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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대담]
우리에게 기술이란 무엇인가? ①
(입력: 한국과총 Webzine Vol. 850 2012.05.17 / 박상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본 기사는 월간 <과학과기술> 5월호에 게재된 기사를 옮긴 것으로, 2부에 걸쳐 연재됩니다.
매년 천 개가 넘는 인공위성을 우주로 쏘아 보내면서, 진정한 수소경제는 왜 완성되지 못하는가? 세계 1위의 반도체, 배터리 기술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왜 스스로를 기술선진국이라 자신하지 못하는가? 기술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오해로 인해 대중과 과학기술계 사이에 오해의 벽이 높아지고 있다. 기술 개발을 둘러싼 여러 가지 신화(myth)를 파헤치기 위해 「과학과기술」이 기술의 발전 방향을 고민하는 공학자와 기술 개발 과정의 속성을 탐구하는 철학자를 모셔 특별 대담을 진행했다.
대담은 기술의 본질에서부터 기술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과제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 기술 개발은 딜레마의 연속이며 불확실성의 향연이다. 뻔히 예측 가능한 기술은 당연히 혁신적이지 않고, 획기적인 것처럼 보이는 기술도 ‘데스 밸리’에 빠져 고꾸라진다. 우리는 이 데스 밸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한국이 기술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빠른 추격자’ 전략에서 벗어나 ‘선도자’ 전략을 택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과거 추격기에 따라잡을 수 있을 만한 중요한 기술을 찾아내 과감히 투자하는 기획 능력은 우리만의 강점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고유한 기술, 새로운 기술 사조, 나아가 신산업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축적’ 연작으로 한국 사회를 강타한 혁신의 공학자 이정동 교수와 물리학도 출신으로 한국과학철학회장을 맡고 있는 융합적 철학자 이상욱 교수, 두 석학이 서울대 과학기술과 미래 연구센터에서 마주 앉아 ‘우리에게 기술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무제한 토론을 벌였다. 장장 6시간의 대담을 간추려 지면에 옮긴다.
대담 | 사회 | 대담 |
이정동 서울대학교 공학전문대학원 교수 | 박상욱 서울대학교 과학학과 교수 | 이상욱 한양대학교 철학과 교수 |
기술혁신의 출발점과 과정을 탐구하는 기술경제, 혁신정책 전문가다. 서울대 공과대학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효율성 분석이론의 대가이며, 기술혁신에 대한 이론적 연구를 바탕으로 기술선진국과 전략기술에 대한 통찰력 있는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생산성학회 및 한국기업경영학회 회장, 대통령비서실 경제과학특별보좌관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축적의 시간》(공저), 《축적의 길》, 《최초의 질문》 등이 있다. | 과학과 국가정책을 잇는 과학기술정책 전문가다. 서울대학교 화학과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은 뒤, 영국 서섹스대학교에서 과학기술정책학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받았다. 혁신시스템 관점을 적용한 과학기술정책 전반을 연구하며, 활발한 정책자문 활동을 펼치고 있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전문위원을 지냈고, 현재 서울대학교 과학기술과미래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다. | 과학과 기술의 다면적 성격을 연구하는 철학자이다. 서울대 물리학과에서 학사·석사 학위를, 런던정치경제대학교에서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과학철학, 기술철학 연구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에서 과학기술이 제기하는 존재론적, 인식론적, 실천적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과학기술윤리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인공지능의 존재론》,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 등이 있다. |
기술개발의 신화를 파헤친다
‘데스 밸리’의 본질은 무엇인가
박상욱 _ 이 질문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어떤 기술은 지금 궁극적인 답이 아니고 심지어 그 가능성과 효용성이 심하게 부풀려져 있음에도 개발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정동 _ 제가 즐겨 드는 예가 스페이스X의 로켓 재사용 기술인데, 처음에는 투자 유치를 위한 사기라는 얘기까지 나왔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기술이 그런 거품으로부터 출발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거짓말을 하거나 실험 결과를 조작하지 않는 이상 그런 허언과 광증도 필요할 수 있죠. 예측이 가능하다는 것은 충분히 혁신적이지 않다는 방증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박상욱 _ 지금 기술이 갖고 있는 알맹이와 거품 사이를 메워야 하는군요.
