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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은 옛날 그대로 흰 구름 속에 있네 – 북설악(상봉,신선봉)
1. 신선봉에서 바라본 울산바위
黃河西流崑崙頂 황하는 역류하며 곤륜산을 후려치니
日月無光大地沈 해와 달은 빛을 잃고 대지는 잠기네
遽然一笑回首立 넉넉히 웃으며 고개 돌리고 서 있나니
靑山依舊白雲重 청산은 옛날 그대로 흰 구름 속에 있네
―― 퇴옹 성철(退翁 性撤, 1912~1993), 「오도송(悟道頌)」
▶ 산행일시 : 2025년 7월 19일(토), 맑음, 한때 비바람
▶ 산행코스 : 화암사 주차장,수암,시루떡바위,신선대(성인대),해산굴,상봉,화암재,선선봉,화암재,샘치골교,
화암사 주차장
▶ 산행거리 : 도상 13km
▶ 산행시간 : 6시간 15분(11 : 20 ~ 17 : 35)
▶ 교 통 편 : 대성산악회(16명) 버스로 감
▶ 구간별 시간
07 : 20 – 복정역
09 : 45 – 홍천휴게소( ~ 10 : 05)
11 : 20 – 화암사(禾巖寺) 주차장, 산행시작
11 : 38 – 수바위(수암 穗岩, 쌀바위)
11 : 52 – 시루떡바위
12 : 11 – 신선대(성인대)
12 : 25 – ┣자 화암사 갈림길
12 : 35 – 바위지대, 점심( ~ 12 : 45)
13 : 32 – 962m봉
13 : 55 – 해산굴
14 : 15 – 백두대간 길 진입
14 : 48 – 상봉(上峰, 1,243m), 휴식( ~ 14 : 58)
15 : 20 – 화암재
15 : 46 – 신선봉(神仙峰, 1,212m), 휴식( ~ 15 : 56)
16 : 12 – 화암재
17 : 28 – 샘치골교
17 : 35 – 화암사 주차장, 산행종료, 자유시간( ~ 18 : 40)
18 : 50 – 미시령매표소 근처 음식점, 저녁( ~ 19 : 25)
20 : 50 – 가평휴게소( ~ 21 : 00)
21 : 46 - 복정역
2. 산행지도(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1/25,000)
▶ 신선대(성인대), 상봉(上峰, 1,243m)
이번 주말도 설악산을 제외한 모든 국립공원이 호우예보로 입산이 통제되었다. 설악산에는 낮 동안 두 차례 비가
내릴 거라고 했다. 서울양양고속도로는 서울을 빠져나가기가 무섭게 극심한 정체를 보이고 있다. 동해안으로 떠나
는 피서행렬이 이른 아침부터 몰려들었다. 서종IC까지는 거대한 주차장이다. 걸어가는 편이 더 빠를 것 같다. 천안
터널 지나자 정체가 약간 풀린다. 터널을 지날 때마다 창밖 풍경이 다르다. 산릉이 안개구름에 가리기 반복한다.
홍천휴게소에 들른다. 흡사 장터다. 남자화장실도 북적인다. 내 입에 맞는 500원짜리 커피자판기는 없고, 4,700원
이상인 커피전문점은 사람들이 길게 줄섰다. 전망대에 다가가 공작산과 그 연릉을 바라본다. 안개가 휘감은 멋진 모
습이 오늘 북설악의 가경을 예고한다. 화암사 가는 길은 차량통행이 원활하다. 멀리서 바라보는 설악산의 연봉 연릉
은 맑다.
대개 복정역에서 화암사 주차장까지 휴게소 들른 시간 20분을 감안하여 2시간 30분 정도 걸리는데, 오늘은 4시간이
나 걸렸다. 산행거리는 도상 약 13km, 주어진 산행시간은 7시간으로 그 마감시간은 18시 20분이다. 바쁘다. 산행
준비는 오는 버스 안에서 마쳤다. 버스에 내리자마자 잰걸음 한다. ‘金剛山禾巖寺’라는 현판을 건 일주문을 들어선
다. 많은 사람들이 오간다. 대부분 수바위와 신선대(성인대)를 거치는 화암사 산책길을 다니러 온 사람들이다.
