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강수사랑( 포크싱어 박강수 팬카페)
 
 
 
 

회원 알림

다음
 
  • 방문
    1. Wind
    2. 반딧불이1
    3. 뜬금이
    4. 은하水
    5. 팅팅공
    1. Thomas
    2. 훨훨
    3. 영란
    4. 연꽃사랑마라행
    5. 케비
  • 가입

회원 알림

다음
 
  • 방문
  • 가입
    1. 베비불루
    2. 쩡아
    3. 앵란이
    4. jayuro
    5. 유리상자
    1. 영광
    2. 들국화 현주
    3. 영이02
    4. 하얀나비
    5. 유자향기
 
카페 게시글
뉴스 정보 자료 연예 스크랩 세상을 바꾼 노래 2 (키보이스 `해변으로 가요` (1970) )
바람愛 추천 1 조회 177 11.09.17 17:43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세상을 바꾼 노래

 

 

한국 대중음악사에 뚜렷한 의미를 각인한 노래들을 매주 2회씩 연재한다. 혹자는 '세상을 바꾼 노래'란 타이틀이 거창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원자폭탄으로 도시 하나를 순식간에 박살내버리거나 멀쩡한 강바닥을 파내서 생태계를 초토화시키는 정도쯤이나 되야 세상을 바꿨다고 얘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설득할 생각은 없다. 다만, 노래가 세상을 바꾸는 방식은 투표의 작동원리와 비슷하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을 뿐이다. 한 장의 투표권이 공동의 지향과 만남으로써 세상을 (좋게든 나쁘게든) 바꾸는 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하나의 노래는 대중의 정서와 호응함으로써 한 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규정하는 이정표로 우뚝 서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세상을 바꾼 노래'들을 주목했다. 당초 1900년대 초반부터 시작하여 20세기 전체를 아우르는 기획으로 준비했으나, 여러 가지 현실적인 여건의 제약으로 여기서는 1970년 이후 발표된 노래들을 시대순으로 소개하기로 했다는 점도 밝혀둔다. 더불어, 여기에 미처 소개하지 못하는 노래들은 언젠가 다른 방식으로 독자 여러분을 찾을 것이라는 약속도 함께 드린다.

 

 

 

 

키보이스 '해변으로 가요' (1970)
그룹사운드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부끄러운 시대의 노래였다

 

“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가요. 젊음이 넘치는 해변으로 가요.” 글자 몇 개로 이루어진 이 문장에 절로 멜로디가 달라붙어 나온다. 어떤 이들의 두개골은 눈에 보이지 않는 코러스 파트 “해변으로 가요”를 제 맘대로 더하고는 저 뒤에서 들려오게 만들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해변으로 가요’는 당대에 크게 히트했을 뿐만 아니라 그룹사운드 시대의 개막을 알린 곡이자 낭만의 상징이고, 후대에도 재생산되는 과정을 거쳐 이른바 ‘국민가요’의 반열에 올랐다.

앰프에 연결해야 소리가 난다고 앰프기타라고도 했고, 아직도 어떤 이들이 전자기타라고 지칭했다가 면박을 당하게도 하는 전기기타의 등장은 음악의 판을 흔들어놓았다. 한국에 주둔한 미군부대를 중심으로 서구의 팝 음악이 전파되는 동시에 그들을 위한 무대에서 기량을 닦는 음악인들이 생겨났다. 그들이 하나둘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이른바 그룹사운드의 시대가 열린다.

 

한국 최초의 그룹사운드가 누구냐는 물음은 기준에 따라 달라진다. 결성 시기와 앨범을 발표한 시점 등 여러 기준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때마다 언급해야 할 이름들로 코끼리와 애드 훠(Add 4) 그리고 키보이스(Key Boys)가 있다. 당시 미8군 무대에서 락앤키(Rock & Key)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밴드가 이제 막 청년이 된 소년을 스카우트 하며 대중적으로 활동하게 되는데, 그들의 다른 이름이 바로 키보이스였다. 인천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부터 미군 하사관에게 기타를 배우고 일찌감치 밴드에서 연주하면서 기타신동으로 소문이 나 있었던 대학새내기가 김홍탁이고, 그를 제외한 오리지널 멤버는 윤항기와 차중락, 차도균과 옥상빈이었다.

