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민심 맞습니까… 가짜뉴스같은 여론조사
尹 지지율 조사 1년간 460건 쏟아져… 날림 조사도 급증
윤석열 정부 출범 후 1년간 실시된 여론조사가 문재인 정부 첫 1년보다 88%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에 1개 이상씩 쏟아지는 여론조사 홍수 속에 지지율도 조사에 따라 20%포인트 이상씩 널뛰기를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여론조사가 수치로 포장된 가짜 뉴스 생산지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지난 1년간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에 등록된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 조사는 10일 현재 460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정부 때 같은 기간의 244건보다 88%(216건)나 급증했다. 현 정부 들어 지지율 조사가 1년간 하루 평균 1.26건씩 쏟아진 셈이다. 매주 또는 격주 등 주기적으로 대통령과 정당 지지율을 발표하는 조사 회사가 14곳에 이른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 조사에서도 지지율이 2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나면서 조사 결과가 심하게 널뛰고 있었다. 일부 조사 회사의 특정 방향으로 응답을 유도하는 듯한 조사도 여론조사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데 한몫하고 있다.
본지가 5월 1일부터 5월 10일까지 열흘간 각 조사 회사가 언론에 발표한 여론조사 27건을 분석한 결과, 국민리서치그룹·에이스리서치가 뉴시스 의뢰로 실시해 10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은 42.1%였다. 하지만 미디어리얼리서치코리아가 4일 발표한 조사에선 윤 대통령 지지율이 18.7%로 두 조사의 차이가 23.4%포인트에 달했다.
정당 지지율도 메트릭스가 연합뉴스·연합뉴스TV 공동 의뢰로 실시해 9일 발표한 조사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30.2%였지만, 친야(親野) 방송인 김어준씨가 차린 ‘여론조사꽃’이 8일 발표한 ARS 조사에선 52.7%였다. 하루 간격으로 발표한 두 조사에서 민주당의 지지율 차이는 22.5%포인트에 달했다. 메트릭스 조사에선 국민의힘(36.6%) 지지율이 민주당(30.2%)보다 6.4%포인트 높았지만, 여론조사꽃 조사에선 민주당(52.7%)이 국민의힘(36.9%)보다 15.8%포인트 앞섰다.
가장 큰 문제는 여론조사 회사가 과거에 비해 급증하고 조사 횟수도 크게 늘었지만 갈수록 응답률이 떨어지는 등 조사의 품질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에 선거 여론조사 회사로 등록된 업체가 2017년 말에는 60개였지만 이후 매년 증가해서 작년 말에는 91개에 달했다. 여론조사 횟수도 크게 늘었다. 지난해 3월 대선을 앞두고 실시한 대선 여론조사는 총 1384회로 2017년 대선 때의 801회에 비해 583회(73%)나 증가했다. 지방선거 여론조사도 2018년엔 1624회였는데 2022년에는 1895회로 늘었다.
하지만 조사의 품질을 반영하는 척도 중 하나인 응답률이 10% 미만인 조사는 2017년 대선에선 전체의 48.8%였는데 작년 대선에선 60%로 증가했다. 응답률이 5%에도 못 미치는 조사는 2017년 대선에선 18.8%였고 2022년 대선 때에는 26.7%로 늘었다. 여론조사의 응답률 하락은 기계음으로 실시하는 싸구려 ARS 조사의 증가도 관련이 있다. ARS 조사는 2017년 대선에선 전체 조사의 24.2%였지만 작년 6월 지방선거에서는 77.7%로 급증했다.
수많은 여론조사 사이를 비집고 조사 의도가 불순한 조사들이 끼어들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여론조사를 가장한 ‘여론몰이용 조사’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라’는 식의 ‘답정너’ 질문으로 결과를 왜곡하는 조사다. 김어준씨의 ‘여론조사꽃’이 지난 2월 실시한 조사에선 ‘1월 무역 적자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경제성장률이 IMF 이후 최초로 일본에 역전당했다. 현 정부의 경제 능력을 어떻게 평가하는가’란 질문이 있었다. ‘무역 적자 사상 최고치’ ‘일본에 역전’ 등 문구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근엔 ‘대통령실 졸속 이전으로 어수선한 상황이 도청의 기회를 열어줬을 것이란 주장에 얼마나 공감하는가’란 질문으로 조사했다. ‘졸속’ ‘어수선한’ 등 자극적 문구를 넣어서 특정 방향의 결과를 내려 한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는 조사다.
지난 4월 미디어토마토 조사에선 ‘민주당이 추진하는 대일본 굴욕 외교 국정조사 필요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란 질문이 있었다. ‘굴욕 외교’란 문구가 특정 답변을 유도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이명진 고려대 교수는 “조사방법론 교과서에서 절대 해선 안 된다고 경고하는 ‘유도성 질문’을 던진다면 여론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조사가 아니라 특정 여론을 만들기 위한 조사로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반복적으로 비슷한 내용의 조사를 실시해 발표하며 특정 여론을 조성하려는 듯한 경우도 있다. 지난 3일 리서치뷰가 발표한 자체 조사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전‧현직 대통령 호감도에서 30%로 1위였고 2위는 박정희 전 대통령(23%), 3위는 문재인 전 대통령(16%) 등이었다. 노무현 청와대 행정관 출신이 대표인 이 조사회사는 2011년부터 전‧현직 대통령 호감도를 분기별로 40차례나 조사했는데 노 전 대통령이 23번 선두에 올랐다. 이에 대해선 “중요 현안도 아닌 내용을 자기 돈 들이는 ‘자체 조사’로 반복해서 실시하며 발표하는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전문가들은 “여론조사가 민심을 측정하는 사회적 공기(公器)로 기능할 것이라는 기대를 벗어나 특정 목적을 지니고 특정 여론을 조성하려 한다면 정치적 무기(武器)로도 변질될 수 있다”고 했다. 김동률 서강대 교수는 “불순한 의도의 여론몰이용 여론조사가 늘어나면서 갈등과 분열의 소재로 이용되기도 한다”며 “엉터리 여론조사를 퇴출시키는 시스템이 정착되지 않으면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고 민주주의를 해칠 우려가 있다”고 했다(각 조사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홍영림 여론조사전문기자 겸 데이터저널리즘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