선시(禪詩) 길은 간다. 2015년 10월에 고승들의 오도송 또는 열반송 등 선시를 새긴 시비(詩碑)를 길 양쪽에 세웠
다. 이 많은 사람들이 오가면서도 들여다보는 이는 아무도 없다. 나는 나중에라도 보리라 하고 우선 하나하나 카메
라에 담는다. 감도와 노출을 조정한 수동모드로 담았다. 시비가 모두 27개라는데 22개까지 담았다. 그러자니 우리
일행 중 내가 맨 뒤로 처진다. 시비 22개째 지나 수바위와 신선대(성인대) 오르는 갈림길이 나온다.
그 시비 중 나에게 특히 죽비처럼 느껴지는 셋을 골라 올린다.
설악 무산(雪嶽 霧山, 1932~2018) 스님은 현재(2015년 10월) 설악산 신흥사 조실(祖室) 시인이다. 그가 지닌 기용
(機用, 핵심과 그 작용, 뛰어난 언동, 의연한 자세와 기품 있는 움직임)은 때로 산과 바다를 누르고 사람의 마음에 해
와 달을 뜨게도 한다고 아울러 새겼다. 스님의 ‘아득한 성자’라는 시다.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도
다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 있지만 그 어느 날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 년을 산다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법어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성철 스님의 열반송(涅槃頌)이다.
生平詐狂男女群 한 평생 사람들을 속였으니
彌天罪業過須彌 그 죄업에 하늘에 넘치네
活陷阿鼻恨萬端 산 채로 지옥에 떨어져 그 한이 만 갈래니
一輪吐紅掛碧山 한 덩어리 붉은 해는 푸른 산에 걸려 있네
다음은 경허(鏡虛, 1849~1912) 스님의 선시다. 스님은 서산대사 이래로 근대 불교에서 선종(禪宗)을 중흥시킨 대선
사로, 거의 기진맥진 쓰러졌던 조선불교의 끝자락에서 다시 화톳불을 켜신 분으로 추앙받는다.
靜聽魚讀月 고요한 밤 물고기가 달 읽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笑對鳥談天 웃으며 새들이 천문(天文)을 이야기 하는 모습을 보기도 하네
삶에 절망해 본 사람만이 삶을 사랑할 수 있다
인간에게 고통과 슬픔이 없다면 인생을
치열하게 살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사람에게 고통과 슬픔이 없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태풍이 지나고 천둥이 그친 날 이 시를 기억하라
3. 홍천휴게소에서 바라본 공작산
4. 수바위 지나 신선대(성인대) 가는 길목에 있는 시루떡바위
5. 신선대 너른 암반
6. 신선대에서 바라본 속초 시내
7. 상봉
8. 오른쪽 볼록한 산봉우리는 운봉산
9. 울산바위
10.2. 오지산행에서 2009년 2월에 상봉 가는 길에 신선대를 올랐다. 그리운 얼굴들이다
11. 뒤쪽이 황철봉
12. 너덜지대 오름길에 바라본 왼쪽은 달마봉, 오른쪽 뒤는 화채봉
13. 비바람에 흐릿한 황철봉
14. 상봉 동릉
화암사 가는 도로를 벗어나 수바위와 신선대(성인대) 오르는 산길은 잘 났다. 그간 잦은 비로 축축하게 젖은 산길이
다. 완만한 오르막이다. 바람 한 점 없이 후덥지근한 날씨다. 금방 등줄기와 앙가슴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이래서는
오늘도 어려운 산행이 될 것 같다. 등로 옆 뜬금없는 우람한 수바위(407m)를 지난다. 그 앞에 세운 안내문을 들여다
본다.
“(…) 어느 날 한 화암사를 찾게 된 한 객승이 화암사 스님들은 시주를 받지 않아도 ‘수(穗)바위’에서 나오는 쌀로
걱정 없이 지낸다는 사실을 알고 ‘세 번 흔들어서 두 사람 분의 쌀이 나온다면 여섯 번 흔들면 네 사람 분의 쌀이 나
올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에 다음날 날이 밝기를 기다려 아침 일찍 수바위로 달려가 지팡이를 넣고 여섯 번을 흔들
었더니 쌀이 나왔던 구멍에서 피가 나왔고 객승의 욕심에 산신의 노여움 때문인지 그 후로 수바위에서는 쌀이 나오
지 않았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수바위에서 좀 더 오르면 ‘시루떡바위’가 나온다. 네모난 포개진 시루떡 모양이다. 소나무 숲길 지나고 가파른 계단
길 오르막이 이어진다. 그 끄트머리가 신선대다. 오른쪽 두 개의 입석이 있는 암반을 신선대(성인대)라고 하고, 울산
바위의 멋진 모습을 볼 수 있는 왼쪽으로 0.25km 떨어진 647m봉(나는 여기가 ‘신선대’라고 믿는다)은 가지 말라고
금줄을 둘렀다. 그러나 이를 충실히 따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도 배낭 벗어 놓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금줄을 넘
는다.
