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의 조건
살다보면 가끔 뜻하지 않은 곳에서 뜻하지 않은 인연이 생기곤 합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음식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장소에서 평생 기억에 남는 경험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의 끝에는 기본의 소중함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만나게 됩니다.
30년 전쯤 강원도 태백에 출장을 가는 길이었습니다. 꼬불꼬불 산길을 달리며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다 보니 물리적으로 장 운동이 되었는지 일찍 배가 고파왔습니다. 원래는 태백시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으려 했는데 허기를 참지 못하고 태백시 어귀의 삼거리에 있는 허름한 음식점에 들어갔습니다.
으레 ‘오늘도 간단하게 점심을 때우겠구나’라고 생각하며 간판도 없는 식당 안으로 들어갔는데 가게 안이 너무 썰렁해서 음식에 대한 기대가 싹 사라졌습니다. 식당과 구멍가게를 같이 운영하던 집이었는데 중앙에 큼지막한 연탄 난로가 놓여 있었습니다. 4월 초인데도 강원도 산골은 난로를 켜고 있었습니다. “여기 뭐가 맛있지요?”라고 물으니
“강원도꺼정 오셨으니 막국수 드시고 가시래요.” 투박한 강원도 사투리로 주인 아저씨가 대답을 합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막국수만 파는 집이었습니다. 오래된 나무틀에 판유리를 끼운 문틀 사이로 이른 봄 강원도 산골 바람이 매섭게 들어와 안인지 밖인지 구분이 안 되던 이상한 식당에서 연탄난로 주변에 촬영팀 다섯 명이 옹기종기 모여 막국수가 나오길 기다렸습니다.
맛있는 참기를 냄새는 십리를 간다는 말을 그때 알았습니다. 막국수가 나오기도 전에 “이 집이 방앗간도 같이 하나?”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가게 안에 그득하게 풍기기 시작했습니다. 전혀 음식맛을 기대하지 않았던 집인데 갑자기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막국수의 실물을 영접하니 너무나 평범하고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모습이었습니다. ‘뭐지? 이 빈약함은? 그럼 그렇지 괜한 기대를 했구먼’이라고 생각하고 휘휘 저어서 무심하게 한 젓가락을 입에 넣는 순간 “아!” 하는 감탄이 나왔습니다. 막국수가 낼 수 있는 궁극의 맛이었습니다.
필자는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맛있다는 막국수 집을 찾아다니며 즐기는 편이지만 가장 맛있었던 막국수를 꼽으라면 그때 호랑이가 출몰했다는 허위 제보에 속아 태백까지 취재를 가다가 이름 모를 삼거리의 이름 모를 식당에서 먹은 그 막국수가 최고였다고 늘 말합니다. 사실 그곳을 다시 가려고 삼거리 이름을 외웠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 삼거리 이름을 잊고 말았습니다.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주인 아저씨에게 “비법이 뭡니까?”라고 묻자, “우리 집 막국수 참기름이 맛나지요? 우리가 농사 지은 거래요. 우리가 농사 지어가지고 방앗간에 가서 직접 볶아서 기름을 짜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맛이 달라요. 우리가 생각해도 참 맛있어요.”라며 겸연쩍게 웃는 모습은 어렴풋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 이후부터 막국수를 먹을 때는 참기름의 향을 먼저 맡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메밀의 고소함을 느끼는데 사실 참기름에서 승패가 갈립니다. 맛있다고 소문난 막국수 집은 다 좋은 참기름을 씁니다. 메밀의 깊은 맛을 느끼는 것은 한참 다음 순섭니다. 어느 누가 첫입에 맛없는 막국수를 면벽 수행하듯이 인내하며 씹으며 “역시 오래 음미하니 메밀의 구수함이 느껴지는구만.”이라고 말하겠습니까?
맛있는 음식은 결국 재료가 좋아야 탄생합니다. 마트에서 산 참기름 뚜껑을 열면 참기름인지 콩기름이니 모를 애매한 냄새가 납니다. 대중음식점에선 한 술 더 떠서 참기름 향을 입힌 중국산 ‘참깨향 기름’을 쓰는 곳이 많습니다. 고깃집에서 나오는 참기름장은 거의 100% 이 기름을 씁니다.