이상욱 _ 그것을 메우는 과정에서 데스 밸리(Death Valley)에 빠지는 것이죠. 메울 것이 충분히 크지 않으면 충분히 혁신적이지 않은 거죠. 비전을 던지고, 남아 있는 기술적 난제가 극복 가능하다는 의지를 가지고 밀어붙이는 엔지니어의 끈기, 인내 이런 것을 존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획기적인(breakthrough) 신기술을 70% 정도 이루고, 나머지 30%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상태에서 던지는 거죠. 나머지를 해낼 수 있다는 타당성을 증명해야 데스 밸리를 통과하는 데에 필요한 투자금을 유치할 수 있죠. 좋은 사회는 과학기술자가 “내가 여기까지 개발했는데 사실은 이것이 남아 있다. 나는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얘기를 솔직하게 하고, 그걸 올바르게 판단해서 지원하는 사회입니다.
이정동 _ mRNA 백신을 성공시킨 모더나가 투자를 받은 스토리도 흥미롭습니다. 2010년경 mRNA를 이용한 신약의 가능성은 보이는데 몇 가지 핵심 기술이 미완성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병목 상태를 돌파할 수 있는 기술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한 거죠. 그러니까 획기적인 신기술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그런 데스 밸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투자자들이 인식하고, 그것을 넘을 수 있는 회사와 잠재력이 있는 사람에게 투자한 거죠. 저는 데스 밸리를 어느 정도 껴안고 있는 것이 오히려 세상을 놀라게 할 미래 기술의 싹이 지닌 숙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욱 _ ‘과학과 기술은 무엇이 다른가?’라는 질문과도 연결됩니다. 과학자들이 “아무리 해도 안 돼요. 원리적으로 안 돼”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것이 공학의 디자인 패러다임으로 연결되기도 하죠. 그런데 공학자는 문제를 풀려고 될 때까지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시도합니다. 그러다 기존의 디자인 패러다임과는 다른 패러다임을 새로 만들어내기도 하는데, 거기서 다시 계산해 보면 과학의 원리에 위배되지 않을 수 있는 거죠. 과학이 정한 경계가 항상 기술의 발전 가능성에 대한 한계로 기능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과학이 발전하면서 경계 자체를 바꾸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기술이 도움을 주기도 하기 때문이죠. 기술이나 공학이 독자적인 지식의 영역을 가지고 있어서 과학 지식을 단순히 응용한 게 아니에요.
박상욱 _ 데스 밸리가 벤처 기업의 생애주기론으로 다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 두 분 대담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데스 밸리라는 것은 어떤 투자나 기업의 행태 문제가 아니라 기술개발 자체의 본질적인 속성 또는 운명처럼 있는 것이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기술이라는 지식 체계로 만들어지고, 그 지식을 실제 제품이나 서비스에 체화시켜서 상용화하는 단계에서 인간의 생각이 물적인 무언가로 구현되는 번역 작업과 불가피하게 타협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데스 밸리는 항상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까 언급한 거품을 용인하면 그 거품의 힘으로 데스 밸리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이정동 _ 지금 말씀하신 것을 제 용어로 하면 스케일 업(scale up)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술에는 기술요소들의 집합인 모듈성(modularity)이 있습니다. 어떤 하나의 모듈성이 하나의 제품으로 귀결이 되는데, 조합할 수 있는 개수는 무수히 많습니다. 가능성의 공간 속에서 하나의 유니크한 조합이 만들어지는데 조합의 개수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문제 탐색의 공간이 너무 넓은 거예요. 이 공간에서 최고의 선택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여 국지적인 최적점을 찾을 수 있을 뿐입니다. 심지어 그 탐색 공간 자체도 여러 개예요. 다중우주에서 하나의 최적점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기술개발 과정에서 찾기 어려운 병목들, 데스 밸리가 있고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에 벤처 투자에서 데스 밸리와 기술개발의 데스 밸리가 같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데스 밸리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확산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빨리빨리’ 발전해 오는 성장모형에서는 모든 일에서 과정을 생략하고, 탐색 과정에서 빠질 수 있는 늪을 빼놓고 이야기하는 습관이 강하게 자리 잡아 왔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상욱 _ 창의적 연구에 대한 논의에서 ‘아이디어가 고평가되었다(Ideas are overrated)’라는 표현이 있어요. 발전 과정에서 추격 단계를 겪은 우리나라는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베껴서 빨리 따라가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탈추격 단계에서는 아이디어와 창의성이 중요하다고 말하죠. 하지만 참신한 아이디어가 손쉽게 기술개발로 연결되고, 또 그게 성공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착각입니다. 실행 과정에서 지속적인 지원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절대 실현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작은 돌파구들을 엮어서 큰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죠.
