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8월7일부터
여름휴가가 시작되었다.
알츠하이머(치매)로
고생하시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힘듬과 어려움을 간호하시는 큰형님과 큰형수님이 계시는 고향으로 (전라남도 고흥) 출발하였다.
죄인된
자식의 마음으로 올해도 어김없이 여름휴가는 아버지 뵙고 고생하시는 큰형님내외를 위로 하는 것으로 목적을 정하였다.
휴가기간
동안 집에서 텔레비전과 웹서핑 하는 것으로 계획 잡은 것 같은(?) 딸 하은이를 금전(?)으로 회유하여 차에 태우고 서해안고속도로를 접어
들었다.
머플러(마후라)가
고장나 "끼리릭 끼리릭"소리를 연발하는 아반떼는 서해안의 경치를 끼고 서남진 방향으로 진행하였다.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하기 위하여 서해안 줄포IC를 접어들었다.
서해안
고속도로 줄포IC에서 호남고속도로 정읍IC를 들어섰을 때 급기야 차에어컨이 문제를 일으키고 말았다.
하필,
그때 에어컨 조절을한 딸 하은이 한테 “괜한 에어컨이 네가 만저서 고장 난거야”라며 꾸중을 하였다.
하하하~
사실 우리 집 하은이 손은 아주 예쁜 손이기도 하지만 간혹, 그의 손은 물건이나 기계의 고장을 유발 한다.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멀쩡한
오디오가 나오지가 않고, 잘 서있던 밥상이 중심을 잃는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했던가...
아무
관계도 없이 한 일이 공교롭게도 때가 같아 억울하게 꾸중을 들었으니 억울하기도
하였을
것이다.
이글을
보고 있을지도 모를 사랑하는 딸 하은아...이 부족한 아빠를 용서해다오...
찌는듯한
고속도로상에서 에어컨기능을 잃은 차내부를 상상해 보라...
차가운
바람의 냉기를 잃어버린 아반떼는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5월의 고장 광주로 진입하고 있었다.
1년6개월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어머님 가슴 같은 남녁의 광주....
갓
백일을 넘긴 막내 지환이를 앉고 광주로 이사를 왔었다
이곳에서
딸 하은이는 자전거를 배웠었다.
지난날의
잊혀진 모습들이 하나둘씩 다시 떠올랐다.
광주로
이사온던날 이삿짐을 채 풀기도 전에 딸 하은이 전학수속을 위해 새롭고도 낯선 학교를 향하였다.
낯설고
새로운 환경의 두려움에 떨었을 하은이는 학교를 향하는 길목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요청하였다.
그
어린 딸의 마음에서 스스로 "하나님"을 찾는 광경을 보여주신 나의 아버지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기도 하셨지만 딸아이의 하나님이기도 하셨다.
광주를
그냥 지나치는게 아쉬워 지난날의 추억이 깃들은 운남동 삼성아파트 후문 상가에서
통닭(산닭)을
사들고 다시 호남고속도로에 진입하였다.
고장의
원인을 알 수 없었던 에어컨은 다시 정상작동을 하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여 아픈 아버지와 큰형님내외를 위한 가정예배를 하나님께 드렸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고향에 발길을 끓었던 막내누나의 간절한 기도를 끝으로 고향에서 첫날을 보냈다.
그
다음날 아침 7월의 뜨거운 햇살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첫째형가족,
셋째형가족, 둘째누나, 막내누나, 조카들과 함께 바닷가로 향하였다.
고흥
남열리 해수욕장을 향하는 길목에서 만난 팔영산의 빼어난 경치는 푸르름의 바닷가를 압도하였다.
팔영산
자락의 전망대에서 바라본 다도해의 모습은 장관이었다.
군데군데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다도해의 경관은 가히 남도의 아름다움을 전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곳곳에
펼쳐진 녹색의 숲은, 때 묻지 않은 자연을 간직하고 있었다.
매표를
하지 않은 비교적 넓은 주차장과 몽골리안 텐트, 샤워장 등 시설을 갓춘 해수욕장에서 짐을 풀고 삼겹살을 구웠다.
갯뻘
하나 없는 깨끗한 백사장은 이른 아침과 해지는 저녁에 사랑하는 아내와 거닐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였다.
쉴세
없이 몰아치는 파도에 정신을 팔고나면 오후 한나절은 온데 간데 사라지고 없었다.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파도와 즐겁게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와 캠코더에 다 담을 수
없음을
아쉬워 하였다.
내륙의
있는 것만 전부로 알고 제대로 해수욕 한번 못했을 사랑하는 처가댁 식구들과 내년에는 이곳에서 기필코 여름휴가를 보내고야
말리라....
고흥
집으로 돌아와서 몇시간 있지도 않고 다시 올라왔다.
마치,
도망치듯이 서울로 올라온 것이다.
아버지와
큰형님내외분께 향하는 나의 마음은 여전히 무겁다.
수고이상의
수고를 하시고, 고생이상의 고생을 하시는 형님과 형수님께 변변찮은 위로도 못건네주고 왔다.
떠나는
차안에 있는 우리를 향해 “동생들아 아버지를 위해서 기도 많이 해주라”는 형님의 외침이 여전히 깃가를 울리고 있다.
그렇게
즐거움, 죄스러움, 아쉬움이 교차하는 여름휴가가 끝나가고 있었다.
첫댓글 맘이 울컥하네요~~ 멋진 휴가셨던것 같아요... 내년에는 땅만 밟고 다니는 이 불쌍한 지도 데려가 주세요~ㅎㅎ (언냐~! 큰형님께 특별히 잘혀~^^)
서니 언니가 자랑 많이 했는데 누릴줄 알고 나눌줄 아는 집사님 멋있어요 ㅎㅎㅎ
멋있는 휴가 기행문 잘 읽었습니다.. 글쓰기의 귀재!!
대근아리~!! 자네도 만만치 않게 잘 쓰는거 알고 있남?..^^
캬~~~하!!