신선대는 사방이 훤히 트이는 너른 암반인 전망대다. 여기보다 더 가까이 더 자세히 울산바위의 전체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데는 없다. 눈이 시원하다. 땡볕이 직사하는데도 조금도 더운 줄을 모르겠다. 보고 또 보고 발길을 돌린다.
상봉을 향한다. 지정등로인 화암사 산책로는 더 이어진다. 오가는 사람들이 드물다. 그나마 성인대에서 숲길 0.5km
내려 야트막한 안부 지나고, ┣자 화암사(1.5km) 갈림길을 오르고부터는 우리 일행뿐이다.
상봉 오르는 길이 잘 났지만 비지정등로다. 얼른 금줄 넘는다. 숲길 약간 지나 숲속 바위지대가 나온다. 암반 골라
좌정하고 점심밥 먹는다. 혼밥이다. 김치볶은밥을 싸왔다. 광인 님의 콩나물밥을 모방했다. 얼려온 탁주는 녹지 않
았다. 입맛만 다신다. 바위지대 지나고 약간 내려 거대한 암봉과 맞닥뜨린다. 직등하는 길은 없다. 오른쪽 사면을 뚝
떨어져 내렸다가 곧추선 사면을 오른다. 예전에도(2009년 2월에 갔었다) 이랬던가 전혀 기억나지 않는 처음 가는
길처럼 오른다.
멀리서 으르렁거리는 뇌성이 들린다. 곧 어둑한 숲속이다. 뇌성은 점점 가깝게 들리고 바위지대 오르기가 겁난다.
바람이 불어대기 시작한다. 건너편 황철봉이 비구름에 싸였다. 너덜지대 지날 때다. 뇌성의 성난 다그침을 그예
견디지 못하고 비 뿌린다. 소낙비다. 바람은 미친 듯이 불어댄다. 슬랩에 올랐는데 광풍에 자세가 흐트러질 것 같아
주저앉고 뭉개 내린다. 비를 맞으니 시원하다. 비는 20분 정도 내렸다. 금방 언제 비가 내렸느냐는 듯이 맑은 하늘이다.
오른쪽 골짜기 건너편 상봉 동릉은 만물상이다. 절벽에 바짝 다가가 들여다본다. 화려하다. 또한 고도를 높이거나
방향을 틀 때마다 울산바위가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어느 모습이 울산바위의 본 모습인지 모르겠다. 해산굴
에 다가간다. 암릉 속 굴이다. 배낭 벗어 먼저 올려놓고 통과한다. 너덜지대를 지난다. 방금 내린 비에 젖은 너덜이
라 상당히 미끄럽다. 암봉인 962m봉을 오른쪽 너덜지대로 돌아 넘는다. 상봉 전위봉인 1,230m봉은 아직 멀다.
하늘 가린 숲속 완만한 오르막이다. 담뿍 젖은 풀숲 헤쳐 아까 내린 비 여태껏 맞는다. 미시령에서 오는 백두대간 길
과 만난다. 반갑다. 이제 상봉까지 0.7km 남았다. 사뭇 평탄하지만 걷기 사나운 숲속 너덜이다. 간혹 갈 곳을 몰라
머뭇거리다 군부대 통신선(PP선)을 따라간다. 암릉 같은 너덜을 주춤주춤 오르고 상봉 정상이다. 공터 가장자리 돌
탑은 예전 그대로다. 배낭 벗어 놓고 잠시 숨 돌린다. 아직은 나도 선두다. 이 셋이 정상주 냉탁주 분음한다. 이 상쾌
한 맛에 여름 산을 간다.