천재성은 과정에 있다
박상욱 _ 작은 문제를 해결할 때도 창의성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이정동 _ 미술 기법 중에 프로타주라는 것이 있어요. 동전 위에 종이를 놓고 연필로 그으면 무늬가 나오는, 그런 기법이죠. 새로운 걸 만들어가는 과정은 이 프로타주하고 비슷해요. 밑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데 한 번 그어보고 두 번, 세 번 그어보는데, 많이 그을수록 동전의 모양이 잘 드러나죠. 이렇게 줄을 한 번 그을 때마다 자기 질문이 스스로 업그레이드되고, 그럴 때마다 질문 자체의 수준이 높아집니다. 그러니까 기가 막힌 아이디어라는 것은 그렇게 수백 번의 노력이 더해져 업그레이드된 질문이에요. 일종의 ‘후견지명(後見之明)’이죠. 저는 그렇게 한 번씩 선을 그어가면서 질문이 만들어지는 지난한 과정 자체를 데스 밸리라고 봅니다. 한 번 긋는 순간 그림이 나오는 ‘빅 아이디어’는 존재하지 않아요.
이상욱 _ ‘아이디어가 고평가되었다’라는 게 아이디어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닙니다. 한 순간에 천재적인 영감으로 떠오른 아이디어가 혁신적 기술로 이어지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에요. 심지어 과학도 그렇습니다.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했다’라는 식의 천재 과학자가 천재적인 영감을 가지고 이론을 만든다는 것은 신화일 뿐이에요. 최초의 아이디어는 나중에 완성된 아이디어하고 상당히 차이가 있어요. 최초의 아이디어는 질문을 제기하는 단초입니다.
우리가 천재라고 일컫는 아인슈타인도 틀린 이론을 발표해서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창피를 당한 적이 많아요. 아인슈타인의 위대함은 그 이론이 틀렸다는 걸 스스로 검증해서 본인이 가장 먼저 틀린 점을 알아낸 데에 있습니다. 처음에 ‘이거 한번 해볼까?’ 하는 아이디어는 엉성한데 그걸 재귀적으로 반복 검토해 나가는 거죠. 계속 업데이트하고 질문과 연구 방법도 세련화하면서 만들어나가는 과정에 주목해야 합니다. 저는 천재성이 바로 이 과정에 있다고 생각해요. 천재라는 게 그냥 머리가 너무 좋아서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걸 순식간에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는 거죠. 어마어마한 집중력과 복합적인 통찰력, 끈기가 천재를 정의해요.
유니크한 기술이란 무엇인가?
우리에겐 우리만의 기술 사조가 있는가?
박상욱 _ 과학 이론도 그렇고 유니크한 기술도 보면 어떤 일가(一家)를 이루지 않습니까? 또는 그런 일가를 이루는 것이 성공한 과학기술의 사후적 지표이기도 하고요. 새로운 사조라는 것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요?
이상욱 _ 서양철학의 새로운 사조를 만든 칸트도 사실은 ‘천재성이 계속 업데이트된다’는 좋은 예예요. 칸트는 세상에 대한 지식을 얻는 방식이나 도덕적 판단이 이성을 통해서 하나하나 따져볼 수 있다고 생각했죠. 영국의 철학자 흄은 그렇게 이성의 원리에 따라서 지식이나 윤리적 판단을 연역적으로 이끌어낸다는 게 얼마나 독단적인가 비판했어요. 칸트가 흄의 책을 읽고서 “독단의 잠에서 깨어났다”라고 했죠. 그래서 칸트의 철학이 대륙의 이성주의* 전통과 영미의 경험주의** 전통을 종합했다는 평가를 받는 겁니다. 칸트의 철학 자체에 사회적 가치가 들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사람이 그 질문들을 왜 탐구했는가? 그 질문들을 왜 그렇게 집요하게 탐구했는가?’와 같은 동기나 주제 선정에서는 시대 상황이나 시대적 가치가 일정 부분 반영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철학자도 당대를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훌륭한 철학자일수록 당대의 가장 심각한 문제를 다룹니다. 그 당시 상황을 잘 모르는 후대 사람들이 볼 때는 이들이 현실과 동떨어진 추상적인 문제를 고민한 것처럼 보이죠.
