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5년 문정공 박상충 선조와 판서공 박상진 선조께서 친원파에
의해 탄압을 받게 되십니다.
문정공은 귀양 가시다가 세상을 떠나시고 판서공은 귀양 가신 이후
그 행적을 알 수 없으니 650년전에 실제 있었던 역사의 한페이지
입니다.
판서공의 3남 3녀중 3남인 감찰공의 정확한 탄생연도는 모르나
판서공이 귀양가시기 전에 탄생하였을 것으로 추정해 1373년으로
특정하였습니다.
문암의 추정이 맞다면 감찰공이 불과 3세에 판서공이 귀양가신
것입니다.
사촌형님이신 평도공 박은 선조께서 1370년생이시니 그 해에 6세가
되십니다.
사실상 감찰공이 혼인을 하신 것과 감찰을 지내신 것이외에 다른
행적을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감찰공은 과거시험을 치른 적이 없으신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과연 어떤 방법으로 요직이라 할 수 있는 정6품 관직인 감찰에
제수되실 수 있었을까요?
물론 음직으로 조정에 천거되셨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나 설사
음직으로 천거되셨다고 하더라도 감찰이 되는 것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었을 것으로 봅니다.
과연 감찰공께 실질적으로 영향을 준 친척이 누구였을까요?
분석을 한 결과 최종적으로 평도공으로 판단하였습니다.
평도공은 태종의 최측근으로서 사헌부 수장인 대사헌에 두차례나
제수된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덧붙이면 감찰이 바로 사헌부에 속한 관원이었기에 평도공이
대사헌에 제수되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시기는 정확히 모르나 박여해 선조가 감찰이 되실 수 있었던
결정적인 변수는 평도공의 천거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물론 아직 결정적인 증거를 발견한 것은 아니나 당시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끝에 내린 결론입니다.
이제 이러한 추정을 바탕으로 이를 구체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찾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024년 6월 26일(수) 문 암 올 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