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유다의 르호보암 왕과 북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 사이에 항상 전쟁이 있었던 것은 결코 하나님과 별개일 수 없는 것이고, 게다가 항상 있게 되는 강력 범죄들이나 테러들이라 하더라도 보통 위험하거나 작은 괴로움들일 수가 없는 것이고 진정 능히 감당할 만한 파괴들이라 볼 수 없는 것인데..
항상 있는 전쟁들은 하나님으로 인한 가장 큰 진노들 중 대표적인 것이 아니실 수 없는 것으로 그들 각각의 죄악들이 최고조에 다다랐기 때문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열왕기상 12장 28~30절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경배함이더라", 그리고 열왕기상 14장 22~23절 “유다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의 조상들이 행한 모든 일보다 뛰어나게 하여 그 범한 죄로 여호와를 노엽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도 산 위에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산당과 우상과 아세라 상을 세웠음이라"와 같이 증거된 것에서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듯이 그 두 나라는 왕들을 중심으로 우상숭배 등의 죄악들을 가장 심각하게 범하고 또 범했던 것이고, 그들 사이에 그렇게 크고 작은 전쟁들이 반복되었던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계획과 섭리 안에서 그러한 죄악들의 모양과 정도와 강도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유사하게 심각한 우상 숭배들에 빠지고 자기 소견대로 행하기에 바빴던 사사 시대에서도 사사기 2장 13~15절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넘겨 주사 그들이 노략을 당하게 하시며 또 주위에 있는 모든 대적의 손에 팔아 넘기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하지 못하였으며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니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와 같이 증거된 것도 본질적으로는 같은 상황과 이치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반면 사무엘하 8장에서는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라는 말씀이 반복해서 증거되어 있는데 이는 반대적인 차원에서 동일한 하나님의 이치와 영적인 원리가 아닐 수 없는 것으로 그때 당시 다윗은 가장 깨어 있고 치열한 말씀의 신앙의 때로 심지어는 한 두 구절의 말씀을 위해 목숨까지 아끼지 않았을 때였던 것입니다..
실제로 사무엘상 17장에서는 블레셋의 거인 장수 골리앗이 말씀과 정반대라 할 수 있는 언행,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다는 이유 한 가지로 인해 그 다윗은 갑옷이나 투구, 칼과 창도 없이 지팡이 하나와 물맷돌 5개를 가진 채 오직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가 맞서는 것을 볼 수 있고, 하나님께서는 단지 물맷돌 하나만으로 그 골리앗을 쓰러뜨리게 하신 것일 뿐 아니라 민족 전체 차원의 전쟁에서도 이기게 하신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쨌든 그러한 진노의 차원이든지 승리의 차원이든지 간에 그러한 모든 역사들, 순간들, 실제들, 경험들 하나하나는 직접적, 현실적인 면에 있어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의 역사들에 있어서의 성령님, 곧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이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대로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두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역사와 실제들이 아닐 수 없는 것인데..
바로 그러한 성령님께서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영이신 것이고, 실상 모든 하나님의 말씀들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고 우리 인생들이 접할 수 있도록 기록되게 하신 직접적, 경험적인 힘이신 분일 뿐 아니라 우리 인생들이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고 깨달으며 믿고 행하며 증거하고 누리며 경험하고 성취되어 지게 하시는 현실적, 실질적인 힘이 아니실 수 없는 분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위치와 역할 상 온 세상 천지만물의 주인이시고 생사화복의 주관자이시며 선악 간 심판주이시고 전지전능하심으로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곧 창세전부터 그와 같은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을 계획, 약속, 준비,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누리게 하시며 성취해 나가시는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야 말로 근본적으로는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공의와 형평과 질서의 하나님 또한 아니실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일반 은총이든 특별 은총이든 간에 어쨌든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마다, 또한 그에 있어서의 그 위치와 역할에 따른 성령님의 직접적, 경험적인 시공을 넘는 하늘의 힘과 실제들마다, 무엇보다 믿음으로 인한 값없는 은혜와 공짜와 같은 선물인 역사들마다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인생들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이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우리 인생들에 있어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 날과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두 다 이루신 구원에 전적으로 직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인데..
바로 그 예수님께서도 본질적으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셔서 말씀대로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분인 것으로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져 있던 우리 인생들이 믿음과 함께 말씀이신 하나님의 것, 말씀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백성, 곧 본질적으로 말씀의 백성으로 거듭나고 뒤바뀔 수 있게 하신 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실상 근원적으로는 그렇듯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또한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일 뿐 아니라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는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신 것이며,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고 다 이루시는 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나의 삶의 자리와 사역의 현장들에서의 크고 작은 다양한 모양의 전쟁 같은 상황들이나, 또는 그와 반대로 어디를 가나 앞서 가시어 이기게 하시고 단지 물맷돌 하나로 모든 걸 해결해 주시는 듯한 상황들도 똑같은 이치와 원리가 아닐 수 없는 것으로..
이 시간도 나 자신이 다른 그 무엇보다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창세전부터의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를 덧입어 더욱 더 죄악들과 싸우며 자복하고 돌이키며 가장 우선으로 말씀을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로 나아가고 또 나아가는 이유들 중 하나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 항상 전쟁이 있으니라"
(열왕기상14:30)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3년 11월 16일(목)1/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