* 이성주의 : 이성이나 논리적 판단을 통해 참된 인식에 이를 수 있다는 이론
** 경험주의 : 인식의 바탕을 경험에서 찾는 철학적 경향
이정동 _ 예를 들어서 폴링의 화학이나 아인슈타인의 전환과 같은 과학의 영역에서도 당대의 영향을 받는다는 거죠?
이상욱 _ 그렇죠. 그런데 그 당대의 영향이라는 게 아주 간접적이에요. 19세기 말에 과학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냐면 미터법*이라든가 본초자오선**, 즉 지구상의 위치에 따른 시각의 정의를 놓고서 많은 과학적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국가적 지원도 있었고요. 이런 논의들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경영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과학사학자 피터 갤리슨이 흥미로운 연구를 했어요. 아인슈타인이 특허청 심사관으로 근무할 때 심사했던 특허 서류를 봤더니 시간의 동기화 기술에 대한 것들이었어요. 당시에는 주요 도시마다 시간을 정해서 썼던 터라, 무선 전신을 기계화해서 시계들을 동기화하는 특허가 많이 출원됐는데 아인슈타인이 그 특허 심사를 맡았던 거예요. 아인슈타인이 천재라는 건 연구에서 자기 분야의 지식뿐 아니라 자기가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동원해서 독창적 연구를 하는 사람이라서 지요. 아인슈타인은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관찰자의 시간을 어떻게 동기화할까를 놓고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이 특허에서 어떤 영감을 얻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죠.
* 미터법: 미터(m) 및 킬로그램(kg)을 기본으로 한 십진법의 국제적인 도량형단위계
** 본초자오선: 지구상의 경도를 측정하는 기준이 되는 자오선으로, 현재는 영국 런던 교외 그리니치를 통과하는 자오선을 국제협정으로 채용하고 있다.
이정동 _ 유니크한 기술이 뭐냐는 질문으로 돌아가 보면, 예를 들어 반도체 장비 업체 중에 3나노미터 수준의 식각* 장비는 네덜란드의 ASML만이 만들 수 있어요. 우리는 그런 것을 핵심기술 혹은 유니크한 기술, 대체 불가능한 기술이라고 부르죠. 그런 기술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다른 사람이 갖고 있지 않고 모방이 불가능하니 전략기술이라고, 또는 유니크한 기술이라고 부른다면 그 기술을 개발하자고 처음 말한 게 출발점이겠지요. 하지만 ASML이 3나노미터 공정에 쓰이는 장비를 개발하자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기술의 발전 경로상에서 다음 도전과제로 이미 주어져 있다는 측면에서 지금은 새로운 장르를 여는 질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에 반해, 아인슈타인이나 칸트는 그 다음 단계에서 어차피 풀어야 할 문제를 단지 집요하게 푼 사람이 아닙니다. 아인슈타인은 고전역학과 전자기학이 어울리지 않는 것에 불편함을 느꼈고 칸트는 이성주의가 현실과 맞지 않는 것에 불편함을 느꼈죠. 저는 이렇게 불편함을 느끼는 것 자체가 새로운 장르를 여는 핵심적인 질문이었다고 생각해요. 사회적인 불편함에 집중하면 사회운동가가 되겠죠. 기존의 과학 이론이 편치 않으면 새로운 이론이 나오는 것처럼, 비즈니스나 기술에서도 불편하기 때문에 다른 얘기를 하는 것들이 유니크한 기술의 출발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유니크한 기술이 없는 이유는 그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다른 사람이 인식해 놓은 불편함과 그것에 기반한 기존의 장르 속에 있기 때문이죠.