그들은 순식간에 장안의 스타로 등극했고, 한국 그룹사운드 역사의 맨 앞줄에 기록된다. 이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한 ‘해변으로 가요’는 단숨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기를 끌어 모았다. 그리고 한 세대 넘는 기간 동안 수많은 가수들에게 리메이크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한국 가요사의 수치스러운 장면이자 역사이기도 하다. ‘해변으로 가요’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지만, 이 노래의 진짜 주인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 당시에는 저작권 개념이 희박했고 번안곡을 당연시하는 풍조가 있었다. ‘키 보이스’의 노래들도 상당수가 번안곡이었다. ‘해변으로 가요’ 역시 일본 노래의 번안곡이었는데, 워낙에 히트하면서 언젠가 정체가 드러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966년, 일본 밴드인 아스트로 제트(Astro Jet)의 리더이자 재일교포인 이철은 ‘고히비토타쓰노 하마베(해변의 연인)’를 작곡했다. 그는 1967년에 한국을 찾아 공연하면서 다른 이에게 부탁하여 이 곡을 한국어 노랫말로 바꿔 들려주었다. ‘해변의 연인’이 맘에 든 키보이스는 자신들이 이 곡을 부르기로 하고 허락을 구했다고 하지만, 정작 음반에는 원작자의 이름이 없었다. 후에 작사?작곡가의 이름이 수정되는데, 그 자리는 엉뚱하게도 김희갑을 거쳐 키보이스 2기 멤버였던 장영의 이름이 채우게 된다. 무려 37년이 지난 후인 2007년에야 한국의 법정은 원래의 주인을 인정했다. 훔친 노래가 한 시대를 대표하는 노래가 될 수 있었던 시대, 그리고 ‘대중가요는 대중이 검증한다’는 주장, 이 모두가 얼마나 허망한지를 보여준 사례이다.

그러나 키보이스는 다른 의미의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대중의 기호를 따르는 활동과 번안곡 연주에 만족하지 못한 김홍탁은 좀 더 색다른 음악, 다시 말하여 록 음악을 하고 싶었다. 장차 기타의 가능성을 넓혀놓게 될 그가 키보이스를 떠나 결성한 밴드가 히화이브(He 5)였고, 구성원에 변화가 생기며 확대된 팀이 히식스(He 6)였다. 또 다른 전설의 시작이었다.

 
| 나도원 (100비트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및 장르분과장, '100비트' 편집위원, [결국, 음악]의 저자. 다양한 매체와 기관에서 다각도의 글을 쓰며 다채로운 역할을 맡고 있다.

 

 

 

 

 

해변으로 가요


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가요
젊~음이 넘치는
해변으로 가요
달콤한 사랑을
속삭여줘요

 

 

연~인들의 해변으로 가요
사~랑한다는 말은 안해도
나는 나는 행복에
묻힐거예요

 

 

불타는 그입술
처음으로 느꼈네
사랑의 발자욱
끝없이 남기며

 

 

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가요
젊~음이 넘치는
해변으로 가요
달콤한 사랑을
속삭여줘요

 

 

나는 나는 행복에
묻힐거예요

 

 

불타는 그입술
처음으로 느꼈네
사랑의 발자욱
끝없이 남기며

 

 

연~인들의 해변으로 가요
사~랑한다는 말은 안해도
나는 나는 행복에
묻힐거예요
나는 나는 행복에
묻힐거예요

 

 
다음검색
댓글
  • 작성자 11.09.17 18:00

    첫댓글 이 노래가 세상을 바꾼 노래에 두번째로 소개되어 의아해 했읍니다.아마도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밴드 음악의 시초로 자리매김이 되는 점과 나름 번안곡의 영향권을 탈피하려 몸부림 친 김홍탁의 시도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모든 창작은 모방에서 시작된다는 명제下 이라면 그리고 한국인으로서 대한민국 대중 음악을 인정할수 밖에 없고 보듬고 안아가야 할 운명이라면 이 노래가 창작자의 명의를 도용하였다 하여도 용서 해주고 싶습니다.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