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한 꿈에 잠이 깼다. 벌써 40년전에 겪었던 일이 꿈에 나타났다. 1985년 3월 이맘때 나는 큰 변화를 경험했다. 느닷없는 동기로 부터의 전화가 모험의 출발이 되었다. 금산에서 교회를 개척해 목회하던 동기가 사정상 현지를 떠나야 하는데 그냥 가기가 아쉬워 누군가가 찾아와 자신의 꿈을 성취해 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 후임자가 하필이면 나였다. 현지를 답사했다. 2층짜리 주상복합 건물 2층의 한칸을 빌려 교회 간판을 건 그야말로 이름뿐인 교회였다.
어찌해야 할지를 망설였다. 당시 나는 선교사가 되기위해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룰 떠나고자 준비중이었다. 몇일간의 망설임끝에 가기로 결정을 하고 이삿짐을 날랐다. 그런데 가보니 현실은 너무나 암담했다. 나를 그곳으로 불러낸 동기의 속셈은 교회가 아니라 자신이 미리 지불한 월세를 회수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나의 인생은 출발부터 험난한 가시밭길 이었다.
더욱 문제는 결혼하려고 교제중인 자매와의 사이가 몸이 떨어진 거리만큼 틈새가 발생하기 시작한 점이다. 사람들이 흔히 하던말이 정말로 실감나는 경험을 하였다. 사실 더큰 문제는 자매의 모친이 나와의 결혼을 결사반대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의 상황이 꿈으로 40년만에 재현된 것이다. 도대체 왜 그런 꿈이 꾸어졌는지가 궁금했다. 혹시라도 자매의 부모중 누군가가 별세를 했을까? 10여년전 자매와 소식이 연결됐을 때 모친은 폐암 투병중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꿈에는 인자하신 자매의 부친만 보인듯 하다. 그래서 혹시 자매의 부친이 별세하셨나 하는 생각도 든다.
도저히 교회를 더이상 존치해서는 안되는 상황에서 부임한 교회였다. 전임자의 기이한 행동은 실로 상상을 초월했다. 신학교 4년을 졸업했지만 술문제를 해결못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았다. 교인이 있을리 만무하다. 그런데다가 담임전도사가 총각이라니! 어쩌다가 사람이 와도 몇주후부터 교회를 못오겠다고 하였다. 전도사님이 총각이고 교인이 없기 때문에 도저히 여자혼자 참석이 어렵다고 하였다. 근처에 신학대학이 있다보니 수요예배에는 10명이상 신학생들이 참석을 해주었다.
4년간 교제한 자매와의 결혼을 고집하려면 목회룰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이미 시작을 한터이라 그렇게 할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 자매와의 인연은 여기까지라고 생각을 정리하였다. 마음이 쓰리고 아프지만 교회개척의 현실앞에서 나의 이익만을 고집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몇달 후 노회장 목사의 교회 유치원교사와 맞선을 보고 바로 결혼을 하였다. 나로서는 마음속에 못이 박힌 여성이 있었지만 아내에게는 내가 첫사랑이라고 하였다. 그나마 한쪽이라도 첫사랑이라 가정이 유지될수 있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10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야 비로서 마음의 정리를 끝낼수 있었다.
애초에 친구 누님이 소개해준 자매와의 결혼을 거절한 것이 내 인생 내내 나를 발목잡았다는 반성을 하며 살아가게 된다. 내가 성수주일 문제로 충주지역의 토건회사에 근무할 때 출석하던 교회의 자매였다. 그런데 아쉽게도 자매가 소아마비라서 한쪽발을 몹시 저는 사람이었다. 사실 목발을 짚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로서는 감당이 안되는 신체적 결함이었다. 만일 그때 결혼을 했더라면 나의 인생은 지금과는 전혀 달라졌을 것임이 확실하다. 적어도 이성문제로 고통당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 자매와 결혼했어도 목회자가 됐을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나 어떻든 음란의 영과 싸우는 일은 절대로 없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꿈은 비과학적이다. 잠자기 전 어떤 생각을 했느냐도 꿈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그런지 40년전의 경험 말고도 이상한 꿈을 여러편 꾼 셈이다. 기왕이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꿈을 꾸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