* 식각(Etching): 준비된 웨이퍼 위에 반도체 회로를 그려 넣는 포토(Photo) 공정이 끝난 후 회로 패턴 중 필요한 부분만 남기고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내는 작업
이상욱 _ 아인슈타인의 독창성이 도대체 무엇이냐 물으면 불편함을 처음으로 느낀 것에 있는 건 아니죠. 아인슈타인은 기존에 잘 알려져 있는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전혀 다른 방식으로, 즉 시간과 공간이라는 아주 기본적인 개념을 재구조화하는 방식으로 풀어냈어요. 그게 막스 플랑크 같은 사람들의 눈에 띄어서 널리 전파되고 실험적으로도 증명되면서 받아들여진 거죠. 최초의 질문이 아니더라도 풀이 과정에서 독창성이 있을 수 있어요.
박상욱 _ 이야기를 들으면서 독보성과 독창성이 섞여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ASML이 7나노미터에서 3나노미터로 도약하는 것은 독보적 기술이지, 새로운 질문은 아니죠. 다만 3나노로 나아갈 수 있는 역량이 축적된 데가 ASML밖에 없기 때문에 독보적인 것인데, 이 독보성, 즉 개선도의 격차가 유니크함일까요? 만약 유니크함의 속성으로 격차성을 본다면 한국이 독보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유는 아직 축적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 아닐까요? 유니크함의 핵심이 최초의 질문이라면 그건 또 다른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이정동 _ 저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기술에 대한 기존 로드맵에서의 격차가 아니라 새로운 사조를 만드는 씨앗들, 그로부터 출발한 유니크한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독보성은 유니크한 기술이 아니라 더 열심히 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니크한 기술의 출발은 사조, 장르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과학기술 분야로만 한정해 보더라도 한국이 사조를 연 분야가 있다고 저는 확신하지 못합니다. 과학기술 관점에서 한 단계 수준을 높인다는 건 한국에서 새로운 사조가 나온다는 걸 말하는 것 아닐까요?
로드맵을 벗어나는 최초의 질문
체제 전복적 질문과 무모한 도전
박상욱 _ 기술개발에서 최초의 독창적 질문을 던지는 것, 남다른 솔루션을 내놓는 것, 사조를 일으키는 것이라고 하는 세 가지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겠습니다. 한 예로 19세기에 버터를 대량생산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과 그에 대한 기술적 솔루션을 내놓은 건 스웨덴이지만 버터 산업의 사조를 일으킨 것은 덴마크입니다. 그러면 이차전지 중에서 리튬이온배터리를 생각한 것은 미국, 일본이지만 이것을 사조로 일으킨 건 어찌 보면 한국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마찬가지로, 액정디스플레이도 꽃을 활짝 피운 것, 즉 사조를 일으킨 건 한국이라고 볼 수도 있는 거 아닐까요? 이렇게 보면 한국이 사조를 일으키는 능력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 않나요? 한국적인 유니크함이랄까요.
이정동 _ 비즈니스나 기술에서 하나의 아이디어가 궁극적으로 큰 사조로 발전하고, 큰 비즈니스로 키우는 걸 다른 나라가 이루어버리는 사례가 많죠. VTR(비디오테이프 레코더) 같은 경우에도 원래 미국의 암펙스라는 회사가 먼저 만들었고, 이걸 일본이 꽃피우고 한국이 세계 1위를 물려받는 흐름이죠. 그 줄기를 하나의 사조라고 본다면, 저는 계속 최초의 출발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최초의 출발점은 하나가 아닙니다. 나무가 계속 새로운 가지를 뻗으며 성장하듯이, 새로운 가지들의 출발점 하나하나가 모두 최초의 출발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리튬이온배터리도 우리가 새로운 가지를 뻗어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낸 성공적인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도체 나 배터리 등 지금 우리를 먹여 살리는 가지들은 모두 20년 전에 싹이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그 외 과학기술이나 산업계 일반을 보면 그런 싹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눈앞에 있는 많은 기술의 진화 과정을 역으로 쫓아가 보면, 중간중간의 새로운 출발점들에서 여전히 전통적인 기술선진국들만 보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런 논의를 하는 이유가 우리나라도 고유한 기술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인데요. 결과적으로 새로운 사조를 만들어내기를 원하는 거니까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BTS는 ‘케이팝(K-POP)’이라는 새로운 가지, 즉 사조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그런 게 많이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게 우리의 희망 아닙니까? 그런데 집요한 추진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기존의 상식과 다른 길을 가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최초의 질문들이 많아야 합니다.
