 지원자가 오히려 더 늘어난 느낌을 받았습니다. 뭔가 자꾸 거꾸로 가는 느낌입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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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이 98% 되는 아이들... 솔직히 현실에서는 이 아이들 때문에 상처받은 선생님들이 많으실 겁니다. 뭐 데리고 하려 해도 미꾸라지처럼 도망다니고, 상담하다 보면 자기합리화에 열중하고... 물론 안 그런 아이들이 몇몇 있고, 안 그런 아이들이 98% 되면 정말 안타깝지만... 그런 안타까운 아이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경험을 하다 보니... 이런 아이들 볼 때마다 답답합니다... 뭐 제도의 문제가 있지만, 제도 탓을 하며 자기합리화를 하는 사람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요? 나름의 노력을 하고, 개혁할 수 있을 때 개혁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이나마 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입장에서는 그 아이들에게 연민이 가지 않네요...
5saem님은 교사이신 가봐요. 교육일선에 계시면 얼마나 힘이 드실지 짐작이 가다못해 학부모의 한사람으로서 너무 죄송스러워요. 하지만 아무리 못난 부모나 그 자식이라도 98%에 들어 탈락하거나 낙오되는 것은 그 개인들에게는 엄청난 재앙이라는 것을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물론 그 중에 몇몇은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열심히 살아가기도 하겠지만 대부분은 낙오자로 낙인찍혔다 생각하고 무기력감에 빠져 정말 낙오자가 되거나, 자신을 낙오자로 낙인 찍었다며 세상을 향해 분노의 칼을 품고 살아가게되지 않을까요... 선생님께 묻고 싶어요. 98%와 2%가 이렇게 나누어지는 현실은 절대 변할 수 없는 건가요?
선발과 경쟁으로 2%의 탈락자들을 만드는 지금의 교육 말고, 누구 하나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는 우리 아이들 하나하나가 저마다 자기들의 특성과 소질에 따라 배울 수 있도록 100%에게 기회를 주는 '새로운 교육'을 꿈꾸게 됩니다. 선생님과 제가 우리 아이들을 위해 그런 '새로운 교육'을 만들고자 함께 노력하는 어른들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행복이 예... 엄청난 재앙 맞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평가제도가 98:2를 가르는 기준이 너무 획일화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자녀가 수행평가 과제물 제출 안했다고 학교에서 전화오면 학원 보내는 것보다 과제를 하는 것을 더 신경쓰시고, 떠들다가 수행평가 점수 깎이거나 벌점 부여받았다고 연락 오면 따끔하게 야단치는 것을 알기에... 그리고 앞의 글에서 언급한 대로 노력하지만 점수가 안 나오는 학생들이 있기에...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그 2%의 탈락자들 중 저뿐만 아니라 동료 선생님 속 엄청 썩인 것을 안다면... 차라리 제 속만 썩였다면 연민이 생기지만... 어려운 일이더군요...
@행복이 선발과 경쟁을 아예 없앨 수는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 선발과 경쟁의 방법이 보다 합리적이고, 노력하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어른들의 몫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의 입시제도가 노력하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분명하니 말입니다. 특히 몇몇 대학들의 모습을 보면 대학교육에 불신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그리고 요즘 입시의 간소화를 외치는 분들이 있는데, 극단적인 간소화는 결국 말씀하신 2%의 아이들을 매정하게 내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신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방향이 이를 아는 분들에 의해 운영되는 점을 압니다...
@행복이 100%에게 기회를 주는 것은 어려울 겁니다... 그리고 그것은 교사와 부모에게 너무나 무거운 짐을 지운다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차라리 99%라면 몰라도 말입니다... 100%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분들의 주장 중 과하다 싶은 생각을 들게 하는 의견 때문에 교직에서 물러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혼까지 생각했었으니까요. 진심으로... 그 2%의 아이들 중에 너무나 힘들게 하는 아이들이 분명 존재하기에... 그리고 부모나 보호자가 관심을 갖지 않기에...
자녀의 문제점을 안타까워하시며 노력하시는 부모님의 자녀들을 대할 때에 좀 더 기다려 주고, 참아 보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정말 어렵더군요. 진심으로...
@행복이 2년까지는 안되었지만, 쓴 지 1년이 넘은 글에 고민을 적어둔 글이 있습니다. 읽어보시면 이런 댓글이 나오게 된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실 겁니다. 얼마 전에 댓글이 달리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님의 자제분들은 지금 님이 보시기에 정말 철이 없어 보일지라도... 분명히 어느 시점에 가면 바람직한 인재로 성장하리라 믿습니다. 이런 데에서 고민을 하는 분들이라면... 그분들의 자제분들이라면... 믿고 기다려 볼 수 있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행복이님 말씀 감사해요. 며칠 전에 고입 합격자 발표가 났어요.
예상대로 우려됐던 아이 두 명이 탈락했지요. 이제 그들이 가야할 곳을 찾아야하는데 선택할 곳이 별로 없어요.ㅠ 사회적 관심이 절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