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기를 얻으면 천하를 얻은 것과 같다. 1946년 학생야구 전국대회로선 가장 먼저 깃발을 내건 청룡기는 올해가 58회째. 수많은 팀들이 동대문야구장을 무대로 모교와 고향의 명예를 빛냈다. 그렇다면 당대 최강으로 군림했던 팀들은 어디일까?
◆ 1947·1948년 경남중(현 경남고)
1m70을 조금 넘는 단신에도 불구하고 140㎞대 공을 뿌려 ‘태양을 던지는 사나이’란 별명을 얻은 장태영이 포수 송주창과 호흡을 맞춘 경남중은 2·3회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경남중 멤버로는 정상규·황기대·허종만·박정표·송주창·정태수·장갑영씨 등이 있었다. 광복 후 한국 야구의 1세대로 이후 국가대표나 일선 지도자로 한국 야구의 틀을 다졌다.
◆ 1956~1958년 동산고
투수 신인식과 타자 박하성이 신입생 때부터 졸업 때까지 3년간 맹활약하며 대회 첫 3연패를 이뤘다. 에이스로 3년 내내 활약한 신인식은 56년 11회 대회 결승에선 중앙고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 박하성은 팀 4번타자로 찬스에 강한 면모를 보여줬다.
◆ 1960년 경동고
58년 입학한 이재환·백인천·오춘삼 트리오가 만개한 기량을 꽃피우며 60년 15회 대회에서 첫 우승을 일궜다. 이 대회 우수투수엔 이재환, 타격상은 오춘삼이 받았다. 59년 14회 대회 우수선수로 뽑혔던 백인천은 찬스마다 적시타를 날려 최고 타자임을 입증했고, 1962년 일본 무대에 진출했다. 경동고는 이해 32승2무로 불패의 위업을 쌓았다.
◆ 1968년 경북고
당대 최고 투수로 이름을 날린 임신근이 에이스였다. 당시 멤버로는 조창수·양창의·강문길·김보연·김민기·김창고 등이 있었다. 강문길 현 단국대 감독이 유격수로 그 대회 최우수선수로 뽑혔고, 조창수와 양창의가 홈런타자로 이름을 날렸다. 경북고는 이해 청룡기를 비롯, 전국대회 3관왕에 올랐다.
◆ 1971년 경북고
남우식·손상대·천보성·정현발·배대웅·황규봉·김철·구영석 등 대부분 이후 국가대표로 활약한 호화 멤버로 청룡기를 비롯해 팀을 전국대회 4관왕에 올려놨다. 지방대회 화랑기 우승까지 합치면 5관왕.
◆ 1978년 부산고
‘두뇌파 투수’ 양상문과 포수 김호근의 황금 배터리에 조성옥·안창완·김태룡·조현재·장상철 등의 공수가 최고 조화를 이루며 우승했다. 전관왕도 가능했지만 전국대회 참가수 제한에 따라 이후 다른 전국 대회에 빠졌다.
◆ 1981년 경북고
성준·문병권이 이끄는 마운드와 천재 유격수 유중일이 공수에서 맹활약했다. 김건우·박노준을 앞세운 선린상고를 연장 11회 승부 끝에 6대5로 제치며 우승했다. 경북고는 이후 황금사자기와 봉황기까지 가져가며 최강으로 군림했다.
◆ 1995년 광주일고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서재응과 김병현이 5경기 동안 내준 점수는 단 6점. 시카고 컵스의 강타자 최희섭이 1학년이면서도 4번타자로 활약했다. 기아 주전 포수인 김상훈까지 가세했던 1995년 광주일고는 한국인 메이저리거 3명이 한 팀을 이룬 유일한 팀이었지만, 청룡기만 우승 인연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