이상욱 _ 통찰력이 있어야겠죠. 통찰력이라는 게 결국은 꿰뚫어보는 능력이잖아요. 여러 측면을 한꺼번에 묶어내서 솔루션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여러 분야의 아이디어들을 가져다가 자신의 문제 풀이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 유사성과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한 일종의 패턴 인식을 해내고 그것들을 가져다가 활용하는 능력, 이런 것들이 통찰력의 핵심입니다.
박상욱 _ 불편을 인식하고, 불편에 대한 인식을 질문으로 바꿔 그 질문에 대한 솔루션을 스스로 만들어내든 어디서 구하든 그것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유니크함이 시작된다는 것이군요. 그런데 지금까지 그게 왜 선진국에서만 나왔느냐? 이 부분이 궁금합니다.
이정동 _ 우리 사회에 선진국이 정한 로드맵을 벗어나는 질문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한 것이 문제입니다. 새로운 질문을 받아들이는 풍조가 있었다면 새롭고 다양한 사조의 출발지가 될 수 있겠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가 지금 고유한 기술, 전략기술, 기술 선진국다운 어떤 기술을 만들어야겠다고 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융합일 것 같아요. 새로운 질문을 던지자면 융합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 융합적 솔루션을 찾기 위한 최초의 지향점이 없기 때문에 고유한 기술이라고 내놓을 만한 게 없는 거 아닌가?
심지어 대체 불가능한 기술도 없지요. 중국이 우리 바로 밑에 있어요. 저는 중국과의 질적인 격차도 아주 작다고 봐요. 중국과 5년, 10년 정도의 차이가 나는 기술이 없다고 보고 있죠. 그러면 독보적인 기술이 없는 거니까, 독보성 차원에서도 유니크한 기술은 없는 거죠. 그렇다면 격차를 벌릴 노력을 할 게 아니라 체제 전복적(subversive)인 질문들이 많아야 하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지금 그런 질문들이 없는 것 같습니다. 집단의 리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체제 전복적인 질문을 던지는 게 중요합니다. 비저너리(visionary)들이 응당한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런 사람들이 많으면 그 중에 몇은 데스 밸리를 넘기도 하겠죠. 문제는 그 미친 듯 보이는 무모한 질문들의 싹이 몇 개냐 인 것 같아요. 유니크한 기술은 사전적으로 정의할 수 없고 사후적인 결과로 인식할 수 있을 따름인데, 굳이 사전적으로 준비할 수 있다면 그 싹을 많이 만들어내고, 무모한 도전을 허용하며, 그들이 느끼고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는 거죠. 그 결과물이 고유한 기술들의 집합인 기술 선진국인 것 같아요.
박상욱 _ 모든 싹이 성공할 수는 없지만,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이군요.
이상욱 _ 사실 과학사에는 그런 사례가 정말 많아요. 과학자들이 볼 때 과학은 아주 논리적으로 발전하는 것처럼 보지만, 결과론이죠. 원자 모형을 예로 들면, 모든 과학자는 고대 아테네 때부터 이에 대한 똑같은 질문을 던졌는데 단지 능력의 차이가 있었다고 보지요. 고대 아테네 때는 여기까지만 해결했고, 러더퍼드는 여기까지, 보어는 여기까지 해결했다는 식의 단순한 선형적 진보 모형으로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나 이것은 성공한 연구 결과만 모아서 나중에 정리한 거예요. 당시에 똑똑한 사람들이 여러 가지 시도를 했는데 그 중에서 살아남은 것들이 교과서에 실린 거거든요. 과학의 역사에서도 엄청나게 많은 아이디어가 시도되고, 그 중 여러 가지 선택압력에 의해 일부가 선택돼서 과학 지식으로 굳어진 거죠. 지금 보니까 그게 다 가려지고, 새롭고 이상한 질문을 던지는 것의 가치를 잊어버렸어요.