“요즘 음식이 옛날 맛이 안 나.”라고 다들 이야기하는 이유는 옛날에 쓰던 재료를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농사를 지어도 내다 팔 거 따로 자기가 먹을 거 따로 짓는다고 합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상품성 때문입니다. 상추를 내다 팔려면 비슷한 크기로 마치 공장에서 찍어 나온 것처럼 맞춰야 하는데 땅에서 나는 것들이 그러기가 쉽겠습니까?
그러니 파는 것 따로 내가 먹는 것 따로가 되는 이유입니다. 퇴직해서 시골로 내려간 선배가 텃밭에서 땄다며 보내준 들쭉날쭉한 크기의 상추며 깻잎 등등을 냉장고에 보관하고 먹은 적이 있는데 며칠이 지나도 싱싱함이 그대로였고 아삭한 식감 역시 그대로 살아있었습니다. 마트에서 산 채소였으면 상상을 못 할 일입니다.
여기서 짬뽕에 들어가는 이상한 오징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요즘 맛있는 짬뽕집 얘기를 할 때면 ‘불맛’ 이야기를 빼놓지 않습니다만, 불맛 이전에 국물맛이 따라와 줘야 하는데 이 국물 맛은 해산물에서 시원하게 나와야 합니다. 중국집마다 짬뽕 육수를 뽑는 노하우가 다르긴 하나 대체로 닭이나 돼지 뼈로 육수를 냅니다. 여기에 오징어가 국물 맛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 돼야 제대로 감칠맛이 나옵니다.
기억하시겠지만 옛날 짬뽕에는 갑오징어가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갑오징어와 살오징어 가격이 역전되면서 살오징어가 잠시 자리를 메웠는데 지금은 거의 모든 중국집에서 훔볼트 오징어를 씁니다. 이 오징어는 멕시코에서부터 쭉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훔볼트 해류에서 잡히는 오징어인데 체내에 염화암모늄이 있어서 쓰고 신맛이 나기 때문에 잡히는 족족 버려지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민족답게 값싸고 덩치 큰 이 훔볼트 오징어의 쓴맛을 제거하고 아무 맛이 없는 상태로 만들어 국내로 들여와 중식부터 뷔페, 심지어 오징어 젓갈에도 쓰이고 있습니다.
마른반찬의 대명사인 고추장 조림을 하는 조미 오징어도 이 훔볼트 오징어입니다. 원산지에 ‘페루’나 ‘칠레’로 적힌 것들은 대체로 훔볼트 오징어라고 보면 맞습니다. 맛을 없앤 오징어를 짬뽕에 넣으니 여기서 갑오징어나 살오징어가 담당하던 국물 맛은 전혀 기대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요란하게 칼집을 내어도 오징어를 씹는 건지 흰 고무를 씹는 건지 모르는 상황이 되어버린 겁니다. 그래서 이제는 모르는 중국집에 가서 짬뽕을 시켰을 때 살오징어가 들어 있으면 고맙기까지 합니다.
싸게 모양만 좋게 만들다 보니 음식은 점점 옛날 맛을 잃어가고 그 맛을 비슷하게 만들기는 어려우니 조미료를 불에 태우는 자극적인 맛으로 손님을 끕니다. 밖에서 외식이 잦은 가장이 용변을 본 화장실에선 코를 찌르는 악취가 납니다.
그런데 집에서 순한 음식을 먹는 엄마가 용변을 보고 나오면 구수한 냄새가 납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뱃속의 상태를 결정합니다. 필자가 정말 맛있다고 생각하며 자주 가는 식당은 좋은 재료를 쓰는 곳입니다.
좋은 고춧가루와 잘 삭힌 새우젓 그리고 간수를 뺀 천일염으로 김치를 담그고 시골 방앗간에서 짠 참기름과 볶지 않은 채로 짠 들기름으로 나물을 무치고 정월에 담근 된장으로 된장국을 끓이는 집입니다. 이 식당은 세상에 단 한 곳만 있습니다. 맛집을 찾아다니면서 얻은 결론은 좋은 재료로 내가 직접 조리해 먹는 음식을 따라오는 맛집은 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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