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특강
10진법보다 2진법, 미적분보다 행렬… 수학교육부터 달라져야
(서울대총동창신문 제530호(2022.05.15)
김정호(전기공학80-84)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논리적 사고와 토론 능력 중요
AI, 전공이 무엇이든 필수과목
“지금까지 우리나라 발전에 교육이 큰 영향을 미쳤죠. 이제는 교육이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반도체 분야 석학인 김정호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 교수가 인공지능과 메타버스 시대 인재 육성에 대해 고언을 전했다. 4월 27일 도화동 장학빌딩에서 열린 본회 수요특강을 통해서다.
김 동문은 고속 반도체 설계 전문가다. 미국 미시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에서 D램 설계를 담당했다. 인공지능 컴퓨터에 필요한 반도체HBM(High Bandwidth Memory)을 개척했고, 카이스트 연구실에서 길러낸 80여명의 석박사가 테슬라, 애플, 구글, 엔비디아에 진출했다. 우리가 직면할 미래는 어떤 모습이고, 누가 이끌어갈 수 있을까? 답을 주기 전에 그는 인공지능과 메타버스 시대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최근의 인공지능은 기계학습과 머신러닝입니다. 인간의 행동이나 뇌를 파악해서 모델링하고 인간을 대신하도록 하는 전통적인 인공지능과 달라요. 데이터만 보여주면 스스로 학습하는 거죠. 데이터를 모으기 위해 컴퓨터가 필요하고, 컴퓨터는 반도체가 필요합니다. 반도체 연구자인 제가 인공지능을 하는 이유죠.”
인공지능은 한 번 실수해도 돌아가서 고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그 학습을 1초에 1조 번, 몇 만대의 컴퓨터가 동시에 수행한다. 병렬 계산이 가능한 GPU(그래픽스 처리 장치)가 주목 받는 이유다. 인간처럼 망각이 없고 무한대 복제도 가능하다. 그는 “지금까진 인공지능이 학습하는 데이터를 인터넷, 스마트폰, 자율주행자동차, 인공지능 스피커 등에서 얻어 왔지만 앞으로는 메타버스(가상 세계)에서 직접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테슬라의 주가가 왜 오를까요? 테슬라는 자율주행자동차만 파는 게 아닙니다. 가상 세계로 인간을 몰입시키고, 인간의 경제활동을 그곳에서 일어나게 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세계를 지배하는 전략이 있죠. 나의 현실 세계를 컴퓨터 상에서 똑같이 구현하려는 노력이 하나하나 진행되고 있어요. ‘거울세계’라 부르는 것이죠. 가상 세계에서 사고하고 판단하고 소비하고, 창작, 문화, 교육, 의료, 경제 활동이 일어나는 동안, 현실세계에선 태어나고, 먹고, 자는 활동만 하게 될 수도 있어요.”
대량의 데이터와 메타버스, 인공지능을 다루게 되면서 고성능 컴퓨팅과 데이터 센터 확보는 필수가 됐고, 반도체가 그 중심에 있다. 구글과 애플, 테슬라 등 기업이 독자적인 반도체 개발에 나선 이유다. 그는 반도체 공정 미세화를 통해 반도체 칩 성능이 2년마다 두 배로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이 사실상 끝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또 다른 무어의 법칙’은 컴퓨팅 수요의 폭발적인 증가다. “2010년 넘어서 매 2년마다 3.5배씩 늘어나던 컴퓨팅 수요가 2020년부터 2030년까진 10배가 늘 겁니다. 인공지능 컴퓨터에선 프로세서와 메모리 간 데이터 소통이 가장 핵심적인 조건이에요. 그래서 고층 건물처럼 프로세서와 메모리 반도체를 위아래 층으로 쌓아서 3차원 구조로 배치하는 방법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제 연구 분야이기도 합니다.”
결국 반도체 기술을 기반으로 막강한 데이터 센터를 구축하고, 데이터 사이언스와 인공지능을 결합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이 살아남는다는 예측이다. 판을 벌이기보다 빠르게 뒤쫓아갈 궁리만 했던 나라에서 어떤 인재를 길러내야 할까? 김 동문이 꼽는 AI 시대 필수 덕목은 △수학 실력 △알고리즘 사고 능력 △컴퓨터, 반도체 지식 △전문 분야 지식 △다양한 분야와 접목하기 위한 소통·협업 능력 △공학설계·캐드 능력 등이다. 그는 특히 인공지능 시대 수학의 중요성을 꾸준히 역설해왔다.
“저는 고등학교 수학교육을 다 바꿔야 한다고 말해왔습니다. 지금 학교에서 푸는 수학 문제는 컴퓨터와 인공지능 시대 수학과 전혀 맞지 않아요. 반도체에 들어가는 조단위 트랜지스터는 수학이 아니라 통계 문제에 가깝고, 인공지능은 우리가 배운 10진수가 아닌 2진수의 세계입니다. 미적분보다 행렬과 확률이 중요하고, 시간 안에 빠르게 문제를 푸는 능력보다 논리적인 사고와 토론 능력이 필요합니다. 지금 고교 수학에서 행렬은 아예 빠져 있죠.”
대학의 혁신도 주문했다. “전공을 불문하고 한 과목 이상은 코딩, 데이터, 인공지능 관련 과목을 필수로 배우고, 그걸 도구로 삼아서 자기 학문 분야에 적용해 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대학의 형태에 대해서도 의문이 크다. “대학이 꼭 지금 같은 모습이어야 할까 싶어요. 일방적이고 효율을 강조하는 대학의 공간 자체가 효율이 다해가고 있습니다. 학벌과 학위 같은 지금의 대학을 유지하는 힘들이 얼마나 더 갈까요? 서울대가 디지털 대학을 만드는 상상도 해볼 만하죠.”
인간의 입지 축소에 대한 두려움은 인공지능 시대에 대한 적응을 더디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가상현실의 막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사람의 눈과 귀, 언어, 두뇌의 창의력 등을 통합한 인공지능이 개발될 것이다. 강력한 컴퓨터와 데이터, 가상현실을 가질 수 있는 기업과 국가가 우위에 서고, 개인은 소외될 가능성이 높다.
“인간과 컴퓨터의 역할이 바뀔 겁니다. 값싼 노동은 인간이, 고급 지능이 필요한 일은 컴퓨터가 하는 거죠. 국회에서 강연할 때 헌법 제 1조를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가 아닌 ‘모든 전기의 권한은 인간이 가져야 한다’로 바꿔야 한다고 말한 적 있습니다. 재미로 드리는 말씀이지만 상상해볼 필요는 있어요. 제 예측이 잘 맞는 편입니다(웃음).”
해외에서 반도체 관련 전문 서적을 주로 냈던 김 동문은 최근 작심하고 대중서를 썼다. 공학의 변화를 통해 대한민국 위기이자 기회를 헤쳐나가자는 메시지를 절실하게 담았다. 그 책 ‘공학의 미래’를 이날 참석자 모두에게 증정했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