기존에 없던 교과서를 만들 수 있는 힘
'놀라운 기획 역량'의 빛과 그늘
이정동 _ 어떻게 보면 우리가 교과서를 새롭게 만들어낸 게 아니라 외국의 것을 수입하고 번역해 왔기 때문에, 그 교과서의 이야기가 우리 마음의 지도를 그려버린 것 같아요. 교과서를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상태를 벗어나야 해요. 분야별로 교과서를 써낼 수 있는 힘을 가진 국가가 기술 선진국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교과서에 포함될 만한 장(chapter)을 가진 분야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 저는 모르겠어요. 비즈니스 세계로 치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말하는 것인데, 그것도 찾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 하나의 독창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성립하면, 그것을 수입하고 변형해 한국 사회에 적용하는 과정이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합성생물학이 만들어진 과정이 정말 인상적입니다. 1960년대 활동했던 한 정보통신기술자가 1990년대에 MIT에서 생물학개론 수업을 들었습니다. 학부 수준의 수업을 듣고는 ‘DNA가 통신암호 정보처리하고 비슷하네? 그렇다면 거꾸로 생물 현상에 대해 새로운 접근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융합적 질문을 던진 겁니다. 제가 온라인 서점 아마존에 찾아보니까 합성생물학(Synthetic Biology)이란 제목의 교과서가 이미 많더라고요. 이렇게 기존에 없던 교과서를 만들어낼 수 있는 힘, 그 힘의 출발인 질문이 우리에게 없으니까 고유한 기술이 없는 게 아닐까 하는 문제의식을 갖게 됐습니다.
박상욱 _ 천재가 하늘에서 똑 떨어져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게 아니라는 점이 오늘 대담에서 많이 언급되지 않았습니까? 결국 우리나라가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소위 ‘비빌 언덕’은 기존에 잘하고 있는 어떤 행태에서 찾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이 잘하고 있는 건 뭔지, 한국이 잘하고 있는 데에서 새로운 질문이라는 걸 잉태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정동 _ 한국의 특징은 ‘약한 현장과 강한 경영’이라고 합니다. 과감한 대규모 투자 결정에 강점이 있다는 것인데, 그 투자는 증명되지 않은(unproven) 기술에서는 그렇게 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한국의 강한 의사결정은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의 추격 전략이라는 전형의 산물이었던 것입니다. 잘 살펴보고 ‘저건 우리가 조금 더 투자해서 더 잘할 수 있다. 돈 부족하면 정부가 밀어주고.’ 그렇게 대단위 투자가 일시에 이루어지죠. 앨리스 암스덴 교수가 한국이 강점을 갖고 있다고 말한 역량, 바로 타당성 조사(feasibility test) 역량이 그것입니다. 예전 기획재정부, 종합상사, 대기업 기획실 이런 데서 일하던 똑똑한 사람들이 증명된 기술 가운데 대형 투자로 빠르게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을 판단하는 능력을 훈련 받고, 잘 발휘했던 것이죠. 시장이 확실하고 기술 도입이나 모방이 가능한 그런 기술들을 판단하는 능력이 있었다는 겁니다.
한국이 잘하는 반도체, 조선, 이차전지 등은 전부 과단성 있는 의사결정으로 얻어진 것들이거든요. 바이오 시밀러 산업을 보십시오. 5~6년 투자해서 불과 몇 년 만에 바로 세계 1위가 됐잖아요. 바이오 시밀러 산업이라는 게 증명된 기술, 설비 투자가 결정적으로 중요하고, 품질 관리(quality control)도 핵심 요소인데, 우리는 이미 반도체 산업에서 그런 역량을 쌓아와서 바로 도입할 수 있으니까요. 바이오 시밀러 산업을 육성한 것이 문제가 있었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그와 다른 종류의 성공 사례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해서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성공했지만 지금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면 다른 프레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박상욱 _ 과거의 성공에는 우리가 가지고 있던 놀라운 기획 역량이 바탕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거네요. 하지만 과감한 경영 의사결정을 했다고 누구나 그걸 실현해내는 건 아니잖아요. 어떻게 보면 한국이 가진 엄청난 역량이 단지 새로운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는 원죄로 평가절하돼 있는 것은 아닌가? 사실은 축적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 축적이 없는데도 해내는 놀라운 역량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거죠. 다음으로, 놀라운 기획 역량과 추진력이 과거의 성공 모델이었지만 이걸 버려야 한다는 지적인데, 그걸 어떻게든 살려볼 수 없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예를 들어서 놀라운 기획 역량으로 근미래의 유망 기술을 선정하고, ‘큰 씨앗’을 뿌릴 정도로 투자해서 키워내면 그때는 한국이 세계 시장에서 치고 나가는 분야가 되지 않을까요.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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