15. 해산굴 앞에서 바라본 울산바위
16. 백두대간 길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울산바위
17. 황철봉 연릉
18. 상봉 정상에서 바라본 상봉 남봉
19. 바람꽃. 개화기가 7 ~ 8월이다. 우리나라 남한에서는 설악산에만 자생한다.
22. 신선봉 오르면서 만난 털중나리
24. 바위채송화, 위는 다래덩굴
25. 바위채송화
26. 상봉
▶ 신선봉(神仙峰, 1,212m)
상봉 정상에서 북쪽 내림 길은 가느다란 고정 줄이 달린 그리 깊지 않은 절벽이다. 절벽을 살금살금 내려 한 차례
풀숲 헤친다. 생각지도 않았던 바람꽃(Anemone narcissiflora L.)을 본다. 이 바람꽃은 지금이 한창이다. 주변의
어둑한 풀숲이 이 바람꽃으로 인해 환하다. 설악산 이북의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남한에서는 설악산에서만 볼 수 있
는 귀한 바람꽃이다. 어느 해 여름 공룡능선 바위틈에서 보기도 했다. 산림청 지정 위기종(EN)이다.
다시 절벽이 나온다. 이번에는 제법 깊다. 슬링이 달려 있다. 레펠 자세로 절벽을 내리고 좁은 테라스로 트래버스 한
다음 이어지는 절벽은 돌부리 움켜쥐고 조심스레 내린다. 험로는 끝났다. 가파름이 수그러들고 잡목 숲 이슥히 헤쳐
나타난 개활지는 화암재다. 배낭을 벗어놓고 가벼운 차림으로 상봉을 다녀올까 하는 생각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만일을 대비하여 비상식과 물, 상비약 등이 들어 있는 배낭을 메고 간다.
방대장님은 화암재 통과 데드라인을 16시로 정했다. 이 시간을 넘어서면 신선봉을 오르지 말고 곧바로 하산할 것을
당부하였다. 신선봉은 오르막 0.6km이다. 지금 시각은 15시 20분이다. 내 앞은 또보아 님만 수 미터 앞서간다.
서둘러 뒤쫓는다. 신선봉 오르는 길은 완만한 돌길이다. 여러 풀꽃이 줄이어 힘내시라 응원한다. 은꿩의다리, 털중
나리, 바위채송화. 큰까치수염. 하늘 트인 바위가 나오면 그 위에 올라 안개구름이 유희하는 상봉과 울산바위 구경
한다.
잡목 숲 헤치고 너덜에 올라선다. 여기도 암릉 같은 너덜이다. 너른 공터 지나고 너덜 올라 신선봉 정상이다. 정상
표지석은 없다. 예전에 누군가 가장 높이 솟은 바위 앞면에 페인트로 신선봉이라 써놓았는데 지금은 지워졌다. 사방
조망이 훤히 트인다. 울산바위는 흰 구름과 숨바꼭질한다. 남은 탁주 독작하고 신선봉을 내린다. 온 길 그대로 내리
니 화암재가 한층 가깝다. 우리 일행 16명 중 신선봉을 오른 이는 3명이다. 또보아 님, 여성분인 평화 님 그리고
나다. 다른 사람들은 신선봉을 오를까, 알탕을 넉넉히 즐길까 저울질하다 후자를 택했다.
화암재에서 주차장 가는 길 4.3km. 지루하기 짝이 없는 길이다. 마른 골짜기 건너고 산모퉁이 돌기를 아홉 차례, 그
때마다 너덜을 지난다. 너덜에 녹아난다. 다시는 오지 말아야지 몇 번이나 다짐한다. 샘치골 계류 물소리가 가깝게
들리다가도 멀어지기를 반복한다. 등로가 큰비 내리면 수로이기도 한데 물이 흐르지 않으니 돌길이다. 마침내 지계
곡 건너 임도에 올라선다. 마지막 스퍼트 낸다. 샘치골교 건너면 주차장이 가깝다. 운동장만큼 너른 주차장에는
우리 버스만 덩그러니 있다.
주차장 근처에는 알탕할 만한 데가 없다. 먼저 내린 일행이 샘치골교 아래로 갈 것을 권유한다. 뒤돌아간다. 흐릿한
인적 쫓아 잡목 헤치고 계류에 다가간다. 암반 자락 훑는 옥수와 깊은 소가 천하명당이다. 옥수는 차지만 견딜만하
다. 세 번이나 들락날락한다.
