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고래 남성 줄고 술꾼 여성 늘었다
나라마다 기준이 대동소이하지만, 국내 보건당국은 한 번 술을 마실 때 남성은 소주 7잔(맥주 5캔), 여성은 5잔(맥주 3캔) 이상 마시는 걸 폭음이라고 규정한다. 남녀 간에 2잔이 차이 나는 건 여성의 알코올 분해 능력이 남성보다 떨어져서다. 남성보다 왜소한 여성은 간의 크기도 작아서 간에서 분비되는 알코올 분해 효소가 남성의 30∼50%에 불과하다. 여성호르몬 에스트라디올은 알코올 분해 효소의 활동도 방해한다. 술이 남자보다 여자에게 더 치명적인 이유다.
▷그런데 잔뜩 취할 정도로 술을 몰아서 마시는 한국 여성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일주일에 2번 이상 폭음하는 사람이 최근 10년 동안 남성은 25.1%에서 23.6%로 줄어든 반면 여성은 7.9%에서 8.9%로 늘었다. ‘고위험 음주’에 해당하는 술꾼들이다. 한 달에 한 번 이상 폭음하는 사람으로 좁혀 봐도 남성은 62%에서 56%로 감소했지만 여성은 31%로 변화가 없었다. 질병관리청은 2012년부터 2021년까지 성인의 음주 행태를 분석해 최근 이런 내용의 심층 보고서를 내놨다.
▷보고서에 따르면 자주 폭음하는 술꾼들이 남성의 경우 40, 50대 중장년층에서 많았지만 여성은 20, 30대 젊은층에서 두드러졌다. 특히 30대 여성의 고위험 음주율은 10년간 11.6%에서 13.2%로 뛰었다. 이는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고 여성 음주에 대한 사회·문화적 수용성이 높아진 영향이 크다. 서른 살 여자 동창 3명이 주구장창 술 마시는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이 큰 인기를 끈 것도 이 같은 현실이 투영된 결과다.
▷도수는 낮추고 맛은 살린 ‘순한 술’ 경쟁이 불붙은 것도 한몫했다. ‘국민의 술’ 소주는 2004년 21도, 2006년 20도, 2014년 18도, 2018년 17도 등으로 도수를 계속 낮추며 남성 중심이던 소비층을 여성으로 넓혔다. 2015년 14도짜리 유자 맛 과일소주가 처음 나왔을 땐 “일반소주는 입에도 못 댔는데 두세 병은 거뜬히 마셨다”는 여성들의 무용담이 쏟아졌다. 최근엔 위스키에 토닉워터나 탄산수를 섞어 마시는 하이볼, 당을 뺀 제로슈거 소주가 여성 애주가를 사로잡고 있다.
▷임신과 출산으로 술을 끊었다가 육아로 인한 스트레스를 ‘육퇴’(육아+퇴근) 후 술 한잔으로 푸는 여성들도 여럿이다. 미국에선 이를 뜻하는 ‘마미주스’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하지만 습관적인 음주가 알코올 의존증으로 이어지기까지 남성은 평균 7∼8년, 여성은 5년 걸린다고 한다. 남성은 습관적으로 술을 마시지만 여성은 스트레스와 외로움, 우울감 등을 달래기 위해 술을 찾았다가 문제가 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건강한 음주는 없다’는 말은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
정임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