우리 일행 대부분은 산행감시간이 다 되어 해끔한 얼굴로 나타난다. 서울양양고속도로를 타기 전에 미시령매표소
근처 순두부집에서 저녁을 먹고 가기로 한다. 하산주가 없을 수 없다. 여러 막걸리가 진열되어 있는데 그중 인제
곰취막걸리가 맛있게 보인다. 그런데 빛 좋은 개살구다. 별맛 없다.
서울 가는 길. 터널을 지날 때마다 날이 부쩍부쩍 어두워진다. 차창 밖으로 보는 산동네는 신경림 시인이 ‘밤차를 타
고 가면서’ 본 풍경이다. 시인은 우리가 보고 있지만 차마 말로 표현하지 못하거나 미처 보이지 않는 것 또는 볼 수
없는 것을 드러내어 절절이 느끼게 해준다.
밤차를 타고 가면서 보면
붉고 푸른빛으로 얼룩진
어둠이 덮은 산동네는 아름답다
밤차를 타고 모두들
그 아름다움에 취해 간다
어둠을 한 겹만 들추면 있는
고달픈 삶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려하지 않는다
괴로움 속에 뒤엉켜 있는
사람들의 깊은 말도 모두 잊었다
밤차를 타고 어둠이 덮은
아름다운 산동네에 그냥 취해 간다
거기 살던 사람까지도
거기 살고 있는 사람까지도
27. 멀리는 화채봉
29. 상봉
30. 신선봉 정상
31. 왼쪽이 마산
32. 울산바위. 구름에 가리기를 반복한다
33. 은꿩의다리
34. 큰까치수염
35. 샘치골 계류

첫댓글 오랜만에 보는 북설악 풍경이 아련합니다.
야생화들도 정겹고요...
설악산에서만 자생한다는 바람꽃을 본 것이 큰 수확이었습니다.^^
너무 아름답네요. 몇 해전 혼자 해당 코스로 산행하다 무서워서 중포한 적이 있는데 악수님 산행기 읽으며 아쉬움 달래봅니다
예전에는 상봉이 그리 험한지 모르고 올랐는데
이제 보니 상봉 오르내리는 너덜이 아주 고약하더군요.ㅎㅎ
북설악풍경 멋지지만, 스님들의 선시도 눈을 크게 뜨게 합니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설악의 바람꽃도 제철이로군요. 악수님 덕분에 세월을 잘 엮어 봅니다. ㅎ
고승들의 선시가 안이한 삶에 대한 죽비로 와 닿습니다.
여름의 북서락~
신선대 지킴이 백구는 아직도 있던가요?
잘담은 사진과 산행기 덕분에 즐감하고 갑니다.
신선대에 백구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복날 복더위에 피신하지 않았을까요?
캬
북설악 스탠다드 코스를 다녀오셨군요
샘치골교 쪽에서 시작하는 산행도 옛 이야기가 돼갑니다
울산바위 사진은 엄지척입니다
이제는 겁이 많아지고 체력이 딸려서
설악산 어디고 간에 스탠다드 코스만 다니려고 합니다.
울산바위가 보이지 않았더라면 퍽 심심한 산행이 될 뻔했습니다.
상봉 아래 만물상을 보니 예전 (지도에 표기된)오색석사지를 찾는다고 높대장님 일행과 가서 개고생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무더위에 시원한 소나기 맛이 어떨지 상상이 갑니다.
울산바위 화채봉 황철봉 봐도봐도 멋지네요 ~~^^
상봉 동릉 만물상을 가셨군요
기암기봉을 누비셨으니 그 고생을 알만 합니다.
저도 오색석사지를 유심히 살폈는데 그리로 가는 길은 흔적이 전혀 없으니, 지도의 표기가 잘못된 것인 줄로만 알고 있습니다.
세찬 바람에 소낙비이니 폭포수 맞는 기분입니다.^^
@악수 완전 오기지요… 남설악 주전골 입구 성국사
옛 이름이 오색석사라는 백과사전설명이 있더군요. 신라 고승이 둔전골 입구 진전사와 함께 사찰 두개를 세웠고 오색리 지명과도 매치되니 성국사가 맞을듯 합니다.
지난 겨울 한대장 사고로 이젠 여기는 안갈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